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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영화 ‘신의 은총으로’ 신부의 아동 성범죄 고발한 피해자들 “교회는 침묵에 맞서야 한다”
영화 ‘신의 은총으로’
영화 ‘신의 은총으로’ⓒ스틸컷

프랑수아 오종 감독의 영화 ‘신의 은총으로’는 가톨릭 사제의 아동 성범죄에 맞서 진실을 밝히기 위해 침묵을 깨고 나선 평범하지만 위대한 영웅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지난해 제69회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심사위원대상을 받으며 뜨거운 화제를 모은 작품이기도 하다. 성 학대 범죄를 저지른 프레나 신부를 고발한 피해자들의 모임 ‘라 파롤 리베레’(해방된 목소리)의 이야기를 접하게 된 오종 감독은 과거의 상처를 마주하고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하기 시작한 알렉상드르를 비롯한 영화의 실제 주인공들을 직접 만나 이들의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었다.

행복한 가정을 꾸린 알렉상드르는 유년 시절 자신에게 성적 학대를 저지른 프레나 신부가 여전히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는 소식에 큰 충격을 받는다. 프레나 신부를 막기 위해 그는 프랑스 교구에 자신이 과거 입은 성폭력 피해를 증언한다. 하지만, 교구를 담당하는 바르바랭 추기경을 비롯한 가톨릭 조직은 범죄를 축소하고, 범죄를 감추려 한다.

종교는 흔히 침묵을 강조한다. 자신을 드러내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보다는 침묵 속에서 깊은 내면에서 울리는 신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라고 가르치곤 한다. 하지만, 때론 신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기 위한 침묵이 아니라, 종교를 지킨다는 명분을 앞세워 종교 안에서 벌어지는 여러 문제점을 외면하면서 침묵할 것을 강요하기도 한다. 이렇게 진실을 가리기 위해 강요되고, 의도된 침묵은 범죄이고, 빛을 가리는 어둠이다.

영화 ‘신의 은총으로’는 비슷하게 사제의 아동 성폭력을 다룬 영화 ‘스포트라이트’와 많은 부분에서 비교될 수밖에 없다. ‘스포트라이트’는 미국의 일간지인 보스턴 글로브 안에 있는 ‘스포트라이트’ 팀이 가톨릭 보스턴 교구 사제들의 아동 성추행 사건을 집념을 가지고 파헤쳐 진실을 보도하는 과정을 다룬 영화다. 주제는 비슷하지만, 접근하는 방식은 조금 다르다. ‘스포트라이트’는 진실을 밝히려는 기자들의 집념에 초점을 맞췄고, 영화 ‘신의 은총으로’는 피해자의 시선, 수십 년의 세월이 지나 드디어 용기를 갖게 된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담아내고 있다. 침묵을 깨고 나선 이들의 싸움은 빛을 가리는 어둠을 걷어내기 위한 투쟁이었다,

거대한 종교조직과 맞서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전병욱 목사 사건을 비롯한 교회 내에서 벌어진 성폭력 사건의 경우 교단은 물론 교회 신자들까지 ‘교회를 지켜야 한다’는 명분으로 침묵을 강요하거나, 오히려 피해자들을 ‘꽃뱀’이나 ‘이단’으로 매도하는 일까지 벌어진다. 그리고, 이러한 침묵의 카르텔이 계속되면서 범죄는 사라지지 않고 되풀이된다. 이런 침묵의 악순환을 끊어 내기 위해선 말하고, 진실을 알려야 한다.

영화 ‘신의 은총으로’
영화 ‘신의 은총으로’ⓒ스틸컷

알렉상드르의 고발에도 공소시효로 인해 프레나 신부에 대한 처벌은 어려움을 겪는다. 심지어 바르바랭 추기경은 “신의 은총으로 이미 공소시효가 지난 일입니다”라면서 사건을 축소하려고만 한다. 알렉상드르는 교황에게 쓴 편지에서 이렇게 고백한다.

“침묵한다고 범죄가 사해지는 건 아닙니다. 이는 깊고 영원한 고통의 원천일 따름이죠. 교회는 침묵에 맞서야 하며, 이 지독한 어둠에 빛을 밝혀야 합니다. 추기경에 따르면 그는 9월부터 정직되지만 계속 신부로 남겠지요. 최대한 잡음이 없도록 범죄를 축소하다니 참기 힘듭니다. 연민도 분노도 거의 남지 않았습니다. 제 진실의 여정이 불편하시겠죠. 교황님의 약속 덕에 힘을 내보지만, 우리 교회가 부끄럽습니다. 프레나 같은 사람들이 여전히 사제라니 아이들을 범한 이 범죄자에 언제쯤 단호히 대처하시겠습니까? 용기를 내어 이 글을 써 보내기까지 30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긴 침묵을 깨고 알렉상드르가 프레나 신부를 고발하자 그와 같은 피해를 본 프랑수아와 에마뉘엘 등 다른 피해자들의 용기가 이어졌다. 용기가 이어지면서 그들의 목소리는 커졌고, 침묵에서 벗어나길 결심하며 ‘라 파롤 리베레(해방된 목소리)’라는 단체를 결성하고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이들은 자신이 억눌러 왔던 진실의 목소리를 해방시켰지만, 프레나 신부는 자신은 병에 걸린 것이라면서 합리화를 하려 한다. 교회는 이들에게 어설픈 화해를 요구하며 사건을 봉합하려 한다.

이런 어려움을 뚫고 프레나 신부와 바르바랭의 형사재판은 1심이 진행되고 있으며, 바르바랭 추기경은 1심에서 범죄 은폐 혐의 등으로 징역 6개월과 집행유예를 선고받아 현재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 싸움은 계속되고 있지만, 이들의 투쟁은 아주 조금씩 세상을 변화시키고 있다. 지난해 법이 개정돼 공소시효는 성인이 된 후 20년에서 30년으로, 미성년자에 대한 성적 학대 신고하지 않는 것 역시 범죄로 간주한다.

영화 ‘신의 은총으로’
영화 ‘신의 은총으로’ⓒ스틸컷

교회와 힘겨운 싸움을 하는 알렉상드르에게 아들이 “아직도 신을 믿느냐”고 묻는다. 영화에서 그는 대답하진 않았지만, 싸움을 이어가면서도 흔들리는 신앙을 다잡으며 진실의 목소리를 낸 건 신을 진정으로 받으들이기 때문에 가능했던 건 아닐까? 바르바랭 추기경은 “신의 은총으로 이미 공소시효가 지난 일입니다”라고 했지만, 어쩌면 진정한 ‘신의 은총’은 진실의 목소리를 키워가는 알렉상드르의 신앙 여정에 있는 것은 아닐까? 이 영화에선 진실을 알리기 위해 싸우는 피해자들의 고뇌와 연대가 잘 드러나 있다. 자극적인 장면은 없지만, 그들의 상처가 오롯이 느껴진다.

다만, 작품 번역에 있어선 조금의 아쉬움을 지우기 힘들다. 몇몇 용어와 기도문이 우리나라 가톨릭 교회가 사용하는 공식 표현과 다른 부분 때문에 조금은 어색하게 느껴지는 ‘옥에 티’가 아쉽다.

권종술 기자

문화와 종교 분야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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