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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천엄마의 그림일기] ‘한국사람은 죽지 않는다’는 전설

시애틀의 전철역에서 내려 밖으로 나오니 노숙하는 사람들이 길 주변에 가득하다. 버스를 타면 한두 명 정도는 항상 노숙인이 같이 탔는데 상상도 못 할 악취가 났다. 그들은 오랜 노숙생활 때문인지 더러운 옷에 걷는 모습도 어기적거리며 불편해 보이고 버스는 당연히 무임승차를 했다. 버스 안 사람들은 익숙한 듯 코를 싸쥐지도 않고 덤덤한 표정으로 참고 앉아 있다. 포틀랜드보다는 시애틀의 노숙자가 훨씬 심각했는데 저녁시간 다운타운을 걸으면 한 블록에 한두 명은 앉아 있다. 식당에서 밥을 먹고 나오는 사람들에게 구걸하기도 한다. 한겨울에 큰 개까지 데리고 있어서 개도 사람도 무척 고생이 심해 보인다. 환경단체에서는 개를 데리고 노숙하는 것이 동물학대라고 개를 강제로 빼앗기도 한다는데 개랑 같이 있으면 아무래도 누군가 위협할 때 보호도 되고 함께 맞대고 있으면 체온유지에도 도움이 될 듯 했다.

미국에서는 노숙자를 하우스리스(Houseless)라고도 부른다. 집이 없어서 길거리에서 자더라도 홈(Home)이 없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도 가족이 있고 그들만의 커뮤니티도 있다. 혈연뿐 아니라 다양하게 연결된 커뮤니티도 가정이라고 생각하는 정서가 있다.

시애틀의 노숙인 텐트
시애틀의 노숙인 텐트ⓒ박지선

노숙자가 되는 가장 큰 이유는 의료보험의 미비와 낙후
자칫하면 파산하고 거리로 나앉게 돼

미국에서 노숙자가 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무엇보다 가장 큰 이유는 국가 의료보험이 없기 때문이다. 수많은 사람들은 간단한 병도 제때 고치지 못한다. 우리에게 미국의 정치, 행정, 사회복지에 대한 개요를 설명해주신 포틀랜드 주립대학 이정희 교수님도 응급실에 한번 실려 갔는데 5천불이 넘게 청구되었다고 한다.

“저는 몰랐어요. 병원에 도착하면 휠체어가 나오잖아요. 그 휠체어에 앉자마자 누군가 시간을 재는 거예요. 누가 와서 나를 밀었고 병실로 가서 침대에 몇 분 있었고 의자에 몇 분 있었고 .... ”

몇 분 몇 초는 돈으로 환산되어 응급실 하루에 5천불(우리돈으로 약 604만원)이라는 어마어마한 금액으로 청구되는 것이다. 나라에 의료보험이 없기 때문에 어느 직장에서 어떤 의료보험을 갖고 있는가에 따라 의료 혜택이 천차 만별이다. 혜택을 받는다고 해도 5천불 중 3천불이 청구되어 못 갚으면 파산을 하고 길거리에 나앉게 된다.

미국에서 노숙자가 되는 또 다른 이유는 사람들이 마약을 구하기가 매우 쉽다는 것이다. 한번 빠지면 헤어나오기 어려운 악성 마약에 우연히 빠져든 사람들이 비싼 마약을 구하기 위해 돈을 쓰다 보면 빚을 지고 가족관계도 깨진다. 설상가상으로 감옥까지 다녀오면 사회 관계망은 다 끊어져 있고 취직하기도 힘들어 노숙을 하게 된다. 미국이 일으킨 전쟁터에 나갔다 돌아와 트라우마 치유가 안 된 군인 출신들, 멀쩡해 보이는 외로운 고등학교 선생님도 흔하게 빠지는 게 마약이다.

전세는 없고 월세만 있는 미국에서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노동자들이 월세를 한 달이라도 내지 못하면 주인은 바로 Eviction(퇴거)회사에 연락해서 모든 집기를 다 들어낸다고 한다. 임차인이랑 말 한마디 하지 않고 야멸차게 몰아내는 법은 물론 개인의 재산보호를 위한 것이다. 한국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공공주택, 사회주택, 임대주택과 같은 제도와 혜택은 티끌만큼도 찾아볼 수가 없다고.

거리의 수많은 노숙자들은 개인의 문제도 있겠지만 그보다 더 큰 사회구조적 문제를 심각하게 대변하고 있다. 날씨가 좋아 많은 노숙자가 몰려 사는 캘리포니아에서는 노숙자가 설치한 텐트를 철거하는 행위는 불법이다. 사람의 권리를 침해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보행자의 안전을 위해 노숙자 텐트는 낮에는 철수하고 밤에만 설치하는 법이 만들어졌다고 한다.

새봄과 함께 이겨내길
새봄과 함께 이겨내길ⓒ박지선

체육관 가듯 병원 갈 수 있는 나라, 한국
새봄과 함께 코로나 바이러스도 이겨내길

우리는 미국에 연수하러 갔지만 한국으로 연수 오는 미국의 사회복지 전공자들은 오히려 한국의 대중교통, 의료보험, 사회복지 제도를 보고 깜짝 놀란다.

“한국 사람들은 안 죽을 것 같아요. 대중교통 이용하고, 신선한 채소와 과일을 먹고, 많이 걸어 다니고, 무엇보다 병원을 Gym(체육관) 다니듯이 다녀요”

아파도 마음대로 병원을 가지 못하는 이유로 미국의 마켓과 약국에서는 각종 영양제와 건강보조제가 몇 층 가득 진열되며 판매되고 있다. 이런 미국인들이 보기에 체육관 다니듯 가벼운 마음으로 병원을 다니는 한국인들이 신기할 만도 하다.

거의 한 달 넘게 우리나라를 공포에 몰아넣고 있는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처하는 모습도 경이롭다. 많은 양을 빠른 속도로 하는 확진검사도 놀라운데 심지어 드라이빙 스루 검사라니! ‘한국인은 죽지 않는다’는 전설처럼 새봄과 함께 건강하게 이겨내기를 간절히 바라고 바란다.

박지선 마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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