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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연고 사망자’ 故김정원을 홀로 떠나보내야 했던 20년 지기 친구의 슬픔
홈리스행동과 빈곤사회연대, 동자동사랑방 등은 14일 서울 중구청 앞에서 '공영장례제도 무력화하는 중구청의 무연고 장사행정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서울, 경기 지역으로 공영장례 적용지역을 제한하는 행정방침을 폐지하라"고 촉구했다.
홈리스행동과 빈곤사회연대, 동자동사랑방 등은 14일 서울 중구청 앞에서 '공영장례제도 무력화하는 중구청의 무연고 장사행정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서울, 경기 지역으로 공영장례 적용지역을 제한하는 행정방침을 폐지하라"고 촉구했다.ⓒ민중의소리

“쪽방에 계신 분들, 거리에 계신 분들… 저와 아무 관계가 없는 사람도 밥상 차려놓고 술을 올려서 가는 길 기리는데, 친한 형님 가는 길 따뜻한 밥과 술을 올리지 못한 게 너무 개탄스럽고 한이 됩니다.” - 무연고 사망자 故 김정원(73) 씨의 20년 지기 지인 이태헌(63) 씨

장례를 치를 연고 없이 사망한 이들을 ‘무연고 사망자’라 부른다. 하지만 세상에 정말 누구와도 연고 없이 살아온 이는 없다. 지난해 7월 11일 춘천의 한 요양병원에서 쓸쓸하게 생을 마감하고 화장돼 춘천안식원에 안장된 무연고 사망자 故 김정원 씨에게도 20년 지기 지인이 있었다. 병원은 ‘김 씨가 속한 단체와 그와 친한 지인이 있으니, 혹시 무슨 일이 생기면 꼭 좀 단체에 연락 좀 해달라’는 지인들의 부탁에도 불구하고 그의 죽음을 알리지 않았다.

그의 죽음을 ‘공고’해야 할 의무가 있는 중구청도 마찬가지였다. 김 씨의 지인들이 그의 죽음을 뒤늦게 전해 듣고 “왜 공고조차 하지 않았냐”고 항의하자, 중구청은 그제 서야 이를 홈페이지에 공고했다. 김 씨가 숨진 지 5개월이 지난 뒤에야 벌어진 일이었다. 김 씨와 생전에 알고 지냈던 지인들은 14일 서울시 중구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우리가 왜 여기 와서 눈물을 흘려야 하나, 그의 장례식에서 눈물을 흘려야 하지 않나, 중구청은 왜 딱 한 번 뿐인 우리의 권리를 이런 식으로 가로막나”라고 한탄을 쏟아냈다.

지난해 7월에 사망한 무연고 사망자 고 김정원 씨에 대한 공고를 12월 27일에야 공고한 중구청.
지난해 7월에 사망한 무연고 사망자 고 김정원 씨에 대한 공고를 12월 27일에야 공고한 중구청.ⓒ중구청 공고문

홈리스를 위한 홈리스 故 김정원

기초생활수급자였던 故 김정원 씨는 무연고 사망자다. 무연고 사망자는 가족·친척 등 연고가 없거나, 있어도 장례비용 등의 이유로 연고자가 나타나지 않는 이들을 일컫는 말이다.

무연고지만, 그에게도 오래된 지인들이 있다. 1998년도 서울역에서 김 씨를 처음 만나, 그와 20여 년 동안 형·동생처럼 지내온 이태헌 씨가 그중 한 명이다. 이 씨는 김 씨와 쪽방 생활도 같이하고, 노숙인들의 권리를 지키기 위한 단체 ‘홈리스행동’에서 함께 활동하기도 했다. 그는 “연장자로서 형님(故 김정원 씨)은 우리가 추진하는 활동에 도움도 많이 주고 앞장서기도 했다”며 “술 그만 먹으라고 걱정도 해주고 저에게 따뜻한 형님인데, 이렇게 가셨다는 소식을 들으니 가슴도 아프고 눈물도 많이 났다”고 말했다.

이태헌 씨 등에 따르면, 김 씨는 생전에 단체 ‘홈리스행동’에서 동료들과 노숙인들이 겪고 있는 문제점들을 알려내는 각종 활동을 했다. 그는 서울역 노숙인 퇴거조치의 문제점을 알리기 위한 ‘서울역 사진전’에도 참가한 바 있었다. 2012년 서울역 노숙인 퇴거조치 당시 서울역 야외에서 진행된 사진전으로, 노숙인들이 머물렀던 공간이 실제 노숙인들에게 어떤 공간이었는지 사진과 짧은 수필로 알리는 작업이었다.

고 김정원 씨가 '서울역 사진전'에 출품한 사진
고 김정원 씨가 '서울역 사진전'에 출품한 사진ⓒ홈리스행동

■ 故 김정원 씨의 글 - 50년 전에 이곳을 오가며 잠을 자곤 했던 기억이 있어요. 맨 처음 무료급식을 먹었던 기억도. 그때 겨울에는 참 많은 사람이 죽어갔던 기억이 떠올라요. 난생 처음 죽은 사람을 목격한 곳도 이곳이었어요. 쓰러져 잠든 사람이 있어서 119에 신고했었는데 죽은 거였어요. 난간 바깥으로 떨어져 죽은 사람도 있었어요.

이 외에도 고인은 홈리스행동에서 추진하는 야학, 상담활동 등에도 참여해 왔다. 특히 그는 ‘가족해체와 빈곤 등으로 장례를 치를 수 없는 무연고자 및 저소득층에 대한 장례지원’으로 2018년 3월 22일 서울시가 마련한 ‘공영장례조례’를 만드는 일에도 참여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본인이 홈리스이면서도, 다른 홈리스들을 위한 활동을 펼쳐왔던 그가 병원에 입원한 건 두 해 전 일이다. 그는 당뇨합병증으로 발을 일부 절단하면서, 적십자병원에 입원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이태헌 씨와 이동현 홈리스행동 활동가 등은 그를 자주 볼 수 있었다고 한다. 서울시 소재의 적십자병원이었기에, 수시로 병문안을 갈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어느 날 어느 때처럼 병문안을 갔더니 그가 없었다. 적십자병원은 퇴원했다는 말뿐이었다. 어렵게 찾은 그의 행선지는 춘천요양병원이었다. 대중교통도 잘 다니지 않는 곳이었다.

지난해 초 이태헌 씨와 이동현 활동가 등은 함께 춘천요양병원으로 그의 병문안을 갔다. 그리고 병원 측에 “무연고 김 씨가 속한 단체가 있으니, 혹시 무슨 일이 있으면 꼭 좀 단체에 알려달라”고 사정했다고 한다. 하지만 지난해 7월 그가 죽은 뒤에도 병원 측은 단체에 아무런 연락을 취하지 않았다. 중구청에 연락한 게 전부였다.

춘천요양병원으로부터 연락을 받은 중구청 관계자도 처음 겪어본 일을 처리한다고 정신없었는지 공고하는 일을 잊어버렸다. ‘장사 등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무연고 시신 등을 처리한 때에는 보건복지부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지체 없이 공고해야 한다.

중구청 관계자는 “통상 있는 일이 아니었다. 장례업체와의 계약도 서울시와 경기도 내로만 한정돼 있다”며 “강원도 소재의 병원에서 이곳까지 시신을 옮겨올 수 있는 예산이 없어, 그곳 병원 측과 협의를 해야만 했다. 그래서 운구비용과 화장비용을 전달해 그곳에서라도 장례를 치러 달라고 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이어 “공고를 제때 안 한 부분은 제 잘못”이라며 “정신 차리고 제가 보완해야 할 지점”이라고 말했다.

14일 중구청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고 김정원 씨의 20년 지기 지인 이태헌 씨는 중구청 담당자에게 서울-경기지역으로 공영장례 적용지역을 제한하는 행정방침을 폐지해 달라는 요구서한을 전달하고 있는 모습.
14일 중구청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고 김정원 씨의 20년 지기 지인 이태헌 씨는 중구청 담당자에게 서울-경기지역으로 공영장례 적용지역을 제한하는 행정방침을 폐지해 달라는 요구서한을 전달하고 있는 모습.ⓒ민중의소리

故 김정원은 왜 홀로 춘천서 화장됐어야 했나

고인의 20년 지기 지인 이태헌 씨가 부고 소식을 들은 때는 지난해 11월 말. 이 씨는 “서울역에 옛 동료들도 있고, 요즘 그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좀 알아보려고 가끔 서울역에 나가곤 한다”며 “그렇게 서울역에 갔다가 전해 듣게 됐다”고 말했다.

지난해 말 그와 소식이 끊긴 지 오래되어서 병원을 찾아갔던 한 지인이 그의 죽음을 확인해 준 것이다.

보통 서울시에서 생활하던 무연고 사망자가 사망하면 고인의 마지막 주소지를 관할하는 구청에서 이를 공고한다. 공고 전이라고 하더라도, 함께 지내거나 친했던 지인, 고인이 속했던 단체는 부고 소식을 전해 듣고 서울시 공영장례조례에 따라 간소하게 진행되는 장례식 멀리이서라도 그를 추모하고 기렸다. 따로 영정사진을 올려놓고 약소하게나마, 술 한 잔 따라 고인을 떠나보내기도 했다. 현행법상 직계가족 또는 배우자가 아니고선 고인의 시신을 인도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또 이렇게 공영장례가 치러진 고인의 유골은 경기도 파주 ‘무연고 사망차 추모의 집’에 안치된다. 그곳엔 고인이 생전에 알고 지냈던 다른 무연고 사망자들이 안치된 곳이기도 하다. 홈리스행동 등 단체와 지인들은 해마다 이곳을 찾아 고인을 추모한다.

하지만 서울시 중구 후암로 인근에 살던 김 씨의 지인들은 그를 떠나보낼 최소한의 마지막 시간마저 잃어버렸다. 고인은 홀로 춘천안식원에 안치됐다.

고인이 떠나보낼 시간조차 지인들에게 주어지지 않은 이유에 대해, 이날 열린 기자회견에서 이동현 홈리스행동 활동가는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서울시 공영장례조례라는 게 있다. 2017년부터 여기에 있는 쪽방, 거리노숙, 홈리스 당사자분들과 많은 단체가 싸워서 만들어낸 조례다. 조례엔 대상자를 이렇게 정하고 있다. 서울에 주소를 둔 무연고 사망자라고. 김 씨는 무연고자다. 기초생활수급자로서 장제급여 대상자다. 따라서 서울시 조례에 따라 공영장례를 시행했어야 마땅하다. 그런데 중구청은 아마 ‘관외에서 돌아가셨을 경우, 두 행정기관이 긴밀히 협조한다’는 부칙을 아주 크게 봤을 것으로 보인다. 춘천에서 서울시까지 시신을 이송하는 데 비용이 들기 때문이다. 김정원 님은 부산 출신이다. 50년 이상을 서울에서 살았다. 그런데 아무 연고가 없는 춘천에서 홀로 불태워 마무리해야 했다. 우리가 이거 하라고 공영장례조례를 만들었나!”

홈리스행동과 빈곤사회연대, 동자동사랑방 등은 14일 서울 중구청 앞에서  ‘공영장례제도 무력화하는 중구청의 무연고 장사행정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서울, 경기 지역으로 공영장례 적용지역을 제한하는 행정방침을 폐지하라”고 촉구했다.  2020.01.14
홈리스행동과 빈곤사회연대, 동자동사랑방 등은 14일 서울 중구청 앞에서 ‘공영장례제도 무력화하는 중구청의 무연고 장사행정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서울, 경기 지역으로 공영장례 적용지역을 제한하는 행정방침을 폐지하라”고 촉구했다. 2020.01.14ⓒ김철수 기자

한편, 이날 중구청 앞 기자회견에 참여한 동자동사랑방과 빈곤사회연대, 홈리스행동과 故 기정원 지인들은 중구청에 △ 故 김정원 씨 유골을 서울 무연고 추모의집으로 이송 △ 서울·경기 지역으로 공영장례 적용지역을 제한하는 행정방침 폐지, 서울시에 주소를 둔 대상자 모두에게 공영장례 시행 △ 사망지와 거리 문제로 공영장례 무력화되지 않도록 제도 개선 등을 촉구했다.

김윤영 빈곤사회연대 사무국장은 “단지 떠난 사람을 잊기 위해 잠시 추모하는 게 아니다”라며 “‘가난한 이들의 삶과 죽음을 어떻게 보장할 수 있을까’는, ‘동료와 친구들 삶의 마무리’는 곧 나의 마무리와 맞닿아 있기에, 우리의 존엄과도 직결된 문제”라고 강조했다.

기자회견에 나온 한 참가자가 든 피켓엔 “친구의 위로를 받으며 가고싶다”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이승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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