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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노동이야기] 출근 막는 사회 말고 결근 이해하는 사회로

한국에서는 웬만큼 아파서는 도통 병가나 결근이라는 것을 상상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노동자들의 건강 문제나 이와 관련된 일터의 노동조건에 대한 연구에서 ‘결근(absenteeism)’을 지표로 사용한 경우엔, 종종 그 결과의 해석을 가늠하기 어려웠다. 결국 아파서 업무를 제대로 수행할 수 없는 상태에서도 출근해야 했던 경우인 ‘프리젠티즘(presenteeism)’을 지표로 삼는 것이 고용의 불안정성이 극대화되는 신자유주의 시대의 연구의 일면이었다.

한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창궐에 맞서는 효과적인 방법으로 등장한 소위 ‘사회적 거리두기’는 노동자들이 아프면 아니 아픈 조짐만 있어도 출근을 말린다. 하지만 녹아내리고 터져나갈 듯한 몸을 이끌고 출근하는 일이 사라졌다고 해서, 몸을 추슬러 건강을 챙길 여유가 모든 노동자들에게 똑같이 허락된 것은 아니다. 노동자들은 온전하게 돌봄을 받아야 할 대상으로 ‘결근을 이해받는 것’이 아니라, 불손한 감염의 매개체로 ‘출근을 거부당한 것’이다.

출근을 거부당한 이들은 감염의 전파자가 되지 않는 수준에서 필요한 검사나 진료 비용만을 보전받은 채 사회적으로 격리되고 있다. 다양한 형태의 지원책이 제시되고 있지만 임시방편일 뿐이다. 비교적 안정적인 고용 환경에서 결근을 이해받는 노동자들은 얼마나 될까?

시간 단위로 환산되는 임금을 받지 못하면 당장 생계가 막막해지는 불안정 노동자들이 있다. 기괴한 방식으로 왜곡된 고용 관행 속에서 노동자성을 인정받지 못하고 일하다 출근을 거부당한 이들도 있다. 신종 감염병 시대에 이들의 삶은 누가 책임져야 하는지 따져보아야 한다. 이들은 감염병이 지나가고 나면, ‘원래대로’ 아파도 결근을 거부당하고 출근을 강제받게 될 것이다.

31일 오전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전국서비스산업노동조합연맹 관계자들이 택배기사, 학습지 교사 등 특수고용노동자들에 대한 통일적인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안전·생계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0.3.31
31일 오전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전국서비스산업노동조합연맹 관계자들이 택배기사, 학습지 교사 등 특수고용노동자들에 대한 통일적인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안전·생계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0.3.31ⓒ김철수 기자

이제 ‘상병수당’을 본격적으로 이야기할 때

상병수당은 노동자가 일을 하다 다치거나 앓게 될 때 요양에 필요한 비용 외에 따로 지급되는 수당을 뜻한다. 이는 질병과 실업이라는 복합적인 위험에 처한 노동자의 최소한의 생계를 보장하는 제도다. 상병수당이 부재한 경우, 아픈 노동자들은 건강의 악화와 빈곤의 위험 사이에서 그들의 건강을 돌볼 것인지 또는 직업 및 소득의 손실을 감당할 것인지를 두고 갈등한다. 그러다 상당수는 몸이 아픔에도 일을 지속하게 된다(김기태, 이승윤, 한국 공적 상병수당 도입을 위한 제도 비교연구 및 정책제언, 사회복지정책, 2018).

적절한 생계보전을 위한 사회적 기제가 마련되지 않았을 때, 노동자들은 일터로 내몰린다. 그랬을 경우, 일터와 지역사회에 전염병이 확산될 가능성과 그 파국적 결과의 위험성을 경험과 직관을 통해 우리는 예견할 수 있다.

해고나 차별의 두려움 때문에 노동자들이 아픈 사실을 숨기고 일터에 나가게 된다면, 개인과 사회의 건강 악화는 물론 생산성 저하도 자명한 일이다. 그런 점에서 코로나19가 확산되고 있는 현재 상황은 생산성과 경제 논리측면에서라도 상병수당 도입에 대한 논의를 당장 시작해야 한다는 사회적 동의를 이끌어 낼 적기다. 물론 생산성이나 경제 논리에 앞서, 누구든 아프면 생계 걱정 없이 쉴 수 있어야 한다는 인권의 원칙이 우선되어야 한다.

27일 오후 인천국제공항 2터미널 입국장에서 코로나19 외국 유입 차단을 위해 옥외공간에 설치된 개방형 선별진료소(오픈 워킹스루형·Open Walking Thru)에서 의료진과 육군 현장지원팀이 대기하고 있다.  2020.03.27
27일 오후 인천국제공항 2터미널 입국장에서 코로나19 외국 유입 차단을 위해 옥외공간에 설치된 개방형 선별진료소(오픈 워킹스루형·Open Walking Thru)에서 의료진과 육군 현장지원팀이 대기하고 있다. 2020.03.27ⓒ김철수 기자

‘방역 선진국’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자

코로나19에 대처하는 방역 당국과 일선 의료진, 행정담당자들 그리고 불편을 감내하는 온 나라 사람들의 노고는 평가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세계가 칭찬해 마지 않고 본받을 귀감이 공장을 멈추지 않고 바이러스와 감염에 대처하는 일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통해 생계와 생존이 위협받고 있는 이들의 오늘의 생활과 내일의 삶을 어떻게 지키고 챙길 것에 대한 대책까지도 본받을 만한 것이 되어야 한다. 우리나라의 기술력과 경제 수준, 행정력이 바이러스 퇴치에만 미치고, 노동자와 민중의 삶에 이르지 못할 수준인 것도 아니다. 현재 OECD 국가 중에서 상병수당 제도가 없는 나라는 미국과 스위스, 한국 세 나라 뿐이다.

아직 이르다고 할 것인가? ILO는 1952년부터 ‘사회보장 최저기준에 관한 조약’(최저 기준)을 통해 상병수당 관련 규정을 제시하고 있으며, 이를 각 국가에 권고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20년 전인 2000년 국민건강보험공단 통합과정에서 상병수당 도입이 논의된 바 있다. 국민건강보험법 조항에도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상병수당을 부가급여로 실시할 수 있도록 명시되어 있다. 2006년 국가인권위원회는 사회보장권 강화를 위해 상병수당의 의무급여화를 통한 건강보험 개선을 권고한 바 있으며, 최근 코로나19 사태에 즈음해 국회에서도 상병수당 도입논의가 등장했다.

전 국민을 대상으로 의료보험이 적용된 지 30년이 넘었다. 고용보험이 도입된 것도 25년이 넘었다. 상병수당을 도입하려면 의료보험을 기반으로 해도 좋다. 고용보험을 기반으로 하려면, 특수고용직이나 플랫폼 노동자들, 프리랜서나 자영업자로 둔갑된 노동자들까지 포괄할 수 있도록 적용 범위를 확대하는 것을 전제로 해야 한다.

이제 논의를 시작하자. 노동자들의 출근을 막거나 거부하는 사회가 아니라, 병가와 결근을 이해하는 사회로 가야 한다. 그러러면 상병수당이 당장 필요하다.

류현철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소장·직업환경의학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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