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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으로 세상읽기] 빛의 화가, 클로드 모네

1874년 4월 15일부터 5월 15일까지 파리의 카퓌신가 35번지에 있는 사진작가 나다르 투르니숑의 스튜디오에서 미술 전시회가 열렸습니다. 총 65점의 작품이 출품된 이 전시회의 주최자는 30명의 회원으로 구성된 ‘화가, 조각가, 판화가 등의 예술가를 포함하는 유한 협동조합’이었습니다.

전시회를 본 미술 평론가가 이들에게 붙여준 별명은 ‘인상파’였습니다. 조롱의 의미를 담은 것이었지만 젊은 화가들은 흔쾌히 이 별명을 받아들였지요. 그리고 이들은 이후 서양 미술사의 한 획을 긋게 됩니다. 그들 중에서도 클로드 모네(Claude Monet/1840~1926)는 ‘빛의 화가’라고 평가를 받을 정도로 빛에 따른 사물의 변화에 집중했는데, 특히 그의 특정 사물에 대한 연작은 그가 추구하는 것이 어떤 것이었는지를 명쾌하게 보여줍니다. 모네의 ‘생 라자르 역’은 연작은 아니지만 향후 그의 관심사를 보여주는 작품들입니다.

생 라자르역 The Gare Saint Lazare 1877 oil on canvas 54.3cm x 73.6cm
생 라자르역 The Gare Saint Lazare 1877 oil on canvas 54.3cm x 73.6cmⓒNational Gallery London
생 라자르역 The Gare Saint Lazare  877 oil on canvas 75cm x 105cm
생 라자르역 The Gare Saint Lazare 877 oil on canvas 75cm x 105cmⓒ오르세 미술관
생 라자르 역, 도착하는 기차  The Gare Saint Lazare Arrival of a Train 1877 oil on canvas
생 라자르 역, 도착하는 기차 The Gare Saint Lazare Arrival of a Train 1877 oil on canvasⓒFogg Museum

모네는 기차에서 내뿜는 수증기가 대기 속으로 퍼지면서 빛과 함께 주변의 풍경이 어떻게 어울리는지 보고 싶었습니다. 그는 생 라자르역에서 루앙으로 출발하는 기차가 30분만 늦게 출발한다면 그때의 빛깔이 가장 아름다울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무명 화가였던 그의 요청을 철도 회사가 들어줄 이유가 없었지요.

모네는 근사한 꾀를 냅니다. 그는 가지고 있는 옷 중에서 가장 멋진 것을 입고 금장식이 달린 지팡이를 들고 생 라자르역으로 가서 역장을 만납니다. 당시 모네의 뛰어난 외모와 패션 감각은 모델들이 감탄할 정도였습니다. 역장을 만난 모네는 자신은 화가인데 파리 북역을 그릴까 하다가 생 라자르역이 더 특색이 있어 이곳을 그리기로 했다고 말합니다. 모네의 외모를 본 역장은 직원들에게 플랫폼을 청소하게 하고 기차를 정차시킨 후 모네가 원하는 양의 수증기를 만들어 주기 위해 기관차에 석탄을 가득 채웁니다. 대 여섯 장의 작품을 그리고 난 후, 역장과 직원들의 배웅을 받으며 모네는 역을 떠납니다. 생 라자르역과 관련된 작품들은 그렇게 탄생했습니다. 가끔은 외모가 목적을 달성하는데 도움이 되기도 하는 모양입니다.

이후 등장하는 모네의 첫 연작은 ‘건초더미’ 시리즈입니다. 1883년 5월에 지베르니에 있는 집을 임대해 그곳으로 이사한 모네는 1888년부터 집 근처에 있는 건초더미를 그리기 시작하다가 1890년 후반부터 본격적으로 연작을 제작하기 시작합니다. 들판에 놓인 건초더미를 보는 각도와 시간, 계절을 달리하면서 빛에 따른 건초더미의 변화에 몰두했습니다.

건초더미 (늦은 여름)  Wheatstacks (End of Summer) 1890~1891 oil on canvas 60cm x 100cm
건초더미 (늦은 여름) Wheatstacks (End of Summer) 1890~1891 oil on canvas 60cm x 100cmⓒThe Art Institute of Chicago
한 낮의 햇빛 속 건초더미 Grainstacks in the Sunlight, Midday 1890 oil on canvas 60cm x 100cm
한 낮의 햇빛 속 건초더미 Grainstacks in the Sunlight, Midday 1890 oil on canvas 60cm x 100cmⓒNational Gallery of Australia
흰 서리 맞은 건초더미 Grainstack, White Frost Effect 1890~1891 oil on canvas 65cm x 100cm
흰 서리 맞은 건초더미 Grainstack, White Frost Effect 1890~1891 oil on canvas 65cm x 100cmⓒShelburne Museum

한 개 또는 두 개의 건초더미가 묘사된 작품들은 즉각 평론가들과 대중들의 호평을 얻었고 작품은 그려지는 즉시 좋은 가격에 판매되었습니다. 덕분에 모네는 임대로 살던 집을 자신 소유의 것으로 바꿀 수 있었고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모네의 정원’을 가꿀 수 있는 여력을 가지게 됩니다. 모델료를 지불하지 않아도 되는 건초더미는 지베르니에 대한 모네의 애정 표시이기도 했습니다.

‘건초더미’ 연작에 이어 모네는 ‘포플러 나무’ 연작과 ‘루앙 대성당’ 연작을 제작합니다. 그리고 젊었을 때 자신이 그림을 그렸던 곳을 찾아가 그곳의 풍경을 그리는데, 프랑스 노르망디와 런던의 국회 의사당 연작이 그런 작품들입니다. 목적은 건초더미 연작을 그렸을 때와 같은 것이었습니다. 이런 연작은 자신의 지베르니 정원에 있는 수련을 그리는 것으로 절정에 이릅니다. 집요하게 빛과 그 빛을 받는 대상의 관계에 천착했던 모네였습니다.

그러나 이런 그의 노력은 그에게 눈과 관련된 질병을 안겨 주었습니다. 사물에 반사되는 빛을 지속적으로 보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겠지요. 1912년 7월, 모네의 양쪽 눈에서 백내장이 발견되었습니다. 의사는 수술을 권유했지만, 모네는 수술 후 달라질지도 모르는 시력에 대한 불안함 때문에 수술을 거부했습니다.

마침내 1920년에 이르러서는 지인에게 보낸 편지에서 ‘실제 관찰이 아니라 기억에 새겨진 인상에 의존’해 그림을 그린다고 고백할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1922년 가을, 모네는 시력 검사를 받았는데, 왼쪽 시력은 10%만 남았고 오른쪽은 실명 상태였습니다. 다음 해 세 차례에 걸쳐 수술을 받았지만 청시증과 황시증의 부작용으로 고통을 받게 됩니다.

화가에게 눈은 육체의 한 기관 이상의 의미가 있지요. 자신의 일에 목숨을 건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지금 하는 일에 얼마나 목숨을 걸고 있을까요? 유명해질 생각이 없으니까 목숨을 걸 필요는 없다고요? 네, 맞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모네가 더욱 돋보이는 것이겠지요.

선동기 미술에세이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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