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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용환의 역사로 생각하기] 1954년 간통 재판, 남성들의 인식은 나아졌나
없음

1954년 2월에 흥미로운 사건이 발생한다. 아내 현순원이 ‘온 남성계의 경종을 울리는 견지에서 고소하였다’라면서 남편 한위동과 첩 장인혜를 대상으로 소송을 건 것이다. 일명 ‘500만환 위자료 청구소송 사건’이다. 이 사건은 일반인들에게는 낯설지 모르겠지만 한국의 사법사에 중요한 이슈였다.

1953년에 신형법이 제정될 때 ‘간통죄’ 조항이 만들어진다. 그런데 간통죄를 만드는게 타당한가, 간통죄를 만든다면 여자만 처벌하냐 아니면 남자만 처벌하냐를 두고 격렬한 논란이 벌어진 것이다. 당시에 광범위하게 축첩이 행해졌고, 국회의원이나 법관 등 사회지도층 인사일수록 그러한 경향이 강했다. 결국 축첩제란 돈과 권력에 결부되어 있는데 사회 여론이 이를 좌시하지 않는 단계에 이르렀으니 고역도 이런 고역이 없었을 것이다.

“남녀를 같은 조건으로 처벌하게 되면 많은 파탄이 일어날 것이다. 본부인과 협의 하에 소실을 얻어 이미 아들, 딸을 낳고 사회적으로 기정사실로 형성되어 있다. 갑자기 남성의 이런 행위도 처벌 대상으로 하면 혼란이 일어나지 않을까 하는 점이 하나이고, 법률의 관습은 남의 집 문턱 안으로 들어가서는 안 된다.”

엄상섭 의원의 주장이다. 기정사실화한 사회관계가 무너질 수 있다는 주장이다. 좋은 취지는 알겠는데 그로 인한 혼란이 심각해질 것이란 말이다. 변화를 도모할 때 항상 나오는 주장인데 여기서 무너지는 것은 사회일까 아니면 축첩은 열심히 하면서 아내에게는 정절을 강요하던 당시의 남성들일까.


축첩 근절을 위한 간통죄 신설
격렬한 논쟁 끝에 한 표 차이로 간신히 통과


국회에서는 꽤 격렬한 논쟁을 거쳐 한 표 차이로 가결되었다. 결론은 쌍벌주의. 남자건 여자건 간통과 관련해서는 모두 처벌을 받는다는 것으로 결정이 난 것이다. 축첩제 반대에 대한 여성들의 여론과 도덕적 연민이 첫 번째 승리를 거둔 것이다.

그리고 다음 해. 현순원과 한위동 그리고 검사와 변호인은 흥미로운 주장을 펼치며 각자의 당위성을 설파하였다. 현순원은 ‘8년을 눈물로 지내왔다. 이혼하여 줄테니 위자료를 달라고 요구한 일은 없다만 수억환을 준대도 이제는 필요 없고 남성계의 정화를 위하여 처벌을 바랄 뿐’이라 주장했다. ‘8년의 눈물’을 강조한 것은 어차피 8년간 안 보고 살았으면 여자도 사실상 이혼 상태로 받아들이고 있었다는 것에 대한 반론일 것이고, ‘수억환이 필요없다’라는 것은 돈을 목적으로 소송을 건 것이 아니라는 것을 주장하기 위함일 것이고, ‘남성계의 정화를 위하여’라는 것은 당시 여성들의 입장 그리고 도덕주의적인 문화에 의지하고자 함이다. 소송을 건 당사자의 논리가 매우 수세적이다.

한위동의 변론은 이렇다. 사실상 이혼 상태에 놓여 있었고 이혼하자고 합의까지 봤다. 그런데 ‘이천만환을 요구하기에... 돈이 없기 때문에 팔백만환은 어떻게 하든지 지불하겠다고 하였더니 물건 값도 아닌데 깍지 말라고 반대하여’ 이혼절차에 실패했다라고 주장한다. 또한 ‘이혼이 되려니 하고 재혼을 하였더니 이꼴이 되었다. 재혼한 여자에게도 죄가 있다면 나에게 벌을 달라’고까지 했다. 죄가 되는 줄 모르고 재혼을 했는데 법이 바뀌어서 억울한 처지가 되었다는 주장이니 그 또한 당시 보편적인 남성들의 세계관에 의지하고 있는 셈이다. 또한 결국 아내는 ‘돈 문제’로 소송을 제기했다면서 일종의 꽃뱀론을 제기한 것이다. 남성과 여성의 다툼이 발생하면 매번 반복되는 ‘남성 정의와 여성 꽃뱀’의 논쟁이 이때부터 시작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담당 검사 이영호의 입장 또한 인상적이다. ‘사건 자체를 검토하여 보건대 인간적인 면에서 동정하여 마지 않는다’면서도 ‘값싼 동정보다 법의 존엄성에 비추어 처벌’하는 것이 중요하고 ‘신형법에 의거한 첫사건을 담당하게 된 것’에 대한 감개무량의 소감을 밝힌다. 아마도 엄중하고 객관적으로 수사하고 기소를 하겠다는 말일 것이다. 하지만 신형법의 의도 자체가 변화하는 그리고 변화해야만 하는 사회 현실을 반영하기 위한 노력으로 제정된 것이고 법관이 법의 범주를 벗어나지는 않아야겠지만 사법적극주의, 법의 목적과 가치에 대한 책임감 또한 가져야 한다는 것을 고려한다면 이 말은 대단히 부족한 느낌이 든다. 아마도 수많은 사건에서 기소권을 자의적으로 활용하고 비판을 받을 때마다 죄형법정주의 운운하면서 합리화해온 오랜 검찰과 사법부의 역사 때문에 느껴지는 선입견일 수도 있겠다.


재판 과정에서 노골적으로 남성적 인식 드러낸 변호인
신형법의 가치와 목적에 비해 크게 부족한 검사
당시 여성이 감당할 현실 외면한 법정


변호인은 정말 노골적이다. ‘2개월 후에 그(재혼) 사실을 본처가 알고 또 그 후에도 남편에서 그 처사에 대한 아무런 항거 없이 지내왔다는 것은 사실상 남자의 재혼을 묵인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간통죄에 있어 상대방이 묵인하니 고소권이 없는 것’이라는 말이다. 애초에 남녀 관계란 복잡하고 입증하기 어렵고 당사자는 물론이고 가족들이 함께 참여하여 각종 말을 만들어내는 여론전인 경우가 많다. 그러니 ‘8년 이라는 시간’에 대해서는 온갖 상상력을 채워넣을 수 있을 것이다. 어차피 ‘8년’이나 별거하고 있었고 무려 ‘두 달’간 가만히 있었는데 왜 이제 와서 새삼스럽게 그래?, 뭐 이런 주장이다. 성폭력을 당할 때 ‘왜 그때 격렬히 저항하지 않았어요?’, ‘왜 몇 년이나 지나서 이제 와서 그러는 거에요?’ 등과 별반 다를 바 없는 주장이다.

아내가 남편을 고소하려면 이혼을 해야 하는데 사랑하는 자식 다 버리고, 살림살이 다 버리고 친정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 친정도 없으면 도로 상에서 방황하다가 죽어버리거나 할 텐데, 남편을 고소할 아내는 없다.

간통법 반대를 강변했던 변진갑 의원의 말이다. 당시 여성이 감당해야 할 보편적 현실에 대한 고려가 법정에서는, 변호인의 입에서는 의도적으로 배제되었던 셈이다.

재판 결과는 어땠을까. 공소기각으로 마무리 되었다. 판사는 전적으로 변호인의 입장을 반복하며 판결문을 써내려갔다. 신형법의 취지가 사법부에 의해 무색해지고 만 것이다.

텔레그램 n번방 용의자 신상공개를 요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에 1주일도 안 돼 250만명이 넘는 국민들이 참여했다.
텔레그램 n번방 용의자 신상공개를 요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에 1주일도 안 돼 250만명이 넘는 국민들이 참여했다.ⓒ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

절망하자고 이 글을 쓴 것은 아니다. 한편에서는 여전히 상존하는 해결하기 힘든 남성들의 편견, 여성의 불리함, 법정에서의 결여된 젠더의식이 존재하지만 1954년의 문제가 현재 그대로 반복되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기할 바는 충분하다. 여성 문제만 대두하면 여성이 감당해야 하는 일상에 대한 섬세한 고려는커녕 남성 그리고 재판관들의 ‘선입견’이 훨씬 우월한 위치에 서서 상상하고, 규정하고, 제단하고 있다.

N번방 문제로 사이버 성폭력 근절이 전 국민적 화두가 되었다. 1954년 재판 이후 70년 가까이 흘렀는데, 이런 문제를 대하는 일부 남성들의 변화를 거부하는 태도는 얼마나 개선됐는가. 그 시절 국회의원, 변호인, 법관보다 오히려 더 야만적으로 변하지는 않았는가.

심용환 역사N교육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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