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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 주자 ‘멋있는 악마’ 욕망 충족한 조주빈…“범죄자 생각 안 궁금하다”
텔레그램에서 불법 성착취 영상을 제작, 판매한 n번방 사건의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 씨가 25일 오전 서울 종로경찰서에서 검찰에 송치되기 위해 호송차량으로 향하고 있다. 2020.03.25
텔레그램에서 불법 성착취 영상을 제작, 판매한 n번방 사건의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 씨가 25일 오전 서울 종로경찰서에서 검찰에 송치되기 위해 호송차량으로 향하고 있다. 2020.03.25ⓒ민중의소리

“범죄자에게 서사를 부여하지 마십시오. 범죄자에게 마이크를 주지 마십시오”

가수 자우림 김윤아 씨의 SNS 게시글이 큰 공감을 얻었다. 지난 25일 ‘박사’ 조주빈(26) 씨의 발언에 언론과 대중의 관심이 집중됐다. 검찰 송치 과정에서 처음 모습을 드러낸 조 씨는 피해자들에게 사과하는 대신 손석희 JTBC 사장, 윤장현 전 광주시장 등을 거론했다. 이어 “멈출 수 없었던 악마의 삶을 멈춰주셔서 정말 감사하다”라고 말했다.

이에 전문가들은 조 씨에게 발언 기회를 줘서 ‘희대의 악마’가 되고 싶은 그의 욕망을 충족시켜줬다고 입을 모았다. 조 씨의 발언 이후 그가 언론사 사장, 정치인을 상대로 얼마나 ‘대담하게’ 사기를 쳤는지 보도가 쏟아졌다. 이 과정에서 70여 명의 여성을 성 착취해 막대한 이득을 챙긴 파렴치범의 모습은 흐릿해졌다.

범행 과정에서 강력한 권력욕을 보였던 조 씨로선 “지금과 같은 주목 방식이 반가울 것”이라고 신성연이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활동가는 꼬집었다. 그는 “‘박사방’에서 이뤄진 범죄 대부분 ‘복종’이 키워드다. 조 씨는 성욕이 아니라 여성을 능욕해 권력을 휘두르고, 자신이 그 위에 강력한 남성으로서 서 있는지를 보여주고자 했다”라고 말했다.

텔레그램 성 착취 구조에서 조 씨는 왕처럼 군림했다. 피해 여성들에게 신상정보와 함께 사적 촬영물 등을 유포하겠다며 협박해 종속시킨 뒤 ‘노예’라고 부르며 가학적·엽기적 행위를 지시했다. 공범들에겐 ‘박사님의 부하 ○○○입니다’를 복창하게 하는 영상을 찍도록 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른 단체방 운영자가 자신에 대적하려 할 시 신상유포 등으로 성 착취 세계에서 퇴출했다는 의혹도 있다.

조 씨는 이 상황을 대단히 만족해하고 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손희정 문화평론가는 “조 씨 같은 사람들은 자신이 세계를 통제할 수 있고, 이야기의 중심이 될 수 있다는 효능감을 즐긴다. 조 씨는 반성이나 사과 대신 자신을 근사하게 만들어 줄 이야기, 이른바 ‘떡밥’을 던졌다. 사람들의 입을 거쳐 자신의 이야기가 부풀려지는 것을 통해 효능감을 느끼고 있을 것”이라고 봤다.

조 씨가 유명인을 언급한 이유에 대해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26일 KBS라디오 ‘김경래의 최강시사’와의 인터뷰에서 “쓰레기 같은 파렴치범의 모습보다는 유명 언론사 사장, 정치인과 동격으로 대화 나누고 친분이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드러내 본인의 진실을 우회시키고 싶은 것”이라고 짚었다.

이어 “당장 손석희 사장의 과거 여러 가지 사건들이 다 재현됐다. 조 씨 예상대로 어제 하루 내내 (조 씨가) 정치적 이슈와 어떻게 연관 있는지 토론하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했다. 그걸 아마 원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본인 스스로 악마라고 지칭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나. (조 씨는) 굉장히 자의식이 고양돼있는 상태”라며 “근본적으로 자기를 좀 드러내고 싶은 욕망, ‘나는 대단한 사람’이라고 이야기하고 싶은 욕망이 있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필요 이상으로 자기를 어필하는 건 실제로 열등감이 많은 사람이 시도하는 방법”이라고 덧붙였다.

텔레그램에서 불법 성착취 영상을 제작, 판매한 n번방 사건의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 씨가 25일 오전 서울 종로경찰서에서 검찰에 송치되기 위해 호송차량으로 향하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2020.03.25
텔레그램에서 불법 성착취 영상을 제작, 판매한 n번방 사건의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 씨가 25일 오전 서울 종로경찰서에서 검찰에 송치되기 위해 호송차량으로 향하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2020.03.25ⓒ민중의소리

‘멋있는 악마’ 서사 만들어낸 조주빈
“가해자들이 무슨 생각하는지 안 궁금하다”
“언론, 가해자 이야기 전달해선 안 돼”

성폭력 가해자들에게 할 말이 없냐고 묻는 건 언론의 ‘나쁜 버릇’이라고 신성연이 활동가는 비판했다. 그는 “우리가 궁금한 것은 조 씨가 어떤 성격의 사람인지, 어떻게 살아왔는지, 친구 관계는 어땠는지, 무슨 옷을 입는지가 아니라 법과 사회가 조 씨를 어떻게 처벌할 것인지다. 마이크는 그에게 어떤 처벌이 가해져야 하는지를 묻는 사람들에게 돌아가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동안 언론을 통해 가해자의 이야기가 전달되면서 쉽게 용서되는 분위기가 형성되기도 했다. 손희정 평론가는 “강남역 여성혐오 살인사건 당시 여성들이 화가 난 이유 중 하나는, 피해자는 ‘변사체녀’ 이미지로 만들면서 가해자는 ‘목사를 꿈꾸던 젊은이가 좌절했다’는 식의 보도다. 문제는 가해자의 이야기가 공유되면서 그의 이야기에 매혹되거나 그 삶을 이해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진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손 평론가는 “조 씨가 자신을 대단한 인간으로 만드는 서사를 구축할 수 있게 마이크를 준 것은 큰 실수”라며 “대중문화에서 ‘악마는 멋있다’라고 범죄자 이야기가 소비되는 맥락을 그들도 안다. 근사하고 좋은 일로 영웅이 되기 힘든 한국사회에서 반영웅 서사를 가져가는 것일 수도 있다. 자신이 어떤 영웅으로 써지길 바라는 욕망과 대중문화의 접점을 찾아낸 것”이라고 말했다.

성폭력 사건에서 피해자가 아니라 가해자를 주목해야 한다는 뜻은 “그들의 인생 역경에 귀를 기울이라는 게 아니다”라고 신성연이 활동가는 강조했다. 그는 “텔레그램 성 착취 사건에서 조 씨의 협박이 가능했던 이유는 피해자에게 낙인찍는 사회적 문화가 있기 때문이다. 이 죄가 어떻게 발생했는지 집중해 문제의 본질을 찾기 위해 가해자에게 집중하자는 거지 그가 어떤 생각을 가졌는지에 집중하자는 뜻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강석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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