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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나의 한 사람 이야기] 넓고 긴 개천이 있는 마을

수도권의 어느 도시에 있는 그 마을에는 넓고 긴 개천이 있었다. 개천은 어느 호수에서 시작해 세 개의 도시를 가로질러 바다에 이른다. 비행기 오르는 소리가 요란한 곳이라 들었는데 내가 갔을 때는 평화로웠다. 도심에서 불과 15분 거리였다. 역과 마트, 백화점을 지나 고불고불한 2차선 도로로 들어섰는데 주변이 온통 들과 밭이었다. 버스 정류장이 드문드문 있었고 밭에는 내가 아는 작물들이 자라고 있었다. 옥수수, 토마토, 가지, 고추 같은, 한집안 식구들 먹을만한 것들이 고르게 퍼져 있었다. 포장도로를 따라 반듯하게 정리된 공원도 있고 정자도 있고 운동 시설도 있는데 사람이 없었다. 마을 안쪽으로 들어가니 고속도로를 두 시간 넘게 달려야 있을 법한 마을이 나타났다. 주변에 군 비행장이 있어 개발할 수 없고 증축도 안 되고 새로 이사 들어올 사람도 없는 마을이었다. 마을은 사람들과 고스란히 늙어가고 있었다. 노인정에 모인 사람들은 열다섯 명 정도. 가장 젊은 사람이 60대 남자였고 모두 고령의 여성 노인들이었다. 정부는 이 마을이 겪는 고충을 헤아린 것처럼 ‘도시재생’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아무리 봐도 도시는 아니었지만, 도시에 속한 행정구역이긴 했다.

이들이 마을에서 살아온 이야기를 집단인터뷰를 통해 듣고 정리하는 게 내 일이었다. 일단 이름과 나이, 마을에 언제부터 살았는지 물었다. 최고령자는 아흔이 넘었고 일흔두 살이 막내였다. 막내가 된 노인은 커피를 타서 ‘언니’들에게 나눠주었다. 언니들은 막내가 타는 믹스커피를 맛있게 마셨다. 두어 명을 제외하고 모두 스물한 살, 스물두 살, 스물세 살에 마을에 들어왔다고 했다. 그들이 말하는 나이를 메모하면서 “다 시집오신 거군요?”라고 물었더니 그렇다며 깔깔대며 손뼉을 쳤다. 앞집에 시집오고 뒷집에 시집오고 옆집에 시집온 사람들이었다. 아주 멀리서 온 사람은 드물었다. 농사짓고 시부모 모시며 아이들 키우며 늙어갔다. 아이들은 모두 자라 교통이 편리한 도시로 나갔고 그 도시와 불과 15분 정도 떨어진 거리에 사는 이 노인들은 하루에 두 번 다니는 버스를 타고 병원을 가거나 미장원에 다녔다.

노인들에게 마을에서 어떤 작물을 키우고 예전엔 어떻게 농사를 지었는지 생활문화에 대한 질문을 이어나갔다. 시내 나가고 장 보러 가는 게 여의치 않으니 자급자족처럼 농사를 짓게 되었고 예전엔 벼농사도 많이 했는데 영 힘들어 그만두었다고들 했다. 농협에서 개량품종을 권해서 품종을 모두 바꿨고 예전에는 집집마다 종자를 가지고 있었지만, 농협에서 더 좋은 종자를 권해줘서 모두 없앴다고 했다. 몇 해 전에 토종 씨앗을 구하는 사람들이 마을에 왔던 이야기도 했고 방아 찧던 얘기도 했다. 마을 어귀에는 상여집이 있어서 마을에서 공동으로 쓰는 상여를 보관했고 젊을 때는 거기 지나기가 무서워 달음박질을 쳤다는 얘기도 했다.

시골이지만 도시에 속한 마을
칠순부터 아흔까지 언니들을 만났다
백발의 한 노인이 개천에서 죽은 둘째 이야기를 했다

마을에는 넓고 긴 개천이 도시와 경계를 짓고 있었다. 나는 저 긴 개천에서 물고기도 잡았느냐고 물었고 노인들은 옛날엔 가재도 있고 참게도 있었지만, 씨알이 작아 건져다가 찌개나 끓여 먹고 가끔 민물고기도 잡아먹었다고 했다.

화려한 귀걸이와 목걸이를 주렁주렁 걸고 있던 백발의 한 노인이 개천 이야기가 나오자 만면에 미소를 띠며 말했다.

“우리 애가 거기서 빠져 죽었잖아.”

개천(자료사진)
개천(자료사진)ⓒpixabay

그는 웃고 있었다. 아이가 물에 빠져죽었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웃고 있었다. 나는 잘못 들었나 싶어 다시 물었다. 그 개천은 아이들이 자주 미역을 감았고 사시사철 놀기가 좋았다고 했다. 어느 날 저녁 동네 다른 집 아이가 황급히 달려와 백발노인의 아이가 물에 빠졌다고 전했다. 젊었던 그는 정신없이 뚝방으로 달려갔는데 아이가 보이지 않았다.

“그때 우리 둘째가, 여덟 살이었지. 내가 그때 우리 진순이 뱄을 때야. 다우다 치마에 땡땡이 가라로 된 걸 입고, 멜빵 치마였어. 그걸 입고 나갔단 말야. 사람들이 몰려가서 횃불을 들고 나와라 나와라 하는데 안 나와. 사람들이 막 낚싯대를 넣어서 여기저기 휘저었어.”

그가 말을 하는 내내 얼굴은 미소짓고 있었다. 이야기를 들으면서 내가 지금 뭘 듣고 있는지 혼란스러웠다. 그는 자기 아이가 물에 빠져 죽은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미소를 잃지 않았고 더러 침을 조금씩 흘리며 어이없다는 실소를 터뜨리기도 했다. 주변의 노인들이 웅성대기 시작하더니 서너 명씩 자기들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아이가 물에 빠져 죽었다는 노인은 나와 가장 먼 자리에 앉아 있었다. 나는 귀를 잔뜩 세우고 그의 이야기를 들으려고 애를 썼는데 다른 이들은 목소리를 전혀 줄이지 않았다.

“그러다가 누구 아빠더라, 누구 아빠 낚싯대에 걸렸는데 보니까, 뭐 껌껌해서 보이지도 않아. 근데 애기가 이렇게 얼굴 색깔이, 우리 애기 색깔이 아니고... 우리 애기 치마 멜빵이 낚싯대에 걸린 거지. 그래서 일단 건져서 길마루에 엎어놓고, 도립병원에 갔더니 못 살린다 해서 기독교병원으로 가는데...” 노인들이 점점 소란스러워져서 나는 이야기를 집중해서 들을 수 없었다. 나는 잠시만, 저 이야기를 좀 듣고 싶으니 조용히 해달라고 말했지만, 노인들은 이야기를 끝내지 않고 목소리만 줄이는 척 하며 계속 떠들고 있었다. 백발노인은 주변 사람들의 눈치를 살피면서도, 여전히 미소를 짓고 이야기하던 목소리를 줄여나갔다. 아무도 이야기를 듣고 있지 않았다. 내 오른쪽에 앉은 이 중 한 명은 마을당제를 책임지는 집안사람으로, 최고령자였다. 그가 불쑥 한 말이 내 귀에 들어왔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정말. 지 얘기만 해.”

비행기가 날기 시작했다. 누구의 목소리도 들을 수 없었다.

나는 죽은 아이의 이야기를 하던 이에게 다음 기회에 이야기를 더 들을 수 있다면 따로 만나서 이야기를 하자고 말하고 이야기를 중단시켰다. 마치 그해는 농사가 잘 안돼서 팔 곡식이 없었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개천에서 또 다른 사고가 있었냐고 물었더니, 노인들은 누구네 막내가 빠져 죽었고, 누구네 아들도 빠져 죽었고, 누구네 아들은 그 물에 투신했다더니 아니라는 둥 누구 누구가 거기서 죽었다는 이야기가 거침없이 쏟아졌다.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노인의 이야기
밥 먹는 백발 노인 옆엔 못 보던 식사 도우미
그리고 마을 발전계획 늘어놓던 60대 남자

이들은 일제강점기와 전쟁을 거쳐 칠십 년을 넘게 살았다. 스무 살 남짓 이 마을로 들어와 사십 년 넘게 온갖 사생활과 대소사를 공유하며 살아왔다. 누구네 집 자식이 뭘 잘 먹고 공부를 어느 정도 했는지도 알 것이고, 어느 집에서 얼마나 잦은 싸움이 있었는지도 알 것이었다. 서로를 너무 잘 알던 이 마을 사람들이 비행장 소음을 항의하자, 지자체에서는 집집마다 다니며 소음을 측정했고 데시벨에 따라 각각 다른 보상을 받았다.

멜빵 치마를 입은 딸아이를 잃은 노인은 나에게 여러 이야기를 하려고 했는데 아무도 들어주지 않았다. 다른 이들은 그가 말을 할 때마다 일부러 방해하는 듯이 그가 입을 열기만 하면 고구마며 감자 이야기를 해대는 통에 집단인터뷰에서는 그의 이야기를 집중해서 들을 수 없었다.

할머니<br
할머니ⓒpixabay

그들을 두 번째 만난 날, 노인들은 노인회관에서 매일 점심을 같이 먹는다면서 돌아가겠다는 나를 잡아 앉혔다. 커다란 상이 펼쳐지고 허리가 굽은 노인들이 음식을 날랐다. 가장 젊은 60대의 남자가 나를 앉혀 놓고 이 마을의 발전계획에 대해 일장연설을 늘어놓았다. 멜빵 치마의 아이를 잃은 노인은 큰 상에서 멀찌감치 떨어져 작은 상에 따로 앉았다. 수업시간에 못 보던 여성이 백발노인과 함께 앉았다. 나이가 제일 많은 노인이 나에게 말했다.

“여기 다 우리가 기른 거니까 무공해야. 맛있게 드시고 가셔. 정부에서 아주 잘 해줘요. 우리 여기 밥하라고 도우미도 보내줬어. 우리가 아주 편해요. 다 이게 우리 교수님하고 회장님이 잘하는 덕이지 뭐야?” 최고령자가 알려준 도우미라는 사람이 백발노인과 같이 앉아 밥을 먹고 있었다.

나는 이들이 함께 먹거리를 나눠 먹었을 지난 40년간 무슨 일이 있었겠지만, 내가 알 수 없으리라 생각했다. 나는 그저 그들이 차려준 물렁물렁한 음식들을 맛있다고, 돈 주고도 먹기 힘든 밥상이라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면서 급하게 삼켰다.

이하나 집필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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