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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민갑의 수요뮤직] 2020년의 봄 노래

봄이 왔는데 봄 같지 않다. 코로나19 때문이다. 세상은 멈추거나 사라진 듯 하다. 2020년을 통째로 리셋하고 싶을 정도다.

학교는 개학을 계속 미루고, 공연과 만남은 죄다 취소다. 큰 회사는 집에서 일하라 하고, 작은 회사 노동자들은 변변한 보상도 받지 못한 채 일을 쉬어야 한다. 코로나19가 만든 고용한파는 일시휴직자를 늘려 저소득층의 삶을 벼랑 끝으로 밀고 간다. 격무에 시달린 배달노동자가 죽었다. 죽음은 늙고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에게 가장 먼저 찾아온다. 붐비던 거리에 사람이 없고, 가게들은 개점 휴업 상태다. 도미노처럼 밀려드는 코로나19의 파장 앞에 도망갈 곳이 없다. 공포와 혐오과 편가르기가 유령처럼 떠도는 2020년의 봄은 잔인하다.

예전 같으면 봄노래를 한참 들을 시즌이다. 버스커버스커의 ‘꽃송이가’와 ‘벚꽃엔딩’을 들으며 남쪽부터 밀려오는 꽃소식에 흠뻑 젖을 시간이다. 봄을 맞으러 남도로, 제주도로 떠나 흐드러진 봄꽃 아래 사진을 찍고, 소셜미디어에 올릴 때다.

완연한 봄날씨를 보인 7일 오후 서울 여의도 윤중로 일대에서 열린 벚꽃축제를 찾은 시민들이 봄의 정취를 만끽하고 있다.
완연한 봄날씨를 보인 7일 오후 서울 여의도 윤중로 일대에서 열린 벚꽃축제를 찾은 시민들이 봄의 정취를 만끽하고 있다.ⓒ김슬찬 기자

그런데 코로나19는 봄마중 나가는 일조차 두렵게 만들어버렸다. 올해는 코로나19가 봄을 유예시켜 버렸다면, 내년에는 또 다른 바이러스와 기후위기가 봄을 잊게 만들지 모른다. 지구는 갈수록 더워지고 계절은 여름과 겨울로 양분되는 추세다. 이대로 간다면 봄이 사라지고 가을이 사라지는 일도 불가능하지 않다.

3월이 되고, 4월이 되고, 5월이 되어도 봄노래를 듣지 않는 날이 찾아올지 모른다. 봄 노래를 잊고, 봄의 감각을 모르는 세대가 찾아올지 모른다. 해가 천천히 길어지고, 얼어붙었던 흙이 순하게 부드러워지고, 마른 뼈 같은 가지에 연두빛 새살이 돋아나다 일순 꽃을 터트리는 신비로움이 거짓말처럼 느껴질지 모른다. 봄의 감각을 애써 설명해야 하고, 인위적으로 체험해야 하는 시간이 찾아올지 모른다.

그 때가 되면 버스커버스커의 노래나, 양희은의 ‘하얀 목련’ 같은 노래는 다시 만날 수 없는 옛날 봄을 그리워하는 늙은이들의 노래가 되어버릴지 모른다. 이정선의 ‘봄’이나 김정미의 ‘봄’을 듣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십센치의 ‘봄이 좋냐?’를 들으며 킬킬 대던 일조차 까마득해질 수 있다.

사실 봄 노래는 세대마다 다르고, 자신의 상황마다 다르다. 어느새 버스커버스커와 십센치의 노래가 봄노래를 평정해버렸지만, 누군가에게는 김현철의 ‘봄이 와’가 좀 더 익숙하다. 롤러코스터와 함께 부른 이 노래는 “나른해지고 눈이 무거워”지는 봄날의 노래로 제격이다. 선우정아의 ‘봄처녀’로 이어 들으면 더할 나위 없는 봄날의 그루브가 느껴진다. 빌리 카터의 ‘봄’ 역시 봄을 만끽하기 좋은 노래다. 마스크를 끼고 나가서라도 봄을 즐기려는 이들에게 봄노래 몇 곡이 근심을 잠시라도 잊게 도울 수 있을지 모른다.

이 봄, 이별을 감당하는 이들에게는 이소라의 ‘봄’과 이장혁의 ‘봄’만한 노래가 없다. “올해가 지나면 한 살이 또 느네요/그래도 다행인 것은 그대도 그렇네요”라는 노랫말에 배인, 더 이상 요즘 사람이 아니게 되어버린 자신의 나이듦에 대한 인식과 뼈 시린 인내 같은 그리움은 왜 이소라가 우리 시대 최고의 보컬인지 더 이상 묻지 않게 한다. “미칠 듯 꽃은 피고/슬픈 저녁이 찾아오고/우린 저마다의 식탁에 앉아/쓸쓸히 밥을 먹지”라고 처연하게 노래하는 이장혁의 목소리 역시 마찬가지이다.

환하고 눈부신 날 슬픔은 배가 된다. 그리고 어떤 목소리는 그 슬픔을 짊어지고 주저 앉는다. 슬픔을 위무하는 것은 오직 슬픔. 더 나이 든 이들에게는 박인수의 ‘봄비’와 이은하의 ‘봄비’가 팍팍한 마음을 적실 것이다.

그런 날은 봄볕에 취하고, 봄꽃에 취하는 수밖에 없다. 춘정을 한 잔 술로 달래는 수밖에 없다. 벚꽃 같은 목소리로 노래하는 수밖에 없다.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던/알뜰한 그 맹세에 봄날은 간다”고 노래하며 고개를 주억거리는 수밖에 없다. “봄날은 가네 무심히도 꽃잎은 지네 바람에/머물 수 없던 아름다운 사람들”이라고 소곤소곤 노래하는 이의 등을 가만히 쓸어내리는 수밖에 없다.

마음이 고달픈 올해 봄에는 최고은의 ‘봄’이 유독 와 닿는다.

둥지 잃은 새의 울음소리
Silence! One day you will come and I will come

허공의 음표 되어 알리네
Silence! One day we will find

우리는 서로에게 왜 숲이 아닌가
무심하게 지나쳐 온 너의 노래
우리는 서로에게 왜 숲이 아닌가
어느 누군가 멀리 있는 봄
It’s between us

홀로 남은 새의 울음소리
Silence! One day we will find

우리는 서로에게 왜 숲이 아닌가
무심하게 지나쳐 온 너의 노래
우리는 서로에게 왜 숲이 아닌가
어느 누군가 멀리 있는 봄
It’s between us

둥지 잃은 새처럼 우는 이들이 있다. 서로에게 숲이 되지 못하는 우리의 거리 때문이다. 그럼에도 마스크를 나누고, 대구의 환자들을 응원하며, 혐오를 거부하는 사람들이 있다. 오늘은 “아픈 봄이었지만/너와 함께한/겨울이 있었기에/나는 늦게 피는 꽃을/기다릴 수 있었어”라고 노래한 카코포니의 ‘봄’도 사무친다.

이런 봄을 맞을지 누가 알았을까. 봄은 그냥 오는 줄 알았고, 그저 즐기기만 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2020년의 봄은 더 이상 인간에게 자연이 공짜가 아니라고 말하는 것만 같다. 바이러스가 이번으로 끝이 아니라고 예고하는 것만 같다. 어디로도 피할 수 없는 세상, 세상의 그늘진 곳으로 무자비하게 질주하는 바이러스 앞에서, 그리고 언제 밀려올지 모르는 기후위기의 그림자 앞에서 우리는 이제 아무래도 봄노래를 바꿔야 할 것만 같다.

서정민갑 대중음악의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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