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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개학연기와 친환경 농산물
학교 급식 자료사진
학교 급식 자료사진ⓒ뉴시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함에 따라 전례를 찾아보기 힘든 상황이 발생했습니다. 유치원을 비롯한 초·중·고교의 개학이 3차례나 연기된 겁니다. 교육부는 이달 2일로 예정된 개학을 9일로 미뤘다가 다시 23일로 연기했죠. 이후에도 코로나19 상황이 지속하자 4월 5일로 개학을 미루며 총 5주를 연기했습니다.

방학이 5주나 연장되자 예상치 못한 피해가 속출하고 있습니다. 올해 수능을 봐야 하는 고3 학생들의 경우 수업 일수가 크게 줄어 수능을 연기해야 한다는 문제가 제기됐고, 현재 관련 논의가 이뤄지고 있죠.

학생들 뿐 아니라 급식 식자재 공급을 위해 계약 재배를 하는 농가들도 타격을 입었습니다. 개학 시기에 맞춰 재배할 수 있도록 농사를 지었지만, 개학 연장으로 수확한 농작물을 헐값에 팔거나, 갈아엎어 폐기해야 하는 상황에 부닥친 겁니다.

통상 학교 급식에는 유기농, 무농약 등 친환경 식자재가 사용됩니다. 서울의 경우 총 1330여개의 학교가 있는데 이 중 913개 학교가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 산하의 친환경유통센터(이하 ‘올본’)에 학교 급식을 신청해 식자재를 공급받고 있죠. 나머지 420여개 학교는 개별적으로 입찰을 진행해 업체를 선정, 식자재를 공급받는 구조입니다.

올본은 학교에 친환경 식자재를 공급하기 위해 생산자 단체와 계약을 체결합니다. 이렇게 확보한 친환경 식자재를 학교에 공급하는 방식이죠. 전국의 생산자 단체는 경북의 ‘경북친환경’, 전남의 ‘자연과농부들’, 충북의 ‘흙산림’, 제주도의 ‘생드르’ 등 총 15곳이 있습니다.

올본은 1년에 한 번씩 생산자 단체에 매달 공급해야 할 식자재 품목과 출하량 등을 정해 알려줍니다. 그럼 계약 재배 농가들은 이에 맞춰 출하 할 수 있도록 농사 일정을 조절하죠.

상황이 이렇다 보니 계약 재배 농가들은 이미 3월 초로 예정돼 있던 개학 시기에 맞춰 농작물을 수확 시기를 맞춘 겁니다.

농작물의 작기(한 작물의 생육 기간)는 작물별로 차이는 있지만 짧게는 2개월에서 길게는 1년으로 다양합니다. 따라서 아무리 작기가 짧은 작물이라도 최소 2개월 전에 개학 연기 사실을 알려야만 이 같은 피해를 막을 수 있었던 겁니다.

물론 “이미 생산된 농작물은 다른 판매처에 팔면 되는 것 아니냐”는 말도 나옵니다. 하지만 쉽지 않습니다. 다른 판매처라고 해봐야 대형마트나 시장, 식당 등인데 코로나19로 소비가 급감한 상황에서 갑자기 발생한 물건을 추가로 더 사겠다는 곳을 찾긴 쉽지 않죠.

작물들이 유기농, 무농약이라는 점도 다른 판매처를 찾기 어려운 이유로 작용합니다. 유기농은 농약을 최소 3년 이상 사용하지 않은 땅에서 퇴비나 유기질 비료만을 이용해 재배하는 걸 말합니다. 무농약은 농약을 일체 사용하지 않고 작물에 정말 필요한 최소한의 화학비료만 사용한 거죠. 그렇다 보니 재배가 어렵고, 면적당 생산량도 일반 농산물에 비해 현저히 적습니다. 가격도 일반 농작물보다 비쌀 수밖에 없죠. 일반 농산물과 비교해 적게는 15%에서 많게는 30% 정도 더 비쌉니다.

친환경 작물의 경우 농약을 거의 사용하지 않다 보니 병충해 피해를 완전히 피하기 어렵습니다. 친환경 농작물이 일반 농작물에 비해 크기가 작다거나 외형이 일정하지 않은 것도 이 때문이죠. 이런 부분들이 일반 식당에서 오히려 친환경 농작물 사용을 꺼리는 이유로 작용하는 겁니다.

게다가 이렇게 재배한 작물이 보관 기간이 짧을 경우 새로운 판매처를 찾긴 더욱더 어렵습니다. 감자나 고구마, 양파 등 일부 작물의 경우 장비 보관이 가능해 판매처를 찾는데 그나마 시간이 있지만 상추, 근대, 아욱 등은 수확 후 2~3일 안에 소비가 이뤄져야 하는 신선채소여서 사실상 새로운 판매처를 찾기 불가능하다는 게 농가들의 설명입니다.

올본에 식자재를 공급하는 충북지역의 한 생산자 단체 관계자는 “저희가 생산한 친환경 농작물을 시장 경매로 판매한다고 해도 일반 농산물보다도 현저히 낮은 가격에 거래된다”며 “시장 경매도 하루 소화할 수 있는 양이 어느 정도 정해져 있는데, 갑자기 떨이로 나온 친환경 농산물을 비싼 값에 사려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니 팔리더라도 헐값에 팔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말합니다.

또 이 관계자는 “상추와 시금치, 근대, 아욱 등과 같이 수확 후 바로 소비해야 하는 신선채소들의 경우 새로운 판매처를 찾기 어렵다”며 “이런 작물들은 대부분 아예 수확하지 않고 밭을 갈아엎어 다음 농사를 준비하기도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렇다고 장기 보관이 가능한 작물들의 피해가 작다는 것도 아닙니다. 예를 들어 감자의 경우 6~7월경 수확해 다음 해 3~4월까지 보관해두며 먹습니다. 당연히 저장 기간이 오래되면 오래될수록 썩는 비율이 높아지고, 상품의 질도 떨어질 수밖에 없죠. 그래서 감자를 재배하는 농가들도 해를 넘기면서까지 재고를 남겨두는 경우가 거의 없습니다.

그러나 급식 식자재 공급 계약을 체결한 감자 농가의 상황은 다릅니다. 해를 넘겨서도 학생들이 감자를 먹을 수 있도록 창고에 보관해두고 공급해야 하는 겁니다.

실제 충북의 한 감자 농가는 개학이 예정된 3월 급식 식자재로 감자를 공급하기 위해 창고에 보관해 두고 있습니다. 하지만 3차례 개학이 연기되며 4월까지 미뤄진 상황이죠. 썩어 버려지는 감자도 늘겠지만, 더 큰 문제는 4월이면 남해지역에서 햇감자가 나오기 시작한다는 점입니다. 품질을 우선시하는 급식용 식자재의 경우 햇감자가 생산되면 저장 감자는 상품으로서의 가치를 잃게 되는 겁니다. 대형마트나 시장, 음식점 등에서도 마찬가지죠.

현재와 같은 상황이 코로나19라는 예기치 못한 감염병으로 인해 발생한 피해지만 대책 마련이 시급한 상황입니다. 일부 계약 재배 농가들의 경우 다른 판로를 개척해 피해를 최소화하기도 했지만, 상당수의 농가는 수확한 농산물을 폐기하거나, 아예 밭을 갈아엎는 실정입니다. 그리고 그 피해를 고스란히 농민들이 감당하는 거죠.

물론 일부 지자체들이 나서 급식 친환경 농산물을 코로나19 자가격리자를 대상으로 공급하거나 피해 농산물을 대신 판매해주는 등의 방안을 마련하기도 했습니다.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도 피해 농가의 농작물을 일부 사들여 대구 경북지역의 취약계층 2천명을 대상으로 친환경 농산물을 지원하기도 했죠.

하지만 이 같은 상황에서 발생하는 모든 피해가 농가에게 돌아가는 건 분명 다시 생각해봐야 할 문제입니다. 농가의 피해를 보존해 주는 기금을 마련하는 등의 보다 근본적인 대책 마련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윤정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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