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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애화 칼럼] 거짓과 혐오는 어떻게 일상이 되었나

탈진실(Post-Truth)의 시대

2016년 말, 옥스퍼드 사전은 ‘포스트 트루스(Post-Truth)’를 그 해의 단어로 선정했다. 이제 이 용어는 영어사용 지역을 넘어 글로벌한 용어가 되었고, 현재 사회를 설명하는 용어 중 하나가 되었다. 2016년을 넘어 포스트 트루스를 이용한 사회현상에 대한 분석과 해석은 계속되고 있다.

2016년의 단어로 포스트 트루스란 단어가 떠오른 배경에는 두 개의 정치적 사건이 있다. 영국에서의 국민투표를 통한 유럽연합 탈퇴(브렉시트) 결정과 트럼프의 미대선 승리이다. 두 사건의 결과는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 이런 결과를 낳은 근본적 원인은 2009년의 글로벌 금융위기와 불평등 확대라고 진단할 수 있다. 그러나 근본적 원인에 불을 댕긴 것은 가짜 뉴스와 부정적 홍보의 의도적 양산이라는 의견이 있다. 그를 증명하는 일례로 브렉시트 캠페인 중 뜨거운 이슈가 되었던 것이 있다. 브렉시트 찬성파가 만든 캠페인 광고였다. “영국 재정에서 매주 3억오천만 파운드가 유럽연합에 보내진다. 그 돈은 영국 의료제도에 사용되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이 간단한 광고는 엄청난 힘을 발휘했고, 경제적 취약층을 자극했다. 극우보수진영의 의도대로 영국은 브렉시트를 선택했다. 그러나 이 정보는 정확한 것이 아니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기자들에게 포즈를 취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기자들에게 포즈를 취하고 있다.ⓒ뉴시스/AP

그렇다면 무엇이 트럼프를 대통령으로 만들었을까.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 ‘미치코 가쿠타니’는 미국을 사회문화적으로 분석한 책, ‘진실 따위는 필요하지 않다(The Death of Truth)’를 발표했다. 이 책은 트럼프의 어릿광대와 같은 행동을 그의 인격적개별적 특징으로만 보는 위험성을 경고하고, 그의 태도는 ‘탈진실 시대’라는 시류를 반영한다고 말한다. 저자는 트럼프를 통하여, 어떻게 거짓과 혐오가 일상화되었는가를 설명한다.

트럼프가 대선에 승리한 이유

미국 대선 평가에는 다양한 의견이 있겠으나, 미치코 가쿠타니는 트럼프의 승리의 첫 번째 원인으로 미국 사회에 만연한 상대주의, 허무주의적 풍토를 뽑는다. 둘째는, 인터넷 발전에 따른 우후죽순 쏟아지는 정보의 범람이다. 마지막으로 앞의 두 가지 특성을 이용하는 정치권의 프로파간다가 트럼프에게 승리를 안겨주었다는 것이다.

저자는 탈진실은 진실 쇠퇴와 대안사실(alternative facts)의 범람을 포함한다고 말한다. 진실의 쇠퇴는 바로 이성의 쇠락이며, 미국 독립 정신이란 할 수 있는 계몽주의가 몰락한 것이다. 그리고 대안사실의 범람은 사실과 객관성에 기반하지 않는 주장, 즉 거짓이 강화된 현실을 말한다. 저자는 진실의 자리를 상대주의와 해체주의가 차지하고 있다고 한탄한다. 그런데 탈진실 환경의 기원은 1960년대 이후 미국에 형성된 문화 풍조와 포스트모더니즘 이념에 있다고 주장한다. 60년대의 문화는 “계몽주의 이념을 오랜 가부장제와 제국주의 사상의 잔재라며 거부”했다. 또한 낡은 인문주의 전통의 전복을 제안하는 반권위주의 학설인 포스트모더니즘은 당시에 주요한 가치로 부상하였다. 포스트모더니즘은 평등주의적 담론을 촉진했고, 이전에는 권리를 박탈당했던 소수자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기반을 만들었다. 이러한 긍정적 영향에도 불구하고, 대중적 문화와 심리는 객관적 진리를 무시하는 상대주의와 해체주의에 물들게 되었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진실 따위는 필요하지 않다(The Death of Truth)’
‘진실 따위는 필요하지 않다(The Death of Truth)’ⓒ자료사진

이런 대중 심리를 보수 진영이 이용하기 시작했다. 과거에는 보수세력이 경멸하던 상대주의를 받아들인 것이다. “모든 진실이 불완전하며 보는 관점과 상관관계가 있다”는 포스트모더니즘을 보수세력이 전용하고 있다. 그리고 “우파 포퓰리즘이 포스트모더니즘 논의를 단순화하여 대중문화에 스며들었고”, 트럼프 선거운동본부옹호자들과 우파는 이를 적극적으로 이용했다. “진실이 온전히 관점과 의제의 문제가 되어버리는 인식의 난투전”이라는 초유의 문화전쟁이 일어나고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트럼프 승리의 요인 중 두 번째는 기술 발전이다. 인터넷 사용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현대 문화에서 이미 작동하고 있던 많은 역학관계가 증폭되었다. 미국 사회는 80년대부터 작은 커뮤니티 중심의 문화로 전환되었다. 그런데 이러한 문화가 인터넷으로 더 강화된다. 인터넷은 “알고리즘을 이용해 보는 정보를 개별화하고, 소셜미디어 사이트가 세계관이 정당함을 확증해주는 경향이 있는 정보를 제공하여, 사람들은 점점 더 협소한 콘텐츠 저장탑과 이에 상응하게 벽으로 둘러싸인 더 작은 생각 정원 속에” 살게 되었다. 정치인들은 이러한 현실을 더욱 강화시켰다. “인터넷과 소셜미디어는 유언비어, 억측, 거짓말이 대략 몇 초만에 전 세계에 전송될 수 있게 했다. 가짜뉴스가 확산되고 객관성에 대한 믿음이 약화되는 현상과 관련해 기술은 가연성 높은 촉매로 드러난다.”

마지막으로 프로파간다이다. 저자는 20세기에 ‘프로파간다라는 요술’에 통달한 두 전체주의 국가가 나치 독일과 소비에트연방이라고 말한다. 이 전체주의의 후신이 바로 21세기 트럼프 정부라고 한다. 그런데 현대 프로파간다의 요점은 잘못된 정보를 전하거나 어떤 의제를 밀어붙이는 것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대중의 비판적 사고를 소진시키는 것, 진실을 무효화하는 것이 목표이다. "망으로 연결된 공적 영역에서 권력자의 목적은 대개 사람들에게 특정한 이야기가 진실임을 납득시키거나 특정한 정보가 새어나가는 것을 막는 게 아니라 사람들 사이에 체념, 냉소주의, 권한이 없다는 느낌을 자아내는 것이다." 이렇게 할 수 있는 방법은 대중에게 정보를 쏟아주고 주의를 흩트릴 거리를 만들어내어 관심과 집중력을 약화시키며 부정확한 정보와 의혹을 퍼뜨리며 거짓말을 만들어내고 있다고 주장한다. 트럼프 정부의 탄생은 미국이 탈진실 사회의 정점에 있다는 것이다.

탈진실 사회에서의 자화상

‘미치코 가쿠타니’의 주장에 동의하기 힘든 면도 있다. 미국의 계몽주의, 건국 정신을 진실 추구의 원형적 모습으로 볼 수 있는가, 미국의 개인화, 자아 중심적 문화의 기원을 절대 권력에 대한 저항이 시작된 60년대에서 찾을 수 있는가이다. 그럼에도 이 책의 결론, 탈진실은 시민을 무기력하게 만드는 전체주의 사회, 통제사회로 연결된다는 점에 동의하게 된다. 또한 책에서 소개되는 현실의 예들이 한국 사회와 무관하지 않음에 놀라게 된다.

광화문에서 열린 보수단체 집회에서 참가자들이 태극기와 성조기를 흔들며 조국 구속, 공수처 반대 등의 구호를 외치고 있다.
광화문에서 열린 보수단체 집회에서 참가자들이 태극기와 성조기를 흔들며 조국 구속, 공수처 반대 등의 구호를 외치고 있다.ⓒ뉴시스

작년, 한국사회는 심각한 여론의 대립을 직면했다. 법무부장관 후보 공청회부터 시작된 대립은 광화문과 서초동으로 이어졌고, 지금도 진행중이다. 이 세력 분열에 기폭제 역할을 한 것이 유튜브와 SNS였다. 대척점에 있는 진영들은 각각 자신들의 미디어가 전하는 정보에만 의존하고, 상대 언론을 가짜뉴스라 비판했다. 이러한 심각한 갈등에 대해서 어느 정치인도 사과하지 않았으며 책임지지 않고 있다. 대립과 격전은 각 진영의 세를 불리는 방향으로만 발전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어느 진영에도 속하지 않는 무당층, 중도층을 증가시켰다. 동시에 정치 무관심, 혐오감을 확산시키고 있다. 이렇게 거짓과 혐오는 일상이 되고 있다.

예전과 달리 우리는 정보의 홍수 속에 산다. 그 속에서 정보의 근원, 정보의 진위를 찾으려는 노력은 소홀하다. 정보 과부하로 가장 번쩍이는 것, 가장 큰 목소리, 가장 충격적인 사건에 주의가 쏠린다. 가장 절실한 문제, 삶과 죽음을 가르는 생존의 문제조차 비극성을 경쟁해야 하는 형편에 몰렸다. 이것이 탈진실 시대에 살고 있는 증표일 것이다. 그렇다면 탈진실의 시대, 이성을 갈취하는 통제의 시대에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저자는 특별히 그 대안을 말하지 않는다. 절대적인 진실은 존재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우리에게 절실한 것은 내용이 아니라 태도의 변화일 것이다. 진실과 사실을 찾기 위한 이성적 노력, 엄정하고 객관적으로 사실을 보려는 눈, 그리고 낙관적 태도가 필요한 시대이다.

김애화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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