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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민보] 장애동생과 무사히 할머니가 되고픈 둘째언니의 정치 도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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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자매가 있다. 둘째 언니 혜영은 동생 혜정과 함께 카페에서 브런치를 먹고, 여행을 가고, 흥에 겨우면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춘다. 자매의 일상은 감독 겸 유튜버인 혜영을 통해 다큐멘터리 영화 '어른이 되면'과 유튜브 채널 '생각이 많은 둘째언니'에서 공개됐고, 세상의 공고한 편견에 조금씩 균열을 냈다.

평범한 이 모습들이 파장을 일으킬 수 있었던 이유는 두 자매의 '생존' 투쟁기였기 때문이다. 사실 중증발달장애를 가진 혜정은 13살 때부터 31살이 될 때까지 18년간 장애인시설에 살았다. 다시 말해 이 일상은 혜영이 동생 혜정을 시설에서 데리고 나온 후 탈시설 도전기인 셈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둘째 언니 혜영의 이야기를 하기 위해선 동생 혜정의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변곡점이 많은 인생이었지만 그 바탕에는 대부분 동생이 있었다. '좋은 언니가 되는 것'을 운명처럼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던 혜영의 인생은 동생 덕분에 세상과 부딪히며 자신의 길을 걸어가는 중이다.

하지만 '모두가 행복하게 살았답니다'로 끝날 수 있는 이야기는 아니다. 언뜻 미담처럼 읽히는 이 이야기 이면엔 '오늘은 누가 또 동생을 돌봐야 하나'라는 혜영의 고민으로 가득했고, 또 가득해질 것이다. 더 이상 혜영 혼자의 힘으로 해결할 수는 없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결국 정치의 힘이 필요했다. 그래서 혜영은 정치에 뛰어들었다. 최근 정의당에 영입된 인사 중 한 명인 장혜영(33) 당 미래정치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만나 '둘째 언니 혜영'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고작 13살 때 장애인시설에 보내진 동생
'나였다면 어땠을까' 자문에 결심한 탈시설

4.15 총선을 대비해 정의당에 영입된 후 비례대표 경선에 출마한 장혜영 미래정치특별위원회 위원장이 28일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0.01.28
4.15 총선을 대비해 정의당에 영입된 후 비례대표 경선에 출마한 장혜영 미래정치특별위원회 위원장이 28일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0.01.28ⓒ정의철 기자

"기억하는 모든 어린 시절의 순간은 동생과 함께였어요."

말 그대로였다. 유년 시절 학교에서 수업을 듣는 시간을 제외하고 난 거의 모든 시간은 동생과 함께 보냈기 때문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기도 했다. 아버지는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일을 했고, 어머니는 동생의 장애를 고쳐야 한다는 생각에 여러 병원들을 전전하다 의학의 힘이 아닌 기적의 힘에 기댔다. 동생의 장애를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던 큰 언니도 밖에 나가기 일쑤였다. 자연스럽게 집에 남은 것은 혜영 씨와 혜정 씨 단 두 사람뿐. 그러던 중 혜정 씨는 13살 때 시설로 보내졌고, 혜영 씨에게 그날은 여전히 잊히지 않는 기억으로 남아있다.

"그날 엄청 울었죠. 동생과 가장 많은 시간을 보냈던 저는 부모님과 동생 사이 통역사 같은 역할을 했어요. 동생이 뭐라고 말을 하면 사람들은 의미 없는 말이라고 생각하는데 저한테는 그렇지 않았거든요. 부모님은 시설에서 동생이 잘 돌봐주실 거라고 말했지만 분명 (시설에 있는 사람들은) 동생 말을 알아듣지 못할 게 뻔했으니까요. 왠지 모르는 반발심과 공포심에 혜정이가 괴롭힘당하는 꿈도 많이 꾸곤 했죠."

혜영 씨가 방학일 때는 혜정 씨가 한 달씩 집에 와서 지냈지만, 혜영 씨의 방학이 끝나면 다시 혜정 씨가 시설로 돌아가는, 그런 생활이 십여 년 가까이 이어졌다. 그 사이 혜영 씨는 소위 명문대라고 불리는 학교 중 한 곳에 입학했다. 반드시 성공해서 힘 있는 언니가 되어주겠다고, 그래서 널 책임지겠다는 각오를 수없이 하면서.

사실 '장혜영'이라는 이름이 알려지게 된 것도 바로 이 시기였다. 당시 대학생이었던 혜영 씨는 학내 도서관 앞에 '이별선언문'을 게시하고 자퇴를 공개적으로 선언했다. 언론에서는 앞서 고려대생 김예슬 씨와 서울대생 유윤종 씨에 이어 세 번째 '명문대생 자퇴 선언'이라며 떠들썩거렸다. 다니던 학교를 그만두고 나서 무엇을 할지 구체적인 계획을 정해놓지는 않았지만, 아니라고 결론이 내린 길을 더 이상 걸어갈 수 없었다.

"교환학생을 갔는데 거기서 만난 친구들 중에는 사회적 문제에 대해서 타협하거나 체념하지 않고 나름대로 대안을 만드는 친구들이 많았어요. 사실 그때의 저는 소위 '세속적인 성공을 통해 힘 있는 언니가 되어서 제 동생을 책임져야겠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방향도 있겠구나 알게 된 거죠. 대학을 다니고 있으면 모든 자원을 대학에 쏟아붓게 되잖아요. 일단 그걸 멈추자고 생각했어요. 아닌 걸 그만하는 것도 중요한 결정이니까요."

후회하지는 않았다. 10년이 가까운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혜영 씨에게는 "아주 잘한 선택"으로 남아있다. 다만, 공개 자퇴 후에도 여전히 혜영 씨를 '명문대' 자퇴생으로 규정하는 세간의 시선은 씁쓸한 감정을 남겼다. 학교를 계속 다니는 게 더는 의미가 없을 것 같아서 자퇴했지만, 이 현실마저도 스펙이 되고 스토리가 되어 버린 것이다. 그만큼 우리나라의 학벌주의가 공고하다는 반증이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혜영 씨는 학력을 기재해야 할 때 '대학교 중퇴'라는 말을 쓰지 않고 꼭 '고졸'이라고 쓴다.

학교를 그만둔 혜영 씨는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며 방황했지만, 결국 정착한 곳은 동생 혜정 씨 곁이었다. 그러던 중 시설 내에서 심각한 인권침해 사건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고, 이를 공론화하기 위해 장애인권 단체들과 함께 활동했던 혜영 씨는 하나의 질문과 마주하게 됐다. "동생 혜정 씨는 자립 준비 안 하세요?"

"속으로 생각했죠. 이래서 활동가들은 안 된다고. '내 동생이랑 같이 하루를 버티는 게 얼마나 힘든지 모르면서 감히 자립을 말해? 너무 이상적인 얘기를 하네'라고요. 그런데 그분이 저에게 '생각을 시설에서 출발하면 결국은 시설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 그런데 시설이 아니라 동생의 삶에서 생각을 시작하면 다른 결론이 보일지도 모른다'고 하더라고요. 곰곰히 생각해보니 '동생의 삶에서 일어났던 일들이 내 삶에서 일어난다면?'이라는 생각을 거의 30년 만에 하게 됐어요. 그러고 나서 오열했죠."

누군가 13살인 나에게 가족을 떠나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사람들과 평생을 같이 살아야 한다고 한다면 어떨까. 그리고 이게 다 나에게 장애가 있기 때문이라며, 13살짜리 아이에게 거절할 권리도 없이 강요한다면.

혜영 씨는 당장 동생을 시설에서 데리고 나와야겠다고 생각했다. 시설에서의 동생의 삶이 인간다운 삶이 아니라는 것을 자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함께 살 준비에 나섰다. 원룸을 전전했던 생활에서 벗어나 투룸을 구해야 했기에 1년 내내 돈을 벌었다. 장애인권에 대한 공부도 필요했고, 공부를 통해 얻은 지식을 신념으로 만드는 시간도 필요했다.

"이전까지는 동생을 나보다 모자란, 소위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것처럼 '언제까지나 3살인 사람'이라고 생각했었죠. 그런데 동생을 나와 동등한 인격체라고 받아들이고 나서는 많은 게 달라졌어요. 예를 들어 이전의 보호는 상하가 있는 것이었죠. 동생은 장애를 가지고 있고 미숙한 존재이니까 언제나 내 판단이 옳고, 그러니까 내 의견을 반드시 따라야 한다는 의미의 보호였다면 이제는 동등한 시민인 거예요. 내 생각과 다를 때에는 타협을 해야 하는 것이지, 무조건 따라야 한다고 강요하는 문제가 아니게 된 거죠."

탈시설 후 일상을 담아 만든 영화 '어른이 되면'
"문제가 보이지 않으면 해결은 요원해"

4.15 총선을 대비해 정의당에 영입된 후 비례대표 경선에 출마한 장혜영 미래정치특별위원회 위원장이 28일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0.01.28
4.15 총선을 대비해 정의당에 영입된 후 비례대표 경선에 출마한 장혜영 미래정치특별위원회 위원장이 28일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0.01.28ⓒ정의철 기자

탈시설 후 비로소 함께 살게 됐지만 혜영 씨가 마주한 현실은 턱없이 부족한 장애 복지제도였다. 우리 사회는 혜영 씨가 나가서 경제활동을 하는 시간 집에서 동생을 책임져 줄 수 있는 제도를 보장해주지 못했다.

"동생은 24시간 누군가 옆에 있어야 하는 사람인데 단 1분 1초도 국가나 사회의 자원으로 동생과 함께 있어 줄 시간을 보장해주지 않았어요. 기본적으로 여전히 가족의 몫인 거죠. 물론 활동지원서비스 등이 있긴 하지만 이 서비스는 받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 상황입니다. 시험을 거쳐야 하고 본인이 노력하지 않으면 언제까지나 그런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가능성으로 남아있을 뿐이예요. 국가가 중증 장애인에게 활동지원서비스를 지원해준다고 하지만, 몇 시간 받을 수 있을지는 알 수가 없고 국가가 정해주는 거죠. 그리고 이 시간을 서비스할 사람은 제가 구해야 합니다."

그는 이런 현실을 지금 당장 바꿔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람들에게 장애인의 인권에 대해 알려야 했고, 자매의 존재를 드러내야 했다. 일단은 이런 현실이 있다는 걸 보여줘야만 했다. '장판(장애인운동판)' 내에서는 '장애인의 날 단 하루만 존재한다'는 이야기를 자조적으로 하는데, 그만큼 장애인의 현실은 잘 조명되지 않는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영화감독을 꿈꿨던 혜영 씨는 동생의 탈시설 후 6개월 동안의 일상을 장편 다큐멘터리 '어른이 되면'을 만들었다. 혜영 씨는 이 영화를 통해 한국 최초 여성영화감독인 박남옥씨를 기리는 '박남옥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어쨌든 사람들에게 보여야 해요. 가시화되지 않으면, 문제가 보이지 않으면 해결은 너무나 요원하거든요. 그래서 일단은 얼굴을 드러내고 문제가 여기 있다는 걸 보여줘야겠다고 생각했죠. 말하자면 장애인도 온전한 하나의 인격체라는 것을 알게 해주고 싶었어요. 그래서 '장애인도 밥을 먹는답니다, 미용실도 간답니다, 딸기뷔페도 가요, 술도 먹고요' 이런 일상적인 모습들이 있다는 것을 보여줘야겠다는 생각이었어요."

물론 큰 용기가 필요했다. 동생의 의사를 확인하고 동의를 구하는 절차가 필수적이었다.

"(공개하기 전까지) 늘 고민을 했어요. 대중 앞에 나의 정체성을 드러낸다는 건 큰 각오를 필요로 하는 일이잖아요. 저야 괜찮지만, 동생의 장애를 공개한다는 것, 그것도 동생의 장애에 방점을 찍어서 공개한다는 건 고민이 많이 필요했어요. 동생의 동의가 없으면 할 수 없기 때문에 시간을 두고 카메라에 찍히는 걸 좋아하는지, 찍힌 영상을 보는 걸 좋아하는지, 사람들이 많이 보는 걸 좋아하는지, 친구를 넘어 모르는 사람이 보는 것도 좋아하는지를 다 차근차근 확인하면서 작업했어요. 동생이 '오케이'를 했다고 해도 그 이후에 오는 장애 혐오(반응)들이 있는데, 그래도 우리가 변화의 주체가 되기로 한 이상 각오하면서 가겠다고 마음먹었죠."

혜영 씨는 영화 OST에 쓰일 노래도 직접 만들었다. 물론 기존 음악의 음원을 구매할 수도 있었지만 그러기엔 예산이 부족했다. 대신 자신의 경험을 노랫말로 만들었다. 혜정 씨와의 하루가 너무나도 벅찼던 그날 일기장에 적었던 '우리가 무사히 할머니가 될 수 있을까'라는 구절은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잔잔한 감동을 주는 노래가 됐다.

무사히 할머니가 될 수 있을까/죽임당하지 않고 죽이지도 않고서/굶어죽지도 굶기지도 않으며/사람들 사이에서 살아갈 수 있을까/나이를 먹는 것은 두렵지 않아/상냥함을 잃어가는 것이 두려울 뿐/(중략) 언젠가 정말 할머니가 된다면/역시 할머니가 됐을 네 손을 잡고서/우리가 좋아한 그 가게에 앉아/오늘 처음 이 별에 온 외계인들처럼/웃을 거야

정치 도전 나선 '둘째 언니' 혜영
"'나중에'라는 말에 무력감, 필요한 건 '지금 당장'"

4.15 총선을 대비해 정의당에 영입된 후 비례대표 경선에 출마한 장혜영 미래정치특별위원회 위원장이 28일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0.01.28
4.15 총선을 대비해 정의당에 영입된 후 비례대표 경선에 출마한 장혜영 미래정치특별위원회 위원장이 28일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0.01.28ⓒ정의철 기자

혜영 씨는 지난해 말 정의당 심상정 대표로부터 직접 영입 제안을 받고 한 달여 고민 끝에 정치를 시작하기로 결심했다. 그의 입당 선언문에는 절박함이 고스란히 묻어났다. 기다리고 실망하는 정치, 나중만을 얘기하는 정치에 이제 지쳤다며 벼랑 끝에 서 있는 사람에게는 지금 당장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호소였다. 현재 혜영 씨는 정의당 비례대표 후보에 도전장을 던진 상태다.

"거리에서 약속을 지키라고 외치는 것 말고 이 이상을 할 수 없다는 게 개인적으로는 큰 좌절감이 들었어요. '나중에'라고 말하고, 약속을 지키지 않아도 되는 상황에 너무나 무력감이 들었던 거죠. 왜냐면 저는 '지금 당장'이 필요하니까요. 변화의 속도를 가속화하는 데 있어서 정치가 그 역할을 할 수 있다면 내가 해보지라는 생각으로 시작하게 됐어요."

정치의 역할 중 하나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해결해야 할 문제 중 우선순위는 있기 마련이고, 그 우선순위에서 밀려나면 당장 내가 겪는 문제는 언제쯤 해결될 수 있을지 가늠하기 어렵다. 그 문제가 생존과 직결될 경우 절박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스스로 벼랑 끝에 서 있다고 표현한 혜정 씨는 지금 이 우선순위를 바꿔 놓아야, 자신이 쓴 노랫말처럼 무사히 할머니가 될 수 있다고 얘기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기성 정치를 보면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게 가장 답답했는데, (문제를 해결할) 우선순위를 정하는 방식이 다르다는 생각을 했어요. 건강하고 잘 사는 사람들의 의제는 항상 우선순위에 올라와 있고, 취약한 사람들의 의제는 늘 가장 밑바닥에 있는 것이죠. 그리고 이게 절대로 뒤집히지 않아요. 저는 이미 인생을 걸었기 때문에 뒤로 갈 수가 없어요. 대충 타협할 수 없는 거죠. 물러서면 벼랑 끝인데요. 지금까지 다른 사람이 하지 않았던 그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반드시 해내겠다는 마음이 있습니다."

혜영 씨가 국회의원이 된 후 가장 먼저 하고 싶은 일은 역시나 장애인 등 소수자들 편에 서는 일이다.

"당선되면 의원실을 하나하나 찾아다니며 '나는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혐오 발언을 하지 않겠다'는 각서를 받을 거예요. 서명한 사람 이름과 서명하지 않는 사람의 이름을 매일매일 업데이트도 하고요. 그리고 24시간 활동지원제도를 빨리 확립하고 싶어요. 장애인에 대한 돌봄을 개개인에게만 떠넘기는 건 이제 그만하고 국가와 사회가 책임지겠다고 하는 가장 강력한 사인이 바로 24시간 활동지원제도의 확립일 테니까요."

남소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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