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가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도심 집회를 금지한 가운데, 故 문중원 경마기수 유가족이 밤새 운구차량을 지키기 위해 설치했던 정부청사 앞 농성장도 27일 강제로 철거됐다.
이날 새벽부터 마스크를 쓰고 모인 활동가와 시민이 서로의 몸을 천으로 감고 격렬하게 저항했지만, 종로구가 동원한 용역에 의해 끌려 나왔다. 문 기수의 아내와 장인 등 유족도 천막 안에서 숨죽여 저항했지만 소용없었다. 유가족과 故 문중원 시민대책위가 문 기수 죽음의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촉구하며 농성을 시작한 지 63일, 문 기수가 유서를 통해 한국마사회 부조리를 고발하면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지 91일 만에 벌어진 일이다.
농성장 철거가 끝났을 무렵, 문 기수의 아내 오은주 씨는 탈진해서 병원으로 이송됐다.
한기총 3개동 천막부터 철거
서울시와 종로구는 이날 아침 7시25분경부터 서울 광화문 세종로공원과 정부청사 앞에 설치된 농성천막 7개를 강제로 철거했다. 코로나19 확산 차단 명목으로 이뤄진 도심집회 금지 조치 등 행정처분의 일환이다.
행정대집행은 세종로공원 앞 한국기독교총연합회(이하, 한기총) 천막 3개동부터 시작됐다. 한기총은 이곳에 다수의 소형천막과 침낭, 매트리스 등을 보관하고 있었다. 청와대 사랑채 앞 등 집회가 종료되면 지방에서 상경한 집회 참가자들이 이곳에 집결해 노숙을 할 때 사용했던 집회물품들이다.
종로구 관계자는 먼저 한기총 천막 앞에서 ‘행정대집행 개시 선언’을 공지했다. “세종로 공원 인근 도로에 ‘대한민국 바로세우기 운동본부 외 1개 단체’(한기총) 소유의 불법 천막, 장애물 등을 자진철거 하도록 계고서를 3차례 전달했으나, 지정된 기한까지 이행하지 않아 우리 종로구에서는 2020년 2월27일 7시30분부로 행정대집행법 제3조 제2항에 의거 행정대집행을 실시한다”는 내용이었다.
행정대집행 개시 선언이 끝나자, 곧바로 파란 조끼를 입고 흰색 안전모를 쓴 용역들이 천막 철거를 시작했다. 한기총 3개동 천막에선 저항하는 인원이 없었기에, 강제철거는 채 30분이 걸리지 않았다. 일부 유튜버들 외에는 강제철거에 항의하는 한기총 관계자는 보이지 않았다.
한기총 천막 철거가 완료된 후엔 故 문중원 시민대책위원회 천막 철거도 시작됐다. 하지만 이날 새벽부터 천막 철거를 반대하며 모인 시민과 활동가들의 저항은 격렬했다. 용역은 천막을 둘러싸고 누워서 저항하는 시민·활동가들을 한 명씩 끌어낸 뒤 천막을 뜯어냈다. 이 과정에서 다수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시민대책위, 격렬히 저항
故문중원 아내, 탈진...병원 이송
故 문중원 시민대책위 분향소와 농성장엔 새벽부터 마스크를 쓴 활동가와 시민 수백 명이 모였다. 서울시와 종로구 측에서 이날 새벽 7시경 강제철거를 실시한다고 통보했기 때문이다.
오전 6시30분쯤 故 문중원 시민대책위 주최로 약식 집회가 열렸다. 집회에서 최준식 공공운수노조 위원장은 “코로나19로 한국사회가 많이 힘들다는 것 잘 안다”며 “그런데, 정부가 진정 국민의 생명안전을 지키기 위해 집회 등을 하지 못하게 하는 것인지 묻고 싶다. 왜냐하면 이곳은 (故 문중원 기수의) 죽음을 헛되게 하지 말라고 투쟁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더 이상 죽이지 말라고 투쟁하는 곳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집회가 끝난 뒤 故 문중원 시민대책위 관계자들과 시민들은 ‘故 문중원 경마기수 시신이 안치된 운구차량을 지키는 팀’과 ‘유족들이 머무는 천막을 지키는 팀’으로 쪼개져서 스크럼을 짰다. 끌려 나가지 않기 위해 긴 천으로 서로의 몸통과 팔을 이었다.
유가족이 머무는 천막 철거는 오전 8시쯤부터 시작됐다. 군청색 옷을 입은 구청 직원이 머리 위로 행정대집행 영장을 들어 올리고 내용을 읊은 뒤 곧바로 진행됐다. 처음엔 용역들도 어떻게 해야 할지 망설이는 분위기였으나, 구청 관계자가 “밀어붙여”라고 외친 뒤부턴 몸싸움이 벌어졌다. 시민대책위 측은 “(공공기관) 마사회가 죽였다, 대통령이 책임져라”, “코로나가 계엄이냐, 분향소 철거를 중단하라” 등의 구호를 외치며 격렬하게 저항했다. 이 과정에서 다수의 관계자가 경찰에 연행되고, 다쳤다. 용역 중엔 흥분해서 시민대책위 측을 향해 손에 들고 있던 물건을 던지는 이도 있었다.
활동가, 노조 관계자 등은 한 명씩 끌려나왔다. 故 문중원 기수 아내 오은주 씨와 장인 오준식 씨, 아버지 문군옥 씨가 천막 안에 있었지만 천막철거는 계속됐다. 경찰, 시민, 용역, 공무원 등이 얽히고 넘어지면서 위험한 상황도 여러 차례 발생했다.
시민대책위가 상황실로 쓰고 유족들이 휴식을 취하던 농성장은 1시간40분만(오전 9시40분경)에 철거됐다.
허탈한 표정의 아내 오은주 씨는 탈진해서 쓰러졌다. 오 씨는 시민대책위 관계자의 등에 업혀 병원으로 이송됐다.
구청 측은 故 문중원 기수의 시신이 안치된 운구차와 분향소는 건드리지 않았다.
“꼭 이래야만 했나”
상황이 끝나고, 시민대책위는 농성 천막이 있던 자리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문 기수의 아버지 문군옥 씨는 “많은 걸 요구하는 게 아니다”라며 “더 이상 부산경마공원에서 경마기수, 말관리사가 죽는 일이 발생하지 않게 해 달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내 아들은 유서에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범인의 이름까지 지적하고 목숨을 던졌다”라며 “그 사람을 처벌하고 죽음을 방지하기 위해 제도를 개선해 달라는 거였다. 그런데 마사회는 계속 자기네와는 관계가 없다고 한다”라고 말했다.
또 그는 “우리 아이 시신 여기 갖다 놓고, 우린 갈 곳이 없다. 여기를 지켜야만 했다. 그래서 지키려고 한 건데, 이렇게 잔인하게 (강제철거 했다)”라고 한탄했다.
양한웅 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 집행위원장(시민대책위 공동대표)은 “이 천막 하나가 그렇게 강제로 뜯어내야 할 것이냐”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그는 “이건 아니다”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양 위원장은 “한국마사회는 없어져야 한다”라며, 문재인 정부도 이전 정부와 다르지 않다고 분노와 한탄을 쏟아냈다.
이날 고 문중원 시민대책위 측은 성명을 내고 “정부는 반인륜적 폭거를 책임지고 공식 사과하라, 문중원 열사와 한국마사회 모든 억울한 죽음의 진상을 규명하고 책임자를 처벌하라”라고 촉구했다.
민주노총도 이날 성명을 내고 “각종 행사를 취소 또는 연기하며 범정부적 방역 방침에 적극 협조·이행하고 있다”며 “그럼에도 분향소 강제 철거를 단행한 정부 행정당국에 묻는다. 71년된 공기업 한국마사회의 내부의 고질적인 부정비리를 고발하고 목숨을 끊은 고인을 애도하고 추모하는 것이 코로나와 무슨 상관인가”라고 비판했다. 이어 “사태 해결은 고사하고 분향소부터 침탈한 오늘의 사태를 똑똑히 기억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승훈 기자, 박지현 수습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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