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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이천 화재 참사, ‘사고’와 ‘살인’ 사이

이천 물류창고 건설 현장에서 대형 화재가 발생했다. 38명이 죽고 10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이 사건을 뭐라고 불러야 할까. 어떤 이는 ‘불의의 사고’라고 부르고 어떤 이는 ‘예견된 참사’라고 부른다. 후자가 전자보다 사건의 ‘강도’를 높이고 책임을 더 묻기 위한 어휘 선택이다. 그런데, 혹여 이 사건은 ‘살인’이 아닌가.

사건의 명칭은 사건의 본질과 관련돼 있다. 세월호 참사를 굳이 ‘교통사고’라고 주장하는 이들의 의도는 자명하다. 때문에 사건을 무엇이라 부를 것인지는 사건의 본질을 따져보는 일이다.

우리 법체계에서 ‘살인’은 고의가 있어야 성립된다. 그렇지 않으면 살인죄로 다루지 않는다. 사람이 죽은 사건이 발생해도 고의성이 없다면 ‘과실치사’로 다룬다. 폭력에 의한 상황이면 상해치사나 폭행치사도 있긴 하다. 살인죄와 과실치사죄는 사건의 본질이 다르고, 양형에서도 천지차이다. 살인죄는 우리 법체계에서 가장 잔혹한 범죄의 수위다. 이번 사건을 ‘살인’이라 명명하기 쉽지 않다. 그래서 따져보자.

일단, 이 사건은 ‘불의의 사고’인가.

불의의 사고란 뜻하지 않게 우연히 발생한 일이라는 뜻이다. 이 사건의 발생원인은 우연이 아니다. 사건은 공사현장 지하에 인화물질로 화재위험이 있는 상황에서 불꽃이 튀는 용적작업이 금지하는 규정을 어겨서 발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장의 위험이 방치된 채로 업무가 진행 됐고, 그로 인해 화재가 발생했다. 현장을 지휘한 관리자의 책임이 있을 것이고, 그 관리자가 속한 회사에 책임이 있다. 나아가 시공을 맡긴 발주사 역시 현장관리의 책임이 있다는 것이 현행법의 규정이다. 그래서 이 사건을 ‘예견된 참사’라고 부른다.

자, 그럼 이 사건을 ‘예견된 참사’로만 불러야 할까.

국립국어원은 ‘참사’를 ‘비참하고 끔찍한 일’이라고 정의한다. 이 사건은 비참하고 끔찍한 일이다. ‘참사’라는 단어는 ‘사고’에 가깝지 ‘고의성’이 담긴 범죄와는 거리가 멀다. 그런데 이 사건의 책임자들에게서 과연 ‘고의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있을까.

더불어민주당 한정애 의원실이 입수한 이천 물류창고 공사 ‘유해·위험방지계획서 심사 및 확인 사항’에는 시공사 건우와 발주사 한익스프레스가 세차례 ‘화재위험(발생) 주의’를 받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공사는 안전성 관련 ‘유해·위험방지계획서’ 심사에서 위험 수준이 가장 높은 ‘1등급’ 판정을 받았다.

당국의 주의를 받아왔고 위험등급이 높은 상황에서 공사를 밀어붙였다면 이 사건의 본질은 ‘사고’보다는 ‘범죄’에 더 가깝다. 원하청 회사가 위험을 방치했다는 ‘미필적 고의’가 있기 때문이다. 미필적 고의란 자기의 행위로 어떤 범죄 결과가 일어날 수 있음을 알면서도 그 행위를 행하는 심리다. 그러니까 이 사건은 ‘이대로 가면 화재가 나서 사람이 죽을지도 몰라’라고 생각하면서도 위험한 공사를 강행한 범죄에 가깝다.

자, 이제 이 사건을 ‘살인’이라 부를 수 있을까.

영국은 2007년 ‘기업살인법(Corporate Manslaughter and Corporate Homicide Act 2007)’을 제정했다.이 법은 최초로 산업현장 사망사건의 책임을 ‘기업’에 묻는 법으로 평가된다. 또한 산업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건을 ‘살인사건’의 범주에서 다뤘다고 평가된다. 기업이 산업현장에서 ‘살인’을 저질렀다고 보고 기업을 처벌할 수 있도록 규정했다. (영미권에서 쓰는 ‘Manslaughter’라는 범죄는 한국어로 과실치사로 번역되지만, 이 범죄는 ‘Homicide’라는 광범위한 살인사건의 범주에서 다룬다.)

이 법이 도입된 과정은 중요한 시시점을 가진다. 영국의 보건안전법이 상당히 발달해 있다고 평가되지만 그 법에도 ‘범죄요건’을 충족시키는데 구멍이 있었고, 책임자들이 처벌을 피해갔다. 그러자 아예 ‘기업’에 ‘살인’의 책임을 묻겠다는 일종의 특별법이 도입된 것이다.

1987년 엔터프라이즈 여객선 침몰 사고로 승객과 선원 188명이 사망한 뒤에도 대형 참사들이 이어졌지만 책임자들에 대한 실형은커녕 벌금형이 내려지자 영국의 노동조합들과 시민단체들이 ‘기업살인법’ 입법을 추진했고 2007년 제정된 것이다. 이 법을 통해 1명의 사망사건이 발생해도 몇 억원의 벌금형이 책임기업에 내려진다. 2명의 사망한 사건의 경우 18억원의 벌금형이 내려졌다. 이 판결을 통해 관련 기업주에게 형사적 책임을 묻는 경우도 있다.

관리자들에게 ‘안전관리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고 책임을 묻는 것만으로는 산업현장의 사망이 근절될 수 없다는 문제의식이다. 즉, ‘기업이 살인을 했다’는 개념을 도입해 산업현장에서 노동자들의 ‘목숨’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 산업현장의 사망사건은 ‘기업에 의한 살인’으로 봐야 한다.

처벌의 수위에서 살인과 관리소홀에 의한, 과실치사는 천지차이다. 우리 법체계에서 살인죄는 다른 가중 사유가 없어도 징역 5년이상, 무기징역, 사형에 처하게 법에 정해져 있지만 업무상 과실치사는 죄질이 무겁다고 해도 5년 이하 금고 또는 2천만원 이하 벌금에 처해진다. 산업안전보건법상 안전보건의무 위반으로 노동자가 사망의 결과에 이르면 7년 이하 징역 또는 1년 이하 발금에 처해지게 돼 있다.

그러니까 산업안전보건법상 사망 사건은 형법상 업무상 과실치사보다 단계가 높고 살인죄보다는 단계가 낮게 돼 있다. 하지만 결정적 차이가 있다. 살인죄는 ‘최소형’이 있는 반면 업무상 과실치사와 산업안전보건법 안전의무위반은 ‘최고형’으로 설정돼 있다. 즉 우리 법체계에서 산업재해는 업무상 과실치사에 가깝다는 말이다.

‘이대로 가면 노동자가 죽을 수 있다’는 점을 알면서도 현장의 위험을 그대로 방치하고 공사를 밀어붙이는 기업에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의 책임을 물을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이 끔찍한 참사들의 행렬을 막을 수 있지 않을까.

김동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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