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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검찰과 법원, ‘n번방’의 공범이 되지 않으려면

성착취 ‘n번방’의 또 다른 운영자인 32살 신씨(닉네임 ‘켈리’)가 1심서 징역 1년을 선고받았으나 피고인만 항소하고 검찰은 항소조차 하지 않은 것이 밝혀졌다. 신씨의 악랄한 범죄행위에 대해 고작 1년형이라니 분노를 넘어 황망하기 그지없다. 인격살인을 저지른 디지털 성범죄자들을 제대로 처벌하지 않을 거라면 잡아 들이면 뭐하고 분노하면 뭐하겠나. 솜방망이 처벌을 내린 법원이나 이를 항소조차 안 한 검찰이나 추악한 범죄의 고리를 끊어낼 의지가 있는지 묻고 싶다. 안이한 태도를 보인 검찰이나 사태의 심각성을 똑바로 보지 못한 둔감한 재판부는 비판받아 마땅하다.

문제의 신씨는 지난해 8월에 n번방을 처음 만든 ‘갓갓’에게 1개의 n번방을 인수해 아동·청소년 성착취물을 팔아 돈을 챙기다 경찰에 덜미가 잡혔다. 붙잡힌 신씨의 집에서 발견된 성착취물은 ‘노예녀 직촬 11살’ 등 제목으로 무려 9만 1천 894건에 달했다고 한다. n번방은 지난 20일 검거된 조주빈 씨가 운영했던 ‘박사방’보다 더 끔찍한 범행이 자행됐다. 보도로 알려진 차마 옮겨적을 수 없는 수준의 가학적·엽기적 영상 대다수는 n번방에서 제작된 것이다. 이러한 악행에 가담한 신씨는 아동·청소년 대상 성폭력범죄로 징역형 집행유예 처벌을 받은 전력도 있었다. 하지만 춘천지법 형사1단독 조정래 판사는 지난해 11월 아동·청소년을 노예삼아 성착취물을 판매·소지한 신씨에게 징역 1년을 선고했다. “수사에 적극 협조하고 기여한 점을 종합했다”라는 것이 1심 재판부가 밝힌 양형 사유하고 한다. 성 착취를 통해 피해 아동·청소년에게 인격살인을 저지른 것에 죗값을 무겁게 묻지 않은 1심 재판부가 말해주는 것이 무엇인가. 이렇게 사태파악조차 힘든 법원을 그대로 두면 제2, 제3의 n번방은 얼마든지 생겨날 것이다.

솜방망이 처벌을 한 1심 판결에 항소조차 하지 않은 검찰도 n번방 참사를 키우는데 한몫 했다. 어이없게도 2심 재판은 신씨의 항소로 시작됐다. 피고인만 항소한 사건의 경우 원심보다 중한 형을 선고할 수 없는 불이익변경금지 조항이 적용된다. 그래서 현재 2심 재판 중인 신씨는 징역 1년보다 형량을 높여 처벌받을 수 없게 됐다. 아동·청소년이 피해자로 등장하는 성착취 음란물을 유포한 재범자에 대해 ‘수사에 협조도 했고 징역 1년 정도면 됐다’라는 안이한 검찰의 태도가 그대로 드러난다. ‘박사방’ 조주빈이 아니었다면 ‘n번방 켈리’ 판결은 조용히 묻히고 말았을 것이다. 국민 여론이 심각해지고 문제가 커지자 검찰은 “2심에서 적극 대응하겠다”라며 뒷북을 치고 있다.

검찰과 법원 눈에는 n번방 사건이 대수롭지 않았던 것인가. n번방 참사는 검찰의 미온적 대응과 법원의 솜방망이 처벌이 빚은 구조적 참사라고도 할 수 있다. 더이상 검찰과 법원이 n번방의 공범이 되지 않으려면 이제라도 양형기준을 새로 정립하고 관련자들이 죗값을 톡톡히 치르게 해야 한다. 검찰이 텔레그램을 이용한 성 착취 사건 등 디지털 성범죄 사건 수사를 위한 특별수사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고 수사역량을 집중할 방침을 밝혔다. 이제라도 엄정 대처한다니 반가울 일이지만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다. 청와대와 국회를 비롯해 검·경, 법원이 나서 이번 기회에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처벌과 예방 문제를 근원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마지막 기회라는 각오로 머리를 맞대고 힘을 모아야 한다.

민중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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