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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타인의 고통을 향해 ‘하나님의 심판’이라며 상처입히는 목사들
왼쪽부터 정동수 사랑침례교회 목사, 장상길 송도주사랑교회 목사, 박경배 송촌장로교회 목사.
왼쪽부터 정동수 사랑침례교회 목사, 장상길 송도주사랑교회 목사, 박경배 송촌장로교회 목사.ⓒ설교 동영상 캡쳐

코로나19가 수도권과 대구 경북 지역을 중심으로 퍼지고 있는 가운데 일부 목사들이 “코로나19의 확산이 하나님의 심판”이라는 주장을 설교를 통해 유포하면서 논란이 커지고 있다. 이들은 코로나19가 발생한 중국 우한 지역에서 교회 탄압이 심했다면서 이를 심판하기 위해 하나님이 질병을 일으킨 것이라고 주장했다.

“중국의 엄청난 기독교 박해, 특히 그 박해의 시범지로 우한이 선택되면서 우한에서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심각하게 위협을 받고 있는 상황 속에서 이와 같은 폐렴, 코로나바이러스가 우한에서 창궐하고 있다고 보는 것도 성경적으론 합리적인 해석”(사랑침례교회 정동수 목사)이라거나, “성경이 말하는 전염병은 대부분이 다 범죄한 백성들과 그 시대에 대한 하나님의 징벌이었어다. 죄 때문이었고, 그 시대를 향한 하나님의 벌이었다”(송촌장로교회 박경배 목사)고 주장하기도 했다.

“호주가 왜 저렇게 됐나. 정신 나간 국회의원들이 남자끼리 결혼해도 된다고 법을 만들어 버려서 그렇다”(순복음대구교회 이건호 목사)면서 호주의 산불조차 하나님의 심판이라는 주장까지 나왔다.

자연재해와 전염병을
‘하나님의 심판’이라고 주장하는
설교는 끊임없이 반복된다

자연재해와 전염병의 확산을 ‘하나님의 심판’이라고 주장하는 설교는 끊임없이 반복되고 있다. 2005년에도 서울 금란교회 김홍도 목사가 2004년 말 동남아에서 일어난 해일 피해가 하나님의 심판이라고 주장했고,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를 두고서도 명성교회 김삼환 목사는 그해 5월 11일 주일예배에서 “하나님이 공연히 (세월호를) 이렇게 침몰시킨 게 아니다. 나라를 침몰하려고 하니 하나님께서 어린 학생들, 이 꽃다운 애들을 침몰시켜 국민에게 기회를 준 것”이라고 발언해 세월호 유족들에게 상처를 주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하나님의 심판’ 발언은 각종 자연재해와 사건과 사고가 일어날 때마다 반복됐다.

유럽에선 14세기 흑사병이라 불리는 페스트가 대유행하면서 인구의 1
유럽에선 14세기 흑사병이라 불리는 페스트가 대유행하면서 인구의 1ⓒ기타

자연재해와 전염병을 ‘신의 심판’이라고 여기는 것은 자연재해와 전염병의 원인을 제대로 몰랐던 근대 이전까진 일종의 상식이었다. 예측할 수 없고, 원인조차 알 수 없는 현상에 두려움을 갖는 건 어쩌면 당연한 반응일 것이다. 그 가운데서도 전염병의 확산은 의학 기술이 발달한 지금도 엄청난 공포인데, 원인조차 파악하지 못했던 근대 이전까진 공포 그 자체였다. 유럽에선 14세기 흑사병이라 불리는 페스트가 대유행하면서 인구의 1/3이 죽음을 맞이했다.

유럽인구의 1/3을 죽음으로
몰아간 페스트… 죄를 씻는다며 채찍으로 고행
유대인이 퍼트렸다는 유언비어에 집단 학살까지

14세기 유럽은 전염병이 퍼지기 쉬운 환경이었다. 흉년이 길게 이어지면서 영양실조로 면역력이 떨어졌고, 생활환경도 비위생적이어서 페스트균을 옮기는 쥐가 여기저기 서식하고 있었다. 이런 최악의 조건 속에서 병은 장례식과 가족간 접촉 등 다양한 경로를 통해 퍼져나가면서 병이 유행하기 시작한 지 4년 만에 유럽 인구 1/3이 사라지는 비극이 벌어졌다.

병의 원인을 알지 못했던 전염병에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인간의 죄 때문에 신이 형벌을 내린 것이라며 성당에 모여 함께 기도하는 이들이 많았다. 사람들은 정체를 알 수 없는 전염병으로 인해 공포에 빠졌다. 독일에선 자신의 죄를 회개해야 한다며, 쇠붙이가 달린 채찍으로 자신의 등을 때리면서 고행하는 무리도 있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성당에 모여 함께 기도하는 바람에 페스트가 더욱 퍼졌다는 분석까지 나오고 있다. 또 인간의 공포가 커지면 희생양을 찾기 마련이다. 유대인이 우물을 오염시켜 전염병이 돈다는 유언비어가 퍼지면서 수천 명의 유대인이 학살당하는 비극도 빚어졌다.

이런 비극은 재해와 전염병을 마주할 때마다 되풀이됐다. 미국이 아직 영국의 식민지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1692년 미국 매사추세츠 세일럼(Salem)에서 벌어진 이른바 ‘세일럼의 마녀사냥’도 마을에 돈 전염병이 마녀가 저지른 짓이라는 종교적 판단에서 비롯됐다. 당시 종교재판을 통해 19명이 사형당하고 140여 명이 체포당했다.

자애로운 신이 세상을 다스린다는
믿음이 깨져버린 1755년 리스본 대지진…
맹목적 신앙을 벗어나 이성의 시대를 열다

자연재해와 전염병을 ‘신의 심판’이라고 여기는 생각은 신이 있다면 의인에게 그런 어려움을 주지 않을 것이고, 이런 재난을 만나는 데엔 반드시 이유가 있을 것이란 판단에서 비롯된다. 착하게 살면 복을 받을 것이고, 나쁘게 살면 화를 입을 것이란 단순한 생각에서 비롯된 판단이지만, 화를 입은 누군가에겐 상처가 될 수밖에 없다.

포르투갈 화가 João Glama Ströberle가 그린 1755년 리스본 대지진 모습
포르투갈 화가 João Glama Ströberle가 그린 1755년 리스본 대지진 모습ⓒ기타

착하게 살면 복을 받을 것이고, 나쁘게 살면 화를 입을 것이란 단순한 믿음이 흔들리는 사건이 1755년 11월 1일 아침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일어났다. 세 번의 지진과 해일, 화재가 도시를 덮쳤고, 리스본은 하룻밤 사이에 폐허로 변했다. 지진이 일어난 날은 공교롭게도 기독교 최고의 축일인 만성절이었다. 모든 성인들의 대축일인 만성절 아침을 맞아 많은 리스본 시민들은 성당에서 미사를 드리고 있었다. 미사를 드리다 엄청난 지진을 만났고, 피해는 컸다.

리스본 대지진으로 빚어진 참사는 당시 유럽 전역에 충격으로 다가왔다. 자연재해는 도덕적 해이를 징벌하기 위한 신의 심판이라고 여겼던 당시 사람들에게 만성절 미사 도중에 만난 대지진의사건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자애로운 신이 세상을 다스리고, 신의 섭리로 세상과 자연이 질서정연하고, 조화롭게 움직인다는 믿음은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신과 세계에 대한 절대적 믿음이 흔들리면서 인간의 비판의식이 커졌다. 이를 통해 아이러니하게도 학문과 철학이 발달할 수 있는 기반이 됐다. 니콜라스 시라디는 자신의 책 ‘운명의 날’에서 “재앙이 닥치자 탐욕으로 쌓은 모든 것이 무너졌다. 하느님은 더 이상 공정한 하느님이 아니었다. 신앙의 도시 리스본은 재앙으로 많은 것을 잃었다. 그러나 재앙은 새로운 시대를 열어주었다. 무엇보다 절대적인 힘을 휘두르던 낡은 신앙이 뿌리째 흔들렸다. 건전한 의심과 이성이 독단적인 종교 교리를 대신했고, 하느님의 섭리라는 이름으로 주입된 체념적 삶은 인간이 자유롭게 개척하는 주체적 삶에 자리를 내주었다”고 말했다.

이렇게 시작된 ‘인간이 자유롭게 개척하는 주체적 삶’에 대한 고민은 근대철학을 꽃피웠고, 근대철학이 꽃피운 비판의식은 성서를 신의 언어라며 맹목적으로 이해하는 기존의 해석에서 벗어나 다양한 성서비평을 통해 성서를 이해하게 했다. 신학과 기독교가 맹목적인 신앙에서 벗어나는 계기가 됐다.

하나님께 순종했던 욥의 고난…
욥이 당한 아픔이 욥의 잘못이 아닌 것처럼
오늘의 욥들이 당하는 아픔에 함께해야

사실 인간이 겪는 고난과 재난과 시련이 신의 징벌이 아니라는 사실은 구약성서에서도 이미 수천 년 전부터 증언하고 있다. 욥이 바로 그 증인이다. 구약성서 욥기엔 온갖 시련과 고난을 당하는 주인공 욥의 이야기가 기록돼 있다. 욥의 몸이 상하고, 자식들이 죽고, 재산을 잃는 등 엄청난 고난을 당하자, 욥의 친구들은 욥을 찾아와 처음엔 위로를 한다. 하지만, 자신은 아무런 잘못이 없다는 욥의 말을 듣고, 친구들은 네가 하나님에게 죄를 지었기 때문에 마땅히 벌을 받은 것이라고 말한다.

영국의 화가이자 시인인 윌리엄 블레이크가 1825년 그린 ‘친구들에 의해 책망당하는 욥’. 하나님을 신실하게 섬겼던 욥이었지만, 어려움을 겪게 되자, 하나님은 악한 이를 벌주는 이라며 욥의 친구들은 욥에게 잘못이 있을 것이라고 비난을 퍼부었다.
영국의 화가이자 시인인 윌리엄 블레이크가 1825년 그린 ‘친구들에 의해 책망당하는 욥’. 하나님을 신실하게 섬겼던 욥이었지만, 어려움을 겪게 되자, 하나님은 악한 이를 벌주는 이라며 욥의 친구들은 욥에게 잘못이 있을 것이라고 비난을 퍼부었다.ⓒ기타

청파교회 김기석 목사는 욥의 고난과 관련한 책 ‘아! 욥’에서 살갗이 벗겨지고 뼈가 드러나는 것 같은 시련 속에서도 욥은 하나님을 부정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하여 모든 것을 하나님의 뜻으로 받아들이지도 않는다고 말한다. 그는 불경하다 싶을 정도로 하나님의 의에 대해 묻고 또 묻는다. 고뇌의 심연을 맛보지 못한 친구들의 파리한 신학은, 욥의 절망을 이해하지도 담아내지도 못한다. 믿음, 순종, 하나님의 뜻이라는 말은 아름답지만, 복잡하고 모호하기만 한 생에 멀미를 느끼고 있는 이들에게 무작위적으로 적용하려 할 때 그 말은 폭력이 된다고 김기석 목사는 강조한다.

이웃의 아픔에 공감하지 못하는 그들이
목사라고 불릴 자격이 있을까?

우리는 늘 시련과 어려움을 당하는 이들을 만난다. 그럴 때마다 그들에게 고통받는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쉽사리 규정하며 상처를 준다. 가난한 이들을 만나면 그들이 가난한 이유가 게을러서라고 여긴다. 하지만, 욥기는 그들의 아픔에 상처를 주지 않고, 아픔에 공감하게 하고, 나도 그들처럼 고통받을 수 있음을 느끼게 하고, 그 고통과 고난이 그들의 잘못이 아님을 깨닫게 한다. 김기석 목사는 자신의 책 서문에서 “우리 시대의 욥은 누구일까?”하고 질문을 던지며 우리 시대의 욥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삶이 버거운 짐처럼 여겨지는 사람들, 운명처럼 닥쳐온 영문 모를 시련으로 인해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진 사람들, 구조적인 폭력에 시달려 삶이 거덜난 사람들, 미래의 꿈조차 저당 잡힌 채 현실 속을 바장일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아닐까? 아름다운 세상은 그런 이들이 없는 세상이다.”

아픔에 공감하지 않고, ‘신의 심판’이라며 상처를 입히는 그들에게서 하나님과 예수님의 사람을 찾을 수 없다. 사랑으로 아픔에 공감하지 않는 그들이 과연 목사라고 불릴 자격이 있는 것일까? 중세를 지나며 이미 끝나버린 낡은 신앙을 아직도 붙들고 있는 전근대적인 그들이 한국 개신교 내부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적지 않다는 사실이 우리를 더욱 안타깝게 한다.

권종술 기자

문화와 종교 분야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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