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보기
댓글보기
이란 위기 : 미국이 솔레이마니를 암살해야만 했던 세 가지 이유
미군 병사들과 취재진들이 이란의 미사일공격을 받은 이라크의 알아사드 기지를 둘러보고 있다. 2020.1.13
미군 병사들과 취재진들이 이란의 미사일공격을 받은 이라크의 알아사드 기지를 둘러보고 있다. 2020.1.13ⓒAP/뉴시스

편집자주/솔레이마니의 암살과 이란의 반격으로 이어진 이란위기가 잠시 소강상태를 맞고 있다. 하지만 지역에서의 패권을 둘러싼 미국과 이란의 갈등은 전혀 해소되지 않았다. 솔레이마니의 암살은 어떤 의미를 띠게 될까?

미국의 독립언론 카운터펀치에 실린 칼럼을 소개한다. 칼럼은 솔레이마니의 활동은 물론 그의 죽음조차도 이 지역에서의 미국의 쇠퇴를 의미한다고 분석했다. 원문은 The Three Victories that Sealed Soleimani’s Fate에서 확인할 수 있다.

미국에 의해 살해된 거셈 솔레이마니 장군의 군사적 전력을 살펴보면 미국의 군사, 정치 지도자들이 왜 그를 두려워했고, 동시에 왜 그의 죽음은 원하지 않았는지를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이러한 미국의 입장을 전적으로 보여준 것이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이었다.

2008년 1월, 부시는 회의 참석을 위해 시리아를 방문하는 솔레이마니를 죽일 수 있는 실질적인 기회가 있다는 보고를 받았다.

당시 미국 정보당국에게 솔레이마니는 이란혁명수비대 정예부대인 쿠드스군 사령관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는 2003년부터 2011년까지 이라크에서 미군을 괴롭힌 군사적인 반미 저항을 불붙이고 키우는 데에 주도적인 역할을 한 인물로도 알려져 있었다.

부시는 테러리즘과 이란에 대해 유화적이지 않았다. 그는 솔레이마니의 지원을 받는 이라크 민병대에 의해 죽은 미군이 600명이 넘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미국의 43대 대통령은 지정학적 현실이 가져다 준 혹독한 경험을 한 바 있었다. 그것은 바로 그의 어처구니없는 이라크 침공이었다.

부시는 사담 후세인의 제거가 미국이 통제할 수 없는 혼동과 테러리즘으로 이어졌듯, 솔레이마니의 사살이 예측 불가능한 피비린내 나는 결과를 가져와 미국의 이익을 해칠 수 있다는 사실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부시는 임기가 끝나갈 무렵에 하나의 교훈을 얻었다. 그것은 폭력적으로 적을 없애면 해결되는 문제보다 더 많은 문제가 발생한다는 것이었다. 트럼프는 이를 아직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말이다. 12년 전 부시가 솔레이마니를 제거할 기회를 그냥 흘려보낸 이유다.

트럼프는 부시의 교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트럼프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트럼프는 이스라엘의 정보기관인 모사드와 그의 세련된 암살기구가 여러 번 고려했다가 포기한 일을 해 버린 것이다. 트럼프는 신중한 논의없이 방아쇠를 당기고 말았다.

솔레이마니는 과연 암살된 것인가? 그러니까 그가 임의적인 정치적 이유 때문에 죽임을 당한 것인가? 아니면 솔레이마니는 “조준 사살”, 그러니까 정당한 전쟁의 일환으로 죽임을 당한 것인가?

미 국방부는 솔레이마니가 미국인을 공격할 “계획을 적극적으로 고안하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한 고위 관료(아마 CIA의 고위관료였을 것이다)가 뉴욕타임스에게 말한 바에 의하면 그 주장을 뒷받침 할 만한 근거는 “실낱같다”고 한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NBC에서 사살 당시 솔레이마니가 미국인들에 대한 공격을 “곧” 하려고 계획하고 있었다고 한다. CNN이 폼페이오에게 그 공격이 얼마나 빨리 이뤄질 것으로 예측했느냐고 다그쳐 묻자 폼페이오는 “그것은 중요한 일이 아니다”라고 얼버무렸다.

미국 정계에서 나오는 얘기들은 그냥 미루어놓자.

어찌되었건 솔레이마니는 (아직까지는) 미국의 군사동맹국인 이라크의 공식적인 손님이었다. 다시 말해, 그는 환영받지 않는 인물이 아니었던 것이다.

디인터셉트가 폭로한 이라크의 정부 문서들에 따르면 솔레이마니는 이라크 국정 운영에 상당한 영향력을 미쳤고 그가 영향력을 미친 고위 관료들 중에는 친미파도 상당히 많았다고 한다.

지난 5일, 아딜 압둘 마흐디 이라크 총리는 솔레이마니가 사우디아라비아와의 외교에 대응하기 위해 이라크를 방문했었다고 했다.

사우디 왕실과 이란이 앙숙이기는 하지만 반이란과 반미 시위로 몸살을 앓고 있는 중동지역을 안정화하기 위한 비밀 협상을 벌이고 있었던 것이다.

언론 보도들에 따르면, 마흐디 이라크 총리는 “그가 암살된 날 아침에 솔레이마니를 만나기로 돼 있었다”며 “그는 우리가 이란에게 건넨 사우디의 메시지에 대응하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온 것이었다”고 했다.

그후 이라크 의회는 만장일치로 이라크에 주둔하고 있는 5,000명의 미군을 철수시키기로 결정했다. 다만 이라크 의회는 미군 철수 데드라인을 정하지 않았고 비시아파 의원들은 표결에 참여하지 않았다.

이라크 의회 의장 모함마드 알-할부시가 이라크 의회 공보관에서 성명을 발표하고 있다. 이라크 의회는 이라크내 미군의 철수를 요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2020.1.5
이라크 의회 의장 모함마드 알-할부시가 이라크 의회 공보관에서 성명을 발표하고 있다. 이라크 의회는 이라크내 미군의 철수를 요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2020.1.5ⓒAP/뉴시스

미국은 왜 솔레이마니를 죽였을까?

미국과 이스라엘, 그리고 사우디가 솔레이마니를 무서워한 가장 큰 이유는 (솔레이마니가 때때로 테러를 활용하기는 했지만) 그가 테러리스트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가 대체로 성공적이었기 때문이었다.

이스라엘 정보당국은 솔레이마니가 “정황파악과 군사적 작전에서 실수를 한 적도 있기는 하지만 대담하고 재능있는 사령관”이라고 평가했다.

솔레이마니가 “여러 사람의 죽음을 가져온 배후세력”이라 생각하든 “이슬람의 순교자”라고 생각하든, 그가 이란이 중요한 3가지 목표를 이루는데 큰 역할을 했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첫째, 솔레이마니는 이라크에서 미군을 몰아내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솔레이마니는 쿠드스군 사령관으로서 2003년에 친미정권을 세우려던 미군에게 치명적인 타격을 줬던 반미 민병대들의 창설을 총괄했다. 이라크 민병대 대장 중 한 사람인 카이 알 카자리는 2008년 미국 정보당국에게 브리핑을 해 주면서 자기가 솔레이마니와 그와 비슷한 직급의 이란 관료들과 “몇 번 미팅을 했다”고 했었다.

카지리에 따르면 솔레이마니는 무기와 훈련, 자금을 제공하는 작전 단계에는 관여하지 않았다고 한다. 솔레이마니는 그런 임무를 아랫 사람들에게 맡겼다고 한다.

(이라크 전쟁 이후에 치안 유지와 전쟁 임무를 수행하고 중부사령관을 역임했던) 데이비드 퍼트레이어스 장군에 따르면 이란의 지도 아래 그런 민병대들이 원격 조정이 가능한 급조폭발물(IED)를 활용하는 전문가들이 돼 600여 명의 이라크 주둔 미군의 목숨을 빼앗았다고 한다.

테러리즘을 줄이고 민주주의를 확산하려던 미국의 목표가 명백히 실패하고 솔레이마니의 공격이 지속된 것은 오바마가 2011년에 이라크에서 대부분의 미군을 철수하겠다고 결정하는데 영향을 미쳤다.

이라크에서 미군을 쫓아내는 것은 이란 정부의 주요 목표였다. 솔레이마니는 거기에 크게 기여한 것이다.

이슬람국가의 천적

둘째, 솔레이마니는 이라크에서 이슬람국가(IS)를 몰아내는데 핵심적 역할을 했다. (이 승리를 통해 미국이 솔레이마니의 평판을 더 높였던 것은 아이러니다).

IS와의 전투에서 솔레이마니는 미국의 오만함이 아닌 약점을 이용했다. 6년 전이었던 2014년, 아부 바크르 알 바그다디가 이라크 서부에 이슬람국가의 수립을 선포하자 미국만큼이나 이란도 놀랐다.

이슬람국가의 수니파 근본주의자들은 이란과 이라크의 시아파를 미국인이나 이스라엘인에 버금갈 정도로 혐오스러운 비(非)신자라 간주하기 때문이다.

이라크 정규군이 무너지자 이라크의 아야톨라인 알리 시스타니가 이라크를 구하기 위한 시아파 민병대들의 창설을 지지했다. 시스타니는 종교적인 칙령(파트와)으로 이란의 군사력 동원을 가능하게 했고 솔레이마니의 민병대 네트워크를 확장시켰다.

이란의 지원 하에 있던 전투원들은 쿠르드족의 군사조직인 페쉬메르가와 함께 모술과 키르쿠크, 그리고 다른 이라크 도시에서 이슬람국가를 몰아낸 피비린내 나는 거리 전투의 대부분을 담당했다.

솔레이마니가 이라크에서 공개적으로 활동하는 동안 미군 장군들은 그를 공격하지 않았다. 그 또한 미군을 공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이라크의 친미 군인들과 친이란 군인들이 함께 싸우기도 했다.

아무도 공개적으로 인정하지 않은 이런 암묵적인 미국과 이란의 협조 덕분에 2017년이 되자 이슬람국가가 이라크에서 쫓겨나 시리아로 돌아갔다.

특히 2017년 6월에 이슬람국가가 이란의 수도 테헤란에 테러 공격을 가해 12명이 사망한 이후, 솔레이마니는 이란에서 영웅이 됐다.

이라크에서도 이슬람국가의 축출로 솔레이마니와 이란이 지원하는 민병대들의 평판이 높아졌다. 그 지도자들 중 일부는 정계나 재계에 진출했고, 이렇게 이란의 영향력이 커지는 것에 대한 불만이 터져 나오기도 했다. 그러니 이란의 영향력이 커지는 것에 불만을 느끼는 이라크 국민도 많았던 셈이다.

어찌되었건 솔레이마니는 취약해진 이라크 정부에게 꼭 필요한 안보 파트너가 됐다. 그가 살해된 당시 이라크를 방문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

이란 수도 테헤란에서 열린 반미시위. 2020.1.4
이란 수도 테헤란에서 열린 반미시위. 2020.1.4ⓒAP/뉴시스

CIA의 코를 납작하게 해주다

셋째, 솔레이마니는 시리아 내전에서 이슬람국가와 알카에다를 무찌르는데 기여했다.

2015년, 바샤르 알 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의 정규군은 미정보부(CIA)와 페르시아만 산유국 왕실들의 자금으로 운영되던 수니파 근본주의자들에게 밀리고 있었다.

CIA는 아사드를 축출하고 싶어했다. 이란은 동맹정권이 있는 시리아에 시아파에 반대하고 알카에다가 장악한 정권이 수립되는 것을 두려워했다. 오바마 미 대통령은 또 다시 이라크와 같은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 두려워 미군의 투입을 거부하고 있었다.

솔레이마니는 이란이 1980년대부터 지원, 지지했던 레바논의 민병대인 헤즈볼라에서 이란 고문들과 전사들을 영입했다. 러시아의 공습과 시리아 정부군의 도움을 받은 ‘이란에서 훈련된 지상군’은 이슬람국가에 맞서 전세를 뒤집는데 큰 역할을 했다.

CIA는 레온 파네타(2009-2011), 존 브레넌(2013-2017), 그리고 마이크 폼페이오(2017-2018) 국장 시절 아사드 정권을 축축하기 위해 10억 달러를 썼다. 하지만 그들은 솔레이마니보다 전과가 좋지 못했다.

이같은 솔레이마니의 3가지 승리 덕분에 좋건 싫건 이란의 중동에서의 영향력은 커졌다. 동쪽의 아프가니스탄부터 서쪽의 지중해까지 이란의 정치적 기반이 솔레이마니 덕분에 더 탄탄해졌다.

솔레이마니는 비대칭적 전투 기술의 귀재였다. 이란 정권의 정치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현지의 대리 군사조직과 정치적 동맹세력, 게릴라식 공격과 선별적인 테러리즘을 활용하면서 말이다.

(솔레이마니가 미국 민간인을 공격한 적이 없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솔레이마니가 “미국 국민에게 너무나 많은 고통을 줬다”고 주장했지만 실은 2001년부터 2019년까지 이란이 지원한 테러 공격으로 목숨을 잃은 미국 민간인은 단 한 명도 없다.)

이렇게 이란의 성공이 누적되자 미국과 이스라엘, 그리고 사우디 정권들은 절망했다.

21세기에 들어, 이란은 국제적인 고립을 극복하고 중동지역에서 라이벌들보다 우위를 점하게 됐다.

또, 솔레이마니는 전장 셀카를 인터넷에 올려 SNS계의 유명인사가 되기도 했다. 일반 병사들과 어울리기를 좋아하는 친근한 장군으로서 말이다.

물론 이란의 야심은 중동지역 전역에서 이란의 신정주의에 맞서는 세속적 세력과 여성주의자들, 민족주의자들로부터 많은 반대에 부닥쳤다.

하지만 이런 운동들이 미국에게 자기 나라를 공격해 달라고 주장한 적은 단 한번도 없다. 그들은 솔레이마니의 살해를 달가워하지 않았고, 미국이나 이스라엘이 이란을 공격한다면 이를 지지하지 않을 것이다.

이란과 이라크에서 진행되고 있던 반이란 시위는 이제 잠잠해질 것이다. 공개적으로 미국을 지지하고 친이란 민병대를 반대했던 이란인과 이라크인들은 입을 닫아 버렸다.

살아서 그랬듯, 죽어서도 솔레이마니는 중동에서의 미국의 영향력을 줄여버렸다.

정혜연 기자

기자를 응원해주세요

기사 잘 보셨나요? 독자님의 작은 응원이 기자에게 큰 힘이 됩니다. 독자님의 후원금은 모두 기자에게 전달됩니다.

이시각 주요기사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카카오스토리2
닫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