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 산재 사망 노동자 추모의 날인 28일 노동계를 비롯한 시민사회단체가 산재 사망과 재난사고를 일으킨 기업의 처벌을 강화하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위해 힘을 모으기로 했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연대(제정연대)는 2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계단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3744명의 노동자, 시민과 62개 시민사회단체가 1차 입법발의자·단체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입법 발의 운동’을 선포한다”고 밝혔다.
시민단체 62곳은 민주노총과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반올림),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와 4월16일의약속국민연대(4.16연대), 가습기살균제피해자와가족모임 등이다.
제정연대는 “대한민국은 한 해 2,400명이 산재로 사망한다. (매일) 아침에 출근한 7명의 노동자가 저녁에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한다”며 “상황은 나아지지 않고 대형 사고는 반복된다. 그렇게 많은 노동자와 시민이 죽었는데 그 어떤 기업도, 기업의 최고경영자도 살인죄로 처벌받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기업은 살인을 저질러도 그 ‘고의’를 입증하기 힘들다는 이유로 법망을 피해간다”며 “처벌받더라도 기업의 말단 직원 몇 명만 가볍게 처벌받을 뿐 진짜 책임이 있는 기업의 최고경영자나 고위급 임원은 처벌받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이들은 “삼성전자 노동자 집단 산재 발생, 2012년 20대 청년의 용광로 추락 사망 사고 등 안타까운 산재 사망 사고를 겪으며 노동자 생명과 건강에 대한 책임은 기업에게 있으며 이 의무를 다하지 않은 기업은 엄하게 처벌해야 한다는 인식이 꾸준히 확산돼 왔다”고 말했다.
특히 “가습기 살균제 참사는 이러한 문제의식을 제도화할 필요성이 있음을 확증 시켜 준 사건”이라며 “기업이 이윤 추구 행위 과정에서 노동자뿐 아니라 기업의 생산물로 불특정 다수의 생명과 건강을 위협할 수 있음이 드러났다”고 말했다.
이어 “‘고의’에 가까운 사실 은폐가 기업 내부에서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해당 기업을 강력히 처벌할 수 있는 그 어떤 제도적 틀도 없는 한국의 현실이 더 적나라하게 드러났다”고 지적했다.
제정연대는 “시민과 노동자의 생명과 건강을 앗아가는 산재 사망과 재난사고를 일으킨 기업의 대표, 경영책임자, 법인, 정부 책임자 처벌 없이 ‘더 이상 죽지 않는 사회’는 오지 않을 수 있다는 절박한 심정”이라며 입법발의 운동을 시작한 이유를 밝혔다.
그러면서 “생명 존중 안전 사회를 위한 첫걸음인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위해 시민, 노동자가 직접 입법 발의자로 나설 것이다. 노동자와 시민이 죽지 않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함께해달라”고 촉구했다.
이상윤 제정연대 집행위원장은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이 한국사회의 뉴노멀을 시작하는 중요한 제도적 변화라고 생각한다”며 “유족에게 그 어떤 말보다 위로를 전해줄 수 있는 법이며 한국 사회의 심각한 산재 사망과 기업에 의한 시민 살인을 멈추게 할 수 있는 주효한 수단”이라고 설명했다.
또 “이윤을 중시하고 생명을 경시해서 한국 국민들을 지금까지 많이 죽여온 한국 기업의 체질을 바꿀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수단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제정연대가 입법을 추진하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사업장이나 다중이용시설 등에서 안전관리 및 안전조치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아 사람이 죽거나 다치는 사고가 발생했을 경우 기업의 대표이사 등 경영책임자와 법인, 관련 공무원 등을 처벌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현행법상 산재 가해 기업을 독자적으로 처벌하는 것이 불가능한 구조를 바꾸자는 것이다.
앞서 2017년에 고 노회찬 의원이 ‘재해에 대한 기업 및 정부책임자 처벌에 관한 특별법안’을 대표 발의한 바 있다. 그러나 법안은 단 한 번의 심의조차 없이 20대 국회 임기 종료와 동시에 폐기될 운명에 처해있다. 제정연대는 노 전 의원의 발의안을 기준으로 지난 1월 개정된 산업안전보건법 등 변화된 상황을 반영하여 법안을 보완할 예정이다.
제정연대는 오는 7월 1일에는 고 문송면 군의 기일에 맞춰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운동본부’를 발족할 예정이다. 고 문송면 군은 1988년 7월 2일 당시 15세 나이로 온도계 제조업체에서 일하다 수은중독으로 숨졌다. 이후 산재 직업병 문제의 심각성이 한국 사회에 알려져 직업병 투쟁의 시작점이 됐다.
운동본부 발족한 뒤, 국회의원 면담, 법안 제정을 위한 전국 서명 운동 등을 진행하며 법안 발의를 위한 활동에 나설 계획이다.

김민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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