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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민보] 중요무형문화재 이수자가 부르는 일제강점기 시절 시와 노래

먼 훗날 당신이 찾으시면
그 때에 내 말이 잊었노라
당신이 속으로 나무라시면
무척 그리다가 잊었노라
그래도 당신이 나무라시면
믿기지 않아서 잊었노라
오늘도 어제도 아니 잊고
먼 훗날 그 때에 잊었노라

먼 후일 – 김소월

1925년 간행된 시집 ‘진달래꽃’에 수록된 김소월의 시 ‘먼 후일’이다. 떠나간 연인을 기다리는 사람의 마음이 담긴 시지만, 그 표현은 무척이나 반어적이다. “난 다 잊었어, 네가 지금 돌아와도 난 널 잊었다고 할 거야”라면서도, 무심코 뱉은 ‘오늘도 어제도 아니 잊고’에서 계속해서 그를 기다리는 화자의 본래 마음이 드러난다. 애절한 만큼, 상처받을 자신을 보호하고 싶은 마음도 커지는 것처럼.

일제강점기 시절, 해방을 꿈꾸는 이들의 마음도 이렇지 않았을까. 시 ‘먼 후일’은 일제강점기 시절 지어진 시다. 때문에 시대의 아픔을 그린 시로 해석되곤 한다.

“이렇게만 기다리고 있으면 너무 힘드니 난 널 잊을 거야, 라면서 떠나간 연인을 기다리는 내용이에요. 그 시대의 아픔도 내포된 것 같아서 노래로 만들어서 부르고 싶었어요. 그래서 은영이(건반·작곡)에게 음을 붙여달라고 부탁했죠.” - 야시시(夜時詩) 밴드 보컬 유지수

당시 시인들은 조국을 잃은 슬픔을 직접적으로 말하지 못하고 에둘러 표현했다. 조선인의 민족의식과 저항을 잠재우기 위해 일본이 펼친 ‘민족말살정책’ 때문이다. 시인이 그러했듯 전통음악을 하던 사람들도 처지는 비슷했다. 국악인들은 살기 위해 본래 하던 음악을 접고 대중음악 시장으로 나왔다고 한다. 국악은 사라지고 대중음악이 번창하게 된 시작이었다. 미국의 ‘재즈’, 일본의 ‘엥카’ 등이 들어오고 섞이면서 새로운 노래가 만들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아프지만 이렇게 형성된 음악 또한 우리의 역사이자 문화였다.

그로부터 약 90여 년이 흘러, 다시 그 시절 시(詩)에 음을 붙이고 그 시절 노래를 편곡해 부르는 밴드가 나타났다. 개화기밴드 야시시(유지수·이유·조은영)다. 밤 야(夜), 때 시(時), 시 시(詩)의 이음말인 야시시는 ‘어두운 시절을 밝히는 노래’라는 의미가 담겼다.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판소리) 이수자이기도 한 밴드 보컬 유지수 씨는 “국악인은 국악을 해야 하는 것 아닐까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당시 시대상이 담긴 노래나 시를 (재해석해서) 알리는 것도 좋지 않을까 생각했다”며 밴드를 시작한 배경을 설명했다.

개화기밴드 야시시 멤버들
개화기밴드 야시시 멤버들ⓒ개화기밴드 야시시 제공

개화기밴드 ‘야시시’가 부르는 노래

20일 서울 마포구 와우산로의 한 카페에서 개화기 밴드 ‘야시시’ 멤버 지수 씨와 이유 씨를 만났다.

보컬 유지수, 베이스 이유, 건반 조은영. 이 세 사람이 처음 뭉친 건 2018년 복합문화공간 ‘아이원’에서 우연히 공연을 하게 되면서다. 아이원은 서울 동대문구 장안동에 있는 갤러리·카페 겸 소극장이다. 주로 청년예술가들의 전시, 공연 등을 지원해 주는 공간으로 운영되고 있다. 지수 씨는 지인으로부터 추천을 받아 공모에 지원했다가, 덜컥 붙으면서 이곳에서의 그해 12월 공연을 하게 됐다.

“사실 이 공연을 위해 제가 좋아하는 사람들을 급하게 모았다가 밴드를 결성하게 됐어요. ‘야시시’라는 밴드 이름도 마음에 들고, 일회성으로 끝내기엔 너무 아쉬워서, 제가 구렁이 담 넘어가듯 ‘팀 할 거지?’ 의견도 제대로 물어보지 않고 팀을 만들어 버렸죠. 하하”

재즈아카데미 조교로 있다가 학생으로 온 지수 씨를 만나기 전까진 전통음악과는 거리가 멀었던 베이스 이유 씨는 제안이 싫지 않았다. “지수가 하는 것을 들어봤더니 제가 해왔던 음악과는 다른 매력이 있었어요. 개화기 시대 음악을 재해석해보자는 것도 너무 좋았죠. 지금도 배우는 마음으로 하고 있어요.”

이날 인터뷰에서 만나진 못했지만, 건반의 은영 씨도 실은 국악인이다. 대학에서 국악 작곡과를 졸업해 영화음악을 만들면서 밴드활동도 함께 하고 있다. 야시시가 부르는 리메이크곡 ‘오빠는 풍각쟁이’, ‘목포의 눈물’, ‘눈물 젖은 두만강’, ‘나는 열일곱 살’, 그리고 ‘개여울’ 등은 모두 은영 씨의 손을 거쳐 밴드 야시시의 음악으로 재탄생했다.

대부분 1920~1930년대 음악이다 보니, 시대의 슬픔이 서려 있는 게 특징이다. 지수 씨는 말했다. “확실히 연도별로 다른 것 같아요. 1920년 음악이 엄청 우울해요. 1930년대로 넘어가면서 대중음악의 부흥기라고 하지만, 억압을 많이 받았던 시대죠. 가사도 마음대로 못 쓰고 그랬잖아요.”

야시시가 리메이크한 가수 정미조의 노래 ‘개여울’도 쓸쓸하고 구슬픈 멜로디가 특징이다. 이 곡은 1922년 발표된 김소월의 시에 음을 붙여 만든 노래다. 정미조 이후, 아이유와 적우 그리고 영화 ‘모던보이’에서 김혜수가 불러 사람들에게 알려졌다. 야시시는 이 노래를 짙은 재즈풍의 음악으로 재해석했다. 듣고 있으면 일제강점기 시절 경성의 어느 재즈 바에 있는 느낌을 준다.

당신은 무슨 일로 그리 합니까
홀로이 개여울에 주저앉아서
파릇한 풀포기가
돋아나오고
잔물은 봄바람에 헤적일 때에

가도 아주 가지는 않노라시던
그러한 약속이 있었겠지요
날마다 개여울에 나와 앉아서
하염없이 무엇을 생각합니다

가도 아주 가지는 않노라심은
굳이 잊지 말라는 부탁인지요

개여울 – 김소월

노래가 옛 곡을 리메이크한 경우가 많다 보니, 아직까진 젊은 층보단 연령대가 높은 관객들에게 반응이 좋다. 지수 씨는 “색다른 경험이었다”며 지난해 12월 서울 왕십리에서 열린 한양대 동문회 행사에 초청을 받아 갔다가 겪은 이야기를 들려줬다. “동문회 행사다 보니, 아무래도 연령대가 좀 높았어요. 대부분 저희 부모님 세대였던 것 같아요. 노래를 부르는데 객석에 계신 분들이 옛 추억에 잠기는 모습이 보였어요. 감동이었어요. 앙코르(encore) 요청이 나와서 ‘목포의 눈물’, ‘눈물 젖은 두만강’을 불렀어요. 근데 다들 따라 부르시는데… 그 큰 홀에서 앉아계신 분들이 오로지 저희를 바라보며 가사도 틀리지 않고 ‘떼창’하는 모습은 정말 기억에 많이 남아요.”

개화기밴드 야시시
개화기밴드 야시시ⓒ개화기밴드 야시시 제공
복합문화공간 야시시에서의 공연
복합문화공간 야시시에서의 공연ⓒ개화기밴드 야시시 제공

누구에게나 열린 복합문화공간

야시시는 지난해 6월 새로운 일에 도전했다. 누구나 함께 전시·공연할 수 있는 ‘복합문화공간 야시시’를 오픈한 것이다. 인터뷰를 위해 밴드 야시시를 만난 곳도 이곳이었다.

이 공간은 현재 원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관객을 모아 공연과 전시를 할 수 있고, 때론 모임을 개최할 수 있는 공간으로 운영되고 있다. 문턱이 높지 않기 때문에, 주로 처음 공연하는, 처음 전시에 도전하는 예술가들이 지원한다. 또 평소엔 카페 겸 와인바로도 운영하고 있다.

공간을 열게 된 계기는 이유 씨의 이사였다. 해방촌에서 전셋집을 구해 10년 넘게 살던 이유 씨는 지난해 집주인이 바뀌면서 이사를 하게 됐다. “제가 10년 전 그곳에 살 집을 구했던 이유는 다른 곳보다 비교적 전세금이 낮아서였어요. 그런데 점점 동네가 사람들이 많이 찾는 ‘핫플레이스’로 바뀌면서 카페가 들어서기 시작했어요. 또 하필 제가 살던 집 주인이 바뀌었죠. 그래서 나오게 됐어요.”

집을 나왔지만, 해당 전세금으로 다른 지역에 전셋집을 구하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이유 씨는 차라리 이 돈으로 공간 운영을 해보면 어떨까, 생각했다. 팀원들과도 의견을 공유했다. “의견을 주고받다가 생각하게 됐어요. 우리 팀 또는 다른 예술가들이 편하게 공연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보고 싶다고. 지수의 경우엔 자기가 만든 음식을 누군가 맛있게 먹는 걸 행복해하니, 그럼 같이 동업을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했죠.”

돈을 벌자고 시작한 일은 아니었기에 남는 장사는 아니었지만, 생각보다 공간은 활발히 운영됐다. 야시시는 따로 돈을 받지 않고, 지원자들에 한해 매주 금요일과 토요일 세 팀씩 모아서 공연을 하고 있다. 관객 동원도 나쁘지 않았다. 처음 공연에 나서는 이들이다 보니, 지인이나 친구들이 응원을 위해 모였다. 다만, 최소한의 운영비를 위해 관객들에게 1인1음료 주문을 부탁했다.

이렇게 수많은 예술가들이 공간 야시시를 거쳐 갔다. 그 중엔 힙합하는 중학교 선생님도 있었다고 이유 씨는 말했다. “카페 손님으로 왔다가 얘기하다가 음악을 하는 분이어서 함께 공연했던 분도 있고, 중학교 선생님이신데 힙합을 좋아해서 공연하러 오신 분도 있었어요.”

매주 늦은 밤 공간을 대관해서 영화를 보고 이야기를 나누는 모임도 있었다. 매출은 주로 이런 대관에서 나왔다. 하지만, 수백만 원에 이르는 월세를 감당하기엔 역부족이었다. “좀 이익이 나면, 공연장을 보수하고 스피커를 바꾸는 등 계속 투자만 하고 있어요. 인건비를 따로 챙겨본 적도 거의 없네요. 그나마 코로나19 이전까진 중학교 외부강사, 재즈아카데미 조교, 레슨 등 각자 수입이 있어서 운영할 수 있었었지만, 앞으로는 어떻게 될지 모르겠어요.”

복합문화공간 야시시에서의 외국인 공연
복합문화공간 야시시에서의 외국인 공연ⓒ개화기밴드 야시시 제공

코로나19 위협...“그래도 지금처럼”

코로나19는 야시시를 비껴가지 않았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3월 말엔 아예 공간을 오픈할 수 없었고, 4월에 다시 오픈은 했어도 손님이 크게 줄었다. 게다가 지수 씨와 이유 씨, 은영 씨의 기존 생계활동도 급격히 위축됐다.

이유 씨의 경우 학교가 코로나19로 개학을 안 하다 보니, 외부강사 일이 사라졌다. 교육청 직원들을 대상으로 하던 재즈아카데미 수업도 사라졌다. 이렇게 수입이 완전히 끊긴 지 벌써 3개월째다. “이번 달까진 어찌어찌 모아뒀던 돈으로 버텼는데, 다음 달부턴 막막해요”

지수 씨나 은영 씨의 상황도 녹록지 않았다. 코로나19 사태로 주 수입원이었던 레슨이 줄었다. 서울시에서 운영하는 버스킹 공연 프로그램도 운영을 멈췄다. 1회당 20만원씩 나오고, 한 달에 1~2회는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었지만 이조차 받을 수 없게 됐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공연을 하다 보면, 다른 곳에서도 공연 초청을 받고 공연수입을 낼 수 있었다고 이유 씨는 설명했다. 이런 부수입도 기대할 수 없게 된 셈이다.

월세를 조금 낮춰줄 수 없겠냐고 건물주에게 물어봤지만, 소용없었다. 어쩔 수 없이 지수 씨와 이유 씨는 대출을 신청했다. 이도 받을 수 있을지 아직은 미지수다.

지수 씨는 앞으로 어떻게 공간을 운영할지 막막하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럼에도 지수 씨와 이유 씨는 “지금처럼 예술가들이 원하는 날에 원하는 공연을 할 수 있는 공간으로 계속 운영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또 코로나 사태가 좀 수그러들면 “주말마다 공연이 있다는 걸 알고, 찾아와주는 관객이 많아졌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올해 우리의 목표는 야시시 패밀리를 형성해 보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승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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