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제철은 2019년 매출액 18조 738억원, 영업 이익 2,784억원을 남긴 어마어마한 기업이다. 2019년 성적이 부진했다고 하는데도 이 정도다. 현대제철의 여러 공장 중 철광석으로부터 직접 철강 제품을 만들어낼 수 있는 일관제철소(제선, 제강, 압연의 세 공정을 모두 갖춘 제철소)는 당진공장이 유일하다. 당진공장 3기의 고로에선 연 1200만 톤의 철강을 생산할 수 있다.
이 공장에선 매년 노동자 사망이 끊이질 않는데, 가장 많은 노동자가 사망한 해는 2013년이다. 이 해에만 9명의 노동자가 사망했고, 이 때문에 두 차례에 걸쳐 노동부 특별근로감독이 시행됐다. 당시 노동자들은 현대제철이 고로 3호기 건설에 박차를 가하며, 하청업체들에 공사 기간을 단축하라고 지시해 중대재해가 계속 발생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것은 의혹일 뿐이다. 노동부가 조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두 차례의 특별근로감독에서 1500건이 넘는 법 위반이 적발됐지만, 이렇게 많은 수의 법 위반이 가능할 수 있었던 회사 조직 문화는 관심사가 아니었다. 공사 기간을 단축하기 위해 안전 규정을 무시할 수밖에 없었던 원인의 원인은 조사하지 않았다. 안전보다 빠른 공사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은연 중에 압박했을지 모를 본사의 그룹 회장님은 조사도 처벌도 전혀 받지 않았다.
이것이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과제로 생각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다. 노동자들과 시민사회가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요구하는 것은 더 강한 처벌을 원해서만은 아니다. 처벌의 수위보다 ‘대상’에 더 관심이 많다.
재벌대기업이 하청 노동자에게 전가한 위험 때문에 반복되는 사고는, 그 대기업의 기업 문화와 시스템이 변하지 않으면 계속해서 되풀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현재 산업안전보건법 상의 관리와 책임 계통에서는 이 기업문화와 시스템에 대해 다룰 수 없다.
현대 사회에서 기업 시스템은 점점 복잡해지고, 위험 관리도 따라서 복잡해진다. 각각의 안전관리자, 담당자, 노동자는 시스템의 일부로 한정된 역할을 담당할 뿐이다. 이런 경향은 가벼운 사고보다 대형 재해 사고에서 더 뚜렷하다. 중대 재해, 대형 재해 사고들은 특정한 노동자 개인에게 책임을 돌릴 수 없는 ‘조직유발사고’로 발생한다. 기업 내 다층적 시스템의 여러 원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발생한 것이다.
이렇게 복잡한 시스템 속에서 발생하는 사고일수록 전반의 안전 관리, 총체적 안전 시스템, 기업 안전문화가 중요해진다. 이런 시스템, 관리, 문화의 최종 책임자는 최고 경영책임자다. 하지만, 기업이 분업화되어 있을수록, 기업의 안전관리가 시스템화 되어 있을수록, 재해 사고에 대한 최고 경영책임자의 ‘과실’을 인정하기는 점점 더 어려워진다.
지금의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단속과는 다른 논리와 체계로 산재 사고를 바라봐야 실제 기업의 경영 책임자, 혹은 본사 그룹 회장에게 그 책임을 물을 수 있다. 그 일을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통해 하자는 것이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논의는 어제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2013년 19대 국회에서 김선동 전 통합진보당 의원이 ‘기업살인처벌법안’을 대표 발의한 바 있다. 2014년 세월호 참사가 일어나자 당시 서청원 자유한국당 의원마저 ‘기업살인 처벌법’을 거론했다. 안전조치를 소홀히 해 대규모 인명피해가 발생한 경우 관련 기업과 책임자에게 민·형사 책임을 묻는 기업살인죄를 형법에 신설하자는 내용이었다.
2015년 7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제정연대와 416연대는 입법청원을 하며, 세월호 참사라는 국민적 아픔을 겪은 19대 국회가 이 법을 제정해달라고 호소했다. 당시 18명의 국회의원이 법안 소개 국회의원으로 함께 했지만 결실은 없었다. 20대 국회인 2017년, 노회찬 정의당 의원이 중대재해기업처벌법제정연대와 함께 법안을 발의했다. 그 외에도 여러 의원들이 안전관리를 소홀히 한 기업주와 기업 자체를 처벌하는 내용의 법률 제정안을 제출했지만, 본회의에 상정되지도 못했다.
지난 몇 년간 산재사망사고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이 높아졌다. 이런 마음을 모아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운동을 다시 시작한다. 4월 28일 세계산재사망노동자의 날에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입법발의자 대회가 열린다.
19대 국회에 중대재해기업처벌법안을 소개했던 국회의원들 중 김상희, 서영교, 심상정, 우원식, 이학영, 전해철, 진선미, 한정애, 홍익표 의원은 21대 국회에도 입성했다. 이들과 함께 새로운 국회에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제정할 수 있기를 바란다. 재벌대기업 회장님들이 산재 사망을 줄이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모습을 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
최민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활동가·직업환경의학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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