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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더스의 승리 : 사회주의가 주류가 되고 있다
미국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 나선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이 뉴햄프셔주 프라이머리(예비선거)가 열린 11일 뉴햄프셔주 맨체스터에서 연설을 하기 위해 연단에 오르고 있다. 2020.2.20
미국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 나선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이 뉴햄프셔주 프라이머리(예비선거)가 열린 11일 뉴햄프셔주 맨체스터에서 연설을 하기 위해 연단에 오르고 있다. 2020.2.20ⓒAP/뉴시스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은 이번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4년 전 선거운동 내내 이루지 못했던 성취를 단 일주일 만에 이뤘다. 버몬트 출신의 78세 '민주적 사회주의자'는 적어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선두주자로 치고 나가고 있다.

뉴햄프셔 프라이머리(예비선거)에서 샌더스가 거둔 승리는 네바다와 사우스캐롤라이나로 향하는 길목에서 그를 확고히 정상에 올려놨다. 이번 승리는 샌더스가 아이오와에서 보여준 강력한 뒷심, 전국 여론조사 지지율 급등이 결합한 결과이다.

샌더스는 중도층의 표 분산으로도 득을 봤다. 에이미 클로버샤 상원의원의 최근 급부상이 샌더스에 가장 근접한 라이벌 피터 부티지지 전 인디애나주 사우스벤드 시장의 상승세를 늦췄다.

유력 주자였던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은 두 번째 연달아 참담한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바이든은 사우스캐롤라이나의 저지선조차 위협받고 있다. 그 지역에서 샌더스의 지지율은 상승하고 있다. 또한 샌더스는 바이든이 우세를 보였던 흑인 유권자 지지를 침식해 들어오고 있다.

그러나 샌더스가 1위로 올라섰다는 사실은 다음 라운드에서 1위를 차지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 이상의 중요성을 가진다. 지금까지 현대 미국 정치사에서 좌파 출신의 후보 중 민주당 대선후보 자리에 근접했던 사람은 단 한 명도 없기 때문이다.

샌더스는 1990년 이래로 버몬트주에서 펼쳐진 하원의원 선거와 상원선거에서 계속 무소속으로 승리해 오면서 그가 지금 이끌고자 하는 정당의 간판, '민주'를 뒷전으로 밀어냈다. 이제 그런 현상은 전국적 차원에서 일어나고 있다.

더 많은 주류 후보들과의 경쟁에서 샌더스가 선두주자로 부상했다는 사실은 유권자들 사이에 중대한 전환이 있을 수도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아이오와와 뉴햄프셔에서 샌더스가 역설한 혁명은 '트럼프 시대 비정상의 정상화'를 호소한 바이든의 애원을 압도했다. 게다가 수많은 젊고 다양한 후보들이 있었음에도 가장 나이가 많은 백인 후보가 때묻지 않은 순수한 진보적 정책만으로 승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샌더스가 자랑스럽게 표방하는 간판만큼 그가 추구하는 '변화'를 제대로 상징하는 것은 없다. 그것은 바로 '민주적 사회주의자'이다. 샌더스가 제안한 혁신적 정책들, 그린 뉴딜(Green New Deal), 전국민 건강보험(Medicare for All), 학자금 대출 없는 대학교육처럼 잘 알려진 공약들조차도 그가 추구하는 가치를 제대로 보여주기에는 충분치 않다.

민주당 정치인들은 '민주적 사회주의'라는 용어를 손사래를 치며 거부한다. 공화당이 자유주의자들을 공격할 때 하도 자주 쓰는 말이기 때문이다.

샌더스는 다르다. 그리고 '민주적 사회주의자'이길 거부하지 않는 그의 성공은 민주당 주류를 겁먹게 한다. 민주당 주류는 '사회주의'라는 간판에 대해 걱정을 늘어놓는다. 올가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이기기 위해서는 부동표가 필요한데, 부동층 사이에서 '사회주의'는 여전히 거부감을 일으킬 수도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샌더스가 승리한 아이오와 코커스 바로 다음날 국정연설의 한 대목 전체를 사회주의 확산에 대한 경고에 할애했다. 마찬가지로 바이든은 뉴햄프셔 경선을 앞두고 막바지에 샌더스에게 붙은 "민주적 사회주의자"라는 꼬리표가 11월 대선에서 민주당원들을 좌절시킬 거라고 경고하는 데 힘을 쏟았다.

하지만 그 어떤 공격도 통하지 않았다. 샌더스의 급부상은 그의 지지자들 입장에서는 오히려 '사회주의'라는 색깔공세가 독침을 잃어버렸다는 증거였다.

샌더스를 공식 지지하는 '미국 민주적 사회주의자'(Democratic Socialists of America, DSA)를 이끄는 마리아 스바트는 "이 나라와 좌파의 역사를 돌아보면 우리의 생각이 인기를 얻고 수백만 노동자들의 지지를 받았던 시간들이 있었다"며 "그 시간이 다시 오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스바트는 "그동안 '빨갱이' 사회주의자라는 용어는 수십년 동안 대중들의 대안적 주장을 막는 데 활용돼 왔다"며 "버니의 승리는 우리의 생각이 옳다는 것을 입증하고 있고 자본주의에 맞서고자 하는 대중들, 특히 청년층의 의지를 보여준다"고 부연했다.

민주적 사회주의자라는 샌더스의 정체성은 트럼프와의 맞대결에서 득이 될까, 실이 될까? 아직 알 수 없다.

미국의 진보 싱크탱크 '데이터 포 프로그레스'(Date For Progress)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는 샌더스가 '사회주의자'로 규정됐지만 트럼프와의 1대 1 대결에서 밀리진 않았다.

그러나 지난달 NBC 뉴스와 월스트리트저널에 의해 발표된 여론조사에서는 '사회주의'는 여전히 별로 인기가 없었다. 불과 19퍼센트의 응답자만 사회주의를 긍정적으로 본다고 답했다. 53퍼센트는 부정적이었다. 자본주의에 대한 인상과는 정반대의 결과였다.

샌더스는 2016년과 2020년 선거운동 과정에서 '민주적 사회주의자'의 개념을 버리기보다 그것을 "완전히 미국적인" 전통의 일부로 자리매김하려 했다. 생전엔 반대파로부터 '빨갱이'라고 낙인찍혔던 프랭클린 D. 루즈벨트 전 대통령과 린든 B. 존슨 전 대통령, 마틴 루터 킹 목사와 같은 주류 자유주의자들의 후손으로 말이다.

샌더스는 지난해 6월 연설에서 "우리는 21세기에 세계 역사상 가장 부유한 나라에서 '경제적 권리'가 바로 '인권'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며 "그것이 바로 내가 말하는 민주적 사회주의의 의미"라고 역설했다.

보다 최근에 샌더스는 미국이 이미 "사회주의 사회"라고 꼬집었다. 국가의 부를 감세와 보조금 정책을 통해 기업들에게 재분배한다는 의미에서 말이다. 그는 폭스뉴스에서 "샌더스 사회주의와 트럼프 사회주의의 차이는 뭘까. 나는 노동자 가족들을 돕는 게 정부의 역할이라고 믿지만, 트럼프는 억만장자 편을 든다"고 말했다.

샌더스는 지난 11일 뉴햄프셔 경선 승리를 선언하면서 '민주적 사회주의'를 언급하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적 사회주의'라는 용어를 쓰는 게 여전히 정치적 부담이 되는 건 아닌지 우려하는 측근들보다도 샌더스가 이 용어를 편안하게 생각한다는 건 명백하다.

2016년 샌더스 캠프에서 파생된 진보조직 '아워 레볼루션'(Our Revolution) 회장 래리 코헨은 "샌더스는 자신을 원하는 대로 부를 수 있다. 하지만 지지자 대부분에게 우리는 민주적 사회주의자로 인식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코헨은 "우리는 그 용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별로 장점이 없기 때문"이라며 "DSA에 있는 내 친구들은 동의하지 않았겠지만 나는 그 용어가 별 도움이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다만 '샌더스가 자신이 민주적 사회주의자임을 부인해야 하나'라고 묻자 코헨은 "그건 진정성이 없어 보이지 않을까"라고 답했다.

공화당은 샌더스가 만약 민주당 대선후보가 된다면 샌더스의 '사회주의자' 간판을 맹공격할 거라고 이미 밝혔다. 공화당은 벌써부터 민주당 인사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뉴욕 하원의원으로서 샌더스 지원에 나선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즈를 민주적 사회주의자를 자처하는 다른 진보주의자들과 함께 싸잡아 비난했다.

트럼프는 색깔공세에서 한 발짝 더 나가고 있다. 트럼프는 샌더스를 아예 '반미국적'이라고 몰아붙이고 있다. 소련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식으로 말이다. "내 생각에 그는 공산주의자야." 트럼프가 슈퍼볼 사전 인터뷰에서 폭스뉴스의 숀 해니티에게 한 말이다. 트럼프는 "난 버니를 생각할 때마다 공산주의를 떠올린다. 당신은 사회주의자라고 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는 모스코바에서 결혼하지 않았나?"라고 날을 세웠다. (샌더스는 1988년 소련으로 신혼여행을 다녀오기는 했지만, 모스크바에서 결혼하지는 않았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9일 애리조나주 피닉스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 2020.2.19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9일 애리조나주 피닉스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 2020.2.19ⓒAP/뉴시스

트럼프를 비롯해 일부 공화당 인사들은 11월 선거에서 샌더스와 맞붙기를 기대하며 군침을 흘리고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샌더스의 부상은 사회주의라는 용어에 경기를 일으키는 보수주의자들에게는 경종을 울리고 있다. 이 보수주의자들 입장에서는 평생을 사회주의를 무너뜨리려고 노력해왔는데, 어느날 갑자기 사회주의가 샌더스와 함께 다시 전면에 떠오르고 있는 상황인 셈이다.

보수단체 '클럽 포 그로스'(Club for Growth) 회장인 데이비드 매킨토시는 "만약 버니가 후보가 된다면 쉽게 이길 수 있다는 착각은 금물"이라며 "백방으로 더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2016년 대선 때 많은 민주당 사람들은 트럼프가 공화당 경선에서 이기길 바랐다. 그들은 트럼프를 손쉬운 상대라고 봤던 셈이다. 하지만 본선에서 승리는 트럼프의 차지였다. 보수주의자들은 민주당이 트럼프에 대해 저질렀던 실수를 샌더스에 대해서는 반복하지 않을 거라고 매킨토시는 말했다.

매킨토시는 '사회주의'라는 용어가 유권자들에게 냉전의 절정 때만큼의 거부감을 일으키지는 못할 거라고 봤다. 그는 "사회주의가 나쁘다고 말하는 걸로 충분할까?"라고 반문하며 "우리는 미국 국민에게 사회주의가 왜 나쁜지, 우리가 왜 자유가 더 나은 대안이라고 생각하는지 제대로 설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우리는 더 잘할 필요가 있다"며 "버니는 보수진영에 있는 우리 모두에게 경고음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샌더스와 그의 지지자들은 누가 민주당 대선후보가 되더라고, 설사 그 후보가 중도주의자라 하더라도 보수진영이 그에게 '사회주의'라는 낙인찍기를 시도할 거라고 본다.

그러나 '아워 레볼루션'의 코헨같은 사람들에게는 2020년에 '사회주의'라는 용어의 진정한 의미를 되찾는 싸움은 별로 의미가 없다. 코헨은 "간판에 집착해 유권자들을 놓칠 여유는 없다"고 말했다.

코헨은 샌더스의 선거운동을 핵심인 '새로운 뉴딜'(new New Deal)과 함께 "민주적 대중운동"으로 대체해 부르는 걸 좋아한다. 코헨의 언급처럼 샌더스는 많은 이들이 보통 사회주의와 연관짓는 은행과 철도, 다른 주요 산업 국유화를 주장하지 않고 있다.

코헨의 말이 시사하듯 샌더스의 초반 승리의 의미는 '민주적 사회주의'(당신이 어떻게 정의하든 간에), 또는 '사회주의의 시대'가 미국에 도래했는지 아닌지에 대한 평가는 아니다.

오히려 훨씬 간단한 메시지이다. 그 메시지는 버몬트주의 상원의원의 아이디어가 비현실적이라고 주장하는 "민주당 내 반대파"들을 겨냥하고 있다. 코헨은 "민주당 내의 샌더스 반대파들은 사람들이 진정 원하는 걸 대변하고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코헨은 말한다.

"사람들은 실제로 고통받고 있다. 물론 그들은 죽음의 문턱에 서 있는 건 아니다. 그러나 그들은 더 나은 미국을 상상할 수 있다. '더 나은 미국'에 대한 비전이 지금 승리하고 있는 것이다."

기사출처:The Night Socialism Went Mainstream

최명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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