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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민보] “김복동 할머니는 수요시위 ‘연예인’, 인생은 할머니처럼 살아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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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프 간다, 엠티(MT) 간다, 친구 집에서 자고 온다 등 온갖 변명을 해가며 집에서 빠져나와 밤새 소녀상 옆을 지켰어요. 그러다 나중에는 대학생 및 시민단체가 많이 모여준 덕에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나갈 수 있게 됐죠.”

2016년 겨울, 당시 21살이던 이태희(25) 씨는 부모님에게 “캠프 간다”라고 말한 뒤 집에서 나와 밤새 진눈깨비를 맞으며 소녀상을 지켰다. 한일 합의에 일본대사관 앞 소녀상 철거 조항이 있었기 때문이다. 외딴 섬처럼 앉아 있는 그에게 하나 둘 씩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고, 그렇게 소녀상을 지키기 위한 모두의 마음이 60일간 이어졌다.

‘평화나비 네트워크’는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의 정의로운 해결과 전쟁 없는 평화로운 세상을 위해 지난 2013년 대학생들이 설립한 연합 동아리다. 강릉, 경기, 서울, 원주, 제주, 충청 등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평화나비 콘서트’, ‘평화나비 런’ 등의 행사를 주관하며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촉구한다.

이태희 대학연합 동아리 평화나비 네트워크 전국 대표가 12일 서울시 용산구 평화나비네트워크 사무실에서 민중의소리 기자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0.03.12
이태희 대학연합 동아리 평화나비 네트워크 전국 대표가 12일 서울시 용산구 평화나비네트워크 사무실에서 민중의소리 기자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0.03.12ⓒ김철수 기자

지난 2019년 부터 평화나비 네트워크 6기 전국 대표로 활동해온 이태희 씨 역시 시작은 거창하지 않았다. 여타 대학생과 다를 바 없이 대외활동의 일환으로 평화나비 네트워크 서포터즈에 참여했다. 일회성으로 끝내려던 마음은 점점 작아져갔다. 여성으로, 국민으로 살아가며 절대 외면할 수 없는 문제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2015년 ‘평화나비콘서트’ 서포터즈에 참여한 게 시작이었어요. 처음에는 가벼운 마음으로 참석했죠. 그런데 세미나와 수요시위 등에 참석하며 피해자 분들을 만나다보니 제가 이 문제에서 떠날 수 없음을 느꼈어요. 그 분들과 연대해야겠다는 결심이 들었죠.”

이태희 대학연합 동아리 평화나비 네트워크 전국 대표가 12일 서울시 용산구 평화나비네트워크 사무실에서 민중의소리 기자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0.03.12
이태희 대학연합 동아리 평화나비 네트워크 전국 대표가 12일 서울시 용산구 평화나비네트워크 사무실에서 민중의소리 기자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0.03.12ⓒ김철수 기자

인권 문제가 경제 보복으로… 편협한 태도에 분노
‘노 아베, 노 재팬’ 아닌 ‘노 아베’
한국 시민, 정치 참여도 높고 관심 많아… “대단하다”

절정은 한일 합의였다. ‘합의’라는 단어 아래 입막음이 있었다. 자발성만 인정된다면 모든 게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행동하는 일본의 태도가 그를 분노케 했다. 무엇보다 피해자가 원하는 해결점이 아니라는 사실이 가장 불합리했다.

“우리가 그렇게 열심히 해온 활동을 정부 측에서 좌절시켰다는 분노가 일었어요. 당시 외교부차관이 할머니들을 뵈러 갔는데, 이용수 할머니가 ‘너희가 정말 우리나라 외교관이 맞느냐’라고 외치셨어요. 마음이 아팠죠.”

한일 합의와 강제징용 배상 판결에 대한 보복이 경제로 이어진다는 점도 매끄럽지 않다고 지적했다. 아베 정부가 경제적인 사안과 인권 문제를 편협하게 엮었다는 것이다. 이 같은 흐름을 통해 모든 사안을 ‘반일’ 감정으로 귀결되게끔 유도한다고 꼬집었다. 이태희 씨는 성노예제 문제가 ‘반일’만으로 낙인찍히는 게 싫다고 말했다.

“할머님들이 항상 말씀하셨던 게, ‘일본 정부가 나쁜 거지, 일본 사람이 나쁜거냐’ 였거든요. 반일이 아니라 제대로 과거를 청산하고, 전쟁에서 피해를 입은 여성들과 사회적 약자들의 인권 보호를 위해 활동하자는 건데 항상 성노예제 문제는 반일 이야기로 끝을 맺는 경우가 많다고 생각해요.”

소녀상의 이전을 어떻게든 막고 싶어 무작정 소녀상 옆에 앉아 추운 겨울날을 지샜다. 그들에게서 꽤 오래 자리를 지키고 있다는 게 티가 날 때 쯤엔 택시에서 내려 ‘무엇을 하고 있냐’ 물어보는 사람도 있었다. 시민단체와 시민들이 참여하기 시작했다. 가족 단위로 온 시민들에겐 교육의 장이, 청소년들에겐 조건 없는 참여의 장이 됐다.

이태희 씨는 이와 함께 일본 불매 운동을 언급하며, 국민의 높은 정치 참여도에 놀랐다고 말했다. ‘사람들이 이렇게까지 불매운동을 하다니 대단하다!’라고 감탄했다고. 국민들이 정치적 사안에 관심이 많고, 또 정치에 참여하고 싶은 욕구가 드러났기 때문이다.

“불매운동 당시 국내 슬로건이 ‘노 아베, 노 재팬’이었잖아요. 저희는 ‘노 아베’를 열심히 밀었거든요(웃음). 문제의 핵심을 짚어야지 그와 관련된 모든 것을 혐오하는 건 아쉬워요. 하지만 너무 너무 이해는 돼요(웃음). 대단했죠.”

이태희 대학연합 동아리 평화나비 네트워크 전국 대표가 12일 서울시 용산구 평화나비네트워크 사무실에서 민중의소리 기자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0.03.12
이태희 대학연합 동아리 평화나비 네트워크 전국 대표가 12일 서울시 용산구 평화나비네트워크 사무실에서 민중의소리 기자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0.03.12ⓒ김철수 기자

근본적 해결 위해선 일본 시민과 연대해야
교육 미흡한 탓, 일본 사회 정치적으로 무관심해

일본 정부가 ‘반한’ 감정을 조장하는 탓에 일본인과의 연대도 쉽지 않다고 했다. 그가 세미나에서 만나고 들은 일본 대학생들은 대체로 정치에 무관심하다고. 하지만 국제적 인식을 개선하고 목소리를 키우는 데는 일본인과의 연대가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언급했다.

“정의기억연대(정의연) 요청으로 종종 일본 대학생들과 간담회를 할 기회를 받아요. 저희가 항상 물어보거든요. 일본 대학생 단체 중 역사와 관련한 사회 활동을 하는 단체가 있냐고요. 유사한 곳을 딱 한군데 발견했어요. ‘피스나이트나인(PeaceNight9)’이라고 일본 평화헌법 제9조 개헌 반대 목소리를 내는 곳이죠.”

“하지만 대부분 이야기를 들어보면 많은 대학생들이 모르고, 알아도 ‘반일을 한다’ 정도로 인식해요. 교육이 미흡한 탓이죠. 한국 투어를 와서 처음 알게 되는 경우도 많아요. 또 이런 정치적인 사안에 나서고 싶어하지 않아요. 일본 내에서 제대로 된 뉴스가 보도되지 않으니 사람들도 뉴스를 안 보고, 점점 이슈에서 멀어지는 경향이 있더라고요.”

일본인과의 연대가 무엇보다 중요한 이유는 이 일이 비단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전쟁의 이름 아래 희생된 수많은 여성과 사회적 약자는 국가를 불문하고 존재해왔고, 이는 한 국가가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저희가 한국에서 아무리 아베 퇴진을 외쳐도 바뀌는 건 별로 없으니까요. 일본 투표권이 있는 것도 아니고… 이럴수록 더 일본 국민들과 연대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반일적으로 몰고 갈 게 아니라, 우리가 비판해야 할 대상을 명확하게 설정해야 하는거죠.”

“한국에서도 활동하는 데 한계가 있고, 당연히 저희도 일본 대학생들과 함께 하고픈 마음이 크지만 정말 (단체가) 없더라고요. 저희도 찾아내고 싶어요(웃음). 일본까지 가서 만들어야 하나, 이런 고민도 해요. 함께하면 더 큰 흐름과 행동을 만들 수 있을텐데, 그런 점은 항상 아쉽죠.”

이태희 대학연합 동아리 평화나비 네트워크 전국 대표가 12일 서울시 용산구 평화나비네트워크 사무실에서 민중의소리 기자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0.03.12
이태희 대학연합 동아리 평화나비 네트워크 전국 대표가 12일 서울시 용산구 평화나비네트워크 사무실에서 민중의소리 기자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0.03.12ⓒ김철수 기자

“인생은 김복동 할머니처럼 살아야겠다고 생각했죠”
캐릭터 뚜렷한 할머니들, 같은 길을 걷는 어버이다

김복동 인권운동가는 수요시위 참석자 및 평화나비 네트워크에서도 ‘연예인’이었다. 연로한 나이에도 일본 대사관을 향해 쏟아내는 에너지는 우레가 치는 듯 했다. 그는 수요 시위에서 일본군 성노예제 피해 할머니들과 함께하며 ‘인생은 할머니처럼’이라는 신조를 얻었다고 한다.

“캐릭터가 정말 뚜렷하세요. 할머니들 보면, 수요시위에서는 정말 투쟁꾼 같거든요. 김복동 할머니나 이용수 할머니는 윽박지르고 욕하는 등 엄청난 투사의 모습을 보여주시죠. 정의연 측에서 할머니 생신잔치나 어버이날 저희를 불러주세요. 그렇게 해서 가면 또 투사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인간적인 면모가 넘치시죠. 노래도 잘 하시고 귀여우시고, 김복동 할머니는 패물을 정말 좋아하세요(웃음). 같은 길을 함께 나아가고 있는 또 다른 어버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지난 1월 김복동 인권운동가가 세상을 떠난 뒤, 이태희 씨는 마치 그의 투지를 물려받기라도 한 듯 정신이 번쩍 들었다고 말했다. 갈피를 잃은 느낌에 슬프고 혼란스럽기도 잠시, 그의 빈자리를 채워야 한다는 사명감과 의지가 차올랐다.

“김복동 할머니는 항상 건강하실 것 같고, 병에 걸려도 다 털어내고 일어날 수 있으실 것만 같았거든요. 할머니 돌아가신 뒤 ‘어떻게 하지?’라는 막막함을 느꼈어요. 앞에 비치던 갈피를 잃은 느낌이었죠. 하지만 이내 할머니를 잘 보내드려야겠다는 생각에 털고 일어났어요. 그동안 고생 많으셨으니 우리가 더 열심히 활동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죠.”

이태희 대학연합 동아리 평화나비 네트워크 전국 대표가 12일 서울시 용산구 평화나비네트워크 사무실에서 민중의소리 기자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0.03.12
이태희 대학연합 동아리 평화나비 네트워크 전국 대표가 12일 서울시 용산구 평화나비네트워크 사무실에서 민중의소리 기자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0.03.12ⓒ김철수 기자

“이 땅의 가장 아픈 곳에 내려앉고 싶다”
연합동아리 체제 유지하되 비영리 단체로 나아가는 게 목표

김복동 인권운동가의 뜻을 이어받은 평화나비는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뿐만 아닌 베트남 민간인 학살 문제 등에 함께 목소리를 내고자 한다. 아울러 이태희 씨는 평화나비 네트워크가 다만 대학생 연합 동아리에만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닌, 의제를 확장해 ‘이 땅의 가장 아픈 곳’에 내려앉는 게 최종 목표라고 밝혔다.

“평화나비는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를 중요안으로 다루지만, 사실은 다른 슬로건도 있어요. ‘이 땅의 가장 아픈 곳에 내려앉는다’라는 것이죠. 수요시위가 연대의 장이라고 느꼈던 게, 주최가 굉장히 다양하더라고요. 노조에서 열기도 하고 사회 단체, 천주교, 불교 등 여러 종교 사회 활동 단체들이 연대하는 자리를 가져요. 그런 것과 마찬가지로 일본군 성노예제 뿐만 아니라 가장 아픈 곳에 있는 청년, 노동 문제, 세월호 유족의 아픔 등에 함께 연대해가며 의제를 확장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평화나비 내부를 다지고 지역 확장도 얘기하고 있어요. 평화나비가 서울, 경기, 충청, 강릉, 원주, 제주 등에서 활동 중이고 전남이나 부산, 광주 지역은 활동을 멈췄거든요. 평화나비 이름으로 비영리 단체를 준비 중에 있어요. 저희가 다 대학생이다보니 사업과 내실다지기를 한 번에 하는 게 쉽지는 않더라고요. 하지만 연합동아리라는 체제를 잃진 않되, 동아리에만 멈춰 있고 싶진 않아요.”

허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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