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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30년 동안 정원을 벗어난 적 없는 화가 모리
영화 ‘모리의 정원’
영화 ‘모리의 정원’ⓒ스틸컷

어려서 집 가까이에 산이 있었다. 골짜기로 물이 흐르고, 나무에선 새들이 울고, 이름 모를 꽃들이 가득한 곳이었다. 학교를 마치면 친구들과 산에 올라 놀기도 했고, 한참을 앉아 새소리와 벌레들의 울음에 귀기울기도 했다. 하지만, 어른이 되면서 바쁘다는 핑계로 산에서 멀어졌고, 개발의 광풍에 산은 점점 줄어들었다. 우리 주변에서 자연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공간은 점점 찾기 힘들어졌다.

영화 ‘모리의 정원’에 등장하는 화가 쿠마가이 모리카즈의 정원은 지금은 점점 우리의 곁에서 멀어져 버린 자연의 신비와 아름다움을 소박하지만, 만끽할 수 있는 공간이다. 그곳을 너무나 사랑한 화가 모리는 30년 동안 자신의 집과 정원에서 벗어나지 않은 채 아내 히데코와 생활하고 있다. 그는 자신의 정원 곳곳에서 수많은 생명과 함께한다. 사마귀, 도롱뇽, 도마뱀, 고양이, 금붕어, 나비, 청개구리, 개미 등 모리는 온종일 그들을 관찰하고, 대화한다. 수많은 시간을 관찰하며 자신의 정원 개미들이 왼쪽 두 번째 다리부터 걷기 시작한다는 것도 알게 된다.

영화 ‘모리의 정원’
영화 ‘모리의 정원’ⓒ스틸컷

영화는 모리가 아흔네 살이던 지난 1974년 무렵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마치 작은 우주와 같은 자신의 정원에서 벗어나지 않고, 그곳에서만 머무는 모리. 그는 자신만의 세상을 관찰하고, 밤이면 그것을 바탕으로 ‘학교’라고 부르는 작업실에서 그림을 그리며 소소한 일상을 즐긴다. 하지만, 집 바로 옆에 커다란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자신의 정원은 아파트 그림자에 가려질 위기에 놓인다. 젊은 예술가들은 모리의 집 주변에 구호를 써 붙이며 파괴될 위기에 놓인 모리의 정원을 지키자고 호소한다.

사실 이 정도만 보게 되면 모리와 건설업자 사이의 투쟁을 예상하겠지만, 영화는 예상과 다르게 흘러간다. 영화는 초반부터 자연 다큐멘터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자연의 모습을 아름답게 담아내고, 모리의 일상을 유머러스하게 담아낸다. 결코 주변과 충돌하지 않은 채 자신만의 삶을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늘에 자신의 정원이 가려지는 게 걱정이지만, 싸우는 것이 아니라 모리와 아내는 오히려 공사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을 불러 같이 식사를 나눈다. 그런 모습은 강한 호소력으로 다가서며 남다른 감동이 전해진다.

영화 ‘모리의 정원’
영화 ‘모리의 정원’ⓒ스틸컷

이 영화가 소개하는 화가 모리는 실존인물이다. 1880년에 태어난 모리는 어렸을 때부터 그림에 대한 재능을 인정받았지만 쉰살이 지나서야 그림으로 가족의 생계를 책임질 수 있게 되었다. 1922년, 42세에 24세였던 히데코와 결혼하고, 1932년 도시마구에 자택을 지어 1977년 사망할 때까지 이 집에서 살았다. 30년 동안 집을 벗어나지 않았으면서도 그는 자신의 작은 정원에서 세상을 만나고, 우주를 만났다. 영화는 실존인물을 다루면서도 일반적인 전기 영화 형식은 아니다. 생의 연대기나, 그가 그린 그림 그 자체를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을 향한 그의 시선에 주목하고 있다. 움튼 싹을 보며 ‘여태 자라고 있었는가’라고 읊조리는 대사는 노년에 이르러서도 여전히 생명에 경외감을 느끼는 화가의 모습을 보여주며 익숙하게 지나쳐 온 자연의 생명력을 새삼 자각하게 만든다. 이처럼 청빈하지만 풍요로운 삶을 영위하며, 죽을 때까지 현역으로 작품 활동을 했던 구마가이 모리카즈의 부드러운 강인함을 느낄 수 있다.

이런 잔잔한 일상과 일상에서 피어나는 은은한 웃음을 영화 ‘모리의 정원’은 잘 그려냈다. 자연과 어우러진 화가 모리는 야마자키 츠토무가 맡았고, 모리의 아내 히데코는 키키 키린이 연기한다. 이 작품은 2018년 세상을 떠난 키키 키린이 세상에 남긴 마지막 작품이다. 영화는 오는 26일 개봉한다.

권종술 기자

문화와 종교 분야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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