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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민갑의 수요뮤직] 예쁘고 따뜻한 마음을 닮은 음악

이런 일이 있을 것이다. “품에 파고드는/너의 털과 살을 헤치고/맞닿은 얼굴 보며/서로 눈을 감겨주는” 일이 있을 것이다. 그 때 엄습하는 마음이 있을 것이다. 기타 팝 밴드 코가손의 정규 2집 [모든 소설]은 그렇게 마주치는 사건의 기록이다. 그 순간 일렁이는 마음의 현현(顯現)이다.

사회적 사건은 아니다. 자신에게 엄청나게 큰 사건도 아니다. “전봇대 옆에서 날 기다리던 개 한 마리가 우두커니/선뜻 다가서지 못해 서로를 노려보던 오후”의 기록. “참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이제야/네게 가까워지”는 일. “모든 소설/모든 우연/이 모든 중력마저도/모든 고백/모든 선언/다 네게서 시작”하는 것을 아는 일. 누구든 겪을 일이다. 하지만 자신에게는 세상의 여느 사건보다 더 많은 파장을 만드는 일이다. 그러나 그 맥락과 의미를 설명하기는 어려운 일들이 코가손의 노래가 되었다.

그 일들은 대체로 만남과 만남으로 느끼고 깨닫는 일이다. 오후를 만나고, 설명서를 만나고, 너를 만난다. 마음을 만나고 “잊지 않았던 달콤한 것들”을 만난다. “빤히 쳐다보는 네 두 눈”을 만날 수 있는 것은 마음을 닫지 않았기 때문이다. “선량한 시민들/달콤한 시민들/선량한 시민들/거짓말 시민들”을 지켜보기 때문이다. “용기를 내곤” 할 뿐 아니라, “우린 널 아낄 거야”라고 약속한 덕분이다.

기타 팝 밴드 코가손
기타 팝 밴드 코가손ⓒ사진 = USELESS PRECIOUS

코가손은 그 마음의 다정한 온기만큼 예쁘고 따뜻한 음악을 들려준다. 모든 곡에서 보컬은 순하고, 멜로디는 매끄러우며, 사운드는 영롱하다. 기타 팝 밴드가 지향하는 특질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김원준(보컬, 기타), 이기원(기타, 베이스), 이동욱(드럼)이 애써 만들지 않았다면 들을 수 없는 소리의 연작이다. 좋은 기타 팝 밴드에게 줄곧 들어왔던, 익숙하지만 이제는 흔하지 않은 사운드. 그리고 익숙함에 변화를 주어 더 흥미로운 사운드가 예고 없이 교차한다. 그 결과 코가손의 2집은 2015년 데뷔 이후 멈추지 않고 더 나아간 이들이 만든 작품이라고 평가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첫 곡 ‘오늘 오후’는 드러밍으로 시작해, 나른한 보컬을 다시 드러밍과 교차시키며 변화를 준다. 몽롱한 일렉트릭 기타 연주에 운치를 더하는 베이스 기타 소리를 감싸는 건반 연주는 곡의 몽환적인 질감을 부풀린다. 후반부 연주를 주도하는 드럼이 곡의 드라마를 무게감 있게 마무리해 인상적이다.

‘설명서’에서도 보컬은 순정하고, 일렉트릭 기타의 간명한 리프는 리드미컬하며 자연스럽다. 그러나 간주에서 펼치는 연주의 변화는 곡을 좀 더 록킹하고 사이키델릭하게 바꿔놓는다. 순식간에 과거의 록으로 돌아가 불을 지폈다가 다시 돌아오는 변화가 매끄러워 타이틀곡으로 손색이 없다.

반면 어쿠스틱 기타 스트로크로 시작하는 두 번째 타이틀 곡 ‘모든 소설’은 친숙한 리듬 위에 얹은 담백한 노래로 산뜻하다. 일렉트릭 기타와 건반 연주가 자아내는 몽글몽글한 기운은 기타 팝 밴드의 장점이 어디에 있는지 분명하게 보여준다. 이 사운드가 선사하는 행복감은 이 장르의 팬을 찌릿찌릿 감전시키고, 노곤노곤 풀어지게 만들어버린다.

‘달콤한 것’에서도 반복적인 기타 리프를 영롱하게 이어가다 기타 연주를 터트리며 만들어내는 사운드의 쾌감이 강렬하다. 감성적인 기타 사운드와 거친 기타 사운드를 함께 배치해 여리고 뜨겁게 마음을 흔드는 곡의 공간감에서 헤어나기는 쉽지 않다. 다르게 배치한 정교한 연주는 곡의 온도와 순도를 동시에 끌어올린다. 반면 ‘재미’를 주도하는 사운드는 수수한 건반 연주와 기타 아르페지오이다. 코가손이 노랫말로 담지한 정서와 태도를 정확하게 옮긴 곡은 코가손의 팝적 재능을 소담스럽게 피워 올린다.

한편 8비트 리듬에 베이스 리프가 주도하는 ‘더플코트’는 모던 록 밴드의 전통적인 매력을 확인시켜주는 곡이다. 어렵지 않고 부담스럽지 않으면서 정감 있는 리프(Riff)로 곡을 매끄럽게 끌고 가는 솜씨가 돋보인다. 경쾌한 템포의 ‘선량한 시민들’에서도 코가손은 직관적으로 끌릴 수밖에 없는 멜로디를 뿜는 기타 연주로 곡을 리드미컬하게 채운다. 그리고 곡의 템포와 연주 사운드를 바꿔 드라마를 강화함으로써 곡의 정서에 더 깊숙하게 빠져들 수 있도록 인도한다. 곡이 원형처럼 제시하는 소리와 변주하는 소리의 차이를 비교하며 듣는다면 코가손의 음반을 듣는 일은 더 흥미진진해진다.

단순명쾌하게 밀어붙이는 록킹한 곡 ‘Pink’에서도 코가손의 매력은 유실되지 않는다. 몸집을 부풀린 ‘In My Dreams’는 “내 꿈 속에서만 모든 걸 말할 수 있”는 마음을 다른 곡들처럼 영롱함과 강렬함을 연결해 표출한다. ‘반대편’에서도 곱고 아련한 사운드가 넘실거린다.

이렇게 곱고 예쁘게 살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물론 항상 이런 마음, 이런 기분으로 살기는 불가능하다. 하지만 코가손의 음반은 우리가 오래 기억하고 담고 싶은 마음, 가까이 가고 싶은 정서와 태도를 들을 수 있는 소리로 재현해냄으로써 삶과 음악을 잇는다. 그리고 최소한 이 음악이 흐르는 동안만큼은 음악에 기대 쉴 수 있다. 어느 때 보다 외롭고 지치고 슬픈 이들에게 코가손의 음악이 닿았으면 좋겠는 2020년 3월이다.

서정민갑 대중음악의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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