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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민갑의 수요뮤직] 좋은 음악의 역사는 끊어지지 않는다
밴드 아월 첫번째 EP 앨범 'I' 커버이미지
밴드 아월 첫번째 EP 앨범 'I' 커버이미지ⓒ사진 = 해피로봇 레코드

이런 목소리라면 끌리기 마련이다. 빠져들기 마련이다. 밴드 아월의 보컬 홍다혜. 그의 목소리는 신산하고 처량하다. 앳되어 보이는 분위기와는 사뭇 다른 질감이다. 보컬의 음색은 배우의 표정이나 얼굴 같은 것이다. 배우가 대사와 몸으로 표현하는 연기를 보컬은 목소리로 대신한다. 보컬의 목소리의 굵기와 농도, 음색의 높고 낮음은 자신이 노래하는 이야기의 파장과 위력을 거의 결정한다. 자신이 펼치는 이야기에 조응하지 못하는 보컬은 실패하고, 그 이야기를 육화한 보컬은 성공한다.

지난 해 12월에 발표한 아월(OurR)의 첫 EP에 담은 이야기는 대개 우울하고 힘겹다. 사는 게 원래 뜻대로 되지 않기 때문이 아니다. 스스로 당당하지 못한 삶은 주눅 들어 비감하다.

수록곡 7곡 가운데 연주곡인 첫 번째 곡 ‘I’를 지나 등장하는 두 번째 노래 ‘Floor’에서 홍다혜는 “내 차가운 마음”, “내 초라한 마음”, “내 초라한 긴 그림자”, “내 서투른 말들”이라고 내내 자신을 비하한다. 자신을 정직하게 인식한 결과가 아니다. “분명 실망할 거”라고, “괜찮아요 그대 가버려도”, “나만 남겨지겠죠”라고 말하기 위해서이다.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고 아끼지 못하는 이는 어떤 상대 앞에서도 꿋꿋할 수 없다. 가까워지면 실망할 것이고, 당연히 떠날 거라 믿는다. 결국 자신은 혼자 남을 것이라 확신한다.

스스로 아끼지 못하는 자기 모멸의 태도를 노래할 때, 홍다혜의 목소리는 그만큼 구슬프다. 맑기보다 흐리고 질박하게 짙은 목소리는 노랫말의 어둠을 충분히 담지했다. 그리고 선우정아를 떠올리게 하는 목소리는 그 마음의 밑바닥까지 내려가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그대 언젠가 떠나갈 거잖아요/그땐 아마 나에게 가장 쓸쓸한 날 일 거에요”라고 고음을 내지를 때, 노래 속 비관주의는 화려하게 완성된다.

“멈춰질 말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물”으며 관계를 무너뜨리고 후회하는 노래 ‘20+3’에서도 홍다혜의 목소리는 쓸쓸하다. 그러나 목소리만으로 노래가 힘을 갖기는 불가능하다. 밴드 아월은 홍다혜의 목소리를 실은 멜로디에 팝의 보편성을 장착했다. “멀리 나를 보내고/넌 혼자 어떻게 걷고 있는지/좁은 길에 갇힌 채/넌 어떻게 걷고 있는지”라고 안타깝게 노래할 때, 좋은 노래의 마법이 펼쳐진다. 가사와 멜로디와 리듬과 보컬과 연주가 완벽하게 맞아 떨어져, 노래가 닿으려는 또 다른 세계로 듣는 이를 끌고 간다. 그 순간 우리는 현실과 잠시 유리되어 노래의 세계로 옮겨간다. 그리고 그 곳에서 노래 속 살아 움직이는 사람들을 만난다. 그 사람들을 지켜보다 보면 그들의 얼굴이 내 얼굴과 내 기억 속 얼굴로 바뀐다.

좋은 노래, 뛰어난 노래는 좋은 작품들이 대개 그러하듯 자신의 삶을 헤집어 기억과 조우하게 만든다. 자신을 합리화하거나 위로한다 해도 동일시하게 만들지 못하는 노래는 어떤 반향도 끌어내지 못한다. 좋은 작품은 감상자를 주인공의 자리로 옮겨 기억하게 하고 그리워하게 하고 반성하게 하고 성찰하게 한다. 최소한 그 중 하나라도 가능하게 한다.

또 다른 타이틀 곡 ‘Circle’에서도 노래의 나는 “텅 빈 땅”에 “혼자 허우적대며/벗어나지 못하고/작은 파도가 일면 멀리 휩쓸려가겠지”라고 자조한다. 누군가에게 이 이야기를 고백하지만 기대는 없다. 홍다혜의 보컬이 샤우팅으로 외치는 순간에도, “아마도 우린 같은 건 없나 봐/얼마나 지나고 나야 넌 알까”라는 노랫말은 통하지 않는 관계에 대한 절망 뿐이다. 그리고 밴드 아월은 이 막막한 마음을 보컬과 멜로디를 끌어올리는 록킹한 사운드로 터트린다.

첫 곡 ‘I’가 신시사이저와 멜로트론 등을 활용한 신비로운 사운드를 창조한다면, 두 번째 곡 ‘Floor’는 일렉트릭 기타와 드럼을 주축으로 한 강렬한 록 밴드 사운드가 이끈다. 그런데 아월은 여기에 피아노와 신시사이저, 멜로트론 등으로 사운드 스케이프를 확장한다. 곡의 드라마는 더 격동하고 파장은 더 강력해진다.

세 번째 곡 ‘20+3’도 유사하다. 록킹한 사운드와 팝의 스타일은 보편성과 위력을 함께 강화하며 노래의 힘을 채운다. 네 번째 곡 ‘Circle’에서는 신시사이저의 역할이 두드러진다. 일렉트릭 기타의 급작스러운 분출이 노래의 상승을 책임진다면, 신시사이저는 하강을 책임지는 방식이다.

보컬의 농염함이 돋보이는 노래 ‘Cycle’은 영어 가사와 펑키한 리듬감으로 의지를 드러내는 변화를 만든다. 여섯 번째 곡 ‘선인장’에서 “이제 예쁜 꽃이 필거야/아직 보이지 않아도/언젠가는 큰 꽃이 될 거야/그걸 믿자”라고 노래할 때, ‘선인장’이라는 의미심장한 제목과 자기 긍정의 노랫말이 어색하지 않도록 이어지는 흐름이다. 영롱한 일렉트릭 기타 연주는 미래에 대한 낙관과 정직한 인식을 가능하게 한 마음의 온도를 드러낸다.

밴드 아월은 이렇게 한 장의 EP 안에서 변화하는 한 사람의 이야기를 서술한다. 마지막 곡 ‘응달’은 지나온 날들의 자신을 차분하게 고백하는 곡으로 음반을 마무리한다. 다른 마음을 알고 있다고 말할 수 있게 된 자신은 예전과 조금이나마 다르게 살 수 있을 것이다.

밴드 아월 멤버 홍다혜, 이회원, 박진규
밴드 아월 멤버 홍다혜, 이회원, 박진규ⓒ사진 = 해피로봇 레코드

키보드와 프로듀싱은 맡은 이희원, 베이스를 연주하는 박진규, 보컬과 기타를 담당한 홍다혜의 밴드 아월은 2018년 데뷔했다. 크고 작은 공연에 꾸준히 출연했고, 최근 온스테이지 2.0(잘 알려지지 않은 실력있는 뮤지션을 소개하는 네이버 서비스)에도 등장했다. 올해는 좀 더 자주 보게 될 듯하다.

아월은 최근 온스테이지를 촬영한 드링킹소년소녀합창단, 보수동쿨러, 신인류, 차세대 등과 함께 밴드 신의 변화를 대표한다. 시간은 흐르고, 새로운 이들이 새로운 음악으로 등장한다. 좋은 음악의 역사는 끊어지지 않고, 우리는 옛날에 사랑했던 노래보다 더 훌륭한 노래를 듣게 된다. 아무리 생각해도 신비로운 일이다.

서정민갑 대중음악의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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