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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노동이야기] 인권이 곧 방역

편집자 주) 많은 이들이 하루의 긴 시간을 ‘노동’을 하며 보냅니다. 버스를 타거나 음식을 먹고 물건을 사는 등, 우리가 보내는 일상의 많은 순간엔 어떤 ‘노동’이 녹아들어 있습니다. 민중의소리는 이런 ‘노동’이 건강하게 이루어질 수 있다면, 우리의 일상과 삶도 조금 더 건강해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건강한 노동’이란 어떤 것일까요? ‘건강한 노동’을 위해 우리 사회는 어떻게 변화해야 할까요? 이 점을 함께 생각해보기 위해, 앞으로 매주 1회 ‘건강한 노동’에 관한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소속 의사, 노무사 등 전문가들의 글을 연재합니다.

‘인권이 곧 방역’이라는 말이 있다. 오랫동안 HIV의 세계적 확산을 저지하기 위해 노력해온 전문가와 활동가들은 HIV(인간면역결핍 바이러스)가 전세계적으로 확산된 데, 바이러스 자체의 감염력보다 이 바이러스와 질병을 둘러싼 공포와 차별이 더 큰 원인이 되었다고 본다. 차별과 낙인의 두려움 없이 자신의 감염 여부를 안전하게 검사할 수 있는 상황, 질병과 관련한 충분한 정보가 공동체에 전달되는 상황, 필요한 경우 감염인이 자신의 감염을 밝히고 적절한 전염 예방 조치를 할 수 있는 상황이어야만 질병과 바이러스의 확산을 막을 수 있다.

같은 바이러스라도 어떤 사회적, 역사적 맥락에 놓이느냐에 따라 감염력과 치명률이 달라질 수 있다. 대한감염학회 등 관련 학회들은 22일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 지역사회 확산 피해 최소화를 위한 권고안’에서 ‘노동자들의 경우 호흡기 증상이 의심되면 진단서를 내지 않고 쉴 수 있도록 보장하라’고 권고했다.

진단서를 받기 위해 유증상자가 병원을 찾거나, 아파도 참고 일하러 나가면 동료를 포함한 지역사회에 전파 위험이 높아진다. 평소 감기나 독감 등으로 몸이 불편해도 마스크 하나 끼고 일하러 다니는 것이 일상인 한국 사회 노동 문화에서 바이러스가 더 큰 전파력을 가지게 된다는 점을 새삼스럽게 느끼게 된다. 노동자가 자신의 몸 상태에 대해 스스로 판단하고, 쉴 수 있는 권리는 우리 모두의 건강에 중요하다.

방진복과 마스크 착용한 노동자들(자료사진).
방진복과 마스크 착용한 노동자들(자료사진).ⓒ김슬찬 인턴기자

감염인이나 감염이 의심되는 사람에게만 권리 보장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WHO(세계보건기구)는 ‘코로나19 유행과 의료인의 책임과 역할, 권리’라는 제목으로, 일선에서 치료에 나서고 있는 의료노동자들에게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여기에는 아무리 위기 상황이지만 의료진의 노동시간이 과도하지 않도록 쉬는 시간을 확보하고, 필요한 경우 정신과적 상담을 제공하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중국에서는 코로나19 치료 중 감염과 과로로 사망한 의료진 소식이 계속 들려온다. 2015년 MERS(중동호흡기증후군, 메르스) 유행이 지나고, 환자 간호에 참여한 간호사를 조사했더니 10명 중 2명이 외상후스트레스 장애군에 해당하는 것으로 나타난 연구가 있었다. 의료노동자의 노동권을 보장하는 것은, 치료의 질을 유지하는 데에도 중요하다.

의사, 간호사 등 의료진 뿐 아니라 병원 내 근무하는 모든 노동자가 감염과 관련하여 중요하다. 이 점은 이번에도 확인됐는데, 서울 한 병원의 젊은 이송요원이 확진 판정을 받자 병원이 폐쇄됐다. 그러므로 병원에서 일하는 모든 노동자는 감염과 관련해 충분한 교육을 받을 수 있어야 하고, 이와 관련한 정책 결정 과정에 참여하는 등 기본적인 권리가 보장돼야 한다.

지난 18일 선별진료소가 설치된 경북대병원에 코로나19 환자가 들것에 실려 들어가고 있다.2020.02.18
지난 18일 선별진료소가 설치된 경북대병원에 코로나19 환자가 들것에 실려 들어가고 있다.2020.02.18ⓒ뉴스1

동시에 방역과 소독, 청소를 담당하고 있는 노동자들은 소독과 청소용 화학물질 때문에 위험해지는 상황이 없도록 보호되어야 한다. 소독제에는 보통 다양한 화학물질이 포함되어 있고, 농도나 사용 방법에 따라 건강에 해를 미치기도 한다. 방역에 특별한 관심이 쏠리는 시기에, 오히려 방역에 나선 노동자들이 건강상 해를 입지 않도록 보호돼야 한다.

직종과 업종마다 일과 관련한 감염 위험이 다르다. 대면 접촉이 적은 사무직 노동자는 위험이 낮고, 유증상자를 만날 수 있는 의료노동자들은 위험이 높다. 불특정 다수의 일반 인구를 만나야 하는 서비스직은 중등도의 위험이 있는 직종이다. 이런 직종 노동자들에게는 손을 잘 씻고, 마스크를 하라는 일반적인 수칙 이외의 보호 방안이 제공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택배 노동자들은 특정 기간 동안 대면 전달을 하지 않을 수 있어야 하고, 이 경우 발생할 수 있는 고객과의 마찰은 회사가 책임져야 한다.

코로나19가 유행하면서 이런 재난 상황에서 특수고용노동자들의 노동안전보건 책임은 고스란히 사각지대에 남겨진다는 것이 분명히 드러났다. 회사의 정책에 따라 대면 업무를 줄여도, 경제적 손실 책임은 모두 노동자 개인이 져야 한다.

프랜차이즈 매장도 마찬가지다. 메뉴나 인테리어, 운영 시간까지 어느 것 하나 자유롭게 운영할 수 없는 프랜차이즈 매장에서 발생하는 손실은 고스란히 대리점 ‘사장님들’에게 돌아간다. 아프면 바로 쉴 수 있는 권리가 경제적 손실로 직결되는 상황에서 권리는 그림의 떡이다.

기업에는 더 많은 책임이, 다양한 일하는 사람에게는 더 많은 보장이 있어야 한다. 서로의 권리를 보장하면서 이 상황을 함께 헤쳐 나갈 때, 우리는 각자 살아남아야 하는 암울한 시대의 생존자가 아니라, 이 상황을 함께 겪고 있는 공동체에 속한 동료 시민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최민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활동가·직업환경의학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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