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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절망이란 이름의 유토피아를 향해 가는 우리들의 이야기, 연극 ‘우리는 이 도시에 함께 도착했다’
연극 ‘우리는 이 도시에 함께 도착했다’
연극 ‘우리는 이 도시에 함께 도착했다’ⓒ박동명, 래빗홀씨어터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가 전 세계를 통째로 집어삼킨 것 같은 요즘이다.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는 어느새 경계의 공간이 되었다. 공연을 보는 것이, 일 이전에 숨가쁜 삶에 유일한 쉼표인 이 도시인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연장으로 향했다. 도착한 <미아리고개 예술극장> 입구에는 이제는 익숙한 손 소독제가 놓여있었다. 입장하는 관객들의 이름과 연락처 등 신상정보도 적었다.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비상연락망으로 사용될 것이라고 한다. 공연장 문이 서서히 닫히며 문 너머 낮의 온기와 햇빛이 조금씩 차단되어갔다. 이내 문이 완전히 닫혔다. 조금 예상은 했지만, 공연장의 빛이 사라졌다. 그곳은 이미 수연과 재인이 꿈을 위해 찾아간 페허의 도시 그 자체였다.

수연과 재인은 다른 몇 사람들과 함께 도시로 향하는 버스에 올라탔다. 어두컴컴한 버스는 빛을 잃은 도시를 향해 달렸다. 도시 밖에서 쉴새 없이 일했던 수연과 재인은 희망이라고는 없는 삶을 살고 있었다. 어느 날 재인은 수연에게 말한다. “같이 살자”고. 그리고 빼곡하게 적은 계획서와 따사로운 햇살로 가득한 방 사진을 보여준다. 재인이 살고 싶은 전세방이었다. 재인은 빛 하나 들지 않는 고시원 방에서 꾼 꿈을 수연에게 들려주었다. 그렇게 두 사람은 돈을 벌어 함께 살 전셋집을 마련하기 위해 도시로 가고 있는 것이다.

연극 ‘우리는 이 도시에 함께 도착했다’
연극 ‘우리는 이 도시에 함께 도착했다’ⓒ박동명, 래빗홀씨어터

도시는 재인과 수연이 도착하기 전 엄청난 폭발로 페허가 되어 있었다. 그곳에서 두 사람은 도시 밖에서 벌던 돈의 다섯 배나 되는 일거리를 찾게 된다. 정부는 거액의 급료를 주고 도시를 복구할 인력을 모집하고 있었다. 재인과 수연은 하루 종일 페허가 된 건물의 잔해를 치우고, 밤이면 곰팡이가 가득한 방으로 돌아온다. 몸은 천근만근이지만 통장에는 지금껏 받아보지 못한 돈이 쌓여갔다. 통창으로 들어오는 햇살 가득한 꿈의 전셋집이 조금씩 눈앞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이제 조금만 더 일하면 돌아가 좋은 집에서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다. 재인과 수연은 정말 좋은 시작을 할 수 있을까?

이제 막 결혼 한 새댁은 방 한 칸짜리 월세방에서 동생과 시동생들을 학교 보내고 아이들을 낳고 살았다. 손톱 여물게 아끼고 아껴 방 두 칸짜리 집으로 이사가고 다시 집을 사기까지 또 이십여 년의 세월을 보내야 했다. 우리의 부모 세대들은 그렇게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 살아왔다. 우리들 역시 별반 다르지 않은 시간들을 살아내고 있다. 휴일을 반납하고 휴가를 잊은 채 살아도 돈은 쥐꼬리만큼 모이고 빚은 고래등처럼 불어난다. 우리 아이들의 삶은 그래도 다를 것이라는 희망은 보란 듯 절망으로 돌아온다. 이젠 손톱 여물게 아껴도 몇억을 오르락 내리락 하는 집을 살길은 요원하다. 휴일을 반납하고 싶어도 일할 직장 구하는 것이 바늘구멍 통과보다 어렵다.

그래도 꿈을 꾸면 도전을 하면 우리의 미래는 달라진다고들 했다. 끓어 오르는 타르를 거둬내고 무언인지 알 수도 없는 건물 잔해를 맨손으로 긁어내며 지금의 고통을 이겨내면 따스한 햇살 가득한 전셋집에서 수연과 재인은 행복할 수 있을까? 이야기는 화가 치밀어 오르게 당연한 결말을 향해 간다. 이상하게 재인의 몸은 점점 굳어 간다. 쉴새없이 목말라 하는 재인의 입에 고무호스를 연결해 놓은 채 일을 나가는 수연은 점점 일하는 목적조차 잃어버리게 된다. 도시복구 현장에서 수연은 기형적인 모습으로 죽어간 시체들을 보게 된다. 그후 수연은 곰팡이로 뒤덮인 방을 한달째 나가지 않았다. 돌처럼 굳어버린 재인과 함께. 도시를 떠나고 싶지만 떠날 수조차 없다. 이제 도시는 전염병으로 봉쇄됐기 때문이다.

연극 ‘우리는 이 도시에 함께 도착했다’
연극 ‘우리는 이 도시에 함께 도착했다’ⓒ박동명, 래빗홀씨어터


70분의 길지 않은 시간이 이토록 길게 느껴진 것도 처음이다. 이야기 속의 유토피아도 수연과 재인이 걸어 들어간 디스토피아도 모두, 우리가 사는 현실이라는 참담한 진실 때문이다. 발버둥쳐도 벗어나지 못하는 현실은 선택권조차 없는 우리들에게 당연한 결말이다. 몸이 굳어 움직이지 못하는 재인에게 수연은 도시를 떠나자고 하지만 재인은 거절한다. 재인에게 유토피아는 바로 눈앞에 다가와 있기 때문이다. 비록 한발 다가가면 두발 멀어지고 절대 갈 수는 없을테지만.

연극 ‘우리는 이 도시에 함께 도착했다’는 한시간 조금 넘는 시간이 무색할만큼 깊고 진한 울림을 준다. 배우들의 대사가 곧 이야기가 된다. 재인이 수연의 감정을 이야기하고 수연이 재인의 이야기를 풀어낸다. 한 편의 소설을 본 것 같기도 하고 한편의 연극을 읽은 것 같기도 하다. 공연이 끝나고 빛을 잃었던 공연장에는 다시 밝은 세상의 온기가 들어왔지만, 여전히 끝나지 않은 물음은 발걸음을 무겁게 한다. 수연과 재인은 그 방을 나올 수 있었을까, 아니 우리는 모두 그 방을 나올 수 있을까라고.

연극 ‘우리는 이 도시에 함께 도착했다’

공연날짜:2020년 2월 7일~2월 16일
공연장소:미아리고개 예술극장
공연시간:70분
관람연령:14세 이상(중학생 이상)
원작:강화길 <방>(소설집 '괜찮은 사람'수록 단편소설)
기획:나희경
제작진:연출 윤혜숙/무대 디자인 김다정/조명 디자인 성미림/의상 디자인 김미나/음향 디자인 임서진/음악감독 박소연/분장 디자인 장경숙
출연진:김원정, 강혜련

이숙정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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