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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판타지가 아닌 가부장적 현실을 그대로 담아낸 진짜 가족 영화 ‘이장’
영화 ‘이장
영화 ‘이장ⓒ스틸컷

가족들 간에 갈등이 일어나지만, 결국 사랑으로 갈등을 극복하고 가족의 행복을 되찾는다. 어려운 환경이지만, 가족의 사랑으로 어려움을 이겨낸다. 언제나 무뚝뚝했던 아버지가 그 누구보다 가족들을 아끼고, 사랑했음을 온 가족이 뒤늦게 된다. 가족을 위해 언제나 헌신하는 어머니의 지혜와 사랑으로 가족이 위기를 극복한다. 우리가 흔히 보는 가족 드라마 또는 가족 영화들이 보여주는 공식들이다. 하지만 현실은 꼭 그렇지만은 않다. 현실 속 가족이라고 사랑이 없는 것도 아니고, 가족 간에 우애와 사랑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 속엔 뿌리 깊은 차별과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 질서가 함께 녹아있다. 때론 이런 차별이 전통과 문화라는 이름을 달고 우리들의 삶을 지배하고 있다. 이런 현실을 빼버린 채 이야기하는 가족은 ‘판타지’일 수밖에 없다.

그동안의 가족 영화 가운데 상당수가 이렇게 가족의 현실적 차별과 모순을 외면한 ‘판타지 가족 영화’였던 반면에 3월 5일 개봉하는 정승오 감독의 장편 데뷔작인 영화 ‘이장’은 어쩌면 가족의 적나라한 현실을 유머러스하게 풀어낸 ‘진짜 가족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아버지의 묘 이장과 이장에 따른 보상금 때문에 다섯 남매가 모인다. 그런데, 딸 4명은 함께했지만, 막내인 아들은 행방을 알 수 없다. 고향 큰아버지는 장남 없이는 묘를 열지 못하겠다고 역정을 낸다. 막내 승락(곽민규)을 찾기 첫째 혜영(장리우), 둘째 금옥(이선희), 셋째 금희(공민정), 넷째 혜연(윤금선아)이 나선다.


이들 5남매에겐 나름의 고민이 있다. 그 고민은 모두 가부장제에서 비롯된 개인적이면서도 사회적인 고민들이다. 싱글맘으로 아들을 키우고 있는 금옥은 학교에서 문제를 일으키는 어린 아들 때문에 육아휴직을 받지만, 회사에선 육아휴직 후 복직이 아닌 퇴직을 종용한다. 평범한 주부인 금옥은 남편 때문에 고민이 커가고, 결혼을 앞둔 금희는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힘들어하고 있다. 10년째 대학생활을 하는 페미니스트 혜연은 가부장적 세상과 매번 불화를 겪는다. 집안 막내이자, 유일한 남자인 승락은 자신이 책임져야 할 문제를 만나자 두려움에 숨어버린다.

영화 ‘이장
영화 ‘이장ⓒ스틸컷

영화는 이렇게 5남매를 통해 가부장제가 가족 사이에 심어준 차별과 모순을 잘 보여준다. 그것은 가족의 문제를 넘어 육아휴직 때문에 직장을 그만뒤야 하는 사회적 차원의 문제로까지 확대되고 있다. 가부장제에 의한 차별은 ‘82년생 김지영’만의 문제가 아니라 세대와 지역을 넘어 우리 모두의 문제다. 남성들에게 과도한 책임감을 요구하며 부담과 짐을 지우는 가부장제는 결코 남성들에게도 좋은 제도가 아니다.

하지만 남성들은 너무 쉽게 가부장제가 주는 편의 속에 숨어버리곤 한다. 영화 속에서 결혼을 앞둔 금희가 필요 경비를 꼼꼼히 계산해 남자친구에게 보내자 남자친구는 금희에게 생활비를 너무 많게 계산했다며 치약 칫솔 등 생활용품은 내가 부모님 집에서 자주 가져오면 된다고 말한다. 가부장제는 이렇게 남성들에게 부모라는 ‘식민지’를 합법적으로 지배하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부모라는 식민지는 남성들에게 때론 무한한 착취 경제를 제공한다.

이런 가부장적 현실은 무엇이 전통이고, 가족에게 꼭 필요한 것인지 다시 생각하게 한다. 영화 ‘이장’은 정승오 감독이 어릴 적 제사를 지내면서 고모와 누나는 절을 하지 않는 것을 보고, 누군가를 기억하고 추모하는 의식인 제사에서 가족 내에 차별받는 존재가 있다는 것, 가족 내의 차별을 둘러싸고 있는 철옹성 같은 외피의 정체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에서부터 시작된 작품이다.

영화 ‘이장
영화 ‘이장ⓒ스틸컷


정 감독은 “한 가족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으면 그 가족이 몸 담고 있는 사회의 구멍을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대부분의 사회적 문제는 가장 사적인 관계인 가족 내에서의 문제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가족 내의 차별은, 나아가 사회적 차별에까지 도달하게 된다. 그래서 한 가족을 면밀하게 살펴보면 구성원이 가진 고민은 상당히 보편적이고, 그 고민은 뿌리 깊게 남아있는 차별을 근간으로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이장’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통해, 가족 내에서 차별과 억압을 받았던 이들이 가족을 벗어나 독립을 하고 난 뒤에도 그것들이 확장되어 관성적인 고민을 안고 살아가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각각의 인물들이 처한 상황과 감정은 저마다 온도의 차이가 있지만, 그것에 대해 결국에는 서로가 공감하고 토닥이면서 차별의 근본적인 뿌리인 가부장제와 이별하는 과정을 표현하고자 했다”고 밝혔다.

이런 신선한 영화적 시도를 인정받아 영화 ‘이장’은 ’제20회 전주국제영화제 한국경쟁부문에 초청되어 CGV아트하우스 창작지원상을 수상했고, 제35회 바르샤바국제영화제에서 한국 작품 최초로 신인감독경쟁 대상 & 아시아영화진흥기구가 수여하는 넷팩상을 동시에 수상했다. 또한 ‘이장’은 ‘기생충’과 함께 북미 최대의 아시아 영화 전문 매체인 AMP(Asian Movie Pulse)에서 올해의 아시아 영화 TOP 25에 선정되는 등 해외에서도 꾸준히 사랑을 받고 있다.

권종술 기자

문화와 종교 분야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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