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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화의 새벽편지] 대한민국 김씨는 어떻게 죽었는가

편집자주) 우리 사회의 주축은 여전히 새벽밥 먹고 일 나가는 평범한 노동자들입니다. 민중의소리는 이 분들의 땀과 애환, 기쁨과 행복을 잊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래서 2020년 새로 철근공 시인 김해화 씨의 시를 연재하기로 했습니다. 매달 독자 여러분 곁으로 노동의 향기, 삶의 무게, 사회적 시선을 담은 시가 배달됩니다.

가림막 너머로 보이는 순천의 한 건설현장 풍경
가림막 너머로 보이는 순천의 한 건설현장 풍경ⓒ사진 = 김해화

대한민국 김 씨는 어떻게 죽었는가

12월 한 달 엿새 일했다
해가 바뀌었지만 일할 곳 없다
3일부터 인력사무실 나갔는데 20일 까지 공쳤다
통장에서 원룸 월세 빠져나가고 통장 가벼워졌다
통장에서 돈 좀 찾아 쌀 5키로 사고 라면 산다
일 어찌될지 모르니 다음달 월세 휴대폰 요금은 남겨둬야 한다
실업급여 신청하러 갔다가 일수 안 차서 퇴짜 맞았다

한 대가리도 못 하고 1월이 갔다
여기저기 전화하고 전화번호 남겼지만 전화 한 통 안 온다
창문으로 보이는 아파트 현장 타워크레인은 잘 돌아가기만 한다

떡국 한 그릇 못 묵고 설이 지났다
가도가도 소용없는 인력사무소에 나가지 않는다
방에 틀어 박혀 텔레비 보다가 밥 묵고 자다 깨다 한다
반찬이 없다
냉장고가 텅 비었다
아침에 라면 끓여 건데기만 묵고 국물 남겨 점심때 밥 말아 묵는다

아들에게 전화해서 돈 조금만 부쳐달라고 할까
아부지가 자식들한티 해준 게 뭐 있소
5년전 술 취해 퍼붓던 말 떠올라 아들 전화번호를 지운다
집 일가친척 전화번호도 죄다 지운다
이놈아 그래도 내 평생 노가다해서 느그들 미개 살렸다

라면이 떨어졌다
통장에 남은 돈은 건드리면 안된다
여기저기 주머니를 뒤져 나온 돈으로 라면이나 살까 수퍼에 간다
라면을 살까 소주를 살까 망설이다가 소주 3병을 산다
삼양라면 1봉 값이 남았다 삼양라면 1봉을 산다

밥통에 밥이 남았지 라면을 끓일까 귀찮다
생라면에 스프를 뿌려 안주로 먹는다
소주를 빈 밥그릇에 따라 마신다 빈속이 싸아하다
언제 밥을 묵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한 병 두 병 세 병을 마신다

방바닥이 뜨겁다 보일러를 끈다
전화기를 꺼내 박씨에게 전화를 하려다가 그만 둔다
전화기를 만지다가 주소록을 모두 지운다 헤에 웃는다
술 취한다 자고 싶다 이불 위에 벌렁 드러눕는다

봄이 왔다
온 세상이 꽃잔치를 벌이는 날
죽은지 한 달 되어 발견된 김씨가 아침 뉴스에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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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의 말

순천에도 광양에도 몇 군데 새로 타워크레인이 설치되더니 아파트들이 들어설 것이라고 합니다. 예전에는 그런 아파트 현장이 한 군데만 들어와도 지역 공사장 노동자들 상당수가 일거리를 얻을 수 있었지만 새로 시작되는 아파트 현장 어느 곳에서도 일거리를 얻었다는 동료들 소식은 들리지 않습니다.

알고 있습니다. 그렇게 타워크레인을 설치하고 새로 아파트를 짓는 공사장이 아무리 들어와도 아파트를 짓는 자본가들이나 지방자치의 정치인들은 지역 노동자들에게는 아무 관심도 없다는 것을요. 높고 튼튼한 벽을 설치하고 그 공사장 안에서는 베트남이나 중국, 러시아연방, 동남아시아의 싸고 젊은 노동자들이 일확천금을 꿈꾸며 일을 하고 있을 것입니다. 지금 내가 운 좋게 일거리를 얻어 일하고 있는 아파트 공사장에도 한국인보다 외국인들이 훨씬 많아서 한국어가 낯선 언어가 된지 오래되었습니다.

공사장 노동자들이 마지막으로 흘러들어가는 곳이 로타리라고 부르는 인력시장입니다. 하지만 이미 그곳에도 나이 들어버린 한국 노동자들에게 돌아오는 일거리는 거의 없습니다.

“어이, 일 좀 헐디 없는가?”

가끔씩 드문드문 전화를 하던 동료들의 전화가 끊긴지 오래 되었습니다. 한 달에 절반도 일을 못하고 있는 현장 상황이 소문으로 다 알려졌으니 전화를 못하겠지요.

순천 역전에는 원룸이나 모텔, 여관, 여인숙 같은 숙박업소들이 많습니다. 그곳에는 공사장에서 일을 하면서 달방을 얻어 혼자 생활하는 노동자들이 제법 많이 삽니다. 우리들은 그이들을 역전파라고 부릅니다.

일자리에 대한 정보를 주고받으며 이 추운 시절을 견디고 있는 사람들, 어느 도시 한 귀퉁이에서 죽은 지 한참 지나 발견되었다는 쓸쓸한 죽음에 대한 소식이 들려오면 나는 그곳에서 생활하고 있는 그이들을 떠올리고는 합니다.

“아이, 마 씨 형님은 어찌게 지내시냐?”

아는 동생에게 전화를 해 마 씨거나 김 씨 또는 최 씨 같은 나이 든 노동자들의 안부를 묻고는 합니다. 일거리를 찾지 못한 늙은 노동자들에게는 그런 비극이 언제든지 찾아올 수 있으니까요.

너무 따뜻했던 겨울이 이대로 가버리는가 했더니 눈이 내리고 잠시 추웠습니다. 일찍 핀 꽃들을 시샘하는 꽃샘추위라고도 하지만 이번에 내린 눈은 겨울과 봄을 확실하게 나누는 경계가 아닌가 싶습니다.

지금까지는 겨울이었지만 이제부터는 봄인 것이지요. 봄날의 따스함이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골고루 나뉘는 세상을 꿈꾸며, 다시는 쓸쓸하게 죽음을 맞이한 이들의 안타까운 소식이 들려오지 않기를 빌어봅니다.

김해화 시인·공사장 철근노동자

공사장 철근노동자, 시인, 민족작가연합에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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