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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경의 삶과 문학] ‘인생이란…’
-오정희 작가의 소설 중국인 거리
-오정희 작가의 소설 중국인 거리ⓒ기타

유년의 어느 날 서커스단을 본 적이 있다. 오정희 작가의 소설 <중국인 거리>의 배경인 항구도시에서였다. 집 앞 큰길 가 공터에 서커스단이 천막을 올렸다. 천막 밖에서 난장이 남자와 보자기로 머리를 감싼 여자가 사람들의 눈길을 붙잡고 있었다. 보자기 밖으로 보이는 여자의 모습은 놀라웠다. 한쪽 얼굴이 목까지 흘러내려 커다란 혹처럼 출렁거렸다. 더 놀라운 것은 늘어진 쪽의 눈이 혹 위에 붙어있던 것이었다. 그런 모습이 가능한지 그 후로도 이따금 떠올려 보았지만 믿기 어려운 일이었다. 혹 위에 눈이 붙박여 있었다는 기억은 당시 그를 둘러싼 사람들의 조롱과 내 마음이 만든 굴절일지도 모른다. 서커스단의 여자는 어쩔 수 없이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어 사람들을 끌어 모으고는 있었지만, 구경꾼 중 누군가 가까이 다가가면 보자기를 잡아당겨 얼굴을 감추려고 했다. 그때 나는 여자의 눈을 보았던 것 같다. 원망스러운 눈빛이었다. 어쩌면 그 눈빛을 여자의 가장 아픈 곳에서 보았다고 착각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는 감추고 싶은 것을 전시해야 하는 공포와 수치, 고통을 관람하는 군중의 죄책감을 경험하게 한 최초의 낯선 세계였다. 유년의 세계란 이와 같은 이해불가의 상황 속에서 약자와 강자의 자리를 뚜렷하게 인식하는 과정이자, 약자로서의 불안과 초조를 가장 앞서 체험하는 시절일지도 모른다.

1979년에 발표된 오정희의 소설 <중국인 거리>는 소설 속 화자인 아홉 살 소녀 ‘나’가 식구들과 함께 이사 온 해안촌 근처, 통틀어 ‘중국인 거리’라고 불리는 동네에서 감지한 통점을 예민하고 섬세하게 보여주는 일종의 성장소설이다. 전쟁 직후 한국사회의 불안과 비루함 속에서 성적 욕망의 수단이 되거나(매기언니) 고통스러운 임신과 출산을 반복하는(어머니), 가부장제 사회에서 소외되고(할머니) 추락하는(치옥), 죽음에 이르러서야 이와 같은 상황에서 벗어나는(할머니와 매기언니) 여성들의 삶과 낯선 타자에 대한 혐오(중국인 거리의 중국인들), 그러한 세계에서 여성이자 약자로서 갖게 되는 성장의 두려움(나) 등을 오정희 특유의 감각적이고 섬뜩한 문장으로 보여주고 있다.

소설 속 ‘중국인 거리’의 목조 이층 적산 가옥에는 ‘집집마다 양갈보들이 세 들어’ 살고 있고, 작은 창문과 출입문에 ‘나무 덧문이 완강하게 닫혀져’ 있는 언덕 위의 커다란 이층집에는 중국인들이 섬처럼 외따로 살아가고 있다. 어머니는 여덟 번째 아기를 낳고, 오빠는 미군의 칼을 갖기 위해 배에 칼이 박혀 죽은 고양이를 질질 끌고 부두로 간다. 영감이 처제를 집안에 들여 평생 자식을 실어보지 못한 몸으로 조카딸인 어머니에게 얹혀살던 할머니는 중풍으로 쓰러져 죽기 직전에야 돌아가게 된 집에서 풀어헤친 가슴팍으로 영감의 손을 끌어당긴다. ‘커서 양갈보가 되겠다.’던 목조 적산 가옥의 의붓딸 치옥은 가족이 모두 그 거리를 떠나며 삼거리 미장원에 맡겨진다. 자신이 낳은 백인 혼혈아 ‘제니’와 흑인 병사와 함께 치옥의 집 이층에 세 들어 사는 매기언니는 술에 취한 미군에 의해 이층 창밖으로 떨어져 죽고, 남겨진 제니는 성당의 고아원으로 간다.

밀수업자, 아편쟁이, 원수의 생간을 내어 먹는 오랑캐 등, 불분명한 혐오와 경멸 속에서 덧문을 친 채 살아가는 중국인들이 나에게는 언덕 위의 이층집 열린 덧문으로 이켠을 바라보고 있는 한 젊은 남자의 슬픈 듯, 노여운 듯, 때로는 희미하게 웃는 듯한 알 수 없는 시선으로 감각되고, 그때마다 나 역시 알지 못할 슬픔을 느낀다.

그러나 반복적인 시선의 마주침 후에 남자는 중국인들이 명절 때 먹는 빵과 용이 장식된 작은 등을 싼 종이꾸러미를 나에게 선물한다. 그리하여 ‘깊은 흉중에 든 것이 금인지 아편인지 의심인지’ 모를 희미한 모습의 낯선 타자는 매혹적인 미지의 세계로 간직된다.

아홉 살 소녀였던 ‘나’는 열두 살이 되고. 할머니의 유품을 묻어둔 공원 숲속 오리나무에서 맥아더 동상까지의 거리는 예순다섯 걸음에서 예순 번으로 줄어들어 언젠가는 한 걸음으로도 닿을 수 있을 것만 같다. 어느 밤, 깜깜한 바다와 중국인 거리를 내려다보고 있는 동상에 올라 ‘인생이란…’ 이라고 중얼거릴 만큼 열두 살 소녀에게 이 세계의 사람들은 ‘복잡하고 분명치 않은 색채로 뒤범벅된 혼란스러운 어제와 오늘과 내일’이었지만, 그들 속에서 성장하고 인생에 대해 묻고 마침내 초조(초경)를 본다.

누군가 물었다.
‘인간이란 무엇일까.’

이수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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