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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민보] “청년 이미지 사들이는 게 인재 영입?” 평균 59.5세 ‘올드 국회’ 뼈 때리는 대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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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5세’ 지난 2016년 20대 총선에서 당선된 이들의 평균 나이이다. ‘역대 최고령 국회’로 불렸다. 그로부터 4년이 흐른 지금 20대 국회 당선인들의 평균 나이는 어느덧 환갑을 바라보고 있다.

21대 국회는 좀 더 젊어질 수 있을까. 안타깝게도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현재 전체 예비후보의 평균 연령은 57세로 20·30세대에게 직접 정치의 벽은 여전히 견고하다. 그나마도 도전장을 내민 20·30세대들이 각 정당으로부터 지역구 공천을 받기는 녹록지 않아 보인다.

정치권이 청년으로 여기는 나이는 만 45세까지. 더불어민주당에서는 만 45세 이하, 미래통합당에서는 만 45세 미만까지가 청년 범주에 속한다. 지난해 말 기준 우리나라 평균 연령이 42.6세인데 45세를 청년으로 규정하는 모습은 민망할 따름이다.

국회는 ‘세대교체’를 꾸준히 오래된 숙제로 남겨놓고 있다. 선거권 연령 하향 이슈에 여전히 “고등학교가 정치판, 난장판 될 것(통합당 심재철 원내대표)”이라는 낡은 시선을 들이대고, 기성의 관점에 도전하는 젊은 리더에게 자리를 내주길 꺼린다.

정치인이 청년의 성공을 평가하는 시선은 상당히 보수적이다. 불우한 가정에서 건실히 자란 20대, 공공을 위해 헌신한 30대, 장애를 극복한 40대가 기성정당에 ‘인재’로 채택된 청년들이다. 정치적 고민과 전문성보다는 그들이 가진 ‘좋은 이미지’를 사들이는 방식으로 청년을 고르고 있다.

청소년을 바라보는 시각은 그보다 더욱 좁다. 최근까지 법률상 정치권에서 거의 무능력자였던 만 18세 청소년이 우여곡절 끝에 선거법 개혁으로 4·15 총선에서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됐다. 세계적으로 만 16세 선거권 운동이 왕성한 것을 고려하면 많이 뒤처졌지만, 허물지 않을 것 같던 ‘청소년 참정권’의 벽에 이제라도 균열이 보이기 시작한 것은 큰 성과로 꼽힌다. 청소년이 하나의 ‘주류 존재’로 인정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선거연령 하향을 위해, 청소년의 인권을 위해 10여 년간 앞장서 싸워온 청년이 있다. 청소년기에 서울 학생인권조례 가결을 위해 사회를 뛰어다니며 시민으로서 효능감을 느끼고, 지난 지방선거 즈음엔 해가 저물면 쥐가 기어 나오는 국회 앞 농성장에서 “선거연령 하향”을 외치며 밤을 지새웠다. 지금은 한 정당의 대변인으로 마이크를 잡는다.

정의당 강민진 대변인이 26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민중의소리 기자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0.02.26
정의당 강민진 대변인이 26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민중의소리 기자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0.02.26ⓒ김철수 기자

중학교 자퇴 뒤 깨달은 ‘자기 효능감’
깨고 싶었던 ‘비유권자 청소년’의 한계

국회에서 정의당 강민진 대변인을 만났다. 중학교 2학년 학교폭력에 맞서 자퇴한 그는 파란만장한 청소년기를 보냈다. 강 대변인은 “학생을 폭력과 공포로 위협하고 길들이려는 학교, 개인의 개성·존엄성을 존중받을 수 없는 규칙과 문화를 견딜 수 없었다. 학교에 더 있으면 ‘살아있을 수 없다’는 벼랑 끝 느낌으로 자퇴를 선택했다”고 떠올렸다.

학교를 벗어난 이후에 ‘학생인권조례 운동’을 알게 됐다. 폭력적이고 인권 침해적인 학교를 바꾸기 위해 행동하던 한 집단을 만나던 날, 강 대변인은 “내 할 일은 이거다”라는 느낌이 들었다고 말했다. 스스로는 학교를 견디지 못해 도망쳐 나온 한 사람이 아니라 그 공간을 ‘주도적’으로 바꿀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깨달은 순간이었다. 자신이 앞서 겪은 고통을 앞으로의 학생들은 겪지 않게 할 책임감이 뒤따랐다.

다만 당시 17살이던 강 대변인의 활동은 ‘나이 주의’에 의해 제약됐다. 주민발의 형태로 추진된 서울시 학생인권조례 제정에 직접 서명할 권한을 가질 수 없었다. 서울시 전체 유권자 중 1% 이상만 서명하면 조례의 법적 효력이 발생하는데, 비유권자인 청소년의 서명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강 대변인은 “굉장히 분노스러웠다. 청소년으로서 청소년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이 서명운동을 하고 있는데 국가에서 청소년의 서명은 유효한 것으로 쳐주지 않았다. 청소년의 목소리가 제도·정책에 반영될 필요도 없는 것으로 여겨진다는 것이었다. 이후에도 청소년 인권 활동을 했을 때 벽에 부딪힌 것은 ‘유권자가 아니라는 점’이었다”고 말했다.

청소년이 유권자였다면 우리가 직면한 많은 상황이 달라졌을 것이라는 게 강 대변인의 생각이다. 어른들이 좋아하는 청소년 정책, 청소년을 통제할 수 있는 정책은 국회에서 곧잘 다뤄졌지만 어른들이 좋아하지 않는 청소년 정책은 논의 순번에서 번번이 밀려났다. 강 대변인이 지난한 ‘청소년 참정권’ 싸움에 뛰어든 계기가 됐다.

지난 2017년 11월 2일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열린 ‘전국 청소년 인권실태·의식 조사 결과 발표 및 입법 촉구 기자회견’에서 강민진 당시 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 공동집행위원장이 조사 결과 브리핑을 하고 있다. 2017.11.02.
지난 2017년 11월 2일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열린 ‘전국 청소년 인권실태·의식 조사 결과 발표 및 입법 촉구 기자회견’에서 강민진 당시 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 공동집행위원장이 조사 결과 브리핑을 하고 있다. 2017.11.02.ⓒ뉴시스

시민단체 떠나 진보정당 대변인 되기까지의 고민
“개인 아닌 사회적 약자의 권력 키우기 위한 것”

이후 강 대변인은 서울시교육청 학생인권위원, 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 공동집행위원장 등으로 활동했다. 2018년에는 ‘청소년 선거권 목소리를 내달라’는 당시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 심상정 위원장의 요청으로 자문위원을 역임했다. 강 대변인은 “선거제도 개혁을 진정으로 앞장서서 이끌려고 하는 정당은 정의당밖에 없었다. 동지가 필요했고, 정치 선진국에서 하는 선거제도 개혁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해 동참했다”고 말했다.

그는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된 선거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던 날을 잊지 못한다고 말했다. 강 대변인은 “선거법 개혁을 바라는 사람들조차도 ‘너무 바라지만 안 될 것 같다’, ‘통과된 전례가 없다’며 불가능할 거라 말했다. 안 된다는 것을 이뤄냈다는 점이 너무 감격스러웠다. 오랫동안 믿기지 않았다”고 떠올렸다.

이후 정의당으로부터 대변인직 제안을 받았고, 고심 끝에 수락했다. 정의당 심상정 대표는 대중에게 강 대변인을 “패스트트랙에 태워진 여야 4당 선거법 개정안에 만 18세 선거권 연령 하향을 포함시키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강 대변인은 “실질적으로 사람들의 삶을 바꾸는 것에 책임을 지는 그런 역할을 하고 싶었다. 대변인으로서 정의당이 좀 더 사회의 약자와 소수자를 위한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보탬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시민단체 안에서의 역할을 그만두고 정당의 일원이 되기까지 깊은 고민을 거쳤다. 강 대변인은 “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 공동집행위원장을 사임하고 대변인을 맡았는데 아쉬워하는 사람도 있었고 반대도 많이 했다”며 “‘지금까지의 활동이 자리 하나 차지하려고 한 것이냐’는 비난도 받았다”고 밝혔다.

그는 “일부에서는 정당에서 역할을 한다는 것, 현실정치에 나서는 것을 불순한 의도나 개인의 권력욕, 명예욕을 쫓아가는 일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저는 진보정당 운동은 개인의 권력을 획득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정당의 권력, 사회적 약자를 위한 권력을 키우기 위한 목적이 돼야 한다 생각한다. 저 스스로도 그렇게 목표로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브리핑하는 정의당 강민진 대변인(자료사진)
브리핑하는 정의당 강민진 대변인(자료사진)ⓒ뉴스1

“‘정의당은 여당 눈치 보는 당’ 여지 남겨선 안 돼
‘할 말은 하는 정당’으로 국민 신뢰 얻어야”

시민단체 등 국회가 ‘외부인’으로 규정한 이들이 국회 본청 내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기 위해서는 국회의원, 정당 대변인 등의 협조가 필요하다. 국회 ‘내부인’이 자신들의 명의로 기자회견장을 사전 예약해주지 않으면 시민단체는 기자회견을 열 수 없다.

강 대변인이 국회에 온 뒤 정론관에는 청소년, 청년 단체의 기자회견이 잦아졌다. 강 대변인은 “단체에서 요청이 오면 최대한 하려고 한다. 국민에게 자신들의 이야기를 전하고 언론에 전달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한 이들에게 최대한 그 기회가 보장되길 바라는 마음”이라고 말했다.

강 대변인은 좋은 대변인의 역할을 꾸준히 고민하며 당 안팎에서 시민·전문가 등의 다양한 목소리를 보고 듣고 공부하고 있다. 그는 “우리나라가 워낙 양대 정당 구조이다 보니 거대 양당이 참전한, 그들이 주도하는 이슈 외에 정의당이 단독으로 내는 목소리는 잘 이슈화되지 않는다”며 아쉬워했다.

이어 “언론에 보도되지 않지만 중요한 문제들에 정의당만의 목소리를 내고 있음에도 잘 알려지지 않아 ‘정의당은 뭐 하는 정당이야, 왜 아무것도 안 해’라는 시선이 있으면 대변인으로서 무력감이 느껴지기도 한다. 그런 부분을 잘 살펴봐 주셨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또한 “정의당이 통합당과 경쟁하고, 민주당의 눈치를 보는 정당으로 여겨질 여지를 남겨서는 안 된다. ‘할 말은 하는 정당’으로 국민의 신뢰를 얻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 대변인은 국회에 들어오기 이전 길 위에서 들었던 목소리를 잊고 싶지 않다고 했다. “내가 길에서 들었던 목소리와 분노를 절대 잊지 않고 계속 접하며 둔감해지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총선으로 너무 바빠 최근에는 가지 못했지만 길거리를 다시 열심히 다닐 것이다. 사람들이 울고 있는 현장도 가고, 삼보일배하는 현장도 가고, 천막 농성장에도 가야 한다.”

정의당 강민진 대변인이 26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민중의소리 기자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0.02.26
정의당 강민진 대변인이 26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민중의소리 기자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0.02.26ⓒ김철수 기자

반짝 인재영입으로 ‘청년’ 이미지 사들이는 기성정당에
“정치적인 동료로서 청년 맞아들일 의중 있나” 비판
22대 총선 출마 여부는 “고민하고 있어”

정의당의 ‘청년 대변인’으로 선임된 강 대변인이 ‘청년’ 자를 떼고 상근 대변인이 된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강 대변인은 “다른 정당도 다 ‘청년’ 글자를 뗐으면 한다. (총선을 앞두고) 청년 대변인이 유행하면서 정당마다 청년 대변인을 임명했는데, 굳이 청년 대변인이라는 명칭이 따로 있다는 것은 그냥 ‘대변인’은 청년의 자리가 아니라는 것이지 않나. 정치권에서 청년의 자리를 한정하고 청년 대변인을 ‘인턴 대변인’처럼 보는 시선이 있다”고 지적했다.

최근 양대 정당의 인재영입에 대해서도 답답함을 표출했다. 그는 “그들이 청년을 영입하는 과정은 정치적인 비전을 공유하고 정치적인 동료를 맞아들이는 과정이 전혀 아니었다. 선거에서 세일링 할 수 있는 이미지를 사들이는 것, 그걸 사들이는 대가로 권력과 지위를 미끼처럼 던지는 것이었다”고 비판했다.

강 대변인은 “청년이기 때문에 이미지를 사들이는 방식으로 영입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 같아 화가 난다”며 “청년을 정치적인 동료로서 맞아들이기 위해 당도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야 하는데, 그런 생각이나 의중들이 없는 것 같다. 그 사람이 가진 이미지와 상징성을 사들이는 것밖에 관심이 없어 보였다”고 꼬집었다.

아직 피선거권이 없는 강 대변인은 이번 총선에는 나이가 ‘하루’ 모자라 출마하지 못한다. 21대 총선 입후보 자격은 1995년 4월 16일 이전 출생자까지인데 그는 그해 4월 17일에 태어났다. 4년 뒤 22대 국회에 도전할 생각이 있냐는 물음에 강 대변인은 “고민하고 있다”고 답했다. 그는 스스로가 사람들에게 신뢰를 주는 사람인지, 신뢰를 받는 사람인지 깊이 체감해보고 이를 확인한 뒤에 출마를 결심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치인은 개인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출마한다는 것은 국민 누군가를 대변하는 사람이 되겠다는 것인데 내가 어떤 자리에 가서 누구의 목소리를 내기 위해, 누구의 지지와 도움 속에 출마할 것인지 고민이 된다. 제가 대변해야 할 사람들이 진정으로 누구인지 찾아 나가야 할 것 같다.”

“자신이 유명하거나 잘나서 출마하는 사람도 있지만, 저는 그렇게 하고 싶지 않고 그럴 수도 없다. 제가 빚지고 싶은 사람에게 빚지고, ‘그들을 대변하겠다’는 약속을 스스로의 빚으로 생각하고 출마하고 싶다. 앞으로 계속 사람들을 만나고 현장을 다니면서 제가 사람들에게 신뢰를 줄 사람인지 보고 저를 신뢰해주는 사람이 있어야 출마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강 대변인은 누군가에게 ‘정치해서 만들고 싶은 세상이 뭐냐’는 질문을 받으면 “내가 나중에 존엄하게 살다가 죽을 수 있는 사회”라고 답한다고 한다. 그는 “한 때 사회가 일반적으로 말하는 안정적인 직장을 갖고, 보장된 미래를 향해 달려가는 삶을 선택하지 않았다는 불안감이 컸다. ‘안정된 삶’을 사는 것 자체가 지금 시대에 어려운 과제가 돼 많은 사람이 그걸 바라는 데 저는 그런 삶에서 쭉 빗겨나 살았다”고 말했다.

이어 “어쨌든 저는 사회가 생각하는 ‘평범한 삶’을 살 수 없는, 내지는 그렇게 못 살 사람이다. 때문에 저처럼 하고 싶은 일을 하고 평범한 삶을 살지 않더라도 나중에 최소한 굶어 죽지는 않을 사회, 얼어 죽지는 않을 사회, 나이가 들어 몸이 아프게 되더라도 ‘관리돼야 하는 몸’으로 여겨지지 않는 사회, 시설에 보내져야 할 귀찮은 존재가 아닌 마지막까지 사람답게 살 수 있을 거라 믿을 수 있는 사회, 끝까지 잘 살고 잘 죽을 수 있는 사회를 만들고 싶다”고 강조했다.

김도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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