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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력 공포는 트랜스젠더 배제의 근거가 될 수 있을까
없음
ⓒ숙명여대

“공포도 혐오가 될 수 있나요?”

최근 ‘생물학적 여성’을 강조하며 트랜스 여성의 입학을 반대한 한 숙대생의 질문이다. 그는 성폭력 피해자가 남성 신체에 갖는 극도의 공포감을 강조했다. 불법촬영, 데이트폭력 등 일상에서 각종 성폭력에 시달리는 여성들에게 여대는 유일하게 허락된 안전한 공간이라는 것이다.

트랜스 여성은 여성이 아니라 남성이라는 시각은 여기서 비롯된다. 트랜스 여성은 남성 신체로 인해 선천적으로 여성과 같은 피해를 경험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피해자로서 여성의 경험을 존중하지 않은 채 ‘트랜스 혐오’로만 몰아가는 건 억울하다고 그는 말했다.

여성에 대한 성폭력이 만연한 사회다. 그러나 같은 여성끼리 모여있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니라고 반(反)성폭력 활동가들은 말한다. 공간 분리는 결국 소수자를 배제하는 방식으로 진행될 뿐만 아니라 여성의 위치를 피해자로 한정해 권리를 제약할 위험도 크다는 지적이다.

“실재하는 공포와 안전해지고 싶은 간절한 욕구 앞에서 배제와 추방은 가장 힘 있는 해결책처럼 보인다. 하지만 우리는 혐오와 차별을 선택하지 않고 스스로를 가두지 않으며 침범과 폭력에 대응하는 힘을 길러왔다.” 지난 6일 한국성폭력상담소의 논평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공간 분리로 성폭력 막을 수 있다?
“사람 아닌 행위 제한해야”

트랜스 여성의 입학을 반대한 이들의 주장에 따르면, 생물학적 여성들만 다니는 여대는 남성 폭력으로부터 안전한 공간이다. 여자 화장실을 주기적으로 드나든 남성, 축제 시즌에 여대에 난입해 폭력을 저지른 남성 등 여대가 공격 대상에 놓일 때마다 안전한 공간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은 커진다.

그러나 공간 분리는 남성 폭력을 막을 방법이 될 수 없다는 지적이다. 김신아 한국성폭력상담소 활동가는 “성폭력에 대한 공포나 두려움 자체를 부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성폭력은 성기만의 문제가 아니다. 성별, 지위, 나이 등 권력 관계가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그런 점에서 누군가를 공간에 못 들어오게 한다고 해서 막을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공간 분리 논리는 여성들의 행동을 제약하는 근거로 돌아올 수 있다. 김혜정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소장은 “공간 분리는 여성들에게 밤늦게 돌아다니지 말라는 논리와 같다. 성폭력 피해가 걱정되니 여성들은 학교, 직장 등 남성들이 많은 곳에 못 들어오게 하는 식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여성들끼리 모이는 것으로 해결된다면 다른 공간에서 성폭력 해결을 위해 노력하지 않으려고 할 것이다. ‘너희끼리 모여있으면 된다’는 식으로 진행될 수 있다”라며 “입장 제한은 소수자를 향할 가능성이 크다”라고 말했다.

김 부소장은 사람이 아닌 행위를 제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반성폭력 운동은 여성이 누군가를 만나지 않는 방식이 아니라 모든 공간에서도 성폭력이 발생하지 않도록 문제를 해결해왔다”라고 말했다. 여대 안에서 남성 교수가 성폭력을 저질렀다면 남성 교수 전체를 쫓아낼 게 아니라 성폭력 행위에 대한 처벌을 내려야 한다는 것이다.

트랜스 여성은 남성이다?
“여성의 ‘자격’ 따져선 안 돼”

‘트랜스 여성은 남성’이라고 주장하는 이들은 피해자로서 여성들이 겪었던 경험을 강조한다. 이들은 남성 신체로 살았던 혹은 살고 있는 트랜스 여성은 여성으로 태어났다는 이유로 범죄의 표적이 되는 등 남성 폭력의 피해를 경험할 수 없는 특혜를 누렸다고 주장한다. 이들에게 여성은 가장 억압받는 약자고 피해자다.

여성의 자격을 말하는 이들에게 ‘의심할 만한 어떤 결함도 없어야 한다’는 기준은 누구의 시각이냐고 반성폭력 활동가들은 묻는다. 김신아 활동가는 “현장에서 ‘피해자 자격에 못 미친다’라는 이야기를 많이 만난다. 예를 들어 성폭력 피해자지만, 문자 내용을 보니 가해자와 연인 사이인 게 아니냐, 피해자 자격이 없다는 질문들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성매매 여성에 대한 비판도 같은 논리다. 성매매 여성에게 왜 그런 직업을 선택했는지 물으며 완전한 피해자라고 볼 수 없다고 말한다. 완전히 억압만 받았던 피해자인가, 의심의 여지가 하나도 없는지 자격 판단에 대한 시선들이 있다”라고 말했다.

김 활동가는 “한 번 피해자는 영원한 피해자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피해자를 늘 피해자로 대해야 하는 건 아니다. 피해자는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해 적극적으로 질문하고 새롭게 관점을 얻는 역동적 존재다. 억압받는 위치에만 있는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여성들이 언제나 성폭력 공포만을 느끼는 존재는 아니라는 지적도 나왔다. 김혜정 부소장은 “여성을 성폭력 당할지도 모를 몸으로만 생각하면 취약한 존재, 어떤 위험에 처한 피해자로만 여겨진다. 일할 수 있는 사람,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사람으로 보지 않는다. 여성을 다양한 시민적 존재로 관계 맺으라는 게 반성폭력 운동의 요구였다”라고 말했다.

성폭력 두려움은 누굴 향하는가?
사회적 관계 삭제되자 혐오만 남아

성폭력 두려움은 왜 트랜스 여성에게만 향했을까. 김 부소장은 “여성들이 남성으로부터 성폭력 두려움을 느끼긴 하지만, 고객, 동급생, 수강생, 서비스 제공자 등 여러 관계성을 모두 봉쇄하진 않는다. 사회적 관계에 대한 제도적 보장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트랜스젠더 입학생은 성폭력 가해자가 될 가능성으로만 간주됐다. 이는 사회적 시민권 보장의 예외적 존재로 대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제주도 예멘 난민을 반대했던 여성들 역시 성폭력 공포에 대해 말했다. 무슬림의 여성 억압 문화로 예멘 남성들이 한국 여성을 대상으로 성범죄를 저지를 수 있다는 두려움이 있었다. 이들에게 예멘 난민은 잠재적 성폭력 가해자였을 뿐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로 귀국한 우한 교민들의 입국을 반대하는 상황과도 비슷하다. 김 부소장은 “귀국 교민들의 격리 기간만 지나면 동네 주민이나 동창, 교환학생 등의 사회적 위치로 돌아온다. 그런 사회적 위치나 관계를 삭제하고 바이러스를 보유한 사람이라고만 생각하게 되면, 두려움 때문일 수 있지만, 여러 문제가 발생한다”라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 트랜스 여성의 존재는 부정됐다. 일부 재학생들은 ‘숙대 비둘기학회 날아’라는 이름의 성명서를 통해 트랜스 여성이 겪는 성별 위화감에 대해 ‘여성의 외형을 선망했다’라고 평가절하하고, 성전환 수술을 한 트랜스 여성의 신체를 기형적 존재로 조롱하는 등 혐오 발언을 쏟아냈다.

숙대 20학번을 꿈꿨던 트랜스 여성 A 씨는 지난 7일 결국 등록을 포기했다. 그는 이날 “대학을 가고자 하는 당연한 목표, 그 속의 꿈조차 누군가에게 의심의 대상이고, 조사의 대상에 불과하다. 내 삶은 끊임없이 무시되고 ‘반대’를 당한다. 나는 일상을 영위할 당연함마저 빼앗겼다”라고 심정을 밝혔다.

그는 “그 누구도 항상 사회적 다수자일 수는 없으며, 그 누구도 항상 소수자인 것은 아니다”라며 “자신을 늘 약자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자신이 어떤 면에서 강자일 수도 있음을 잊고, 다른 약자를 무시하기 마련이다. 이런 사고에서 혐오만 재생산될 뿐”이라고 말했다.

입학을 포기하면서도 A 씨는 “나는 비록 여기에서 멈추지만, 앞으로 다른 분들이 더 멀리 나아갈 수 있을 것이라 믿고 또 감사한다”라며 “하나의 날갯짓이 커다란 폭풍이 됐음을 바라보며”라고 희망을 말했다.

A 씨의 꿈이었던 박한희 변호사는 이날 SNS를 통해 “가타부타 말하기에 앞서 상대방이 나와 같이 복잡한 생각과 삶의 여정을 가진 인간이라는 점에서 출발해줬으면 한다. A 씨를 비롯해 트랜스젠더들은 조롱과 모욕을 위한 가상의 캐릭터도 아니고 인터넷의 밈도 아닌 현실에서 어떤 식으로든 같이 살아가는 존재들”이라고 호소했다.

강석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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