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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민보] “북한사람이요? 해방된 한반도 사람입니다”-리윤령 조선학교 졸업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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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으로 살면서 한국인임을 의심해본 경험이 있을까?

우리는 한국땅에서 태어나, 학교에서 당연하게도 한글을 배우고, 한국어로 대화하며 자연스럽게 한국인임을 인지하고 살아간다. 이런 일상 사이에 한반도 민족이라는 정체성을 의심하는 일은 드물다.

그러나 하루하루 스스로의 정체성을 시험받는 학생들이 있다. 바로 '조선학교' 학생들이다.

조선학교 학생들은 일본 극우 세력들의 혐오를 받으며 등교하는 일조차 정체성을 지키는 싸움이다.

조선학교에서 초·중·고교를 졸업하고 일본 대학교에 진학해 재일동포로서 정체성을 지키며 살아가는 리윤령(20) 졸업생에게 조선학교와 재일동포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지난 17일 '조선학교 지키지 한일 공동 심포지엄'에 참석한 리윤령 학생
지난 17일 '조선학교 지키지 한일 공동 심포지엄'에 참석한 리윤령 학생ⓒ민중의소리

"제 이름을 처음으로 정확하게 불러준 곳이었죠"

조선학교는 재일동포 자녀들을 대상으로 우리말과 한반도의 역사를 가르치는 교육기관으로, 일본에서 한반도 민족으로 살고 있는 재일동포 사회의 중심역할을 한다.

리윤령 졸업생도 '도쿄조선 제3초등학교'와 '도쿄조선중고급학교'를 다니면서 자신이 한반도 민족이라는 정체성을 가졌다.

그가 조선학교에 진학하게 된 것은 조선학교를 나온 부모님 덕분에 당연한 일이었다.

일본 유치원을 다니던 리윤령 졸업생에겐 조선학교에 가는 일은 신나는 일이었다. 먼저 조선학교를 다니던 두 언니와 부모님이 우리말로 하던 대화에 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언니 두 명이 먼저 조선학교에 다녔는데 가족들이 우리말로 이야기할 때 아직 저는 우리말을 몰라서 같이 이야기 하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죠. 그래서 우리학교에서 우리말을 배웠을 때 기뻤어요."

조선학교는 일본사회에서 유일하게 리윤령이란 이름을 정확하게 불러 준 곳이기도 했다.

"일본 유치원을 다녔는데 일본 동무한테 내 이름은 발음하기 어렵다고 들었을 때 슬프기도 했고 병원 같은 데서도 제 이름을 틀리게 발음했는데 우리학교에서는 정확히 불러줘서 기쁘기도 했죠."

조선학교에서의 생활은 일본에서 태어나 일본사회 속에서 자란 리윤령 졸업생에게 한반도 민족으로서 생활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일본에서 일본사람으로 태어났다면 자연스럽게 자기가 일본인이란 걸 알고, 한국에서 태어났다면 한국사람이라고 자연스럽게 알겠지만, 저는 재일동포로 일본에 태어나서 조선사람으로서 정체성을 우리학교에서 친구와 선생님들과 함께 느낄 수 있어서 좋았어요."

조선학교(자료사진)
조선학교(자료사진)ⓒ뉴시스

조선학교에서 자기 민족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교육을 받는 것 뿐이지만 일본 우익 세력에겐 혐오의 대상이다. 리윤령 졸업생도 고등학생 시절 말로만 듣던 일본 우익들의 '헤이트 스피치'를 처음 경험했다.

"학교 문화제 행사일 때 학교 근처에 낯선 아저씨들이 죽으라든지 나가라든지 글씨가 적힌 피켓을 들고 있었어요. 학교에서도 걱정해서 선생님들이 가려줘서 잘은 보지 못했어요. 보고 싶지 않았구요. 가끔 이상한 사람이 학교에 들어오고 여기는 '스파이학교'라는 쪽지를 구두함에 넣거나 교실에 들어오기도 했어요."

협박과 혐오에 시달리는 조선학교이지만 일본 지역사회에서 학교로서 역할을 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태풍 '하기비스'가 일본에 상륙했을 당시 조선학교 '도쿄 제4초중급학교'가 태풍 피난처로 학교를 개방한 것이다. 당시 일본 네티즌들은 SNS에서 조선학교에 감사를 전하기도 했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조선학교를 고교무상화 지원 대상에서 제외하는 등 차별과 탄압을 계속하고 있다. 일본 곳곳에서 조선학교와 학생들이 제기한 '조선학교 무상화 재판'에서는 대부분 패소 판결이 나왔다.

"패소 결정이 나왔을 때 역시 그렇구나 싶었는데, 어머니가 집에서 울고 계셔서 당사자인 제가 그냥 무덤덤해서는 안 되겠다는 걸 느꼈어요. 무엇을 할 수는 없겠지만 마음에서 지면 안된다고 할까, 승리를 포기해선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죠."

일본 정부는 고교무상화 배제에 이어 지난해 10월부터 시작된 유치원 무상화에서도 조선학교를 대상에서 제외했다.

"일본 사회에서 존재 자체가 부정당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희들도 일본에 살고 있으니까 세금도 내는데도 그게 환원되지 않고, 돌아오는 것은 혐오밖에 없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죠."

조선학교 법인이 고교 수업료 무상화의 의무적 적용을 요구하는 소송에서 패소한 소식을 들은 학생들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조선학교 법인이 고교 수업료 무상화의 의무적 적용을 요구하는 소송에서 패소한 소식을 들은 학생들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김지운 영상프러덕션 이스크라21 대표

"남북은 물론 일본과도 이을 수 있는 존재가 되고 싶어요"

조선학교 학생들은 학생일 때보다 정작 졸업하고 일본 사회에 나서는 순간이 더 두렵다고 리윤령 졸업생은 말했다. 조선학교에서의 생활은 학교라는 공간 속에서 선생님과 학부모의 보호를 받았지만, 졸업 후 일본 사회에서 홀로 재일동포로 살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학생 때는 학교에서 보내는 생활이 전부였으니까 일본 사회로 인식하는 순간이 없었어요. 졸업한 후에 일본 사회에서 일본인처럼 취업할 수 있을까 무서워졌죠. 친구들도 재일동포인 걸 숨기고 일본인처럼 사는 게 편하지 않을까 생각하기도 했어요."

조선학교를 졸업하고 세이센여자대학 문학부 지구시민학과에 진학해 일본 대학에 진학한 리윤령 졸업생도 마찬가지였다. 일본인 친구들과 잘 지낼 수 있을지, 혹시나 차별받거나 이상한 눈빛으로 보이는 건 아닌지 두려움이 앞섰다. 차라리 국적대로 '한국인'이라고 하면 인상이 좋을까 싶어 '한국인'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친구들과 처음 이야기할 때 재발 나의 존재에 관심을 가지지 말아주라 생각하기도 했어요. 이상한 눈빛으로 보이기보다는 무시가 좋다고 생각했어요. 일본에서 '방탄소년단'도 인기가 있고 한국인이라고 말하면 인상이 좋을 거라 생각해서 재일동포라고 하지 않고 그냥 한국인이라고 말할 때도 있었죠."

리윤령 졸업생이 마주친 일본의 젊은 세대들은 생각보다 재일동포에 대해 모르는 경우가 많았다. 현실에서는 재일동포에 대한 무관심이나 무지에서 비롯된 '왜 일본에서 일본인으로 살지 않아?'라는 악의 없는 질문이 상처로 돌아왔다.

그중에서도 재일동포인 자신의 처지에 관심을 가져주는 일본인 친구덕에 재일동포라고 고백할 자신이 생겼다.

"실제 친구들하고 이야기하니까 (재일동포를) 모르는 사람이 대다수였어요. 아이들에게 조선학교 다녔다고 이야기하니까 그중에서도 한 명이 관심을 가지고 우리학교를 저 몰래 가보기도 했더라구요. 같이 힘내자고, 너는 무엇도 나쁘지 않고, 재일동포라고 해도 괜찮다고 해줬어요. 그동무 덕분으로 잘 말하면 잘 이해할 수 있겠다고 생각이 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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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동포에 무관심하거나 혐오하는 일본인도 리윤령 졸업생에게 상처였지만, 같은 한반도 민족으로 환영받을 줄 알았던 한국인에게 느꼈던 남북으로 갈라보는 시선도 상처였다.

"지난해 제주도에 열린 '동북아시아평화학습'이라는 행사에 참석했을 때 한 한국여성과 같은 방으로 지냈는데 그분도 조선학교가 일본에 있는 '북한학교'라고 인식하고 있었어요. 같은 민족이니까 환영이랄까 좋은 인상을 가졌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죠. 제주도에서 만난 한 아저씨는 재일동포는 반쪽이라는 한국인이라고 나쁘게 생각하고 있더라구요."

재일동포의 국적은 두가지다. 하나는 '한국'이고, 또 다른 하나는 '조선'이다. 조선 국적을 북한으로 인식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1945년 후 일본에 남아있던 조선 민중들에게는 식민지 전의 국적인 '조선'이 부여됐다. 이후 1964년 한일 간 '한일기본조약'으로 국교가 이뤄진 후 '한국' 국적이 인정됐지만. 반대로 북측은 일본에서 국가로 인정하지 않아 '북한' 국적은 인정되지 않는다. 아직까지 재일동포에게 남아있는 '조선' 국적은 남북으로 갈라지기 전 한반도 민족의 국적인 것이다.

리윤령 졸업생은 같은 민족에게도 이 같은 재일동포의 처지를 말하지 못한 것이 후회로 남았다.

"그때는 말을 못했어요. 재일동포는 그런 게 아니라 하나의 국가였을 때 기인하는 건데 같은 민족에게서 이해를 받고 싶었지만 말 못한 채로 헤어졌어요. 일본에 돌아와서 곰곰히 생각하니까 그냥 넘어가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일본 동무한텐 한국인이라고 했지만 저는 한국사람도, 북한사람도 아니에요. 영어로는 코리안이라고 하나로 불리지만 재일동포라는 민족의 이름으로 생활하고 있다고 전해야 했다는 생각이 들었죠."

이를 계기로 그는 가까운 일본인 친구부터 재일동포로서의 자신의 정체성을 확실히 밝히기로 마음먹었다.

리윤령 졸업생은 재일동포에 대한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되기 위해선 남북이 통일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분단 전 처지에 머물러 있는 재일동포가 인정받기 위해선 민족이 가진 분단의 상처를 치유해야 한다는 것이다.

"저는 본적지가 경상도이에요. 그렇지만 저에게 조국은 남북이 아니라 하나로 통일된 곳이죠. 저보고 남북 어느 쪽이냐고 묻는 것도 분단됐기 때문이니까요. 통일되면 재일동포에 대한 무관심이나 혐오도 없어질 거라고 생각해요. 통일되면 남북으로 나누어진 재일동포 사회도 통일되고 아시아평화도 온다고 생각하니까 통일이 얼른 됐으면 하는 마음이에요."

지난 17일에 열린 '조선학교 지키지 한일 공동 심포지엄'<br
지난 17일에 열린 '조선학교 지키지 한일 공동 심포지엄'ⓒ민중의소리

"하루하루 일본에서 살아온 조선민족이 걸어온 역사를 지키고 있죠"

재일동포에 대한 차별을 극복하기 위해 힘이 되고 싶다는 리윤령 대학생에게 꿈을 물어봤다. 재일동포는 남북, 일본에도 속하지 않지만, 그래서 모두를 이어 주고 싶다는 의젓한 대답이 돌아왔다.

"남도 북도, 일본도 잇고 싶어요. 저는 한국 국적이지만 한국인도 되지 못하는 애매한 위치에 있지만, 그러니까 어느 쪽도 이야기할 수 있고 대화할 수 기회있다고 생각해요. 재일동포가 남북도 잇고, 재일동포와 일본끼리도 이어주는 다리같은 존재가 됐으면 좋겠어요. 그러기 위해선 무엇을 할지는 아직 생각이 안나지만, 제가 조금이라도 많은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재일동포라는 존재를 세상에 알리고 싶어요."

자신이 혐오나 무관심의 대상이 되는 세상에서 민족으로서의 정체성을 지키면서 살아가는 하루하루는 20대 초반 청년에게는 가혹한 삶이다. 그러나 리윤령 졸업생은 자신의 하루가 재일동포의 역사를 지키는 일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일본에 사니까 일본인으로 사는 게 당연히 편리하겠죠. 일본에서 일본인으로, 한국에서 한국인으로, 북한에서 북한사람으로 사는 건 쉬워요. 그러나 일본인으로 살거나 한국인이라고만 하는 건 재일동포인 자신에게서 도망치는 것 같아요. 그렇게 도망치게 만드는 사회가 나쁜 거지만, 재일동포가 줄어들고 있고 우리는 아는 사람도 줄고 있는데 결국 우리가 일본에서 이렇게 살았다는 역사가 없어질까 걱정돼요.

힘들지만 자신의 정체성을 지키는 삶이 더 행복하다고도 말했다.

"내가 사는 삶이지만 나만의 삶이 아니고 조선민족이 걷는 역사를 지키고 있다고 생각해요. 이렇게 사는 건 어렵지만 자신이 누구인지 알고 그걸 지키는 게 더 행복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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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윤령 졸업생은 지금도 조선학교에 다니고 있는 후배들에게 재일동포들의 마음으로 유지되고 있는 학교에서의 생활을 귀하게 여겼으면 좋겠다고 말햇다.

"조선학교를 졸업하면서 한가지 후회가 드는 건 학교를 다니는 동안 부모님과 선생님께 감사를 전하지 못했다는 거예요. 정작 학교를 다닐 때는 잘 모르고 당연하게 느껴지겠지만 하루하루가 귀하고 소중하다고 말해주고 싶어요. 조선학교에서 만난 친구들과 사람들을 소중하게 여기고 재일동포로서 자랑과 긍지를 가졌으면 좋겠어요."

김백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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