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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나의 한 사람 이야기] 한 씨의 무릎뼈

수년 전 빈곤한 사람 몇 명을 집중면담한 적 있다. 생애사쓰기 수업을 진행했던 복지관에서 추가로 진행한 사업이었다. 내가 맡은 일은 대상자를 면담하고 구술을 정리해 사회복지 지원이 필요한 내용을 찾아내는 거였다. 다섯 명의 대상자 중, 세 명은 복지관에서 무료급식지원 봉사를 하는 사람들이었다. 요일별로 번갈아 가며 나와 점심시간에 무료급식으로 나갈 음식을 조리하고 배식도 하고 설거지까지 했다. 다섯 명의 공통점은 봉사활동을 하며 활력을 되찾았다는 것이었다. 면담 대상자로 선정한 것은 복지관 측이라 비슷한 사람들로 묶었는지도 모르겠지만, 내가 만난 다섯 명은 우울과 무력감을 봉사활동으로 극복하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중, 칠순을 바라보는 한 씨는 평생을 열심히 살아온 티가 많이 나는 사람이었다. 봉사활동을 하니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며, 처음엔 신 나게 기쁜 이야기를 했다. 집에서 멍하니 있으면 뭐하느냐, 여기 나와서 일을 하니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다, 세상에서 내가 쓸모 있다는 걸 확인하는 게 정말 좋다며, 발랄하게 말했다.

긍정적인 사람이었다. 글을 보고 쓰는 것도 좋아하지만, 맞춤법이나 띄어쓰기가 어려워서 자기 마음을 표현할 수 없는 게 아쉽다고도 했고, 많이 배우지 못했지만, 이 나이 먹고 치매에 걸리지 않은 것만 해도 좋은 일이라고 했다. 임대아파트를 얻어서 이사한 것도 감사한 일이고, 국민연금과 노령연금도 받고 있어서 좋다고 했다.

밖으로만 나돌던 남편, 기울어진 가세
임대주택 입주 앞두고 연락마저 끊기고
사라진 남편 대신 속속 나타나는 그의 빚

한참 긍정적인 이야기를 하고 난 다음 살아온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어릴 때 엄마가 집을 나간 이후, 아버지가 새어머니를 만나 아들 넷을 낳았다. 새어머니하고도 관계가 나쁘지 않았고 위로 오빠도 둘 있어 다복하게 지낸 편이었다. 이십 대 중반에 중매결혼을 했는데 남편은 부잣집 외아들이었다. 사람 좋고, 아는 것도 많고, 멋을 아는 사람이었다. 결혼하고 집에만 있으려니 답답해서 뭔가를 하고 싶었지만, 남편이 허락지 않아 전업주부로 지냈다. 남편은 재주가 많았지만, 취직을 하지 않았고 가끔 장사를 한다고 지방으로 떠돌았다. 한 씨는 남편 때문에 바깥 활동도 못 하게 됐다. 가세는 점점 기울었다. 하나뿐인 아들 노는 것만 쳐다보고 살았다. 먹고 사는 일이 막막한데 IMF가 지나가고 마침 임대아파트에 입주할 수 있는 자격이 생겼다.

눈이 오는 날이었다. 임대아파트 들어갈 자리를 보고 입주 날짜를 정했는데 입주 두 달을 남겨놓고 남편이 연락이 되지 않았다. 살았는지 죽었는지도 알 수 없었다. 한 씨는 어떻게든 그 아파트를 잡아보겠다고 발을 동동 굴렀으나, 경제활동을 해 본 적 없는 사람에겐 막막한 일이었다. 남편이 사라지고 나서 남편이 가져다 쓴 빚이 남편 대신 나타나기 시작했다. 은행 대출에 사채까지 쓰고 한 씨가 연대보증을 선 것도 있었다. 한 씨는 전혀 모르는 일이었다. 아파트를 놓치게 생겼다고 하니 이웃이 영등포 어디에 가면 카드깡을 해준다고 하길래 가지고 있던 신용카드를 모두 가져가 1천만 원을 결제하고 800만 원을 수중에 넣어 들어왔다. 남편이 만들어놓은 빚 중에 급한 것을 일부 갚고, 이사비용을 쓰고, 500만원을 임대보증금으로 넣어 아파트에 들어갔다. 그때부터 한 씨는 돈을 벌기 시작했다. 자격증도 없고, 내세울 학력도 없이, 전업주부로 살던 여성이 할 수 있는 노동의 범위는 그리 넓지 않다.

서울 용산구 쪽방촌에서 한 노인이 폐지를 수집하고 있다.
서울 용산구 쪽방촌에서 한 노인이 폐지를 수집하고 있다.ⓒ뉴시스

아파트 소독, 빌딩 청소, 식당 설거지, 밤 까기...
무릎뼈 갈아 넣어 빚 다 갚고, 이혼도 했다
인공관절도 해야 하는데 돈도, 일할 곳도 없어 슬퍼

처음에는 아파트 단지에 소독하는 일을 시작했다. 소독 일을 할 때 눈이 맵고 따끔거렸는데 그때 시력이 나빠진 거 같다고 했다. 그다음엔 아파트 청소일도 했다. 아파트 청소는 오후 4시에 끝나니까, 끝나자마자 식당의 저녁 일을 다녔다. 주로 설거지를 했고 찬모도 했다. 어느 식당에서는 주방장도 했다.

조금이라도 빈틈이 생기면 밤을 받아다가 밤 까는 부업을 했다. 동네에 밤 까는 사람들이 많았다. 아파트 청소를 하다가 빌딩 청소로 자리를 옮기게 되었다. 한 씨가 처음 일할 때만 해도, 빌딩에서 직접 고용해서 마포의 한 빌딩에서 10년을 일했다. 화장실 한편에 휴게실을 쓰는, 그런 자리였지만 회사에서 직접 고용을 하고 월급도 또박또박 나와 좋았다고 했다. 새벽에 남들보다 한 시간 일찍 나가 청소도구를 닦아 놓고 반질반질하게 쓰레기통도 닦아 놓으면 보람차고 좋았다. 관리직원들이 일 잘한다고 칭찬할 때도 뿌듯했고, 사무실 여직원들이 안 쓰는 물건을 가져다주기도 해서 살림살이에 보탬이 많이 되었다. 명절이면 선물도 받았는데, 사무실을 쓰는 젊은이들은 자기 취향이 아니라고 치약이며 샴푸를 그냥 주기도 했다.

두 번째 빌딩에서 9년을 일할 때, 관절염이 점점 심해져 ‘이제 그만 쉬고 싶다’ 싶을 때, 해고를 당했다. 시대가 바뀌면서 빌딩에서 직접 고용을 하지 않았고 두 번째 빌딩에서 용역회사 소속이 되었다. 청소용역사가 바뀌면서 가장 나이가 많은 한 씨가 해고대상이 된 것이다.

“일할 때는 내가 아픈 티를 내면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가 될까봐, 대청소 있는 전날은 미리 병원 가서 약 받고 주사도 맞으면서 버텼어요. 일할 때는 쉬고 싶고, 영화도 보고 싶고, 늦잠도 자고 싶었는데 막상 일이 없으니까 잠도 안 오고, 하고 싶은 것도 없어요. 나는 더 일할 수 있는데, 나는 평생 내가 벌어서 먹고살았는데, 다리도 이만하면 괜찮은데, 일할 데가 없으니 우울해지는 거 같아서 내가 속이 많이 상하고...”

한 씨는 눈물을 참으려고 했으나 줄줄 흘러나왔다. 눈물이 치솟는 눈자위를 마디가 두꺼운 손으로 꾹꾹 눌러가며 눈물을 닦았다. 매니큐어도 곱게 바르고 화려한 반지도 끼었지만 20년 넘게 노동으로 먹고 산 흔적이 가득한 손이었다.

빌딩 바닥을 청소하는 노동자 너머로 뿌연 도심이 보이고 있다.(자료사진)
빌딩 바닥을 청소하는 노동자 너머로 뿌연 도심이 보이고 있다.(자료사진)ⓒ뉴시스

“관절염 4기라고, 인공관절도 해야 되는데, 그 돈이 어디서 나나 싶고..”

나는 어떤 관절전문병원에서는 저소득층 상대로 무료로 인공관절 수술을 해주기도 한다고 전하며 복지사에게 꼭 얘기를 해두시라 권했다. 한 씨가 눈물을 흘린 것은 단지 생활이 곤궁해져서가 아니었다. 내가 쓸모없는 인간이 되었다는 게 서러웠고, 자기 하나쯤 없어도 빌딩 청소가 잘 된다는 것도 아쉬웠다. 결국, ‘나 하나쯤 없어도 되는 세상’이었다는 걸 뒤늦게 깨닫게 되어 허무하다고 했다.

한 씨는 자신의 무릎뼈를 갈아 댄 노동으로, 남편이 떠넘긴 빚을 모두 해결했고, 법무사 사무실을 찾아가 소송을 걸어 이혼도 혼자 했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에게 폐 끼치지 않으려고 부족하다 말하지 않았다. 한 씨는 실컷 눈물을 쏟아낸 뒤 그래도 자원봉사를 꾸준히 하면 또 일자리가 생길 거라 생각한다며, 돌아오는 봄에는 꼭 노래교실도 신청할 거라고 했다.

복지사가 가져다 놓은 간식을 한 씨의 가방에 한 움큼 집어넣으며 그를 배웅했다. 면담실을 떠나는 그의 무릎이 꺾어질 듯이 휘어 있었다. 그와 헤어진 지 3년, 코로나19로 또 얼마나 많은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었을지, 가늠해 보는 것조차 힘겹다.

이하나 집필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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