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의인’ 김동수(56) 씨가 사고 당시 트라우마로 지난해 5월 자해해 치료받는 과정에서 응급의료법을 위반했다며 법원으로부터 벌금 300만 원의 약식명령을 받아 정식재판을 신청했다. 김 씨는 고려대 안산병원 응급실에서 의사를 발로 찬 혐의를 받는다.
병원 치료부터 검·경 수사, 법원 판단까지 김 씨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로 고통받는 ‘세월호 생존자’라는 사실은 고려되지 않았다. 병원의 미숙한 초기 대응이 극도로 흥분한 김 씨를 자극했다는 진술에도 김 씨는 응급실에서 소란을 피우고 의사를 때린 ‘진상 환자’로 취급됐다.

김 씨는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침몰 당시 자신의 몸에 소방호스를 감아 학생 20여 명을 구조해 ‘파란 바지 의인’으로 불린다. 이에 보건복지부는 이듬해 6월 김 씨를 의상자로 인정했고, 행정안전부는 재작년 1월 김 씨에게 국민추천포상을 수여했다.
하지만 그는 의인이 아닌 ‘생존자’로서의 삶을 살고 있었다. 참사 당시 아이들을 모두 구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그를 짓눌렀다. 극심한 트라우마로 지난 6년간 입원한 날짜만 약 500일, 5일에 한 번꼴로 병원 신세를 져야 했다. 감정 조절이 어려운 그는 청와대, 국회 앞에서 자신의 몸에 상처를 내는 방식으로 진상규명에 나서지 않는 국가를 향해 분노를 표출했다.
응급실 사건은 김 씨의 트라우마가 발현되면서 시작됐다. 지난해 5월 3일 김 씨는 국회 앞 시위 도중 자해했다. 가까운 연세대 신촌세브란스 병원에서 응급조치를 받은 그는 안산정신건강트라우마센터(안산온마음센터) 측 제안으로 고대안산병원 응급실로 후송됐다. 그동안 김 씨는 해당 병원 정신의학과에서 입원치료를 받으며 센터를 이용해왔다.
그러나 응급실 의료진은 김 씨를 진료할 준비가 돼 있지 않았던 것으로 보였다고 김 씨 측은 말했다. 김 씨 측은 그를 후송한 사설 구급차 주차 문제로 입구에서부터 병원 측이 목소리를 높였다고 전했다. ‘어디가 아파서 왔냐’는 질문에 김 씨가 ‘정신의학과와 이야기됐다’라고 말했지만, 의료진은 ‘아픈 곳도 이야기하지 않을 거면서 왜 왔냐’라는 식으로 대응했다고 김 씨 측은 주장했다.

이 과정에서 가족들이 문제를 제기하자 의료진은 감정적으로 대응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 씨 측에 따르면 응급실 책임자라며 나타난 응급의학과 의사 A 씨는 ‘소란을 피우면 치료 못 해준다’라며 욕설을 했고, 급기야 ‘나가’, ‘진료 안 받아’라며 의료를 거부하기까지 했다.
자해 이후 극도로 불안한 김 씨를 안정시켜야 할 의료진은 오히려 그를 자극했다고 김 씨 측은 주장했다. 의료진은 경찰을 불렀고, 이에 김 씨는 더욱 흥분했다. 세월호 참사 수습과정에서 해경 등 국기기관에 대한 믿음이 완전히 사라진 김 씨였다. 침대에서 일어나려고 김 씨가 발버둥 치는 과정에서 A 씨가 복부를 맞았다는 게 가족들 설명이다.
응급실 과장의 사과로 사건은 마무리되는 것 같았다. 하지만 김 씨가 처벌받길 원한다는 A 씨의 의견에 따라 경찰 내사로 시작된 이 사건은 법원이 약식명령을 내리기까지 이르렀다.
세월호 생존자, 병원·수사기관·법원 모두 외면해
“아이들 구한 남편이 왜 범죄자가 돼야 하냐” 가족들 호소
김 씨의 구체적인 혐의는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 제60조 제2항 제1호 위반이다. A 씨는 경찰 조사에서 ‘김 씨가 진료 문제로 간호사와 고성을 지르며 시비를 해 다른 환자들도 있으니 자제해달라고 요청했지만, 욕설하면서 발로 복부를 걷어차 진료를 방해했다’라는 취지로 주장했다.
의료진의 초기 대응이 미숙했다는 진술은 무시됐다. 당시 세브란스 병원부터 김 씨를 후송한 사설 구급차 직원은 “김 씨와 A 씨가 서로 욕설을 했으며, 병원 의사로서 환자에게 계속 욕설을 해 환자가 계속 흥분했다”라고 진술했다. ‘반말 비슷하게 문진했다. 의료진이 경찰 부르라는 말에 (환자 측이) 더 격분했다. (김 씨의 발버둥은) 헛발질 수준이었다’는 취지의 발언도 했다.
법원 명령에 이르기까지 생존자가 느끼는 트라우마는 고려되지 않았다. 김 씨는 당시 상황이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극도의 흥분 상태였다. 김 씨에게 사과한 병원은 사라졌고 처벌을 원한다는 의사만 남았다. 경찰은 A 씨 측 주장을 받아들여 기소의견을 냈다. 검찰은 추가조사 없이 유사판례를 첨부해 김 씨를 약식기소했다. 법원은 이를 받아들여 벌금 300만 원의 약식명령을 발부했다.

김 씨 배우자 김형숙 씨는 “아이들을 구한 김 씨가 왜 범죄자가 돼야 하냐”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그는 “경찰 조사를 받고 온 남편이 혼자 꺼이꺼이 울었다. (자신은) 사람 구한 죄밖에 없는데, 왜 경찰서 가서 범죄자가 돼야 하느냐고 하더라”라며 “남편이 음주한 것도 아니고, 흉기 들고 난동을 부린 것도 아니지 않냐. (같은 병원 정신의학과 측과) 사전에 이야기가 돼 치료를 받으러 갔는데, 병원에서 범죄자 취급했다”라고 말했다.
재작년 5월 해당 병원 입원 당시에도 같은 일이 있었다고 김형숙 씨는 전했다. 그는 “구급차 주차 문제로 시비가 있었고, (김 씨가) 응급실에서 소란을 피웠다며 업무방해로 수갑을 차고 현행범으로 체포됐다. 법원에서 (혐의를) 소명하면 벌금을 깎아주겠다는데, 입원해 있는 사람이 어떻게 하겠냐. 벌금 20만 원 내고 덮어버렸다”라고 말했다.
김형숙 씨는 “응급실만 봐도 공황장애가 일어날 것 같다”라며 “남편에게 ‘왜 국가가 하지 않은 일에 개인이 나섰냐’고 죄를 묻는다면 벌금 1억이라도 내겠다. 그런데 지난 6년간 (국가는 생존자 치료를) 방치했다. 국회에서 자해해도 왜 그랬는지 묻는 사람 한 명 없었다. 자살시도가 아니라 자해다. 소외감이 남편의 병을 더 악화시켰다”라고 말했다.
제주 4.3사건 피해자를 보며 김 씨는 ‘저 할머니는 70년이 지나도 동생이 울고 있는 표정까지 하나도 잊지 않고 기억하는데, 나는 5년도 안 됐는데 사람들이 왜 자꾸 잊으라고 하냐. 그걸 어떻게 잊을 수 있냐’고 했다고 김형숙 씨는 전했다. 그는 “잊으라고 하는 말에 남편이 섭섭해한다”라고 말했다.
김 씨는 약식명령에 불복해 정식재판을 신청한 상태다. 김 씨 측 최정규 변호사는 “김 씨가 잘못한 부분이 있다면 책임지는 것이 맞지만, 심각한 불안 증세를 보인 환자가 4~5년 동안 치료받은 병원에 도착했을 때 의료진의 대응이 적절했는지 묻고 싶다”라고 말했다.
이어 “판례상 적법한 체포 과정이 아니라면 설사 용의자가 경찰을 때렸다고 해도 공무집행방해 혐의가 성립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의료진의 적절하지 않은 대응에 환자가 액션을 취해도 응급의료법 위반으로 처벌해선 안 된다”라고 강조했다. 김 씨의 첫 공판기일은 다음 달 4일 제주지법에서 열린다.
고대안산병원 측은 23일 김 씨 사건에 대한 병원 입장을 묻자 “확정된 것은 없다”라고 답했다. 김 씨 측은 병원의 입장 확인을 위해 내용증명을 보내고 지난 17일까지 답변을 달라고 했지만, 병원 측은 계속 미루고만 있는 상황이다.

강석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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