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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영화 ‘작가 미상’… 시대를 이겨낸 예술과 진실의 힘, 독일 화가 게르하르트 리히터의 실화
영화 ‘작가 미상’
영화 ‘작가 미상’ⓒ스틸컷

독일을 대표하는 작가 게르하르트 리히터는 1960년대 이후 세계 현대미술사의 거대한 맥을 이끌어온 작가로 평가된다. 회화라는 가장 전통적인 예술 장르의 종말이 예고됐던 속에서도 회화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낸 예술가다. 리히터는 1962년 사진 이미지에 기반한 회화를 제작했다. 사진 회화는 인공적 이미지를 통해 회화로 재생산됐다. 그의 회화는 고정된 틀에서 벗어나 현대적 감각과 방법으로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고, 기존의 관념적, 주관적 의도에 의해 속박되지 않는 회화의 새로운 길을 찾았다. 플로리안 헨켈 폰 도너스마르크 감독의 ‘작가 미상’은 게르하르트 리히터의 실화에서 영감을 얻어 만들어진 영화로 예술과 진실을 찾아 떠나는 예술가의 오랜 여정을 잘 보여주고 있다.

현대미술이 ‘퇴폐 미술’이라며 배척당하고 미술과 예술은 독일 민족의 우수성을 알리는 수단이어야 한다고 강조하던 나치 시절, 독일 드레스덴에서 태어난 쿠르트 바르너트는 화가를 꿈꾸고 있다. 그에게 예술을 알려준 건 자신의 이모인 엘리자베스 메이였다. 엘리자베스는 “진실한 것은 아름다워. 절대 눈 돌리지 마”라고 쿠르드에게 이야기한다. 쿠르드도 예술가를 꿈꾸며 “옳은 걸 찾을 거예요, 진실한 것을요”라고 다짐한다.

진실을 찾겠다고 다짐했던 쿠르드에게 또 다른 시련이 닥친다. 전쟁이 끝난 뒤 그는 간판에 글씨를 쓰는 노동자로 일하다 재능을 인정받아 미술학교에 진학하지만, 당시 드레스덴은 동독 지역이었고, 사회주의 리얼리즘이 최고의 예술로 인정받던 시절이었다. 진실을 찾고, 자신을 찾으려는 예술은 설 자리가 없었다. 그렇게 힘든 나날을 보내던 그에게 죽은 이모와 같은 이름을 가진 엘리가 찾아온다. 엘리를 사랑하게 되면서, 그는 예술에 대한 새로운 힘을 얻는다.

예술에 대한 욕망이 커질수록 그는 개인의 자유를 구속하는 전체주의에서 견딜 수 없게 된다. 그림에 대한 꿈을 꾸며 서독으로 엘리와 함께 향한다. 그곳에서 페르텐 교수의 가르침을 통해 자신이 진정 바라보고 싶은 것, 그려내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골몰하고 탐구하게 된다. 페르펜 교수가 학생들에게 예술에 대해 깨달은 것이 있냐고 묻자 쿠르드는 “예술은 로또 번호 같다”고 말한다. 무작위적인 숫자 같지만, 당첨되는 순간 가치가 생기고, 그 숫자가 아름다워지기까지 한다는 것이다. 무의미해 보이고, 가치가 없어 보이는 것들 속에서 가치를 찾고 부여하고, 의미가 생겨나게 하는 것이 바로 예술의 몫이다.

영화 ‘작가 미상’
영화 ‘작가 미상’ⓒ스틸컷
영화 ‘작가 미상’
영화 ‘작가 미상’ⓒ스틸컷

이 영화의 중요한 모티브인 리히터의 사진 회화는 이런 예술의 속성을 잘 보여준다. 그는 사진을 캔버스에 그리고, 그 위를 다시 마른 빗질로 쓸어 이미지를 흐르게 만든다. 화면에서 모호해지고 지워진 듯한 그의 그림은 오히려 신비로운 분위기를 연출한다. 그는 흐릿해진 대상을 명확하게 잡지 못하게 함으로써 작품에 최종적인 의미를 주지 않으려고 했다. 이로써 대상의 의미는 고정된 것이 아니라 열리게 된다. 이 영화 제목인 ‘작가 미상’의 의미도 바로 이런 것이다.

리히터의 이런 작품에 매혹된 감독은 리히터의 삶에서 더 큰 울림을 느꼈다고 한다. 리히터는 27세의 나이에 나치에 의해 정심병원에 감금돼 사망한 이모와 돇일 친위대 대원이자 정신과 의사였던 장인을 두었으며, 동독지역에서 태어나 어린시절 2차대전을 겪었고, 동서독이 분단된 이후엔 전체주의에 대한 반발로 서독으로 넘어온다. 격동적인 독일 현대사를 인생으로 겪은 그는 삶에서 만난 이들, 겪은 경험을 그림으로 그려내며 현대 미술의 거장으로 섰다. 리히터는 예술의 힘에 대해 묻는 질문에 “예술은 위로를 주기위해 존재한다‘고 답했다고 한다. 감독은 이런 그의 말을 ’위대한 예술 작품은 트라우마가 긍정적인 무언가로 변화할 수 있다는 점을 명확하게 보여주는 증거‘라고 생각했고, 영화 속 쿠르드의 삶이, 실제 리히터의 삶이 그걸 보여주고 있다.

이 영화는 시대와 삶이 예술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작가란 무엇이고, 예술이란 과연 무엇인지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아주 좋은 교재가 될 수 있다. 좋은 전시를 본 듯한 착각에 빠질 정도로 미술의 매력에 흠뻑 젖을 수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3시간이 넘는 대작이지만, 지루할 틈이 별로 없이 매력이 가득하다.

권종술 기자

문화와 종교 분야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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