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보기
댓글보기
[서정민갑의 수요뮤직] 12년차 여성 뮤지션의 정점
빅베이비드라이버의 3집 앨범 '사랑' 커버 이미지
빅베이비드라이버의 3집 앨범 '사랑' 커버 이미지ⓒ사진 = 봄로야

예쁜 노래 선물을 받았다. 싱어송라이터 빅베이비드라이버(Big Baby Driver)의 세 번째 정규 음반 [사랑]이다. 2008년 아톰북(Atombook)에서 시작한 음악이 빅베이비드라이버의 3집으로 이어지는 동안 12년이 지나갔다. 그에게도 나에게도 시간은 공평하게 흘러갔다. 우리는 모두 아는만큼 모르는만큼 달라졌을 것이다.

이번 음반의 가장 큰 변화는 수록곡 전부를 한국어로 노래한다는 사실이다. 그동안 빅베이비드라이버의 음반에는 영어 가사 곡이 더 많았다. 그런데 이번 음반 수록곡 10곡은 모두 우리말이다.

음반에 담은 곡들은 하나같이 순하고 부드럽다. 그동안 포크 싱어송라이터로 활동해 온 이력답게 빅베이비드라이버는 나일론 기타, 밴조, 어쿠스틱 기타, 오르건, 일렉트릭 기타, 일렉트릭 피아노, 피아노, 콘트라베이스에 프로그래밍 사운드를 조금만 덧붙인다. 모든 노래에서 소리를 낮춘 연주는 배경이 된다. 빅베이비드라이버의 목소리는 일부러 앞으로 나아갈 생각이 없어 보이고, 내내 편안하고 차분하다. 심심하게 들릴 수 있는 노래들은 연주와 리듬의 변주로 다르게 물든다.

첫 곡 ‘사랑’에선 피아노와 나일론 기타, 밴조 연주의 삼중주가 부드러움과 떨림의 상반된 사운드를 만들어낸다. 두 번째 곡 ‘내 마음은 밀림’에서는 일렉트릭 기타의 울림에 어쿠스틱 기타의 리듬감이 번갈아 이어지면서 다른 곡들과 분명한 차이를 드러낸다. 기분 좋은 설렘을 느끼게 하는 곡이다. ‘고양의봄(순이에게)’에서는 일렉트릭 기타가 빠지고 나일론 기타와 보컬의 이중주가 곡을 지배한다. 여기에도 프로그래밍 사운드는 뿅뿅거리는 듯한 소리를 더해 들뜬 마음을 적절하게 대변한다. 깔끔한 편곡이다.

반면 ‘둘이서 세 잔’은 리드미컬한 피아노가 곡을 주도한다. 흡사 바에서 라이브 연주를 들려주는 것처럼 흥겨운 연주는 다시 이전 곡을 잊게 한다. 간주에서 가세한 일렉트릭 기타의 맛은 취흥을 배가시킨다. ‘농담’에서는 프로그래밍한 사운드가 나일론 기타와 함께 넘실거리며 낭만적인 분위기를 부풀린다. 최소화 한 악기를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감각이 계속 돋보인다.

빅베이비드라이버는 ‘오직 그대만이 말할 수 있죠’에서도 같은 편성으로 정감 있는 사운드를 만들어낸다. ‘어둑어둑해진 말로’에서 잔잔한 리듬에 실은 노래는 노래 속 어둠만큼 젖어든다. ‘열두 겹 이불 아래 완두콩’은 앙증맞고, ‘내게 말해요’에서 반짝이는 일렉트릭 기타 연주는 음악의 아름다움을 완성한다. ‘사랑 2’에서는 보컬과 나일론 기타, 프로그래밍 사운드가 다시 편안하고 고즈넉하게 밀려온다.

노랫말로 표현한 재치 있고 사려 깊은 사랑의 이야기와 몽글몽글하고 소박한 사운드는 완벽하게 맞아 떨어진다. 기타를 활용하면서 프로그래밍한 사운드를 더해 따스하고 순수한 느낌을 빚어내는 음악은 노랫말이 지향하는 사랑의 태도를 자연스럽게 표현한다.

빅베이비드라이버는 상대를 사랑한다고 열띠게 고백하거나 압박하지 않는다. 당신이 나와 달라서 힘들다고, 왜 나를 내가 원하는만큼 사랑하지 않느냐고 탓하지 않는다. 그에게 사랑은 “내 마음에 언제나 있는 미움 같은”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자신의 마음이 “얽히고설키기가 고르디우스의 매듭만큼 단단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어쩌면 난 밀림의 왕/내 마음은 일 년 삼백육십오일 정글북”이라고 재치 있게 표현할 줄 안다. 이 유머가 가능한 것은 자신의 마음에만 사로잡히지 않고, 그 마음을 떨어져 볼 줄 아는 여유가 있기 때문이다. 그만큼 다정하고 상대를 배려하기 때문이다. 고양이와 이야기를 나누며 “내게 말하네/나를 믿어”라고 교감할 수 있는 이유이다.

“그대로 그대가 난 좋아요/애써 달려가려 말아요/어차피 우린 원을 그리며 돌고 돌아 거기로 가잖아요”라는 ‘둘이서 세 잔’의 노랫말과 제목 역시 무리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존중하는 마음의 표현이다. 그래서 “너의 농담을 길기만 하고 재미도 없구나”라고 상대의 무관심을 지적하는 노래에도 가시가 없다. “나는 그대의 마음을 알고 싶어요”, “내게 뭔가 바라고 있는 게 있다면/고민하지 말고 말해보아요/그다음 일은 다음이니까”, “하지만 그대의 마음은 그대의 것이죠/누구도 함부로 아는 체할 수는 없죠”라고 이야기 하는 ‘오직 그대만이 말할 수 있죠’의 태도는 얼마나 성숙한가. 상대의 마음이 어떤지 헤아려보지 않고, 자신의 마음을 터트리기 급급한 노래들과는 완전히 태도를 달리하는 곡은 제각각 다른 사랑의 본질과 태도 가운데 가장 윗길에 서 있다.

관계가 잘 풀리지 않을 때나 상대가 자기 마음 같지 않을 때에도 “어둑어둑해진 말로 널 불러 봤어/가만히 나도 몰래 달도 몰래”라고 노래하는 마음 역시 사랑이다. 특히 ‘열두 겹 이불 아래 완두콩 ’의 설렘은 살갑기만 하다. 그리고 ‘내게 말해요’에서 경쾌하고 부드러운 권유를 표현하는 “접힌 종이처럼 들어줄게요”, “두 눈을 살며시 감고서/고양이 수염처럼 들어줄게요”라는 표현은 사랑 노래의 품격과 재미를 동시에 획득한다. 빅베이비드라이버는 사랑의 쓸쓸함을 표현할 때도 “안개처럼 사라져버렸네”라고 서정적으로 표현한다.

싱어송라이터 빅베이비드라이버
싱어송라이터 빅베이비드라이버ⓒ사진 = (c)K.CHAE

노랫말에 담은 인식의 깊이와 표현의 개성만큼 노래의 사운드와 멜로디가 탁월해, 듣는 내내 지루하지 않고 한순간도 마음이 곤두서지 않는다. 소리와 태도가 일치해 소리로 그린 인식과 태도에 공감하고 매료된다. 사랑이 미움의 시작이 되고, 폭력의 이유가 되는 시대에 빅베이비드라이버는 사랑이 갖추어야 할 부드러움과 따스함을 충분히 상기시킨다. 사랑하기 때문에 마음대로 해도 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자신의 마음만큼 상대의 마음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이 사랑이라고 속삭인다. 이기적인 마음에 베인 상처를 감싸는 붕대 같은 노래는 지금처럼 흉흉하고 불안한 시절, 충분한 위로가 된다. 노래를 듣는 것만으로도 환한 봄을 맞는 것처럼 마음이 녹아내리고 살랑살랑 달콤해진다. 사랑의 기운이 넘치는 사랑스러운 음반이다.

빅베이비드라이버가 또 한 번 좋은 음반을 만들어냈다. 이 음반을 빅베이비드라이버가 만든 음악의 성취라고만 여기지 않고, 12년차 여성 뮤지션이 만들어낸 음악세계의 정점이라고 해도 좋지 않을까.

서정민갑 대중음악의견가

기자를 응원해주세요

기사 잘 보셨나요? 독자님의 작은 응원이 기자에게 큰 힘이 됩니다. 독자님의 후원금은 모두 기자에게 전달됩니다.

이시각 주요기사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카카오스토리2
닫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