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일상에서 많은 건축물, 장소와 마주합니다. 이것들은 대개 그 안에 어떤 의미를 담고 있지만, 바쁜 일상을 보내는 시민들은 무심코 지나치기 일쑤입니다. 올해 민중의소리에서는 여기에 관심을 두기로 했습니다. "시민들이 일상에서 만나는 건축물, 공간에는 어떤 사회적 의미가 담겨 있을까. 우리는 그 안에서 무엇을 생각하고 느낄 수 있을까"를 짚어보고자 합니다. 매달 한 번씩 『건축은 어떻게 아픔을 기억하는가』의 작가 김명식 건축가와 함께, 전에는 미처 알지 못했던 '공간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봅시다.
코로나19, 그래도 오늘은 3.1절입니다.
‘김구’문이 열립니다. 올라올라 독립문(100년 하늘문)이 보입니다. 파란 하늘에 하얀 구름, 플라타너스 나무 문양 바탕에.
‘독립운동 테마역’인 서울 지하철 3호선 ‘안국역 3.1운동 100년역’은 2019년 3.1독립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조성(2018.09.18, ‘안국역 다시 문 여는 날’)된 역입니다.
이 역을 설명하는 스테인리스 스틸 입간판에는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3.1운동역이자 대한민국 임시정부역이고 독립운동을 전하고 있는 역입니다.”
이곳은 3.1 운동 중심지였던 태화관, 인사동, 탑골공원, 북촌 등으로 이어지고, 인근에는 손병희, 여운형 선생 등 독립운동가의 집터가 있습니다. 안국역에서 독립선언서 배부터, 서북학회, 태화관터, 탑골공원 후문에 이르기까지, 독립운동의 파편적 기억을 더듬어 이어 보기에도 좋습니다.


3호선 안국역, 전철문이 열리고 내려선 승강장, ‘100년 승강장’엔 온통 독립이 가득합니다. 경복궁역 방향엔 3.1 운동가, 종로3가역 방향엔 임시정부요인, 그들의 얼굴과 어록이 새겨진 스크린 도어 ‘100년 인물문’이 열리면 말이죠. 우리에게 잘 알려진 독립운동가의 얼굴과 말은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찹니다.
아직 놀라지 마세요. 승강장에도 무명 독립운동가의 이름이 새겨진 8개의 하얀 기둥, ‘100년 걸상’이 있습니다. 이 곳은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여성독립운동가를 호명하고 있기도 합니다.


한 층 걸러 한 층을 오르면 우리 헌법의 역사를 담은 ‘100년 헌법’과 독립운동사를 강물로 구성한 ‘100년 강물’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리고 3.1운동 청색지도를 볼 수 있는데, 여기서 안국역 승강장에 표현된 상징적인 도형들과 3.1운동 시기 핵심 거점을 지도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는 독립운동가들의 얼굴과 역사를 100초 동안 볼 수 있는 미디어 기둥인 ‘100년 기둥’을 만나게 됩니다. 앞 쪽으로는 ‘100년 충전소’ 기둥이 있고, 뒤쪽으론 ‘100년 기둥’이 있는데, 둘러진 각 면에는 독립운동 역사와 접속하여 휴대기기를 충전할 수 있는 플러그(28개)가 있습니다. ‘100년 기둥’은 격동의 100년을 창조해 낸 이름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쌓아 올려 만든 팔각 기둥입니다. 팔도, 곧 삼천리 방방곡곡을 나타냅니다. 100초에 한 번씩 미디어가 작동합니다.
마지막으로 4번 출구로 오릅니다. 유리 천장에 새겨진 ‘100년 하늘문’은, 임시정부 상하이 청사 대문에서 따왔습니다. 이곳을 지나는 일에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문을 여는 일과 같은 의미를 부여하고 있습니다. 흥미롭게도 이곳의 디자인은 운현궁 용마루와 같은 높이에서 삼일대로로 뻗고 운현궁 귀마루의 움직임으로 북촌을 향하게 하여 주변과 관계하게끔 만들고 있습니다.

이곳은 ‘우리 시대 기억 공간’이 어떠해야 하는지 잘 보여주고 있는 곳입니다. 기억은 시간에 묶여 있는 것이기에, 시간이 되돌아오지 않는 것처럼 우리 곁에 붙잡아 둘 수 없습니다. 기억을 지속시키는 것은 공간의 힘에 의해 가능해집니다. 공간 한가운데 묶어 둔 기억은 그곳에 단단히 뿌리를 내리고 계속해서 자라게 됩니다.
‘100년 기둥’, ‘100년 하늘문’, ‘100년 승강장’, 무엇보다 여성독립운동가 기둥(걸상), 임시정부 관련 인물 등 독립운동가와 동승하게 되는 ‘안국역 3.1운동 100년역’은 일상 공간에서 독립운동 역사와 만나는 정거장입니다. 이곳은 고통스러웠던 역사의 장면과 아픈 우리의 과거사를 일상의 궤적 속 공간에 묶어, 우리 곁에 붙잡아 단단히 뿌리내려 자라나게 합니다.
코로나19로 사회적 거리 두기에 익숙해지는 시기입니다. 그러나 오늘은 3.1절입니다. 단단히 뿌리 내려 자라난 독립운동과 임시정부의 기억을 만나러 가지 않겠습니까?
스크린 도어에 새겨진 독립운동가의 얼굴과 어록, 100년 인물문이 열리면 독립운동가의 이름이 아로새겨진 ‘100년 걸상’에 앉아 온통 독립으로 가득한 승강장의 공간을 경험하러 가지 않겠습니까?
경복궁역 방향 전철에 오르면 3.1운동 관련 인물을, 종로3가역 방향으로 전철을 타면 임시정부 관련 인물 등 독립운동가를 만나게 됩니다. 이들과 동승하러 가지 않겠습니까? 오늘은 3.1절입니다.

김명식 건축가 · 건축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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