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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민보] 장애여성 운동에 20여년을 바친 활동가 배복주가 꿈꾸는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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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갓 초등학생이 된 천여 명의 아이들이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입학식을 하던 날. 호루라기 소리와 우렁찬 구호 소리에 맞춰 국민체조를 하던 중 한 여학생이 울음을 터트렸다. 12가지의 국민체조 동작 중 10번째 동작 '뜀뛰기'를 하려던 찰나였다. 많은 학생이 제자리에서 먼지를 풀풀 풍기며 왼발, 오른발을 한 발씩 들고 뛰고 있었지만 유독 한 사람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삐딱하게 서 있었을 수밖에 없었다. 장애가 있었기 때문이다.

2020년, 마흔을 훌쩍 넘긴 배복주(48) 씨는 여전히 이때 느꼈던 감정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다. 20여 년을 여성 장애 운동에 매진해 온 '베테랑 활동가'이자, 정의당 비례대표 후보 7번으로서 새로운 출발을 앞둔 그이지만, 수십 년 전 이 기억은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나만 다르구나'라는 것을 느꼈던 가장 선명한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이 경험은 배 후보의 유년 시절에 큰 영향을 끼쳤다. 배 후보는 어린 시절 상처를 어떻게 극복했냐는 질문에 "극복이요? 극복이라기보다는 적응했다는 게 맞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남들과 다른 몸이 눈에 띄지 않는 게 좋아서 초등학교, 중학교 때 조용하게 공부를 열심히 했다"며 "'쟤는 몸도 불편한데 성격도 나빠', '몸도 불편한데 공부도 못해', 이런 이중의 낙인을 받기 싫어서 문제없는 아이로 사는 게 모두에게 평화를 줄 것 같았다. 그래서 조용하게 살았다"고 회상했다.

배복주 정의당 비례대표 후보가 26일 국회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하고 있다. 2020.03.26
배복주 정의당 비례대표 후보가 26일 국회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하고 있다. 2020.03.26ⓒ정의철 기자

왜 장애 여성 운동이 필요했을까
"장애 여성이기 때문에 겪었던 경험들, 독자적인 운동 필요하다 판단"

주어진 환경에 적응하고, 순응하는 삶에 익숙했던 배 후보가 달라지게 된 것은 대학에 들어간 이후부터였다. 우연한 기회에 장애인 동아리에 가입하게 된 배 씨는 자신과 같은 많은 장애 학생들을 만났고, 장애 학생 대부분이 자신과 같은 경험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진보적인 사회에 대한 고민을 시작하게 됐다.

그는 "이 전까지만 하더라도 내가 이런 불합리한 구조에 대해 수용해야 하고, 감내해야 한다는 고민을 했다면 대학에서는 나와 비슷한 장애 학생들을 만나면서 사회를 보는 눈이 바뀌었다. 나와 비슷한 경험을 한 장애 학생이 많다면 그것은 개인이 극복할 과제는 아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됐던 것"이라며 "그때서야 진보적인 세상을 조금 더 깊이 고민하게 된 것 같다"고 설명했다.

배 후보의 삶은 연대와 투쟁이 8할이었다. 대학교 졸업 전후로는 장애인 등 교통약자들의 이동권 보장을 촉구하는 시민사회단체나 장애인 인권단체에서 일해왔고, 그곳에서 장애 여성들과 만나며 여성이자 장애인, 장애인이자 여성으로서의 삶이 얼마나 이중차별에 노출돼 있는지를 절실하게 깨닫게 됐다.

"나는 '뽀뽀뽀' 보고 한글 배웠어", "나도 남동생 학습지 숙제를 대신 풀어주면서 공부했다니까" 그곳에서는 장애 여성이었기 때문에 느낄 수밖에 없었던 차별과 폭력의 경험담들이 생생하게 오갔다.

배 후보는 "자연스럽게 가정폭력 얘기도 나오고, 성폭력이나 성차별에 대한 얘기도 나왔다. 내 또래의 많은 장애 여성들은 장애 남성에 비해서 제도교육의 경험이 없었다"며 "이 묘한 공감대는 장애 여성들이기 때문에 경험했던 것들이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때의 경험으로 독자적인 장애 여성 운동의 필요성을 느낀 배 후보는 장애여성공감이라는 단체를 만들고, 정치에 입문하기 전까지 20여년이 넘는 시간을 장애 여성 운동에 집중해 왔다. 장애 여성에 집중한 운동은 사실상 장애여성공감이 처음이라고 한다. 배 후보는 "장애 여성 운동이 독립적이고, 독자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것 아마 한국이 가장 잘하고 있을 것"이라며 자부심을 내비치기도 했다.

장애여성공감에서는 장애 여성들의 성폭력 문제를 상담하는 상담소를 운영하며 우리나라의 장애 여성 성폭력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알리는 활동을 오랫동안 해왔다. 또, 장애 여성 극단 '춤추는 허리'를 만들어 장애 여성들이 직접 문화·예술 활동에도 참여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다.

그는 장애 여성 분야 외에도 다양한 소수자들을 위한 인권운동에도 힘을 쏟았다. 소수자로서 차별의 경험은 결국 비슷할 수밖에 없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연대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 배 후보의 생각이었다.

배 후보는 "우리는 사회적 소수자로서 경험의 연대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다"며 "장애 여성의 경험은 모든 사회적 소수자의 몸의 경험과 연결된다고 생각한다. 그 목소리들이 연대 되어야만 세상은 소수자라 칭해지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러한 활동들이 조금씩 인정받으면서 배 후보는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 상임대표, 국가인권위원회 비상임위원을 역임했고, '안희정성폭력사건공동대책위원회(안희정 공대위)'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맡아 활동해 왔다. 그는 이러한 연대의 경험들이 자신에게 "중요한 자산이 됐다"고 설명했다.

장애 여성 운동 배테랑 활동가가 정치에 나선 이유
"응답 없던 국회 답답해, 국회에서 목소리 내고 해결해야"

배복주 정의당 비례대표 후보가 26일 국회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하고 있다. 2020.03.26
배복주 정의당 비례대표 후보가 26일 국회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하고 있다. 2020.03.26ⓒ정의철 기자

인생의 대부분을 장애 여성 운동에 매진해 왔던 그가 이제는 정치인이 되기 위한 도전에 나섰다. 정의당 비례대표 후보 7번에 오른 배 후보는 "아주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면서도 "(시민사회단체에서의) 제 활동으로는 한계가 있었다"고 털어놨다.

배 후보는 "차별금지법을 만들어야 한다고 매번 요구하지만 국회는 움직이지 않고, 장애인 복지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한다고 아무리 얘기해도 국회에서는 응답이 없었다"며 "이런 점이 참 답답했다"고 지적했다.

그동안 국회가 장애 문제에 접근했을 때 가장 부족했던 점은 무엇이었을까. 배 후보는 주저 없이 '감수성 부족'을 꼽았다. 국회의원들 중 장애를 가지고 있는 당사자들이 부족해서만은 아니라고 단언했다. 장애인에 대한 비뚤어진 시선을 가진 정치인들이 여전히 많다는 지적이었다.

배 후보는 "정치인들이 장애에 대한 이해 감수성이 낮기 때문에 여전히 장애인들에게는 서비스를 만들어주고, 복지 혜택을 주는 것만으로 자신들의 임무는 끝냈다고 생각하는 게 가장 큰 문제"라며 "중요한 것은 복지 혜택을 주는 것을 넘어서서 우리 사회에 장애인이 시민으로서 어떻게 권리를 갖고 살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실 그는 현실 정치에 대한 기대를 많이 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은 제도권 정치 밖이 아닌 안에서 목소리를 내며 세상을 바꾸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정의당이 약속한 과제들과 자신이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비슷하다는 판단에서 "무모한 도전을 한 번 해보자"고 결심하게 됐다.

배 후보는 "그동안 나는 운동을 통해서 정치를 해 왔는데 현실정치, 제도정치가 나에게 맞느냐는 지금 실험 중인 것 같다"며 "현실 정치나 제도권 정치에서 하는 목소리와 저처럼 운동의 경험을 가지고 내는 정치 목소리가 다를 수 있다. 하지만 중요한 건 목소리를 내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사람들이 저에게 '순진하다', '투박하다'고 말할 수 있지만 나는 순진하게 정치하고 싶다"며 "기술적인 현실 정치가 아니라 투박한, 촌스러운 정치인으로 살고 싶다"고 말했다.

배 후보가 국회의원이 되고 난 후에 꼭 하고 싶은 일 역시 장애와 여성, 인권에 집중돼 있다.

그는 "강간죄 개정과 2차 피해자들에 대한 지원을 위한 법안들을 만들고 싶다. 장애인 복지와 관련해서도 장애인 권리보장법을 제정해 복지의 전달 체계나 개념이 장애 당사자의 입장과 권리를 반영해서 만들어질 수 있도록 하고 싶다"며 "제가 장애 여성 당사자라 장애 여성과 관련된 입법 과제들을 발굴하려고 한다. 장애 여성들에게 필요한 여러 입법이 무엇일지를 고민하고 있다. 이런 것들은 제가 꼭 해야 할 일"이라고 강조했다.

배 후보가 이러한 약속을 이행하기 위해서는 정의당의 지지율 상승이 필수적이다. 최근 거대 양당이 주도한 '비례 정당'이 출범하면서 정의당을 비롯한 소수정당의 지지율이 좀처럼 오르지 못하고 있다. 특히 배 후보는 비례대표 7번인 만큼 초조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배 후보는 이 질문이 나오자 한숨을 내쉬며 "눈물로 호소하고 싶은 심정"이라고 절박하게 말했다.

그는 "정의당이 선거법 개정을 주도했기 때문에 (지금의 상황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논리인 것 같다"며 "정의당은 이 법의 취지를 최대한 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그것을 국민들께서 알아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배 후보는 "정의당이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이 법의 취지를 살리기 위해 노력하는 정당이 하나 정도 있다는 것을 봐주셨으면 좋겠다"며 "정의당은 교섭단체(원내 20석 확보)가 되는 것이 목표인데, 교섭단체가 될 수 있도록 해주시면 더 열심히 국회에서 다양한 목소리를 내고, 국민을 대변할 수 있는 정당이 되겠다. 그렇게 노력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셨으면 좋겠다"고 호소했다.

배복주 정의당 비례대표 후보가 26일 국회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하고 있다. 2020.03.26
배복주 정의당 비례대표 후보가 26일 국회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하고 있다. 2020.03.26ⓒ정의철 기자

남소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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