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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은희의 내가 만난 동남아_2] 마욘 화산 아래서 맞닥뜨린 재난의 현장

인생 황혼기의 어르신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내 살아온 이야기가 소설책 한 권이야”라는 말씀을 자주 접한다. 연구자라는 집단이 대체로 말 많은 사람들이지만, 장기현지조사를 사랑하는 연구자들도 오래 산 어르신들과 마찬가지다. 정제된 논문에는 다 담지 못하는 뒷이야기들이 너무도 많다. 거기에 “여성” 꼬리표가 하나 더 붙으면 간난신고의 이야기는 곱절로 는다. 오늘은 내가 경험한 재난의 현장에 관해 말해보려 한다.

이 연재에서 내가 사용하는 프로필 이미지에는 원본 사진이 있다. 괴나리봇짐 매고 등산가는 모습으로 보일 수도 있는데, 이 사진을 찍은 장소는 필리핀 레가스피의 마욘산(Mount Mayon)이다. 지형학 교과서에도 수록된 원추형의 잘생긴(?!) 화산인데 내가 이 화산을 찾은 것은 2006년 11월 초였다. 박사논문의 핵심 현장인 라푸라푸섬 광산마을 - 레가스피 항구에서 배 타고 4시간을 더 들어가야 함. - 에 들어가기 직전이었다. 새로운 현장을 찾는 일은 늘 설렘과 걱정과 흥분을 동반하는데, 당시 나에게는 너무나 중요한 현장방문을 앞둔 터라 뭐든 긴장을 풀 ‘의식’이 필요했다. 그래서 현지 환경NGO 활동가 한 명을 꾀어내 그의 오토바이 뒷좌석에 앉아 갈 수 있을 최대치까지 그 산에 가보려 했다.

마욘화산 아래서의 필자
마욘화산 아래서의 필자ⓒ필자 제공

사실 트레킹한 시간보다 덜컹대는 산길을 달리는 오토바이에 매달려있던 시간이 훨씬 길었다. 입산금지 중이라 로컬 사람들이 다닌다는 길을 찾아야 했다. 약 3개월 전 큰 화산폭발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흘러내린 용암이 멈춰선 곳마다 화산암괴가 계곡을 이루고 있어 결국 우리도 산발치만 헤매다 숙소로 돌아왔다. 그렇지만 여전히 유황냄새를 풍기던 그 곳을 헤매며, 자연의 일과 사람의 일이 어떻게 교차하는지 생각이 깊어졌다. 물론 그때는 내가 앉아있던 암괴가 가져올 크나큰 2차 피해를 상상도 하지 못했고.

내가 이곳에서 겪은 재난은 화산폭발이 아닌 슈퍼태풍이었다. 계획된 현지조사를 미처 끝나기 전 태풍이 도래한다는 소식이 들려왔고, 섬사람들은 외지인인 내가 섬에 남는 것을 원치 않았다. 계획을 당겨 현장에서 빠져나오기는 했는데, 수도 마닐라엔 가지 못하고 마욘의 산발치에 있던 레가스피시에 남게 되었다. 대학원생 조사자의 주머니가 얄팍했던 탓이다. 새 비행기 티켓을 사지 않았/못했고, 그래서 그곳에서 슈퍼태풍을 온 몸으로 겪으며 일주일가량 고립되었다. (이 이야기 듣고 그리 위험한 현지 현지조사 내 자식은 못 보낸다 하실 분들은 없기를 바랍니다. 살아 돌아와 훌륭한 논문을 완성한 선례가 여기에 있습니다.)

레가스피는 당시 필리핀을 강타한 태풍의 상륙지였고, 대자연의 경고라 여길 만큼 두리안(태풍의 이름)은 위력적이었다. 한 방에 모여든 투숙객들이 없었다면 늦은 오후에서 밤까지 지속된 폭풍우를 참아내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래도 태풍은 지나간다. 문제는 늘 재난 이후이다. 전기도 교통편도 끊어지고, 도시기능은 마비되고, 치안도 위생도 믿기 어려운 상황에서는 재난 이후의 생존이 더 큰 위기로 닥쳐온다. 단기 방문자이자 연고도 없는 외국인으로서 나는 그곳에서 하루빨리 벗어나야만 했다.

복구물자 운송을 위해서 군이 투입되어 공항은 곧 정상화가 된다는 말만 믿고 공항에 도착했는데 이 공항이 언제 기능을 하게 될지 의심스러웠다. 지방공항의 활주로에는 부러진 나무둥치들이 굴러다니고 있었고, 단층의 공항건물도 지붕의 반이 날아간 상태였다. 이 지붕 뚫린 곳에서 언제까지 기다려야 할지 안전의 위협은 끊이지 않았다. 다행히 그곳에서 같은 처지의 여성동지들을 발견하고 나는 슬그머니 그들의 옆으로 옮겨갔다.

모두 마닐라에 연고가 있는 그녀들이나 외국인인 나나 외지인이긴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곧 의기투합해 마닐라로 귀환할 때까지 함께 행동하기로 했다. 깨어있는 시간 동안 비상식량도 나누고 짐도 봐주고 살아온 이야기도 나누고, 밤에는 돌아가며 보초도 서면서. 그곳에서 자매애를 나눈 덕분에 우리는 무사할 수 있었고, 마침내 마닐라 공항에 도착해 부둥켜안고 볼키스를 나누며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다. (더 상세한 이야기는 최근 동료들과 함께 쓴《여성 연구자, 선을 넘다》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재난 현장에서 벗어날 수 있고 돌아갈 곳이 있는 사람은 선택받은 사람들
그곳에서 삶을 지속해야 하는 사람들에게는 위기의 도입부일 뿐
친구들, 당신의 신이 바로 지금 당신과 함께하기를!


하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재난의 현장에서 벗어날 수 있고 벗어나서 돌아갈 곳이 있는 사람은 선택받은 사람들이다. 재난 그 자체는, 재난 이후에도 그곳에서 삶을 지속해야 하는 사람들에게는 위기의 도입부일 뿐이기 때문이다. 마닐라로 돌아온 후 확인해 보니 태풍으로 인한 레가스피 지역의 사망자가 천명 이상으로 집계되었다. 산등선에 얹혀있던 화산쇄설물들이 폭우를 타고 산사태를 일으켜 산발치 마을 여럿을 덮치며 피해가 커졌다고 했다. 일 년 후 그 도시를 다시 찾았을 때도 여전히 남아있는 상흔을 찾을 수 있을 정도였다.

필리핀 레가스피의 마욘화산 위치
필리핀 레가스피의 마욘화산 위치ⓒ민중의소리

레베카 솔닛의 《이 폐허를 응시하라》를 보면, 재난의 시기 무능한 엘리트 패닉과 겨우 살아남은 생존자들이 삶의 의지와 배려로 잠시 동안 이타적 유토피아가 만들어진다는 이야기가 잘 그려져 있다. 겨우 재난을 스쳐왔을 뿐인 나에게도 그런 순간이 있었다. 그곳에선 천애고아에 다름없었던 내가 그곳을 벗어나기까지, 먹을 것을 나눠주고, 공항재개 소식을 전해주고, 트라이시클을 태워주고, 어두운 밤을 함께 해준 사람들을 나도 만났었다. 그렇지만 나는 떠났고, 그들은 남아 재난 이후의 새로운 생존을 궁구해야 했고, 그 과정은 상상 이상으로 지난하고 힘겨웠을 것이다.

지금의 코로나-19 팬데믹을 경험하며 전지구적 재난에서 잠깐 벗어나 있는 것처럼 보이는 우리의 사정과 선제대응을 놓쳐 혹독하게 겪고 있는 그들의 사정을 비교해 보게 된다. 아직 팬데믹의 클라이맥스는 오지 않았다. 영국 총리가 입에 올려 문제가 되기도 했던 집단면역(herd immunity)의 실험은 선진국보다 개도국에서 먼저 현실화할 것이라 본다. 동남아를 비롯한 남반부 국가들에서 아직까지 확진자 수가 적은 것은 기후 덕분이 아니라 선제적 검진 역량이 낮기 때문이다.

늘 그렇듯 재난의 부채는 소외된 사람들과 국가들에 더욱 가혹하게 닥쳐올 것이다. 아직 우리도 끝났다고 보기 어렵지만, 가능하다면 다음 단계 개발협력은 방역과 보건과 사회안전망 구축 분야에 더욱 집중되었으면 한다. 2006년 11월에 내가 태풍의 현장에서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God bless you” “God be with you”였다. 오늘은 내가 동남아 친구들과 현지 교민들에게 이 말을 전하고 싶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함께 견뎌봅시다. 당신의 신이 바로 지금 당신과 함께하기를!

엄은희 서울대 사회과학원·아시아연구소 선임연구원(지리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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