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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은희의 내가 만난 동남아_3] 시절 좋아지면 민물 돌고래 보러 다시 가야지

나 1:언제쯤 다시 갈수 있을까? 올해는 영 글렀지?
나 2:아마도. 백신이 개발되기 전에는 힘들지 않겠어.

조기방역으로 피해를 극소화한 한국 시민의 배부른 투정일 수 있지만 이렇게 자문자답하는 횟수가 늘고 있다. 공무나 경제교류 등의 긴요한 사무 없이는 아무리 연구자라도 동남아를 상당히 오랜 시간 동안 가지 못하게 될 듯하다. 온라인으로 동남아 관련 기사를 좇거나 현지조사 폴더 안 사진들을 뒤지며 벗들의 안부를 오늘도 물어본다.

지인들이 종종 묻는다. “엄 선생의 베스트 장소는 어디야?” 너무 많아 하나를 꼽기는 어렵지만, 다시 가고 싶은 장소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지역 중에 캄보디아-라오스 국경지대의 메콩 강이 있다. (사실 메콩강은 어디든 다 좋다!) 이곳엔 너무도 사랑스러운 생명체, 이라와디 돌고래(Irrawaddy Dolphin)가 살고 있다. 지도상으로 행정적으로 국경선이 그어져 있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오랜 세월 흘러온 강줄기를 타고 자유롭게 오가는 민물 돌고래. 멋지지 않은가?

프놈펜타임즈(2020.04. 15.) 사진은 WWF 캄보디아지부에서 제공되었다.  캄보디아 환경부와 WWF 캄보디아는 돌고래서식처의 유네스코자연유산 등재를 추진 중이다.
프놈펜타임즈(2020.04. 15.) 사진은 WWF 캄보디아지부에서 제공되었다. 캄보디아 환경부와 WWF 캄보디아는 돌고래서식처의 유네스코자연유산 등재를 추진 중이다.ⓒ필자 제공

이라와디 돌고래. 이름에서 드러나듯 이 생명체의 이름은 미얀마의 주강인 이라와디 강에서 유래했다. 돌고래의 서식범위는 사실 넓다. 벵골만과 동남아시아 전역 그리고 호주 북동부 해안의 망그로브 숲이나 기수역((汽水域, 염수와 담수가 섞이는 지대)에서 발견된다. (방글라데시 영해의 벵골만에서는 5천 마리 이상 살고 있다.) 그렇지만 라오스-캄보디아의 메콩강, 인도네시아의 마하캄강(칼리만탄 섬), 미얀마의 에야와디 강(이라와디의 현지발음)처럼 완전한 담수 환경에서 살아가는 돌고래들도 있다. 그중 접근성 측면에서든 보호의 가치 측면에서든 메콩강의 민물 돌고래가 가장 주목을 많이 받는다. 메콩강의 돌고래는 약 90여 마리로 추정되는데 80여 마리는 캄보디아의 크라티에 주에, 10마리 남짓이 라오스-캄보디아 국경 지대에서 산다.

이곳에 두 번 가 보았다. 한 번은 라오스 쪽에서 다른 한 번은 캄보디아 쪽에서. 라오스에서 가려면 당연히 최남단 지역 팍세(Pakse)를 가야한다. 한국인들의 라오스 여행은 주로 수도 비엔티엔에서 시작해 방비엥에서 래프팅을 하고 루왕 프라방에서 야시장을 보거나 탁발순례를 보는 식으로 이루어진다. 하지만 남부 팍세에도 숨은 여행지들이 많다. 볼라벤 고원의 커피투어도 좋고, 4천개의 섬이란 뜻을 지닌 씨판돈(Si Phan Don)도 지친 여행자들의 좋은 휴식처이다. 씨판돈의 돈뎃(뎃 섬), 돈콘(콘 섬)에서 할 수 있는 여행활동 중에 하나가 돌고래 보러가기이다.

캄보디아에서 가려면 북동쪽 끝의 스텅트렝 주까지 가야 한다. 사실 캄보디아의 관광자원은 수도 프놈펜과 톤레삽 호수와 앙코르와트로 유명한 씨엠립에 집중되어 있어 이 방향으로 가는 길도, 가는 방법도 쉬운 여정은 아니다. 이곳만을 목적으로 가는 여행객들보다는 캄보디아 여행 끝내고 육로로 라오스로 넘어가려는(혹은 그 반대) 사람들이 더 많다. 일주일도 안 되는 단체관광이 대부분인 상황에서 현지연구자는 상대적으로 장기체류를 경험할 수 있다. 그러함에도 짧게는 한달 혹은 길게는 1~2년을 ‘바람의 아들, 딸’ 로 살아가는 서구인들을 보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다. 동남아 배낭여행객 중에는 1~3달 코스로 동남아 전체를 도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

“돌고래는 말이지, 나의 형제야.
내가 아주 어렸을 때 배에서 떨어져 메콩강에 빠졌는데
돌고래가 나를 물 위로 밀어올려줬거든.”

나에겐 조사목적지였던 스텅트렝을 가려면 프놈펜에서 7번 국도를 타고 버스로 7시간 반을 가야 한다. 렌터카를 구해가면 시간을 5시간 정도로 줄일 수는 있는데, 운 나쁘게 나는 폭우 속 번개 맞아 쓰러진 나무가 2차선 도로를 막고 있어 차에 갇혀 번 시간만큼 도로 까먹었다. 스텅트렝은 캄보디아-라오스 국경 넘는 사람들의 경유지‘였’다. 이들을 대상으로 호텔도 있고, 식당들도 있고, 관광코스도 개발되었다. 그런데 그 기능이 지금은 과거형이 되었다. 예전엔 국경을 넘으려면 복잡한 비자프로세스가 필요해 스텅트렝 1박은 필수였지만 지금은 도로환경도 개선되고 국경통과가 간소화되면서 스텡트렝은 관광객이 체류하는 곳이 아니라 통과하는 곳으로 바뀌었다.

주민들의 입장에서는 안타까운 일이다. 이 지역이 람사르습지 보호지역으로 지정되면서 국제기구들이 나서서 지역사회생태관광이 막 뿌리를 내리려던 참이었기 때문이다. 불법 어로행위 대신 “돌고래가 보호되면 관광객들이 온다.”며 강변마을에서는 홈스테이 등의 주민대상 관광교육도 많이 진행된 상태였는데 그 수요가 확연히 줄어든 것이다. 나는 그렇게 뿌리내리지 못하고 좌초한 지역사회생태관광의 현장을 연구하러 이곳에 갔었다.

캄보디아 쪽 메콩강 최북단 마을에 머물며 호주 옥스팜과 로컬 NGO가 만들어 놓은 돌고래전망대에서 어떤 관광객들이 오나 이틀을 기다려봤다. 소풍으로 단체여행을 온 스텅트렝 시내의 중학생 그룹과 오토바이 타고 하릴없이 강가에 나온 청년들과 연인들만이 종종 눈에 띄었다.

그런데 강 위에 배는 많이 떠 있었다. 대부분 라오스 국기를 달고. 사실 열대의 땡볕 아래 처마도 없는 모터보트(대체로 모터만 단 나무배)에 앉아 돌고래가 떠오르기를 기다리는 건(대체로 1시간 정도)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 배 중 일부가 캄보디아 쪽 돌고래전망대에 접안한다. 음료수도 사먹고 나무 그늘에서 좀 쉬려고. 그렇게 접안한 배에서 내린 한 미국인 청년과 이야기를 나눴다.

나:배에 가만히 있기 힘들었지? 어디서 왔어? 그리고 여기 어때?
관광객:돈뎃에서 2시간 전에 출발했어. 고래를 아직 못 봤어.
나:웰컴 투 캄보디아.
관광객:그런데 여기가 캄보디아야? 참 이상도 하지, 내가 어제 캄보디아를 떠나 라오스로 갔거든. 그런데 오늘 어쩌다보니 캄보디아에 다시 돌아왔군. 참나.

라오스로 떠나기 전 스텅트렝 시내 터미널에서 반나절을 보냈다는 그는 이라와디 돌고래 서식지(돌고래 풀)가 라오스에서보다 캄보디아에서 접근하기 더 가깝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고 말했다. 국제사회가 돕겠다고 하고, 주민들도 내심 관광객을 바라고는 있지만 이 국경지역에서의 돌고래 생태관광이 자리 잡기는 이렇게 쉽지 않다.

동행한 동료도 방문목적도 달랐지만 두 번 모두 나도 일부러 시간을 내 장시간 모터보트를 타고 땡볕 아래 너른 강에 배를 세우고 하염없이 돌고래가 물위로 솟구쳐 오르기를 기다렸었다. 멋진 직찍 사진을 건지지는 못했다. 그래도 운 좋게 멀리서 돌고래의 유영을 보며 이들의 안녕을 위해 나는 뭘 할 수 있을까 생각했었다.

라오스-캄보디아 국경의 메콩강
라오스-캄보디아 국경의 메콩강ⓒ민중의소리

메콩강은 여러모로 위기에 처해있다. 가장 큰 위기는 개발압력. 냉전시대 체제대립의 전선이었던 탓에 강은 의도치 않게 인공구조물 없는 자연 상태였는데, 1990년대 이후 도시화 그리고 무엇보다 중국과 라오스의 전투적인 수력발전 댐 건설이 현재 진행 중이다. 내가 라오스 쪽에서 이 강을 찾았던 이유도 이 국경지대의 라오스 수계에서 댐 건설이 예정되어 있어 그 영향을 보러 간 참이었다. 캄보디아 쪽으로는 개발에 대한 대안으로 마을생태관광이 어떻게 시도되었고 성과는 어떠했는지를 보러갔었다. NGO들이 빠져나간 뒤 마을관광은 쇠락했지만 그래도 아직 실낱같은 가능성은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글로벌 팬더믹의 위기가 진정되면, 이 국경 지대를 다시 한번 가봐야겠다. 전세계 7천 마리 있는 이라와디 돌핀이라지만 이 국경지대에서 살아가는 10마리는 좀 더 특별하니까. 캄보디아 최북동단 프레아 럼켈 마을 이장님이 말했다. “돌고래는 말이지, 나의 형제야. 내가 아주 어렸을 때 배에서 떨어져 메콩강에 빠졌는데 돌고래가 나를 물 위로 밀어올려줬거든.” 오늘도 드문드문 찾아올 마을관광객을 기다리고 있을 이장님과 홈스테이 숙소의 라이스와인을 사랑하던 아저씨의 사진을 찾아봐야겠다.

엄은희 서울대 사회과학원·아시아연구소 선임연구원(지리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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