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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경의 삶과 문학] 삶과 문학 속의 당신들
이수경의 삶과 문학에 소개된 작품들
이수경의 삶과 문학에 소개된 작품들ⓒ기타

지난해, [삶과 문학]이라는 지면을 통해 열 명의 작가와 그들의 소설 속 인물들을 소개했다. 60년대 조세희의 난장이가족, 1971년 광주대단지 사건으로 옥살이를 하고, 재단기에 한쪽 팔을 잃은 여공 안순덕을 위해 공장주와 맞서는 윤흥길의 아홉 켤레 구두로 남은 사내 권기용, 2009년 용산 4구역 재개발지역의 불타는 망루에서 사라진 세입자, 이만교 작가가 쓴 소설 속 예순여섯 명의 한기 씨, ‘밥풀떼기’라 불리며 91년 공안정국 속에서 열사의 주검을 지키던 김소진의 날품팔이 재복과 투전꾼 상선과 소외계층의 노동자들, 비오는 밤 수캐에게 능욕당해 죽어가는 재래종 암컷 황구처럼 양색시 ‘담비 킴’으로 살아가는 천승세의 은주, 흩어져있는 크레인 노동자들의 노조를 만들고 파업을 성사시키지만 하도급업체의 위험한 편법으로 크레인에서 추락해 숨진 하명희의 정혜언니, 박태순 소설 속 4․19 항쟁의 대학생들과 방현석의 87년 노동자 대투쟁 시절의 노동자들, 공사장의 암흑 같은 작업환경을 바꾸고자 남포를 입에 물고 산꼭대기에 올라선, 황석영의 소설 <객지>의 서해안 간척 공사장 일용직 노동자들과 동혁, 그리고 반제, 반봉건 계몽과 실천의 중국작가 루쉰과 베트남 독립과 혁명의 지도자 호치민까지.

소설 속 허구의 인물들은 현실의 이름들을 불러낸다.

강남역 사거리 20미터 위 철탑에서 아직도 내려오지 못한 노동자 김용희와, 서울톨게이트 캐노피 옥상에서 불볕의 계절을 고스란히 몸으로 받아내고도 여전히 제자리로 돌아가지 못한 톨게이트 요금수납 여성노동자들과, 10년이 흘렀지만 그 뜨겁고 참혹한 죽음의 원인과 책임이 밝혀지지 않은 채 묻혀있는 용산 4구역 철거지역 남일당 망루의 철거민들과, 민주노조를 만들고 지키기 위해 해고되고 구속된 87년 노동자 대투쟁의 후예들. 하지만 30여년이 지난 후, 옆 동료들이 목숨을 버리는 극한의 고통 속에서 공장을 떠나지도 다시 돌아가지도 못한, 유성기업과 쌍용자동차의 노동자들.

체감온도 영하 17도 2019년 마지막 날인 31일 서울 강남역 사거리 교통 폐쇄회로(CC)TV 철탑에는 1995년 삼성에서 해고된 김용희(60) 씨가 205일째 고공농성을 하며 찾아온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고 있다.  2019.12.31
체감온도 영하 17도 2019년 마지막 날인 31일 서울 강남역 사거리 교통 폐쇄회로(CC)TV 철탑에는 1995년 삼성에서 해고된 김용희(60) 씨가 205일째 고공농성을 하며 찾아온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고 있다. 2019.12.31ⓒ김철수 기자
민주노총 소속 톨게이트 요금수납원들이 9일 오전 영하의 날씨에 한국도로공사의 직접고용을 촉구하며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오체투지를 하고 있다.  2019.12.09
민주노총 소속 톨게이트 요금수납원들이 9일 오전 영하의 날씨에 한국도로공사의 직접고용을 촉구하며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오체투지를 하고 있다. 2019.12.09ⓒ김철수 기자

그러나 문학에서든 현실에서든 우리에게 새로운 세계를 상상하고 열망하게 했던 것은 세상 밖으로 밀려난 작은 몸의 그들이었고, 삶의 진실과 희노애락을 알려준 것 또한 그들이었다. 굴뚝과 철탑과 망루와 산꼭대기, 가장 작은 몸으로 가장 높은 곳에서.

작가 조세희는 난장이가족을 통해 ‘어떤 종류의 억압, 공포, 불평등, 폭력도 없고, 전제자도 큰 기업도 공장도 경영자도 없는, 독자적인 마을을 열망한 작은 힘들이 세운 세계’를 상상했고, 김소진은 시위현장에서마저 소외된 ‘밥풀떼기들’을 통해 누구도 이 사회구조에서 소외되지 않는 ‘열린사회’를, 작가 황석영은 간척 공사장 날품팔이 인부들의 삶과 저항을 이야기하며 ‘꼭 내일이 아니라도 좋은, 뒤에 오는 누군가를 위한’ 세상을 꿈꾸었다.

100여 년 전 작가 염상섭은 소설 <만세전>에서, 고국에 있는 아내가 위독하다는 전보를 받고 동경에서 서울까지 기차와 배를 타고 가는 일본 유학생 이인화의 여정을 통해, 식민지 조선과 조선인의 삶의 모습, 그것을 바라보는 지식인 청년의 고뇌를 핍진하게 묘사한다. 조선인 유학생 이인화가 본 고국의 거리는 ‘시가의 주인인 주민이 하나씩 둘씩 시름시름 쫓겨난, 새 주인이 독점한’ 패자의 뒷모습이었고, 그에게 비친 조선인은 천대를 받아도 얻어맞는 것보다 나으니, ‘공포, 가식, 굴복, 비굴…’의 뒤에 숨어 사는, 악착한 현실 앞에서 눈을 감는 것이야말로 무엇보다도 가치 있는 노력이요, 그들에게서 술잔을 빼앗는 것은 자살을 교사하는 것과 같은 무력한 존재들이었다.

2011년 6월 방패와 헬맷으로 부장한 용역경비업체 직원들이 유성기업 노조원들과 대치하고 있다.
2011년 6월 방패와 헬맷으로 부장한 용역경비업체 직원들이 유성기업 노조원들과 대치하고 있다.ⓒ자료사진

작가는, 1912년에 발포한 조선총독부의 ‘공동묘지령’에 반발하는 조선민중을 ‘공동묘지 속에 살면서 죽어서 공동묘지에 갈까 봐 애가 말라하는 갸륵한 백성’이라고 소설 속 인물 이인화의 입을 빌려 한탄한다. 1922년 처음 발표될 당시의 제목이 <묘지>였으니, 조선의 암울함과 유령처럼 떠도는 무력한 백성을 상징하는 것이었으리라. 그러나 <묘지>는 일제의 검열로 전면 삭제되고 1924년 <만세전>이라는 제목으로 새롭게 연재되는데, 그 배경이 ‘조선의 만세가 일어나던 전 해 겨울’, 1918년이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나는 작가가 <묘지>를 ‘만세의 전(前)’이라 새롭게 이름 붙인 연유를 상상한다. 전(前)이라 함은 필시 후(後)를 상상하게 하는 말이 아닌가. <묘지>의 민중과 ‘만세 후’의 민중은 작가의 의식 속에서 어떻게 변모된 것일까. 그들은 애초에 다른 존재들인가.

2018년 겨울, 나는 서울독립영화제 상영작인 다큐 <사수>를 보았다. 노조파괴 공작과 해고에 맞서 8여 년 간 공장과 거리에서 싸우고 갇히고 죽어간 유성기업 노동자들의 이야기였다. 고백하자면 나는 소설에 쓸 인물을 찾으러 그곳으로 갔고, ‘아직은 어떤 공장에서도 떠날 수 없는’ 노동자의 이야기를 썼다. 여전히 문학이 존재할 가치가 있다면, 추운 곳의 당신들은, 외로운 당신들은, 언제까지나 ‘문학’의 주인공이 될 것이고, 그리하여 우리에게 새로운 ‘삶’을 꿈꾸게 하리라.

이수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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