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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경마, 경마기수 재해율 일반 노동자의 135배 “태풍 불어도, 나가라면 나가야”
5일 오전 서울 중구 프란체스코 교육회관에서 열린 고 문중원 기수 죽음과 관련한 마사회 구조와 노동실태 조사 보고회가 열렸다.    2020.02.05
5일 오전 서울 중구 프란체스코 교육회관에서 열린 고 문중원 기수 죽음과 관련한 마사회 구조와 노동실태 조사 보고회가 열렸다. 2020.02.05ⓒ김철수 기자

개인사업자로 분류돼 노동기본권을 박탈당한 채 경주에 나서고 있는 경마기수들이 전 업종 재해율의 135배에 달하는 심각한 산업재해에 노출돼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10명 중 1~2명은 1년에 한 번씩 응급실로 실려 갈 정도로 심각한 산업재해가 발생하고 있음에도, 기수들은 위험한 상황에서 말을 타지 않겠다고 말 할 수 있는 ‘기승거부권’조차 행사하지 못한 것으로 조사됐다. 태풍이 불고 말의 상태가 이상해 심각한 사고가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고 확신이 드는 상황에서도, 마사회가 경기를 열고 조교사가 경기에 나서라고 명령하면 군말 없이 따라야 하는 구조인 것이다. 개인사업자로 분류되면서 산업안전보건법의 사각지대에 놓이면서 발생한 문제였다.

노동계 법률·의학·인권 전문가로 구성된 ‘한국마사회 故 문중원기수 죽음의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위한 시민대책위원회 진상조사팀’(이하, 진상조사팀)은 5일 서울 중구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실태조사 보고회를 열고 이 같은 조사내용을 발표했다. 이번에 발표된 보고서는 시민대책위 진상조사팀이 전·현직 기수와 말관리사를 인터뷰하고, 국회의원실을 통해 받은 자료와 기존 연구자료 및 관련 논문 등을 검토한 결과다.

기수 재해율, 다른 노동자의 135배
85.7% 산업재해 은폐...노동기본권 박탈
위험한 경기 기승거부권도 보장 안 돼

경마공원별 재해율 비교
경마공원별 재해율 비교ⓒ고 문중원 시민대책위 진상조사팀

조사보고서에 따르면, 2018년 경마기수 재해율은 72.7%로 전업종 재해율(0.54%)의 135배에 달한다. 2019년 기준 서울에 위치한 경마공원에서의 재해율은 100%로 서울 경마공원에서 말을 타는 경마기수 전원이 재해에 노출돼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주로 낙마에 의한 재해가 많았다. 문 기수의 아내 오은주 씨도 시민대책위 진상조사팀과의 인터뷰에서 “남편도 여러 차례 말에서 낙마하는 사고를 당했다”며 코뼈가 으스러지거나 목 디스크에 시달렸던 적이 있다고 말했다. 또 부산 경마공원에서 일하는 한 경마기수는 “기수들에게 낙마로 인한 골절과 염좌는 일상”이라는 취지로 말했다.

이는 진상조사팀이 확보한 경마기수들의 2017~2019년 응급센터 후송 기록에서도 나타났다. 2017년 서울과 2018년 제주 경마공원에서의 후송률은 20%를 넘었다. 10명 중 2명은 응급센터로 실려 갈 정도로 심각한 부상을 당했던 것이다. 10% 이하는 2017년 부산경남 경마공원뿐이었다. 나머지 모든 해 모든 경마공원에서의 후송률은 10~20% 수준이었다.

상황이 이렇게 심각한데, 산업재해로 신고 된 경우는 14.3%에 불과했다. 전국 경마공원에서 발생한 85.7%의 산업재해가 은폐되고 있는 것이다. 진상조사팀은 “서울경마장조교사협회는 이미 알려진 바와 같이 2015~2017년까지 3년간 산재발생 보고의무를 2회 이상 위반한 사업장 명단에서 위반횟수 50건으로 1위에 오른 바 있고, 한국마사회 부산경남경마본부도 위반횟수 12건으로 3위에 올랐다”며 “재해 은폐는 공식적인 재해율을 낮춰 정부의 관리감독을 피해가기 위한 위법행위”라고 지적했다.

진상조사팀은 이 같이 산업재해가 상상을 초월하는 비율로 발생하는 이유에 대해 ‘보장되지 않은 기승거부권’을 꼽았다.

“장맛비로 한치 앞이 안보일 정도로 그렇게 내리고, 다 물바다가 돼서 말이 미끄러지기도 하고, 물방울이 맺혀 앞이 안 보이는 상황에서도 경주를 시행하는 경우가 매우 많다. 재난경보가 있기 전까진 경기는 계속된다. 아, 아니다. 재난경보 문자가 와도 탄다. 태풍, 호우경보에도 (탄다) 지금 안 오니까 타, 지금 괜찮으니 그냥 타 이런 식으로.” - 조사보고서에서 경마기수 A 씨

산업안전보건법은 산업재해가 발생할 위험이 있을 경우 노동자가 작업을 중지하고 대피할 수 있도록 하는 작업중지권을 보장하고 있다. 하지만 경마기수들은 개인사업자로 분류당하면서 이런 노동안전보건법의 보호조차 받지 못하는 처지로 전락하고 말았다.

이는 한국마사회의 경마산업 선진화 사업과도 연관이 있다. 수년 전만해도 경마기수들은 한국마사회 직원이었다. 그런데 1993년 7월 이후 한국마사회가 모든 경마산업을 외주화하면서 경마기수도 개인사업자 자격으로 만들었다.

다만, 한국마사회가 ‘기수는 개인사업자’라고 규정을 했던 것뿐이지 정말로 경마기수가 개인사업자의 입장에서 일을 했던 것은 아니었다. 형식적으론 개인사업자였지만, 계약을 맺은 기수는 한국마사회로부터 면허를 교부받은 조교사에게 완전히 종속되는 구조였다. 기수의 생계와 직결된 말을 타는 횟수나 경기 출전 여부 등은 모두 조교사가 결정하기 때문이다. 태풍이 불어서 위험하다거나 말의 상태가 이상하다며 지시를 거부하면 이후 불이익을 당할 우려가 생겼다. 이런 이유로, 기수는 조교사에게 무조건 복종해야 했다.

심지어 ‘상금을 탈 수 있는 기회’도 조교사가 좌지우지하는 경우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시민대책위가 故 문중원 기수의 동료 기수들을 상대로 시행한 설문조사에선 60%의 기수가 “조교사로부터 부당한 지시를 받은 적이 있다”고 답했다고 한다. 승군을 하지 못하도록 다리가 좋지 않은 말에 타라고 지시하거나, 말을 죽을 만큼 패라는 지시 등이 있었다고 한다. 이런 지시를 따라야만 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한국마사회는 경마를 프로야구와 비교하며 기수는 구단(조교사)과 계약을 맺은 선수라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해, 진상조사팀에서 기수 인권침해 분야에 대해 조사를 담당한 명숙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 활동가는 “그럼 스포츠 선수로서의 인권·권리는 보장해야 하는 것 아닌가”라며 “마사회가 필요에 따라 비교하는 프로야구단도 운영비 전반을 선수들을 위해 사용한다. 반면 기수들은 말을 타다가 다쳐도 개인 책임이고, 개인의 몸 관리나 훈련도 모두 자비로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명숙 활동가는 “권력집단이 인권을 침해하는 방식 중 하나가 권리주체에게 권리 자격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라며 “법이나 규범으로 보장된 권리에 대해 ‘자격 없음’, ‘해당사항 없음’이라는 방식으로 인권을 침해한다. 경마기수에 대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마사회는 경마기수의 노동자성을 부인하는 방식으로 권리를 침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故 문중원 기수는 지난해 11월 29일 마사회의 부조리를 고발하는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후 유족과 노조는 유서에 적힌 고인의 한을 풀기 위해 장례를 치르지 못하고 68일째 거리에서 마사회에 진상규명 및 책임자 처벌을 촉구하고 있다. 하지만 마사회 측은 경찰수사를 기다려봐야 한다며 노조와 유족의 요구를 받아들이기 않고 있다. 이에 지난달 13일부터 진행되던 노사교섭은 같은 달 30일 결렬되고, 여전히 평행선을 달리고 있는 상태다.

이승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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