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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완의 탐정소설 같은 역사 : 몰레만스 기자의 일본군 성노예 추적

2013년 로테르담의 어느 아파트에서 집수리 하려던 기술자가 죽은 지 10년 된 사체를 발견한다. 텔레비전을 통해 엄마의 죽음을 알게 된 딸이 나타난다. 딸은 자신이 알고 있던 출생의 역사적 배경과 다른 실제적인 역사적 배경과 만나게 된다. 탐정 소설의 첫 장면이 아니다.

네덜란드 탐사 기자 글리셀다 몰레만스가 수년의 조사를 거쳐 내 놓은 책 ‘전쟁으로 새겨진 생애’(A Life of War)는 그렇게 일본군 성노예였던 어느 네덜란드 피해자의 시체 발견으로부터 시작한다. 이 책은 작년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시회에서 영문판 일부가 소개된 후 현재 네덜란드어, 영어, 독일어로 발간되는 중이다.

일본이 전쟁 자원을 확보하기 위해 시작한 1931년의 만주침공부터 시작하여 이듬해 상하이 공격을 거쳐 태평양 전쟁과 2차 세계대전 기간동안 자행된 성폭력의 역사와 성폭력체계의 발전과정과 패전 후 미군에게 물려주었다가 결국 1946년에 문을 닫은 ‘위안소’에 이르기까지 몰레만스 기자는 관련국의 국가자료를 열람해 취재했다. 취재 과정에서는 자비로 변호사를 동원하며 자료에 접근하기도 했다. 그 성과는 다음 세 가지를 특별히 들 수 있겠다.

네덜란드 탐사 기자 글리셀다 몰레만스
네덜란드 탐사 기자 글리셀다 몰레만스ⓒ필자 제공

피해자 소속 국가 35개국

몰레만스 기자의 조사에 따르면,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의 소속 국가는 35개국이다. 작년에 원고를 마무리할 무렵만 해도 34개국이었으나 그 사이에 새로이 한 국가의 문서가 밝혀졌다. 이는 몇 년 전까지 상식화되어 있었던 13개국, ‘위안소’가 있던 지역을 오늘날 국가로 따지면 22개국이라는 수치를 훨씬 상회한다.

일본이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서 벌인 전쟁은 그 전쟁이 2차 세계대전의 일부이라는 점에서 세계인의 역사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그 전쟁은 본토보다 훨씬 넓은 축복받은 땅들을 식민지화한 제국주의 국가들 사이의 전쟁이었다. 펄하버(진주만)를 공격하기 전에 태평양 지역에서 일본은 그 곳에 식민지를 두고 있던 네덜란드, 영국, 프랑스 등과 전쟁을 했다. 역사를 굳이 미국 중심으로 서술할 필요성을 못 느낀다면 태평양 전쟁은 이미 세계 전쟁이었다. 전투에서 진 제국의 국민들은 강제 노동수용소로 끌려가거나 강간을 당하고 또 그 나라의 매국노들의 도움으로 성노예로 차출되기도 했다. 희생자들은 식민지 주인으로 살던 서양계 주민이라든가 그곳에 파견되어 있던 간호사, 수녀 등 다양한 직종의 여성들이다. 네덜란드 경우는 한국 국내에 얀 루프 오헤르네 할머니의 존재를 통해 많이 알려진 경우이긴 하지만 몰레만스 기자의 조사에 따르면 네덜란드 뿐 아니라 다른 서양 국가는 물론 자바 섬에 있던 독일인도 피해를 당했다. 2018년 독일 본(Bonn) 소재 여성박물관이 ‘평화의 소녀상’ 건립 일자까지 정해 두고 준비를 하던 중 일본과 본 시당국의 영향 아래에 놓여 생존 압박을 받던 시기에 몰레만스 기자는 주최측과 연대하기 위해 가주한미포럼 김현정 대표의 주선으로 당시 관계자들에게 독일 피해 사실이 들어 있는 미발표 원고를 내놓기까지 했다.

요코하마 은행의 피묻은 돈

1930년대 초반부터 2차 세계대전이 끝날 때까지 여성에 대한 만행을 자행한 ‘위안소’ 체제는 고노 담화에서는 부분적으로 연행과정의 강제성이 인정되고 사과의 표현이 있었던 사안이기는 하지만 그 ‘위안소’ 체제에서 피해자들이 겪은 참혹한 상황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언급은 없었다. 오늘날 일본 아베 정부에서 당시 참상에 대해 부인을 하며 심지어는 피해자들이 돈을 많이 벌었다는 망언까지 우파 집단에서 공공연히 나오고 있는 여지를 남겨둔 셈이다. 특히 해외 소녀상 건립 과정에서 일본 총영사관측이 소녀상 건립이나 전시를 방해할 때 내놓는 주장 중 하나가 당시 ‘위안부’들이 돈을 벌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몰레만스의 연구는 ‘위안소’ 사용자가 돈을 내도 당시 네덜란드와 유럽의 피해 여성들은 남자가 돈 낸 영수증을 받았을 뿐 그 돈은 받지 않았고 전쟁이 끝난 후 그 영수증을 환전하지 못한 것으로 본다. 그러면 당시 군용 은행이던 타이완 은행(Bank of Taiwan)과 요코하마 은행(Yokohama Specie Bank)은 전후 어떻게 되었으며 누구의 소유가 되었는가 하는 질문이 남는다.

글리셀다 몰레만스의 ‘전쟁으로 새겨진 생애’(A Life of War) 표지
글리셀다 몰레만스의 ‘전쟁으로 새겨진 생애’(A Life of War) 표지ⓒ필자 제공

생각보다 많았던 전범재판, 일왕의 책임 문제

세번째로 특기할 것은 몰레만스 기자의 시선은 그간 피해자들의 커밍아웃으로 알려지기 시작했다는 일본군 성노예 체제의 진실에 관한 신화를 새로운 팩트를 통해 깨뜨려 나간다는 점이다. 관련 사안에 관해서는 바타비야 전범 재판이나 두어 건 전범 재판이 있다는 정도로 알려진 기존의 인식과는 달리 전범 재판에서 개인적 혹은 집단적인 강간과 강제매춘에 대해 사형 혹은 징역형이 선고된 사실 또한 서술한다. 한편 일왕의 책임 문제와 관련해서는 당시 제국주의 전쟁 아래서 일왕이 모르고 진행된 일은 없었다는 사실을 제시한다. 물론 피해자들의 국가에서도 성노예 문제를 모르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몰레만스는 그들에게는 일본과의 무역관계가 더 중요했다는 사실을 주지한다. 한편, 2000년 도쿄 민간법정 때 일왕에 대한 판결이 있었지만 자칫 간과될 수 있는 일왕책임론을 놓치지 않는다.

몰레만스 기자는 기존 연구에서 나오는 수치가 믿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문서를 뒤지면서 조사하기 시작해 현재의 성과를 내놓았다고 한다. 믿을 수 없는 일에 대응하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그 가해자를 규탄하는 일이며, 다른 하나는 가해자가 더이상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증거의 그물을 더욱 촘촘히 짜는 것이다. 후자를 선택한 몰레만스 기자의 책은 어쩌면 당장 행동하는 이들에게는 큰 의미가 없는 책인지도 모른다. 현재의 증거만으로도 충분하기 때문이다. 그것도 맞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정당하다는 사실 뿐 아니라 정당성을 다각도에서 확보해 나가는 일이라 할 때, 몰레만스 기자는 후자를 선택했다. 몰레만스 책이 후자의 미덕을 온전히 표방하는지 하는 문제는 그 책이 발간된 후 꼼꼼히 읽어본 독자들이 판단할 몫이다. 몰레만스 기자의 책이 한국어로 읽혀질 수 있길 바란다.

이은희 유럽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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