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최 다른 이야기를 할 수가 없다. 비말을 둘러 쓴 바이러스는 고작 2미터도 뻗치지 못하지만, 범람하는 정보에 휩싸인 불안은 온 지구의 대기를 휘감고 있는 탓이다. 생리적 혹은 사회적으로 야윈 이들부터 죽음에 이르게 하는 바이러스, 순식간에 황량해진 도시의 풍경, 생명과 구원의 마스크를 구하며 늘어선 음울한 행렬, 그것을 훑고 지나가는 카메라 워킹, 계시록을 탐독하고 신천지를 갈망하는 신도들의 등장, 세기말 디스토피아 영화의 전형들이 스크린이 아닌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다.
동굴 박쥐의 세포 어딘가 겨우 존재하던, 생물도 무생물도 아닌 반생물이 더할 나위 없이 선명한 이름 ‘COVID-19’를 얻고 인류를 위협하며 창궐한다. 이것은 전쟁이다! 여기 어디에 노동자가, 건강한 노동 이야기가 끼어들 틈이 있겠는가?

전장에서 필요한 것은 히어로, 영웅이다. 이제 누군가는 빌런이 될 것이니 남은 배역은 바로 히어로가 아닌가? 먼저 영웅 되기를 자처한 것은 정치였다. 결연한 단절과 배제를 주장한 이는 분무기 통을 들쳐 매고 횡단보도를 조준하며 익살스러운 영웅, 유령 사냥꾼을 오마주했다. 바이러스 종결자였던 과거를 덮고 지내다 조국의 위기 상황에 분연히 떨쳐 일어나 빌런 COVID-19에 대처하는 히어로 V3가 되고자 하는 이의 존엄은 30년 만에 땀에 젖은 수술복을 걸치고야 살아난다.
히어로는 평범한 노동자들보다는 낯설고 기이해도 의사라야 걸맞다. 위기의 순간에 드러나는 영웅 서사는 장사가 된다. 언론과 매체는 영웅 만들기에 집중한다. 헌신하는 의사와 간호사들의 영웅담과 더불어 전장에서 도망치는 배신자를 억지로라도 만들어 내야 한다.

이제 그만하자. 어이없게도 영화적이지만 이것은 현실이다. 우리에게 닥친 위기의 해결사는 히어로가 아니다. 현실의 빌런은 불완전한 유기체인 바이러스가 아니라 ‘악성’ 구조이며 맞설 수 있는 것은 공공‘선’이다.
대응이 저급할수록 위험은 증식한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는 생물학적 진화단계의 어디쯤에서 기원하는지도 알 수 없고, 제 것이라고는 한 가닥 RNA밖에 없어 독자 생존도 불가능하다, 생명의 맨 가장자리에 위치하는 바이러스가 숙주 세포에 틈입하여 숙주의 핵산을 주워다 짜 맞춰 백만 분의 일 센티미터도 되지 않는 유전물질을 복제하는 동안, 공공성이 결여된 각자도생의 위험 사회에 틈입한 차별과 배제는 천 만명 분으로 증식된다.
준비가 부족했던 사회에 경과와 결과를 알 수 없는 위험이 닥친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투여된 헌신은 존중받아야 마땅하다. 그러나 소진으로 귀결될 것이 뻔한, 오로지 개인들의 헌신으로 지탱되는 위기는 파국에 이를 때까지 반복될 것인가.
급박한 보건상의 위기에서 해당 직역의 부담 수준이 높아지는 것은 피할 수 없다. 의료자원을 공공성의 원칙에 따라 어떻게 배분하고 조정하는가가 직면한 보건의료의 위기상황을 헤쳐나갈 관건이다. 공공 의료 분야가 평시에 갖추어야 할 자원과 인력을 챙기고, 비상한 시기에 민간 의료 부문이 공공의 임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조정할 수 있는 시스템의 점검과 개혁이 뒤따라야 한다.

눈에 드러나고 조명되는 직역만이 문제가 아니다. D 레벨 방호복이 필요한 의료진이 있는가 하면 당장 마스크 한 장이 절실한 돌봄·간병 노동자들도 있다. 세계에서 몇 번째인지 다투는 진료 환경을 갖춘 대형 병원이 여태 국민안심병원에 이름을 올리지 않고 있는가 하면, 정부는 가장 취약한 환자와 어르신, 장애인을 돌보는 노동자들에게 마스크 한 장 지급하지 못하거나 지급하지 않고 있다.
지금 당장 그들의 노동을 들여다보고, 그들을 지켜야 한다. 질병에 맞서고 건강을 지키는 일상의 노동을 공공의 이름으로 건사하지 못한다면, 각별하고 영웅적인 헌신도 부질없는 일이 될 것이다. 의료 공공성의 문제, 정부의 조정능력은 위기와 더불어 부상했다가 위기가 수그러들면 가라앉는다. 공공성의 부재가 이 위기 그 자체다.
구체적 대안을 내놓지 못한 이 글은 코너의 제목처럼 고작 이야기일 뿐이다. 이제 이야기를 넘어 ‘서사’가 되고 ‘사회 구조’가 되어야 한다. 바야흐로 코로나 시대다. ‘콜레라 시대의 사랑’(남미 작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장편소설)은 수십 년이 지나서야 관습에 맞섰지만, ‘코로나 시대의 대응’은 지금 당장 관례와 구습에 맞서야 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의 숙주는 살아 있는 세포이자 공공성이 죽어버린 사회다.

류현철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소장·직업환경의학 전문의
기자를 응원해주세요
기사 잘 보셨나요? 독자님의 작은 응원이 기자에게 큰 힘이 됩니다. 독자님의 후원금은 모두 기자에게 전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