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보기
댓글보기
[서정민갑의 수요뮤직] 한희정은 눈부시다
한희정 EP 앨범 '두개의 나' 메인 이미지
한희정 EP 앨범 '두개의 나' 메인 이미지ⓒ사진 = 한희정

음악을 듣고 노랫말을 살펴본다. 어떤 악기를 사용했는지, 악기는 언제 등장하고 언제 사라지는지. 악기와 악기 사이는 다정한지 냉랭한지. 간격과 사이를 헤아려본다. 목소리의 질감을 느끼고, 목소리와 악기의 울림이 서로 끌어당기는지 밀어내는지 귀 기울인다. 음악의 호흡을 파악하고, 테마가 던지는 울림의 온도도 재 본다. 모든 소리가 흐르는 동안 햇살이 비치는지 비가 내리는지 바람이 부는지 지켜본다. 노랫말이 품은 이야기와 소리는 서로 조응하는지. 어긋나고 등 돌리지는 않는지. 함께 손을 잡고 어디로 가는지. 가려는 곳으로 잘 찾아가는지. 가다 멈추지는 않는지 망원경으로 관찰하고 추적한다. 음악은 스스로 시작하고 끝을 찾아 완성하는 드라마이다.

싱어송라이터 한희정의 EP [두 개의 나]는 한 사람의 마음을 들여다본 기록이다. 한희정은 ‘비유’, ‘걱정’, ‘불안’, ‘두 개의 나’, ‘어느 겨울’로 이어지며, 다시 ‘걱정’의 데모 버전으로 마무리 하는 음반의 수록곡들을 지난 해 3월부터 두 달 간격으로 발표했다. 이미 그 때 들었고, 들으며 감탄했던 노래를 다시 듣는 일은 또 다시 즐겁다.

수록곡들은 ‘두 개의 나’라는 음반 제목에 충실하다. 시인과 촌장의 하덕규가 이미 오래 전에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라고 노래했듯, 마음에는 수많은 자아가 산다. 사람이 성장하는 일은 자신 안에 어떤 자아가 사는지 알아내는 일이고, 자아를 이해하는 일이다. 타협하고 토닥이고 부추기고 응원하며 보듬어 원수가 되지 않도록 달래는 일이다. 성장과 성숙은 자신을 정확하게 알고 견디며 아끼는 끊임없는 시도이다. 그 과정은 쉽지 않다. 마음은 하루에도 수십 번 널뛴다. 그것이 사람이다. 자신이다.

한희정은 노래 속에서 그 찰나의 순간 중 일부를 전시한다. 첫 곡 ‘비유’에서는 “좀처럼 규정되지 않는 순간과 언어로 표현해낼 수 없는” 자신의 “어떤 관능”을 낚아챈다. 그것이 솟구침을 느낀다고 다른 사람 대하듯 말하면서, 자신이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다고 대답한다. ‘비유’는 두 개의 나가 대화하듯 말하면서 자신을 관찰하고 파악하는 내면의 작동방식에 근접한다. 이런 일이 “매우 특별한 일”이고, “얼마나 드문 일”인지까지 아는 사람은 자신을 오래 들여다 본 사람이다.

‘걱정’의 내용과 전개도 비슷하다. 네가 걱정이 되기도 하고 안 되기도 한다는 이야기를 나눌 때, 가까운 사람과 나누는 이야기처럼 들리지만 실상 자신이 자신을 위로하고 불화하는 기록으로 읽힌다. “마음은 마음대로 흘러가고 흘러가지 않고” 오락가락 하는 걸 자기만큼 잘 아는 사람이 있을까. 그래서 이 이야기가 한희정 자신의 고백인지 아닌지를 고민할 필요는 없다. 노래에 자신을 비춰보고 공감하거나 배우면 될 일이다.

그리고 한 편의 에세이 같은 노래 ‘불안’에서 진술한 이야기는 불안의 원인까지 직시하지는 못하지만, 불안에 사로잡힌 이의 고통과 그 과정을 생생하게 재현한다. 과거형으로 쓰여진 노랫말은 이 노래가 가능한 이유까지 함께 언급한다. 지나간 것이다. 더 이상 “나의 낮과 밤을 불안에게 내어주”지 않는 것이다. 최소한 말할 수 있을만큼은 견딘 것이다.

꿈에서 확인한 자신의 까칠한 내면을 코믹하게 재현한 노래 ‘두 개의 나’도 자신을 관찰하고 기록한 연작이다. ‘어느 겨울’ “따뜻한 너의 손을 잡”은 이야기는 이 음반의 이야기가 가능하게 한 힘을 설핏 느끼게 한다. 마지막 곡으로 다시 부른 ‘걱정’의 데모 버전이 훨씬 편안하게 들리는 이유도 자연스럽다.

이번 음반에서 한희정은 자신이 모든 곡을 다 썼을 뿐 아니라, 스트링 편곡까지 도맡았다. 모던 록, 드림 팝, 포크를 오가던 한희정은 이번 음반에서 기타를 뺐다. 대신 차지연의 바이올린과 지박의 첼로를 앞세웠다. 드럼 프로그래밍과 피아노 역시 한희정이 맡았다.

수록곡들에서 현악기를 활용하고 보컬을 연결하는 방식은 곡의 개성과 완성도를 동시에 담지한다. 첫 곡 ‘비유’에서부터 현악기들은 반주와 연주를 결합한다. 멜로디를 연주하는데서 그치지 않고 노래 안으로 끌어들이면서 밖으로 내모는 현악기 연주는 자아의 분열적 관찰이라는 시선을 김사월의 목소리와 함께 표현한다. 짧은 길이에도 변화를 만드는 소리의 연출이 돋보인다.

한희정과 이아립의 목소리를 교차하는 ‘걱정’의 가창 방식과 생경한 질감도 마찬가지이다. 걱정 자체만이 아니라 걱정으로 인한 마음의 어지러움까지 연출하는 방식은 걱정의 실체와 파장을 복원한다. ‘불안’에서 현을 긁고 튕기고 보컬에 공간감을 부여하는 방식, 독백을 활용하고, 짧게 노래하는 방식도 노래 사이의 차이를 선명하게 한다.

‘두 개의 나’ 역시 한희정이 노래를 만들고 부르는 뮤지션이 아니라 노래를 연출하고 소리를 조율하는 뮤지션임을 보여준다. 긴 현악기 연주에 이어 몽환적인 낭송을 끊어가며 배치하고, 현악기와 피아노 연주가 환상성을 부풀릴 때 한희정은 자신이 여느 싱어송라이터와 오래전부터 다른 영역에 있음을 숨기지 않는다. 피콜로 플루트가 돋보이는 ‘어느 겨울’의 구성도 마찬가지이다. 한희정은 자유롭고 거침없으며 섬세하다.

한희정이 모던 록 밴드 더더로 데뷔한지 20여년이 흘렀다. 더더와 푸른새벽에서 만들어 낸 깊이를 차곡차곡 쌓아간 한희정은 이제 싱어송라이터 가운데 맨 앞이다. 익숙한 표현을 빌어 말해도 좋다면, 한희정은 하나의 장르가 되었다. 누군가는 멈추고 누군가는 사라지는 세상에서 한희정은 멈추지도 사라지지도 않았다. 대신 미래를 보여줄 현재가 되었다. 순위와 트렌드 사이에서 온 힘 다해 눈부신 뮤지션의 광채. 한국대중음악의 오늘이다.

서정민갑 대중음악의견가

기자를 응원해주세요

기사 잘 보셨나요? 독자님의 작은 응원이 기자에게 큰 힘이 됩니다. 독자님의 후원금은 모두 기자에게 전달됩니다.

이시각 주요기사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카카오스토리2
닫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