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보기
댓글보기
[만민보] 금호동 빨간 벽돌집의 비밀 ‘여기 책방 있어요!’
없음

서울 금호동 언덕에 있는 빨간 벽돌집 ‘프루스트의 서재’는 동네 보물이다. 지하철 3호선 금호역 또는 5호선 신금호역에서 내려 굽이굽이 골목길을 오르다 보면 사랑스러운 이 공간을 찾을 수 있다.

책방이 생기기 전에는 그저 허전하고 적적한 골목길이었다. 금호동에서 나고 자란 한 청년이 어렸을 적 기억을 더듬어 자취를 감춘 책방을 생환했고, 숱한 고초가 있었지만 벌써 5년을 견뎠다. 동네에 터를 잡아 주민들의 놀이터가 돼 주고 밤길 가로등도 돼 줬다. 그렇게 사람들의 흔적을 먹으며 책방은 서서히 뿌리를 내렸다.

책과 글을 좋아하고 매사에 조급해하지 않는 청년의 묘한 고집 덕에 이제는 프루스트의 서재를 쫓아 몇몇 책방지기가 주변에 터를 차리고 있다. 대부분이 프루스트의 서재를 방문했던 손님이다.

젊은이들의 발걸음이 잦아진 덕에 카페와 음식점도 곳곳에 들어섰다. 굳이 이 골목을 올라 산책하는 주민도 늘고 있다. 길을 헤매다 만난 책방지기 덕에 책방을 보금자리 삼게 된 고양이 ‘까순이’는 밤낮으로 이곳을 지키며 어느덧 금호동에서 친구가 제일 많은 ‘인싸’가 됐다.

최근 프루스트의 서재에서 책방지기 박성민 대표를 만났다. 책과 글에 대한 애정이 각별한 그는 2000년 전역 뒤 처음 책방에서 일을 시작했다고 한다. 헌책방에서 4년, 대형서점에서 7년을 일했다. 성민 씨는 “책을 볼 수 있고 글을 쓰는 것에도 도움이 될 것 같았다. 처음 헌책방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는데 책을 다루는 일이 생각보다 재미있어서 꽤 오랫동안 일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후 대형서점 직원으로 일했지만 회사의 시스템을 쫓아 ‘책을 판다’는 것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던 업무가 잘 맞지 않아 7년을 일한 끝에 그만두었다고 한다. 그는 “제가 좋아하는 책을 선별해서 잘 보여주고 싶은데 시장 논리에 따라 좀 더 잘 팔리는 책을 비치하고 책정된 광고비에 따라 책이 잘 보여 져야 하는 상황들, 제가 원하는 방식과 거리가 멀어 조금 힘들었다”고 털어놓았다. 이어 “글 쓰는 일에 더 매진하고 싶었고 제가 좋아하는 책도 같이 판매하고 싶어서 나오게 됐다”고 말했다.

프루스트의 서재를 운영하는 박성민 대표가 25일 서울 성동구 무수막길 56 독립서점 프루스트의 서재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0.04.25
프루스트의 서재를 운영하는 박성민 대표가 25일 서울 성동구 무수막길 56 독립서점 프루스트의 서재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0.04.25ⓒ김철수 기자

헌책 1천 5백 권으로 시작한 동네 책방
운영 1년 만에 되찾은 과거의 시간

책을 파는 시스템에 끼여서 일하는 것이 싫었던 성민 씨는 책에 더 많은 애정을 쏟기 위해 직접 책방을 차렸다. 그가 아끼는 동네이자 거주지인 금호동에서.

책방에서 일하며 받은 책 몇 권, 원래 갖고 있던 책 몇 권 그렇게 차곡차곡 모아둔 1천 5백 권의 헌책으로 ‘프루스트의 서재’를 시작했다. 1천 5백 권을 모두 소장하고 있었냐는 물음에 성민 씨는 “꽂아놓으면 그렇게 많지도 않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책방 이름은 소설가 마르셀 프루스트의 이름에서 따왔다. 성민 씨는 “프루스트가 쓴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읽었다. 굉장히 읽기 어려운 책으로 알려져 있다. 제가 그 책을 다 읽고 큰 감명을 받아서 이름을 쓴 것은 아니다. 책의 이름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그 당시 제 마음 상태가 딱 그랬다”고 설명했다.

그는 “책을 팔기만을 위해 일한 시간이 너무 싫었다. 제 시간을 잃어버린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 시간을 되찾고 싶었다”고 말했다. 또 “책 속 주인공이 홍차에 마들렌을 찍어 먹으며 어린 시절 유년의 기억을 회상하는 것이 굉장히 유명한 대목인데, 나도 내가 좋아하는 책으로 ‘가장 좋았던 때’를 떠올리고 싶다는 생각에 이름을 짓게 됐다”고 부연했다.

성민 씨는 책방을 운영하며 ‘되찾은 시간’이라는 책을 출간했다. 책방을 처음 차린 이후부터 1년 동안 매일매일 적은 일기를 담았다. 그는 “1년 동안 나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았다고 생각해 책 이름을 ‘되찾은 시간’으로 지었다. 프루스트의 책에도 같은 이름의 소설이 있다”고 말했다.

프루스트의 서재에는 독립출판물, 일반 단행본, 중고서적 등 크게 3가지 종류의 책이 있다. 일반 동네 책방과 달리 중고서적 판매 비중이 큰 점이 특징이다.

헌책에 대한 성민 씨의 애정은 남다르다. 처음 책방과 인연을 맺고 책방지기로 홀로서기까지 함께한 동반자인 이유가 크다. 그는 “헌책을 다루는 게 너무 재미있다. 사실 여기 있는 것보다 훨씬 더 헌책을 비중 있게 다루고 싶다”며 “이미 절판돼 안 보이는 책도 소개하고 싶은데 호응도가 많이 떨어져 있어서 지금 당장 헌책을 전면에 내세우기는 경영상 어렵다”고 아쉬워했다.

대형 인터넷 서점이 오프라인 중고서점을 운영하는 부분도 영향을 미쳤다. 성민 씨는 “중고서적은 정해진 게 없다. 내가 얼마만큼 책을 구입해서 얼마에 팔아야 하는지 스스로 판단해야 하는데 지금은 구조적으로 너무 어렵다. 수급 자체도 어려운 부분이 있다”며 “저도 지금은 중고서적을 거의 온라인으로 판매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런데도 “만약 새로운 책방을 하나 더 연다고 한다면, 거기는 정말 헌책만 놓고 싶다”는 것이 성민 씨의 바람이다.

프루스트의 서재를 운영하는 박성민 대표가 25일 서울 성동구 무수막길 56 독립서점 프루스트의 서재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0.04.25
프루스트의 서재를 운영하는 박성민 대표가 25일 서울 성동구 무수막길 56 독립서점 프루스트의 서재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0.04.25ⓒ김철수 기자

이중 삼중 쌓이는 책
‘근근이’ 유지되는 수익은 여전히 숙제

책에 대한 주인의 애정이 유별난 탓에 ‘프루스트의 서재’는 갈수록 더 풍족해지고 있다. 책방을 모두 둘러보는 데는 20걸음이 채 안 걸리지만 구석구석 숨겨진 볼거리가 많아 한 걸음, 한 걸음을 옮기기까지는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다.

책방에는 다양한 연령대, 직종, 지역의 손님이 방문한다. 여러 사람과의 교류가 많아진 것도 성민 씨가 뽑은 책방 운영 장점 중 하나다. 지방에 사는 독립 출판 작가들이 책을 보내며 택배에 넣은 ‘감사 인사’ 쪽지 한 장도 버리지 않고 차곡차곡 벽에 붙여둔 그는 글만큼 사람과의 인연도 소중히 여겼다.

문제는 책방에 대한 관심도에 비해 현저히 떨어지는 판매율이다. 성민 씨는 책방의 수익에 대해 “가게를 유지하는 정도”라고 말했다. “수익이 나야 새로운 책을 구입할 수 있는데 수익이 없으니 새 책을 들여오고 싶어도 못 들이는 부분이 있다”며 아쉬워했다.

그는 “처음에는 허한, 비어있는 이 공간을 채워야겠다는 마음으로 열심히 했는데 지금은 책이 너무 많아져서 관리가 어려워지고 있다”며 “책이 들어오는 만큼 빠져야 하는데 기존의 책이 나가지 않으니 어딘가 이중, 삼중 책을 쌓아야 하고 관리 자체가 잘 안 된다”고 말했다.

다만 성민 씨는 책이 잘 판매되지 않는 부분을 탓하기보다는 “제가 좀 더 정리를 잘해야겠다”며 덤덤히 웃어 보였다. 동네 책방이 유행하고 있는 현상에 대해서는 “굉장히 좋게 보고 있다. 사람들이 멀리 가지 않고 동네에서, 가까운 곳에서 책을 볼 수 있는 환경이 됐다”며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최근 지역 공공 도서관이 ‘동네 서점 살리기’ 일환으로 책방에서 책을 구입하고 있는 것은 운영 중 빛줄기 같은 도움이다. 성민 씨는 “도서관에서 책을 사입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됐으면 좋겠다. 그것만으로도 굉장히 힘이 된다”며 “그마저도 없었을 때는 굉장히 조마조마했다. 그나마 저는 세를 비싸지 않은 곳에 얻어 책방을 유지하고 있지만 사람이 많이 다니는 대로변에 책방을 내면 돈이 많이 든다. 매출을 맞춰야 세를 낼 수 있다”고 언급했다.

프루스트의 서재를 운영하는 박성민 대표가 25일 서울 성동구 무수막길 56 독립서점 프루스트의 서재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0.04.25
프루스트의 서재를 운영하는 박성민 대표가 25일 서울 성동구 무수막길 56 독립서점 프루스트의 서재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0.04.25ⓒ김철수 기자

쓰고, 만들고, 팔고
‘만족할 때까지’ 책방 운영하고 싶은 꿈

소설가가 오랜 꿈이었던 성민 씨는 틈틈이 글을 써 책을 출간하는 것도 계획하고 있다. 소재는 주로 ‘일상’에 관한 것을 다룬다.

직접 책을 만드는 활동도 겨를이 있을 때마다 조금씩 진행 중이다. 그는 “아직 정식으로 하는 건 아니지만 수제본으로 책을 만들고 있다”며 직접 만든 손바닥 크기의 책을 보여주었다. 책의 내용에 맞게 흰색이 아닌 특별한 속지를 고르고 표지를 꾸미고 글자를 나열한 것이 매력이다. 한 장 한 장 인쇄해 자르고 붙이는 과정이 번거롭지만 정해진 틀이 없다는 장점이 있다.

그는 “재료값, 종이값, 파본 비용 등을 따지면 사실 노력 대비 수익은 거의 없지만 제가 좋아하는 글을 택해서 수제본 책만 출간하는 아주 작은 출판사를 해보고 싶다”고 밝혔다.

책방에서의 시간을 온전히 활용하고 있는 성민 씨가 제일 지향하는 것은 책방을 ‘만족할 때까지’ 운영하는 것이다. 손님들이 편하게 책방에 왔다 가고 관심을 가져주기를 바라고 있다. 성민 씨는 “꼭 구입하지 않아도 자주 와서 책방에 어떤 책이 있는지도 보고 동네마다 어떤 책방이 있는지도 생각해보면 좋을 것 같다”고 강조했다.

그는 “외관에서 풍기는 느낌이 아니라 이 책방에 직접 들어와서 ‘그 책방과 이런 게 다르다’는 것이 느껴졌으면 좋겠다. 그게 어떤 식으로든”이라며 “책방에는 편안함이 있는데 책방마다 느낄 수 있는 편안함이 조금씩 다르다. 손님들이 여기만의 ‘특별한 편안함’을 찾아간다면 그것만으로도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김도희 기자

기자를 응원해주세요

기사 잘 보셨나요? 독자님의 작은 응원이 기자에게 큰 힘이 됩니다. 독자님의 후원금은 모두 기자에게 전달됩니다.

이시각 주요기사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카카오스토리2
닫기
닫기