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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현주의 언론과 진실] 코로나19 사태, 편향언론과 성숙사회

우리 언론과 기자들의 자기 정체성은 무엇인지와 상관없이 언론이라면, 기자라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임무는 진실을 추구하고 거짓과 싸우는 것이다. 너무나 당연해서 하나마나 한 소리로 치부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탈사실(post-fact) 시대에 뜬금없이 무슨 진실 추구냐고 코웃음 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눈앞에 뻔히 보이는 사실 관계도 이리 비틀고 저리 비틀어 상대화시키고 논란으로 만들어 버리는 시대에 사실 저 너머에 있는 진실을 추구해야 한다는 주장은 공허할 수도 있다. 그러나 최소한 코로나19 사태와 관련한 보도에서도 그러해야 했다. 과학의 영역에서는 잠정적이라도 진실에 대한 합의가 존재하고 또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따라서 과학적 사실에 대한 보도는 합의된 진실을 있는 그대로 정확하게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

코로나19 사태 과도하게 정치화한 언론
중국 관련 편파·왜곡보도 쏟아져

그러나 코로나19 사태에서 방역을 둘러싼 논란이 벌어진 이유는 이 사안이 과학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사회의 다양한 요인들을 고려해 내리는 정치적 결단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정치는 사실관계보다 가치판단이 우선시되고 그래서 끊임없이 논쟁이 유발되는 영역이다. 정부의 방역 정책은 필요한 만큼 정치적이고 필요한 만큼 과학적일 수밖에 없는데, 우리 언론은 늘 하던 대로 이를 과도하게 정치화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중국 차단 주장이다. 다시 2월로 돌아간다면 중국에서 들어오는 모든 내외국인의 입국을 금지해야 할까? 실효성이 없다는 게 과학적 판단이었다. 외교적, 경제적 대가를 고려했을 때 가능치 않다는 건 정치적 판단이었다. 그런데 보수 언론을 중심으로 한 달 넘게 중국 차단 주장이 반복됐다. 방역을 정치화하기 위해서 무리일 정도로 중국 관련 편파 보도와 왜곡 보도를 쏟아낸 것은 더 큰 문제였다.

한국일보 2월27일자 온라인 보도
한국일보 2월27일자 온라인 보도ⓒ온라인 캡처

지난달 27일, 중국으로 귀국한 우리 교민들의 집마다 중국 공안이 딱지를 붙여놨다는 한 언론의 보도는 코로나19 관련 최악의 사례 중 하나다. 딱지는 내외국인을 불문하고 모든 집에 붙여졌으며 그 내용은 귀국을 환영하는 인사와 자가 격리 안내였다. 차별의 딱지가 아니라 친절한 안내문이었던 것이다. 유튜버도 아니고 번듯한 일간지 기자가 가짜뉴스까지 만들어 내며 대중국 여론을 악화시키려 했다. 코로나19가 전세계적으로 확산되면서 중국이 입국 통제를 강화하던 시점에 한국발 입국자를 한국인으로 바꿔치기하고 유독 우리나라에만 엄격한 조치를 취한 것처럼 반쪽 정보만 전달한 보도는 부지기수였다. 중국 정부의 공식 입장보다는 중국 언론의 일탈적 보도나 중국 네티즌의 감정적 발언들을 더 부각시켜 보도하기도 했다. 감정과 가치판단이 사실관계를 압도하면 방역은 ‘과학과 정치’가 아니라 ‘정치’만의 문제가 된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지난달 26일 국회에서 코로나19 지역사회 감염의 원인이 ‘중국에서 들어온 한국인’이라고 답변해 곤욕을 치렀다. 과학은 그쪽을 가리키고 있으나 정치는 그 반대쪽을 향하고 있었다. 팔은 안으로 굽어야 하는 것이다.

최근 벌어진 코로나19 검진 키트의 정확성 논란은 의도치 않게 진실의 문제를 상대화한 사례로 볼 수 있다. 한 언론이 미국 공화당 하원의원이 트럼프 정부의 코로나19 대응을 방어하는 와중에 나온 발언을 전후 맥락을 잘라내고 보도하자 우리나라 검진 키트의 신뢰성에 대한 논란이 촉발됐다. 기자는 정말 전후 사정을 몰랐을까? 해프닝에 지나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면 기사화하지 말았어야 했다. 굳이 보도해야겠다면 미국 하원의원의 오해에서 비롯된 질문이었고 우리나라에서 사용되는 진단 키트는 신뢰할 수 있다고 결론을 내려야 했다. 하지만 정치적 사안을 보도하는 틀로 과학을 보니 방역 당국이 충분히 해명했음에도 불구하고 기사는 논란이 일고 있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기자에게는 진실보다는 논란이 더 중요했던 것이다.

과학의 문제까지 정치화했으나 과거에 비해 영향 낮아
방역당국과 지자체의 신속하고 투명한 공적 커뮤니케이션 효과

과학의 문제를 가치판단의 문제로 정치화하는 사례가 만연해 있지만, 정작 가치판단이 필요할 때는 눈을 감는 경우도 있었다. 지난달 7일 한 일간지 사설의 끝자락이다. “6일 오전 일본은 요코하마항에 들어온 크루즈선 전체를 봉쇄했다. 배 안에서 확진자가 나왔기 때문이다. 3700여 명의 탑승객 전원을 열흘간 해상 격리했다. ‘예방조치는 과하다 싶을 만큼 강력해야 한다’는 문 대통령의 말은 이럴 때나 쓰는 것이다.” 크루즈선 봉쇄 조치는 우리가 당면한 문제는 아니었기에 벤치마킹의 대상도 아니었다. 그저 정부를 비판하기 위해서 편의적으로 가져다 쓴 사례일 뿐이다. 그런데 이 사설을 쓴 논설위원의 근시안에는 예방의 효율만 보이고 야만적인 군국주의는 보이지 않았던 모양이다. 정치적 시각도 그다지 예리하거나 세련되지 않다는 의미다.

정은경 중앙방역대책본부장
정은경 중앙방역대책본부장ⓒ뉴스1

다행스럽게도 코로나19에 대한 언론의 정치적 보도는 과거에 비해 큰 효과를 보지 못했다. 독기어린 사설이나 칼럼이 끊이지 않았지만 일탈적인 보도들은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그 이유는 언론의 노력보다는 중앙방역대책본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실시한 정례브리핑의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즉 신속하고 투명한 공적 커뮤니케이션이 언론의 오보와 왜곡보도를 어느 정도 억제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코로나19가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면서 외국의 대응 사례를 계속 확인, 비교하고 있다는 점과 과학적 사실에 근거해 우리의 대응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외국 언론의 보도가 이어지고 있다는 점도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솔직히 말해 언론의 자정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개혁이나 정화 또한 강제적인 방법으로는 해낼 수 없다. 유일한 방법은 누구나 자유롭게 말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공공 정보가 신속하고 정확하게 공개되고, 헌법, 국가보안법, 형법, 그리고 선거법에서도 언론의 자유, 표현의 자유가 완전히 허락된다면 왜곡과 조작이 범람하는 커뮤니케이션 환경에서도 ‘사상의 자유 시장’은 잘 작동할 것이다.

송현주 한림대 미디어스쿨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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