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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용환의 역사로 생각하기] 1929년 대위기, 루스벨트와 미국 정부는 ‘가지 않은 길’을 선택했다
심용환
심용환ⓒ민중의소리

2월 29일 관계부처합동으로 ‘코로나19 파급영향 최소화와 조기극복을 위한 민생·경제 종합대책’이라는 문서가 발행되었다. 대부분의 내용은 ‘지원’, ‘유예’, ‘인하’라는 단어로 마무리 되고 있었다. 눈에 띄는 내용이 있다면 ‘착한 임대인’이 ‘임대료를 인하시 정부가 절반을 분담하고, 추가 인센티브도 제공’한다는 내용 정도. 아마 이 지점 정도에서 두 달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듯 하다. 직접 지출은 취약 계층에 한정하고, 기업 경제 활성화 역시 지원 정도로 제한하는 수준. 극히 보수적이고 조심스러운 태도인데 곳곳에서 비판이 쏟아져 나온다. 코로나 방역체계의 성과에 취하지 말고 그로 인한 전면적인 경기 하강에 대비해야 한다는 것인데 현재로선 비판조차 산발적이고 정치적이기 때문에 아무도 모를 미래와 정부의 선택에 모든 것을 맡기고 지켜봐야 할 상황.

1929년 미국도 전례 없는 위기가 발생하였다. 엄청난 주가폭락에 이어 대공황이 일어난 것이다. 당시 대통령 프랭클린 루스벨트와 미국 정부의 정열적인 노력은 이미 교과서에 나오는 상식이 되버리고 말았다. 뉴딜정책과 테네시주 개발 사업. 실상은 뉴딜의 성과가 아니라 전쟁에 의한 경기 활황 때문이었다는 보수주의자들의 비판 또한 널리 알려진 형편이다. 참 무용한 지적이다. 뉴딜정책과 미국의 2차세계대전 참전은 10년의 간극이 있고 아무리 시장주의자를 자청한다고 해도 그렇지 해답이 전쟁이라고 주장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니 말이다.

당시 상황을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뉴딜 당시 루스벨트의 입법투쟁은 그야말로 전격적이었다. 1933년 대통령에 취임한지 5일 만에 ‘긴급 은행법’을 제출하였고 이 법이 통과된 다음날에는 ‘경제법’을 제출했다. 또한 글래스-스티걸법에 서명을 하여 ‘연방예금보험공사’를 설립하는데 정책의 핵심 성격은 절충적이었다. 대형은행의 파산을 막되 소액 예금자의 재산을 보호하고자 했으니 말이다.

증권 공시법을 통해 증권거래위원회를 만들어서 주식시장을 감시했고 나아가 ‘농업조정법’, ‘산업부흥법’을 통해 적극적인 정부개입을 시도한다. 언제나 경제가 어려워지면 가장 힘들어지는 것은 취약계층. 당시 미국의 농촌은 이미 극도의 어려움을 겪고 있었으나 정부의 정책은 매번 이들을 외면했다. 농업조정법은 주요 품목에 대한 생산량을 조정하고 농민들의 생산 기반을 강력하게 지원, 육성하는 정책이었다. 이때 ‘농촌 전력화청’이 만들어져서 비로소 농촌에도 전기가 보급될 수 있었다. 산업부흥법 또한 비슷한 맥락이다. 기업인들이 트러스트를 결성하는 독점행위를 일부 인정하는 대가로 노동조합의 단체교섭권, 최저임금, 최대 노동시간, 아동노동 등 ‘일괄규약’을 기업에 요구하였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신속성과 집중성이다. 뉴딜정책과 관련된 주요 입법은 루스벨트 집권 수개월 내에 의회에 제출되었고 상당부분 즉시 통과되었고 여러 정책은 이미 1934년과 35년, 집권 2-3년차에 실행에 옮겨지고 있었다.

뉴딜 정책을 펼친 미국 32대 프랭클린 D. 루스벨트 대통령(자료사진)
뉴딜 정책을 펼친 미국 32대 프랭클린 D. 루스벨트 대통령(자료사진)ⓒ자료사진

또한 루스벨트는 ‘지역 개발주의자’들을 끌어들였다. 당시만 하더라도 기술 발전이나 산업발전은 민간의 자유로운 노력의 결실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정부가 주도하면서 산업기술의 폭발적인 성장을 보이던 독일 모델은 빈번이 무시되기 일쑤였다. 이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었던 인물들은 역사학자부터 건축가에 사회사업가, 영향력 있는 지역지도자들까지 다양하였고 이들은 이미 1923년 ‘미국지역계획연맹’ 같은 것을 조직하며 새로운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7개 주에 걸쳐있는 테네시 계곡 개발은 그러한 힘을 배경으로 한 것이다. 설령 실패하더라도 ‘수천 개의 일자리가 생겨서 사람들이 일하게 되고 돈이 그들의 주머니에 들어갈 것’이니까 말이다.


뉴딜 정책에 대한 급진주의자들의 비판은
루스벨트의 개혁을 더욱 과감하게 만들었다
미국은 지금은 뻔한, 당시로서는 ‘가지 않은 길’을 선택했다


뉴딜 정책에 대한 반대는 보수주의자들의 목소리보다 진보주의자들의 목소리가 더 컸다. 듀퐁 가문을 비롯한 우파는 루스벨트를 독재자로 몰았고 자유기업에 대한 공격이 잘못되었다고 공격했지만 당시의 심각한 경제 상황은 결코 이들의 주장이 주도적 지위를 차지하지 못하게 했다. 문제는 대법원이었다. 산업 부흥법을 무력화시키는 것을 비롯하여 각종 개혁입법을 빈번히 방해하였다. 감정이 아니라 권력이 개혁을 방해한 것이다.

오히려 급진주의자들의 비판이 훨씬 우세했다. 루스벨트를 지지했던 찰스 커글린은 ‘사회 정의를 위한 전국연합’을 만들었고 광범위한 금융개혁과 은행의 국유화를 주장하며 경제적 정의에 근거한 번영을 주장했다. 전국적으로 인기가 좋았던 상원 의원 휴이 롱(Huey P. Long) 또한 ‘부를 공유하자(Share-Our-Wealth Plan)’라는 캠페인 아래 부자들의 잉여 재산 재분배와 그에 따른 부의 재편 운동을 벌여나가기도 했다.

급진주의자들의 공세가 강했던 것은 그만큼 루스벨트의 개혁이 과감했음을 의미한다. 이참에 더 나아가야 하니까. 보수주의자들은 상황을 인지하지도 해결할 능력도 없었다. 이미 전임 대통령 후버 시절부터 그들의 실력은 드러났으니까.

이보다 중요한 사실은 그와 그들이 ‘가지 않은 길’을 선택했다는 것이다. 지금의 입장에서야 너무나 뻔한 금융방어정책, 산업부흥정책, 사회보장 및 노동복지 시스템이겠지만 당시의 입장에서는 전례가 없는, 경제학의 기본 원칙을 무시하는, 미국이라는 나라가 백년이 넘게 쌓아올린 전통을 뒤흔드는 사건이었으니 말이다.

코로나는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2008년 미국발 경제위기가 가혹한 구조조정이 아닌 무지막지한 화폐발행을 통한 봉합 수준이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혹시나 더욱 심각한 국제적 위기가 닥치는 것은 아닐까. 이럴 때 국가를 좌지우지 할 수 있는 권력은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아무리 세상이 변했다하더라도 ‘나랏님 바라보는 백성의 심정’은 애가 탈 뿐이다.

심용환 역사N교육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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