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한 여성이 노동 환경 등으로 선천적 질병을 가진 아이를 낳았을 경우 업무상 재해로 볼 수 있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2부(주심 김상환)는 29일 간호사 A씨 등 4명이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요양급여신청 반려처분 취소’ 소송의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A씨 등 4명은 제주도 도립병원인 제주의료원 소속 간호사로 2002~2003년 입사 후 2009년 임신해 2010년 아이를 출산했는데 아이 4명 모두 선천성 심장질환을 갖고 있었다. 제주의료원 간호사들 2009년 임신한 사람은 모두 15명이었는데 이 중 6명만이 건강한 아이를 낳았다. 나머지 5명은 유산을 했다.
A씨 등은 임신 초기에 유해한 요소에 노출돼 태아의 심장 형성에 장애가 발생했다며 선천성 심장질환아 출산이 업무상 재해에 해당한다고 주장하며 근로복지공단에 요양급여를 신청했다. 하지만 근로공단은 “업무상 재해란 본인의 부상·질병·장해·사망 등만을 의미한다”며 거부했다. 이에 A씨 등은 2014년 2월 소송을 냈다.
1심은 간호사들의 업무로 인한 태아의 건강손상을 업무상 재해로 인정했다. 법원은 “출산으로 모체와 태아의 인격이 분리된다는 사정만으로 그전까지 업무상 재해였던 것이 이제는 업무상 재해가 아닌 것으로 변모한다고 볼 수 없다”고 봤다.
하지만 2심은 “각 출산아의 선천성 질병은 출산아의 질병일 뿐 근로자의 원고들 본인의 질병이 아니”라며 1심 판단을 뒤집었다. 출산아와 별도의 인격체인 A씨 등 원고에게 급여 수급권이 없다고도 판단했다.
그러나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재판부는 “산업재해보상보험법 해석상 임신한 여성 근로자에게 그 업무에 기인해 발생한 ‘태아의 건강손상’은 여성 근로자의 노동 능력에 미치는 영향 정도와 관계없이 근로자의 ‘업무상 재해’에 포함된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말했다.
또 산재보험법의 해석상 모체와 태아는 ‘본성상 단일체’로 취급한다고도 했다. 재판부는 “출산으로 모체와 단일체를 이루던 태아가 분리되었다 하더라도 이미 성립한 요양급여 수습관계가 소명된다고 볼 것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헌법 제32조 제4항 ‘여성 노동의 특별한 보호’, 헌법 제36조 제2항 ‘모성 보호’의 취지 등을 종합하면 여성 근로자와 태아는 임신과 출산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업무상 유해 요소로부터 충분한 보호를 받아야 한다”며 판결 근거를 밝혔다.
대법원은 “태아의 건강 손상 또는 출산아의 선천성 질환이 근로자의 업무상 재해에 포함되는지 여부에 관한 최초의 판례”라고 판결 의의를 밝혔다.
이날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노동위원회·여성인권위원회(이하 민변)는 논평을 내고 “4명의 간호사는 평균 300~500정의 약품을 분쇄하는 업무 과정에서 약품을 흡입한 것으로 추정된다”며 “이 약품들은 미국 FDA 임부투여안정성 등급 X등급(임부에게 투여 금지) 17종, D등급(태아에 대한 위험성이 증가한다는 증거가 있음) 37종이었고 임산부 복용 시 선천성 심장 기형의 위험이 증가하는 것이었다”고 설명했다.
또 “그 외 오물처리작업, 욕창 환자 드레싱 및 용품 소독, 박스 나르기, 서서 일하기, 쪼그려 작업하기, 불규칙한 업무가 확인됐다”며 “경영상 이유로 항상 간호사가 부족했고 간호사 1인당 40여 명의 환자를 담당해야 했다”고도 말했다.
민변은 “대법원 판결을 환영하며 나아가 국회와 행정부가 관련 법령을 이번 판결의 취지에 부합하게 조속히 개정·적용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김민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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